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악마의 식탁 (1)
바닷물 출렁이는 얼음동굴 속.
“꺄아아아악!”
“흐이이익!”
마교인들은 저마다 비명을 지르며 우왕좌왕하고 있다.
“으아아아, 어, 얼, 얼음! 읍읍!”
“역시 언니야! 땡 해 주러 왔구나!?”
“아니. 나도 잡혔어.”
모든 플레이어들이 패닉 상태였다.
좁은 얼음굴 안에서 미친 듯이 날뛰고 있는 거대한 상어.
심지어 조금만 방심하면 발목을 휘감아 오는 서릿발이라니!
그런 끔찍한 혼돈 속에서.
“개이득.”
나는 로봇청소기마냥 바닥에 엎드려 뽈뽈뽈 기어 다니고 있었다.
뽁!
바닥이나 벽 등지에 박힌 서리이빨의 이빨들을 하나씩 수거하면서 말이다.
-<상어 이빨> / D
냉기가 서려 있는 바다맹수의 이빨.
바다 위에서 일어나는 불행을 막아 줄 것 같은 느낌이다.
서리이빨의 이빨은 약 17cm길이의 송곳처럼 생겼다.
만지면 얼음조각을 만지는 듯한 차가움이 느껴진다.
내가 이빨을 뽑아 인벤토리에 넣자.
-띠링!
요란한 알림음이 얼음굴 안에 메아리쳤다.
<‘심해의 악몽’ 001-얼음상어의 이빨은 해적들에게 인기 있는 부적입니다. (1/28)>
‘좋았어!’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조용히 바닥에 떨어진 이빨들을 줍는다.
<‘심해의 악몽’ 001-얼음상어의 이빨은 해적들에게 인기 있는 부적입니다. (2/28)>
<‘심해의 악몽’ 001-얼음상어의 이빨은 해적들에게 인기 있는 부적입니다. (3/28)>
<‘심해의 악몽’ 001-얼음상어의 이빨은 해적들에게 인기 있는 부적입니다. (4/28)>
<‘심해의 악몽’ 001-얼음상어의 이빨은 해적들에게 인기 있는 부적입니다. (5/28)>
.
.
쩌저저적-
이빨을 줍다가 이히히히의 저주에 당해 얼어붙을 때는… 당황하지 않고~
“땡.”
저 멀리 얼음기둥 뒤에 몸을 숨기고 있는 드레이크가 화살을 날려 나의 저주를 풀어준다.
그렇게 해서,
-띠링!
<히든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심해의 악몽’ 001-얼음상어의 이빨은 해적들에게 인기 있는 부적입니다. (28/28)>
결국 퀘스트 완료 창이 뜨고야 말았다.
“…좋았어. 이제 어떻게 빠져나가느냐가 문제인데.”
나는 고개를 돌렸다.
콰콰콰쾅!
서리이빨과 이히히히는 아직도 맞붙어 싸우고 있다.
이히히히의 얼음땡 저주는 분명 강력한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리이빨 같은 대형 몬스터를 얼음 속에 가두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리라.
반대로 서리이빨 역시, 자신의 도주로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이히히히 때문에 효과적인 공격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튼 뭐, 둘 다 지금의 내가 잡기엔 힘든 몬스터이니…….”
나는 뒤엉켜 있는 두 몬스터를 슬쩍 피해 얼음굴 밖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이히히히가 여기까지 왔다는 건… NPC 빌에게 복수를 한 건가?’
문득 그녀의 숨겨진 설정이 떠올랐다.
아내의 살점을 도려낸 뒤 얼음구덩이 속에 파묻은 미치광이 남편.
가출한 뒤 마을 입구를 벗어나기도 전에 얼어 죽은 딸.
세상 모든 것을 저주하며 떠돌아다니는 아내.
거 참, 듣기만 해도 정신이 피폐해지는 스토리다.
