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죽음의 얼음땡 (4)
“…아니. 이건 뭔가 잘못됐는데?”
나는 멈칫했다.
마교가 왜 거기서 나와?
“타이밍이 삐끗했나? 계산대로라면 ‘다른 것’이 먼저 도착했어야 하는데…….”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윽고.
얼음굴 저편으로 낯익은 얼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다희, 유창, 장태익 등등…….
추적대가 도착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쫓아왔지? 발자국도 되게 희미하게 남겨 놨는데…….”
내가 의아하다는 듯 중얼거리자, 유다희가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호호호! 바로 이 아이템 덕분이지!”
유다희는 자신의 한쪽 눈을 가리고 있는 하얀 안대를 가리켰다.
-<눈 기러기의 눈> 마스크 / C+
설산에 사는 기러기의 눈을 뽑아서 만든 안대. 눈 위에 난 흔적이라면 아무리 작은 것도 감지해낼 수 있다.
-민첩 +50
-얼음지대 시야 +200%
그 아이템을 보는 순간 나는 이마를 탁 쳤다.
‘그렇군. 저 아이템을 구한 건가.’
그렇다면 이렇게 빠른 추격 속도도 이해가 된다.
‘눈의 기러기의 눈’
북방 탐험을 할 때 필수적으로 꼽히는 아이템.
사냥감이 도망친 루트나 숨겨진 길 등을 훤히 드러내 주는 히든 피스이다.
…뭐, 유용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뉴비들에게 한정된 이야기.
나 같은 경우에는 딱히 필요로 하지 않는 아이템이다.
나는 몬스터들이 어디로 어떻게 도주하는지도 알고 숨겨진 던전이나 아이템, NPC등의 위치 역시도 모조리 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딱히 쓸모가 없어 안 구했던 아이템이었는데…….
‘그걸 유다희가 손에 넣었을 줄이야… 운이 좋은 건지, 실력이 좋은 건지.’
차차차착-
거의 100명에 육박하는 추적대가 얼음굴을 빈틈없이 포위했다.
앞에는 마교, 뒤에는 서리이빨 상어.
이거 아주 총체적 난국이다.
‘으음, 시간을 벌어야 하는데…….’
드레이크가 서리이빨을 막고 있는 동안, 나는 마교를 막아야 한다.
…그런데 100명이나 되는 이것들을 어떻게 막지? 이게 무슨 삼국지 게임도 아니고.
고민하던 끝에, 나는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봐, 교주.”
그러자 유다희의 눈이 가늘어진다.
“개수작은 안 통해. 넌 뒤졌어.”
“아니, 그게 아니라… 너는 혹시 네가 지금 끼고 있는 아이템의 ‘비밀’을 아는가 해서.”
내가 손가락을 뻗어 가리킨 것은 유다희의 한쪽 눈에 덮여 있는 안대였다.
“……?”
유다희는 고개를 갸웃했다.
“눈 기러기의 눈을 말하는 거냐?”
“그렇다.”
“…여기에 무슨 비밀이 있다는 거지?”
유다희는 내심 궁금하다는 듯, 그러나 경계를 전혀 풀지 않은 모양새로 나를 견제했다.
“…….”
나는 약간의 침묵을 고수한 끝에 입을 열었다.
“눈의 기러기의 눈은 거꾸로 해도 눈의 기러기의 눈.”
그러자.
갑분싸.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스릉-
유다희가 전투 도끼를 꺼내 들었다.
“쓰레기 같은 놈이라 그런가 입으로도 쓰레기를 뱉는구나.”
……?
왜 이런 반응이지?
분명 예전에 예능에 나왔을 때는 다들 빵빵 터졌던 개그였는데?
‘아, 그때 이 개그를 친 사람이 아이돌이라서 그런가?’
생각해 보니 그렇다.
개그는 치는 사람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는 것이다.
내 개그는 오히려 마교인들의 투지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었다.
“죽여라!”
유다희의 지시가 내려졌다.
수많은 마교인들이 칼과 창, 마법을 앞세워 돌격해 오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퍼펑!
나와 마교 레이드의 사이를 가로막는 것이 하나.
두터운 빙판을 뚫고 나온 것은 바로 서리이빨이었다!
“헉! 이게 뭐야!?”
유창이 바스타드 소드를 휘두르려다 말고 기겁했다.
전신이 얼음 갑주와 근육으로 뒤덮인 거대한 상어.
