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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122화 (122/1,000)
  • 122화 악마의 식탁 (4)

    <심해마귀(深海魔鬼) ‘씨어데블’> -등급: A+ / 특성: 물, 심해, 마찰계수, 도장 깨기, 풍랑(風浪)

    -서식지: 가혹한 바다, 블루홀 ‘깊은 곳’

    -크기: 2.5m.

    -원념을 가진 익사체가 심해의 저주를 받아 두 번째 목숨을 얻었다.

    심해에 서식하는 강력한 몬스터들을 찾아가 싸우며 더욱 강한 육체로 진화해 왔다.

    놈이 심해에 둥지를 튼 이후 많은 심해 괴물들이 수면 위로 도망쳐 온다고 한다.

    씨어데블은 배 앞을 가로막은 채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놈이 나타나자 거세게 몰아치던 눈보라가 그치고 해일도 멎었다.

    바람이 사라지자 배는 오도 가도 못하고 바다 위에 고립되어 버렸다.

    결국.

    울컥한 유다희가 제일 먼저 행동에 나섰다.

    “뒈져라!”

    그녀는 전면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날카로운 도끼날이 허공을 두 조각으로 쪼갠다.

    하지만.

    씨어데블은 쟁반 같은 퀭한 눈을 번들거릴 뿐 별 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았다.

    그저 팔짱을 낀 채 허공에 떠 있을 뿐.

    투-웅!

    도끼는 씨어데블의 몸에 닿자 그냥 옆으로 미끄러져 버렸다.

    철썩!

    참격은 씨어데블의 몸을 빗겨 가 애꿎은 파도를 갈라 버렸다.

    유다희는 두 눈을 크게 떴다.

    “…미끄러졌어?”

    아예 데미지조차 주지 못했다.

    씨어데블은 흐느적거리던 몸을 세웠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제물을 주세요. 아아, 빨리. 배가 고파.]

    그때, 익숙한 알림음이 떴다.

    -띠링!

    <히든 퀘스트를 발견하셨습니다>

    <‘심해의 악몽’ 003- 씨어데블은 충분히 배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는 몬스터입니다, 잘 도망쳐 봅시다. (제물 0/4)>

    참 거지같은 히든 퀘스트다.

    유다희는 표정을 팍 구겼다.

    이런 식의 퀘스트는 줘도 사양이다.

    “에잇!”

    그녀는 다시 한 번 도끼를 휘둘러 보았지만…….

    투-웅!

    아무리 때려도 씨어데블은 데미지를 입지 않았다.

    놈의 몸에 닿은 공격은 그저 미끄러져 튕겨나갈 뿐이다.

    마법도 화살도 듣지 않았다.

    모든 것은 미끄러진다.

    부글부글부글부글…….

    씨어데블의 검푸른 살갗 표면에 점액이 송글송글 배어났다.

    저 미끈거리는 점액질에 닿으면 뭐든지 궤도가 어긋나 버리는 것이다.

    “저 빌어먹을 점액이 문제로군.”

    유다희가 침중한 안색으로 중얼거렸다.

    이후 수 분 동안 공격을 계속해 봤지만 씨어데블에게는 어떠한 공격도 먹혀들지 않았다.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그동안 놈은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섬뜩한 표정으로 선내를 샅샅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마치 시간을 재고 있는 것 같은 모양새.

    눈치가 조금이라도 있는 이라면 알 수 있었다.

    씨어데블은 자기가 정해 놓은 시간이 되면 가차 없이 만찬을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여기 있는 모두가 죽게 된다.

    …….

    결국.

    “제가 하겠습니다.”

    마교인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유다희는 놀란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따라왔던 이들 중 가장 말수가 적고 성실했던 마법사 유저였다.

    “저는 어차피 소모품도 마나도 다 떨어졌습니다. 차라리 여기서 제물이 되어 죽으면 공익을 위해 도움이 되겠죠.”

    그녀는 애써 웃으며 말을 이었다.

    “꼭 마동왕 님의 복수를 해 주세요!”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이었다.