“자, 그럼 두 분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나는 서리이빨과 이히히히를 피해 잽싸게 얼음바닥을 기어올랐다.
바로 그 순간.
“…어딜 가려고?”
바로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음산한 목소리.
“?”
고개를 들자, 내 얼굴 위로 그림자 하나가 길게 드리워진다.
유다희!
그녀가 거대한 도끼를 든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발 좀 뒈져! 진짜 쫌!”
유다희는 간절한 표정으로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미녀의 촉촉한 눈빛은 언제나 마음을 약해지게 만든다.
이윽고.
콰-쾅!
그녀의 도끼가 내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펄쩍!
나는 그녀의 도끼를 맞고도 멀쩡한 표정으로 얼음굴 위로 올라왔다.
“…!? 어째서!”
유다희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쩌적-
나는 그녀를 향해 발목의 얼음 수갑 하나를 흔들어 보일 뿐이다.
이히히히의 저주에 닿아 얼어붙고 있었던 하반신.
그것을 유다희가 ‘땡’ 해 준 것이다.
“얼음땡의 얼음 도중에는 데미지가 안 들어오니까.”
나는 얼음수갑을 흔들어 털어 버린 뒤 잽싸게 굴 밖으로 튀었다.
가는 도중에 불걸음을 써서 바닥의 얼음을 죄다 녹여 버릴까 했지만…….
‘불걸음은 마동왕의 스킬이니 자제해야지.’
나는 일부러 마동왕과의 교차점을 만들지 않기 위해 별다른 말썽 없이 도주로에 올랐다.
“기다려어어어어! 제발 죽어 줘! 한 번만! 제발 한 번만 죽여 보자! 꺄아아아아악!”
뒤에서 유다희가 무리한 요구를 해 오는 것이 들린다.
뭐, 가뿐히 무시하도록 한다.
타타탁-
고드름들을 짚으며 거침없이 굴을 빠져나가는 내 뒤로, 드레이크가 따라붙었다.
“마교는 그냥 두고 가는 건가? 굴 입구만 지키고 있어도 얼마든지 전멸시킬 수 있다.”
“알아. 근데 아직도 이용 가치가 남았어.”
“…아직도?”
내 대답을 들은 드레이크는 멍한 표정을 짓는다.
“귤을 껍질까지 벗겨 먹을 기세로군. 마교인들이 가엾어질 정도야.”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원래 과일은 껍질에 영양가가 많아.”
* * *
한참의 시간이 더 흘렀다.
콰쾅!
요란한 폭음과 함께.
“푸하!”
만신창이가 된 마교인들이 던전 ‘검은바닥 얼음굴’에서 빠져나왔다.
100명이 이르렀던 마교인의 수는 어느덧 스무 명 정도로 줄어들어 있었다.
뿌득-
유다희는 얼음 부스러기와 바닷물이 범벅된 얼굴로 이를 갈았다.
3천 명의 병력을 모아서 전투에 임했다.
그리고 지금, 남아 있는 병력은 고작 스무 명.
이대로는 도저히 면이 서지 않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고인물, 그 놈의 밉살맞은 대가리를 잘라가야 한다.
번쩍!
유다희의 외눈이 빛을 뿜었다.
-<눈 기러기의 눈> 마스크 / C+
설산에 사는 기러기의 눈을 뽑아서 만든 안대. 눈 위에 난 흔적이라면 아무리 작은 것도 감지해낼 수 있다.
-민첩 +50
-얼음지대 시야 +200%
그녀는 번뜩이는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이내, 사냥감이 지나간 흔적이 눈 위에 반짝반짝 표시된다.
일반적인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옅은 발자국들이 빛을 내며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이쪽이다.”
유다희는 마교의 생존자 스무 명을 데리고 추격을 재개했다.
파삭- 파스락- 푹-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 심지어 심한 급경사의 비탈길이다.
휘이이이잉-
눈보라 역시도 매서웠다.
하지만 유다희는 그 모든 것을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고인물을 죽이겠다는 그 일념 하나로!