심지어 집채만 한 몸뚱이 양쪽에는 통나무 같은 팔뚝까지 달렸다.
콰쾅!
놈은 바다 속에서 빙판 위로 올라오자마자 팔과 꼬리를 휘저어 마교인들을 쓸어가기 시작했다.
“젠장! 이 근육돼지는 또 뭐야! 마법부대! 포격!”
유다희는 탱커, 근접 딜러 라인을 재빨리 뒤로 물렀다.
그리고 후방에 배치되어 있던 마법사들을 이용해 일제히 포격을 날린다.
콰콰콰콰쾅!
번개, 화염, 바람 등 대규모 광역마법들이 쏟아진다.
와작- 와그작-
서리이빨의 몸에 얼어붙어 있던 서리갑옷들이 조금씩 바스라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압도적인 수로 밀어붙이면 제아무리 A급 몬스터라고 해도 데미지를 입을 수밖에 없다.
서리이빨은 짜증스럽다는 듯 몸을 흔들어 마법들을 털어냈다.
그리고는 공격을 등진 채 반대편으로 어기적어기적 기어가기 시작했다.
귀찮다는 태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나는 그것을 보며 경악했다.
‘안 돼!’
재수 없으면 영영 놓쳐 버린다!
서리이빨은 적의 수가 너무 많으면 아예 심해 깊숙한 곳으로 도망쳐 버리는 습성이 있단 말이다!
놈이 완전히 도망가기 전에 빨리 저 구멍을 얼려 버려야 하는데…….
으득-
나는 일단 급한 대로 엄지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었다.
맹독이 함유되어 있는 나의 핏방울.
촤악-
빙판에 난 얼음구멍마다 피를 뿌리자.
퐁퐁퐁-
이내 구멍 속 출렁거리는 바닷물이 일시적으로나마 검게 물들었다.
[…키잇!]
서리이빨은 빙판에 난 구멍으로 기어들어가려다가 잠시 멈칫했다.
모든 몬스터들은 기본적으로 독이나 맹독을 피해 움직이게끔 설정되어 있다.
서리이빨은 자기가 원래 들어가려던 구멍에서 꽤나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구멍으로 우회하기 시작했다.
임시방편이지만 이걸로 시간은 조금 벌었다.
퍼퍼퍼펑-
그 와중에도 마교인들의 마법 포격은 계속되고 있었다.
[캬오!]
서리이빨은 귀찮음이 극에 다다른듯했다.
이내, 놈은 입을 쩍 벌리고 마교인들을 향해 돌아섰다.
그러자.
콰콰콰콰콰콱-
서리이빨의 입 속에서 수많은 이빨들이 송곳 미사일처럼 발사되었다.
“헉!?”
유다희는 경악했다.
상어의 입 안에 저렇게 많은 이빨이 있었을 줄이야!
퍼퍼퍼퍼퍼펑-
수많은 마교인들이 상어이빨에 꿰뚫려 죽음을 맞이했다.
[크르륵!]
텅 빈 잇몸에서 새로운 이빨을 재생한 서리이빨은 그제야 다시 고개를 돌려 얼음구멍을 향한다.
“쯧쯧쯧…….”
나는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무려 A급 몬스터의 공격이다.
나도 못 버틸 것을 현 시점의 유저들이 버텨 낼 리는 만무하다.
한편.
드레이크는 나를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대로라면 놈이 구멍 속으로 도망칠 것 같은데… 차라리 마교인들 가운데 섞여 있는 얼음계열 마법사를 회유해서 구멍을 막는 게 좋지 않겠나?”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시점의 얼음계열 마법사라면 기껏해야 3클래스 정도일 텐데, 고작 그 정도 수준의 얼음마법으로 서리이빨의 도주를 막겠다고? 넌센스지.”
“…그럼 이대로 놓쳐야 하나?”
드레이크의 말에는 진한 아쉬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잡을 방법이 없다.
하지만.
나는 조금 생각이 다르다.
방금 전까지는 드레이크와 같은 생각이었지만, 방금 바뀌었다.
이히히히히-
얼음굴 저편에서 들려오는 이 웃음소리를 듣고 말이다!
“허억!?”
“꺄아악!”
상어이빨 소나기를 피해 우왕좌왕하던 마교인들이 기겁했다.
그토록 무서운 웃음소리, 따돌렸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여기까지 쫓아왔을 줄이야!
추격자를 쫓는 추격자.
이윽고 그녀의 그림자가 얼음굴 내부에 길게 드리워진다.