    제물이 정해지는 순간.

    […히히히.]

    무표정했던 씨어데블의 눈과 입이 쫘악 찢어졌다.

    놈은 얼굴의 양 끝까지 찢어진 입으로 활짝 웃으며 촉수를 뻗었다.

    제물로 자원한 이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으아아아악!”

    씨어데블은 제물의 몸을 휘감고는 그대로 바다로 들어갔다.

    아마 최대한 물 깊숙한 곳까지 가서 잡아먹을 셈으로 보였다.

    [자, 그럼 방해꾼이 없어졌으니 출항!]

    치 카이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유쾌하게 외쳤다.

    씨어데블이 사라지자.

    휘이이이잉-

    다시 해풍이 불고 배가 전진하기 시작했다.

    “…….”

    살아남은 자는 이제 다섯.

    생존자들은 무거운 표정으로 앞으로의 일을 논의했다.

    방금 제물로 끌려간 이에게 보상해 줄 동영상 유료수익, 퀘스트 보상 등등을 말이다.

    하지만.

    죽은 자에게 줄 보상 문제에 앞서, 그들은 더 급하게 신경 써야 할 문제가 있었다.

    다음 제물은 누구인가?

    불편한 화제인지라 다들 애써 언급을 피하고는 있지만, 언제까지고 착한아이로 있을 수만은 없다.

    1시간 뒤까지 꼭 답을 내야 하는 문제였다.

    *       *       *

    마교의 길드원은 이제 유다희를 포함해 다섯 명이 남았다.

    그 남은 다섯 명이 씨어데블을 다시 만난 것은 정확히 1시간 뒤였다.

    [제물 주세요.]

    다시 만난 씨어데블은 전과 같은 무표정한 얼굴이 아니었다.

    귀밑까지 쫙 찢어진 입으로 벙글벙글 웃고 있는 주름투성이의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칠 만큼 역겨운 미소였다.

    “개 같은…….”

    유다희가 욕설을 씹어 내뱉었다.

    콰쾅!

    도끼를 휘둘러 보았지만, 이번 역시 데미지는 박히지 않았다.

    미끄덩-

    놈의 몸은 너무나도 미끄러워서 마법을 포함한 어떤 마찰력도 먹혀들지 않는다.

    울화통이 터지는 일이다.

    “…이번엔 제가 가겠습니다.”

    이번에 자원한 것은 궁수였다.

    고인물 추격 내내 첨병 역할을 했던 열성 유저.

    “마동왕 님의 복수… 꼭 부탁드립니다. 그분이 못다 한 일 그분의 팬들이 해 냈다는 미담이 남게끔 부디…….”

    그녀는 마동왕을 위해, 한 몸 거침없이 바쳤다.

    풍덩!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심청이처럼, 그녀는 씨어데블의 촉수에 휘감겨 심해로 끌려간다.

    유다희는 이를 뿌득 갈았다.

    무능하다.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

    길드원을 몬스터 밥으로 바쳐야 하다니!

    심지어 두당 3천만 골드씩 내며 데려온 이들이 아니던가!

    한데 정작 추격 대상자들은 안전한 곳에 숨어 자신들을 방패로 삼는다.

    심지어 항해가 시작된 이후부터는 얼굴을 보지도 못했다. 이 얼마나 분통 터지는 일인가!

    “으으으으으!”

    유다희가 부들부들 떨고 있을 동안.

    풍덩!

    씨어데블은 제물을 끌어안고 깊은 심해로 잠수했다.

    …….

    또다시 갑판 위엔 적막이 찾아왔다.

    “저 빌어먹을 놈을 박살낼 방법 없냐!?”

    치 카이에게 도움을 청하는 유다희.

    하지만 치 카이는 낄낄 웃어 댔다.

    [놈의 점액은 추위에도 얼지 않고 불에도 타지 않아. 포기해.]

    “제길! 그럼 앞으로 목적지까진 얼마나 남았는데!”

    [얼추 한 시간?]

    치 카이의 말에 모두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생존자의 수는 네 명.