그때.
정면을 노려보고 있는 유다희에게, 문득 유창이 물었다.
“그런데… 저 자식들,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생존자 스무 명이 모두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다.
이곳은 북방. ‘세상의 끝’
지도에도 이 설산 너머의 육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표시된다.
말 그대로 끝.
월드맵이 끝나는 곳이다.
그런데 놈들은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그러고 보니, 세상의 끝은 어떻게 되어 있을지 모르겠네.”
유다희는 곰곰이 생각했다.
현실의 지구는 둥글다.
하지만 오래 전, 세상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세상의 끝으로 가면 커다란 절벽이 있고 바닥이 없는 낭떠러지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세계관은 바로 그런 구시대(舊時代)의 세계관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천동설, 지구평면설, 지하공동설 등등…….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게오르크 루카치(Georg Lukacs, 1885∼1971) 『서사시의 시대』 中-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낭만(浪漫)과 로망(roman).
먼 옛날의 이론들이 지배하고 있는 세계.
그것이 바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세계인 것이다!
그렇기에.
‘세상의 끝’에 뭐가 도사리고 있을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
유다희는 지금껏 고인물을 추격하는 데만 급급했던 자신을 돌아보았다.
눈앞에 나 있는 발자국.
끝도 없는 설원을 향해 길게 이어진 저 발자국.
이 발자국의 주인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동시대인들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상상조차 한번 해 본 적 없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서 거침없이 발을 내딛는 존재.
고인물.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는 과연 대단한 존재이다.
오직 그만이 진정한 ‘파이오니아(Pioneer)’인 것이다.
그때.
“어!? 찾았다! 찾았습니다! 저쪽입니다!”
앞서 걷던 첨병 하나가 경악하여 소리친다.
그는 빙벽의 코너 저편. 설산의 봉우리 아래를 가리키며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있었다.
“……?”
유다희는 뭔가 싶어 잽싸게 앞으로 움직였다.
이 산만 넘으면 그 뒤부터는 쭉 내리막길만 이어진다.
저 아래 드넓은 공간이 그대로 펼쳐져 보이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맵에 끝에 닿아 있을 고인물의 모습 역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네가 도망칠 곳은 없다!’
그야말로 세상의 끝, 그리고 세상의 끝까지 추격해 온 추격대.
이제는 그쪽이 죽거나 이쪽이 죽거나, 둘 중 하나다.
유다희는 그런 필사의 각오를 품은 채 봉우리를 넘었다.
이윽고.
북방 설산의 정상에 선 그녀.
하지만.
“…어엇!?”
산비탈 아래를 확인한 유다희의 두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벌어진다.
세상의 끝.
그곳에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철썩-
바다가 얼어붙어 만들어진 광활한 해변.
두텁게 쌓인 눈 너머로 출렁거리는 물결.
어마어마하게 넓은 바다가 모든 이들을 압도하고 있다.
거대한 유빙들이 둥둥 떠다닌다.
바다 쪽에서 매서운 해풍이 불어 얼음산을 깎아 내고 있었다.
저 멀리서 하늘거리는 북극광은 눈이 멀 듯 아름답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것들을 오래 볼 수는 없었다.
얼어붙은 소금가루가 눈보라에 섞여와 눈을 때리기 때문이다.
얼어터진 입술을 혀로 핥으니 바람에서 찝찔한 맛이 났다.
그리고.
“세상의 끝에 온 것을 환영해.”
월드맵의 끝.
바다와 땅이 맞닿는 지점에 선 사내가 빙글빙글 웃고 있는 것이 보인다.
고인물.
그는 멍하니 선 마교의 추적대를 향해 얄밉게도 말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시작’이야.”
고인물은 손가락을 뻗어 설원의 구석, 얼어붙은 만(灣)을 가리켰다.
“…….”
유다희를 비롯한 마교의 추적대는 고인물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멍하게.
그리고.
그곳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