<기어오는 술래 ‘이히히히’> -등급: A / 특성: 얼음, 어둠, 언데드, 술래
-서식지: 가혹한 설산
-크기: 2m.
-마을에서 마녀로 몰린 여자가 얼음 구덩이에 산 채로 던져졌다. 머리 위로 연신 끼얹어지는 차가운 물을 맞으며, 그녀는 정신을 잃어버렸다.
소름끼치는 몬스터가 여기 또 하나.
이히히히는 북방의 오픈필드를 통틀어 최악의 몬스터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괴물이다.
모두가 그녀의 등판에 혼비백산하고 있을 때.
‘왔다!’
오직 나 혼자만 쾌재를 불렀다.
* * *
콰드득-
발밑부터 얼어붙는 이 생경한 감각.
몇 번을 겪어도 적응되지 않는다.
마치 나 자신이 극도로 좁은 감옥에 갇혀 이 세상으로부터 영원히 격리되는 감각이다.
“땡!”
유다희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돌리니 유창이 숨을 헐떡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정신 차려 누나! 이대로라면 본전도 못 건져!”
‘본전’이라는 단어에 유다희는 다시 한 번 정신을 가다듬었다.
“고인물! 그놈은!?”
유다희는 잽싸게 고개를 돌려 얼음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놀라온 광경이 보였다.
바닷물이 출렁이고 있던 얼음구멍들은 전부 다시 단단한 빙판으로 얼어붙은 상태였다.
쩌저저저적-
그리고 수많은 마교인들이 딱딱한 얼음조각으로 변해 널브러져 있다.
그 무시무시한 얼음지옥 속에서.
[이히히히히-]
[카아아아악!]
이히히히와 서리이빨이 맹렬하게 맞붙어 싸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세상에!”
유다희는 입을 딱 벌렸다.
세상의 끝.
가혹한 북방에서 벌어지는 초 A급 몬스터들의 1:1 싸움!
언제 이런 진귀한 구경을 또 해 보겠는가?
이히히히와 서리이빨은 서로 맹렬하게 대립한다.
콰쾅!
서리이빨은 뺑소니 특성을 이용해 얼음바닥에 구멍을 뚫고 바다 밑으로 도망치려 했지만,
쩌적!
이히히히는 술래 특성을 이용해 빙판에 난 구멍을 다시 단단하게 얼린다.
서리이빨은 날카로운 이빨과 굵은 팔뚝으로 이히히히를 공격했고, 이히히히는 냉수어(冷水魚)의 내장마저 얼려 버릴 듯한 극저온의 빙계마법으로 맞서고 있었다.
[카아아아악!]
서리이빨은 온몸을 옥죄어 오는 얼음에 크게 당황하는 듯싶었다.
하지만 덩치가 워낙 덩치인지라 쉽게 잡히진 않는다.
놈은 그 동안 이히히히의 깡마른 몸에 이빨을 박아 넣은 채 마구 흔들어 재끼고 있었다.
[이히히히히-]
이히히히는 물리방어력이 약하다.
그녀의 몸뚱이는 서리이빨의 입에 물린 채 마치 너덜너덜한 넝마처럼 흔들린다.
어느 쪽이 이길 것이라 쉽게 점칠 수 없는 상황!
서리이빨이 먼저 파괴불가의 얼음 속에 갇힐 것인가!
아니면 그 전에 이히히히의 몸이 갈가리 찢겨질 것인가!
모두가 본래의 목적도 잊은 채 그 난투를 멍하니 바라본다.
…….
그때.
“……!”
유다희,
오직 그녀만은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원래 목표로 했던 대상을 찾아 황급히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아앗!?”
유다희는 두 눈을 찢어질 듯 크게 떴다.
고인물.
저 밉살맞은 자식은 두 몬스터가 싸우는 주변을 뽈뽈뽈 돌아다니고 있다.
마치 로봇청소기마냥 바닥에 떨어진 것을 줍줍하면서 말이다!
“개이득.”
고인물 자식이 줍고 있는 것은 아까 서리이빨이 쏘아 날렸던 이빨들이었다.
하나하나가 송곳 같은 이빨들.
고인물이 막 얼음벽에 박혀 있는 이빨 하나를 뽑아 드는 순간.
-띠링!
낯익은 알림음이 얼음굴 안에 메아리쳤다.
<히든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심해의 악몽’ 001-얼음상어의 이빨은 해적들에게 인기 있는 부적입니다. (2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