    마교의 길드 마스터 유다희와 부길드 마스터 유창.

    인천연합 길드의 마스터 장태익.

    남은 하나는 그 어떤 경우에라도 보호해야 하는 힐러 클래스의 유저이다.

    이중에서 한 명이 제물이 되어야 새로운 맵으로 갈 수 있다.

    힐러 유저가 단호하게 말했다.

    “난 절대 싫어.”

    그는 강경한 입장이었다.

    “내가 왜 힐러 하는데? 몬스터한테 맞기 싫어서야.”

    일리가 있다.

    다들 난감한 표정이었다.

    유다희와 유창, 장태익은 각각 길드의 최고 간부.

    존재 자체가 곧 길드를 대표하는 이들이니 절대로 죽으면 안 된다.

    또한 힐러 클래스의 유저는 레이드의 자존심.

    최악의 순간에도 무슨 수를 써서든 보호해 줘야 하는 클래스가 아니던가.

    유다희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여기서 더 이상 인원수를 줄일 수는 없어.”

    “…그 말인 즉슨?”

    유창의 질문에, 유다희는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전원이 죽든가, 전원이 도착하든가. 둘 중 하나다.”

    결론은 났다.

    하지만 너무 늦게 내린 결론이었다.

    *       *       *

    정확히 1시간 뒤.

    [내놔.]

    씨어데블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는 말도 짧다.

    유다희 역시 짤막하게 대꾸했다.

    “꺼져.”

    퍼-엉!

    도끼가 날았다.

    유다희는 자신의 모든 마나를 쥐어짰다.

    온갖 공격적인 특성으로 몸을 전부 둘러 버렸다.

    하지만.

    씨어데블의 미끈거리는 육체는 모든 것을 무효화한다.

    그 어떠한 공격도 다 흘러가 버린다.

    […….]

    달라는 제물은 안 오고 공격만 계속되자 씨어데블 또한 짜증이 난 모양.

    [빨리 제물 내놔아!]

    씨어데블이 촉수를 뻗었다.

    콰콰콰쾅!

    난간과 갑판, 돛대 하나가 박살이 났다.

    결국.

    맨 뒤에서 열심히 힐을 날리던 힐러가 비명을 지르며 허공으로 붙잡혀 갔다.

    “으아아아악!”

    그는 촉수에 둘둘 휘감겨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으득! 으득! 으득!

    둘둘 뭉친 촉수가 끔찍한 소리를 내며 수축했다.

    촉수와 촉수 사이에서 진득한 핏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압살(壓殺)!

    그야말로 압도적인 힘!

    괜히 A+등급이 아닌 것이다!

    [제!물!내!놔!]

    방금 죽은 힐러는 자발적인 죽음이 아니었기에 제물로 카운트되지 않은 모양이다.

    콰콰쾅!

    두 개의 팔과 여섯 개의 발이 난간과 갑판을 죄다 때려 부순다.

    치 카이는 자신의 배가 부서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연신 낄낄거렸다.

    [또 가라앉겠는걸? 요호호호!]

    하지만.

    배는 침몰하지 않았다.

    벌컥-

    저 아래,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

    굳게 닫혔던 문이 열리는 소리다.

    동시에.

    뻐-억!

    갑판 위에서 패악질을 부리던 씨어데블의 머리통이 뒤로 홱 젖혀졌다.

    [끄륵!?]

    씨어데블이 입에서 검푸른 피를 뱉어냈다.

    부러진 이빨들이 왈그락 소리를 내며 게워져 나왔다.

    텅- 텅- 텅- 풍덩!

    씨어데블은 갑판에서 퉁겨져나가 돛대와 키에 한 번씩 부딪친 뒤 난간을 부수고 바다에 처박혔다.

    “……?”

    갑판을 뒹굴던 유다희가 이마에 흘러내리는 피를 훔치며 고개를 들었다.

    “만찬들은 잘 즐기고 계셨나?”

    산보라도 나온 듯 여유로운 목소리.

    고인물.

    그가 어창의 지하계단 앞에 서서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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