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죽음의 얼음땡 (3)
쾅!
오두막의 문이 사납게 열렸다.
검붉은 망토를 두른 남녀가 오두막 안으로 쏟아지듯 들어왔다.
마교.
그중에서도 정예들만 남은 1백 명의 척살대.
그들을 이끌고 있는 이는 바로 유다희였다.
“…흐음.”
그녀는 오두막 안에 들어오자마자 눈을 가늘게 떴다.
별 볼일 없어 보이는 NPC 하나가 오두막 중앙에 있는 간이난로에서 국을 끓이고 있을 뿐이다.
[여행자인가. 뭐 식량은 당분간 넉넉하니… 앉아서 먹어도 좋아.]
[돈은 됐어. 식량이나 무기가 있으면 놓고 가.]
빌은 몇 개 되지 않는 정해진 대사만 떠들 뿐이다.
“간만의 온기네, 누나.”
유창은 손을 호호 불며 발을 굴렀다.
오두막의 온기를 쬐자 그나마 몸이 좀 녹는 듯하다.
방 중앙의 화톳불은 집 전체를 훈훈하게 만들고 있었다.
100명의 추적자들은 오두막을 중심으로 빙 둘러앉아 따듯한 국물을 마셨다.
“…빌어먹을, 더럽게 비싸네.”
유창은 국밥 한 그릇에 수십만 골드가 넘는 금액을 지불하고는 투덜거렸다.
북방의 NPC들은 돈 보다는 식량이나 무기 등 물건과의 물물교환을 더 선호한다.
그걸 몰랐기에 쓴 바가지였다.
한편.
NPC 빌은 계속해서 정해진 대사를 주절거린다.
[우리는 괴물의 저주를 피해 매번 주기적으로 마을을 옮기지. 하지만 저번에는 마을을 버릴 타이밍이 너무 늦었어. 안일했지.]
[괴물은 계속해서 우리를 쫓아온다. 이제는 생존자도 나 하나뿐이야. 아내도 잃고 딸도 잃고… 이제는 조금 지치는군.]
그의 대사는 딱 4개인 듯하다.
국밥을 나눠주는 것, 대가는 물건으로 달라는 것, 전 마을이 폐허가 된 이유, 그리고 자신의 히스토리를 유추할 수 있게끔 하는 내용.
“…정말 별것 없는 NPC로군. 그냥 잡화상인인가 보다.”
유다희는 빌에게서 관심을 끄기로 했다.
이내, 그녀는 마교의 최고 간부들을 모아 앞으로의 일정을 상의하기 시작했다.
“이히히히라고 했나? 그 미친 몬스터 때문에 거의 궤멸당할 뻔했네.”
“추격은 어떻게 할까요?”
“계속해야지! 이대로 돌아가면 그게 무슨 망신이야!”
“거의 다 몰았어. 조금만 더 가면 맵의 ‘끝’이 나온다. 도망칠 곳도 없을 거야.”
다들 저마다 의견을 내놓는다.
추격의 의지는 아직 꺾이지 않았다.
장태익을 비롯한 인천연합의 추적대 역시도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예전에 초보자 마을에서 당했던 원한을 갚을 때가 되었다!”
다들 고인물을 죽이겠다는 일념 하나로 뭉친 이들이다.
그들이 막 의기투합하고 있을 때.
[……!]
갑자기 화톳불 중앙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벌떡 일어났다.
NPC 빌.
바로 그였다.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지은 적 없었던 표정을 지은 채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여태껏 없던 대사를 말하기 시작한다.
[이 멍청한 놈들! 뭘 달고 온 거냐!?]
그러자 마교인들은 고개를 갸웃하며 고개를 돌린다.
그러자.
어둠 너머에서 작은 목소리 하나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히히히-
얼핏 듣기에는 바람소리 같지만, 여기 있는 모두는 알고 있었다.
오싹-
모든 이들이 들고 있던 국그릇을 내팽개쳤다.
“도, 도망쳐야 해! 술래가 온다!”
유다희를 비롯한 모든 이들은 재빨리 오두막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더 깊은 산골짜기를 향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눈 위로 옅게 난 사냥감의 발자국을 쫓아서!
…….
한편.
NPC 빌은 손에 피 묻은 식칼 한 자루를 든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오오! 그래! 이제 나는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어둠을 향해 중얼거렸다.
[웬디, 나의 딸아!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사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 아빠에게 힘을 다오!]
이윽고, 그는 눈보라 몰아치는 어둠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 들어가기 시작한다.
이히히히히-
바람인지 웃음소리인지 알 수 없는 소리만이 어두운 설산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 * *
“와, 뒤지기 전에 도망가서 다행이다. 뒤질 뻔했네.”
나는 혀를 내둘렀다.
드레이크 역시 식겁했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아직 100명은 남아 있는 것 같더군.”
“으아, 무슨 퀴즈쇼냐? 1:100이라니.”
유다희가 오두막에 들어오기 직전, 우리는 창문을 통해 탈출했다.
이곳 북대륙의 설산은 몸도 마음도 극한까지 정진한 게이머가 아니면 올 수 없는 필드다.
기후와 지형부터가 가혹할 뿐만 아니라 몬스터들의 난이도도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어둠, 추위, 음침한 지형물과 NPC, 꿈도 희망도 없는 설정 등등...
정서적인 분위기 역시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한다.
그런 난관을 뚫고 1백 명이나 살아남다니, 과연 대단한 추격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편.
나와 드레이크는 설산의 어느 중턱, 깊은 곳에 있는 크레바스 안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이 크레바스는 언뜻 보기에는 그냥 맵에 뚫려 있는 커다란 균열 같지만…….
-띠링!
<던전 ‘검은바닥 얼음굴’에 입장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이렇게 진입해 보면 사실 던전임을 알 수 있다.
‘검은 바닥 얼음굴’
특이한 이름이다.
얼음굴인데 바닥이 검다니?
드레이크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바닥에 수북하게 쌓인 눈을 조금 치워 보았다.
그러자, 정말로 검은 바닥이 모습을 드러냈다.
“……!”
이내, 드레이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흰 눈 밑으로 보이는 시커멓고 투명한 바닥.
그것은 바다였다!
드레이크는 그것이 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바다라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뒤로 펄쩍 뛰어 물러났다.
“어어… 지금 얼어붙은 바다 위를 걷고 있는 건가?”
정답이다.
바다가 너무 깊어서 까맣게 보일 뿐이다.
나는 피식 웃고는 드레이크에게 경고했다.
“조심해. 바닥이 깨지면 바로 심해로 가라앉는 거야.”
“…조심해서 걸어야겠군.”
“너만 조심해서 되는 게 아니긴 하지만.”
“……?”
드레이크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돌린다.
철푸덕-
나는 대답 대신 손에 들고 있던 자루를 얼음바닥에 내던졌다.
꿀렁- 꿀렁- 꿀렁-
시커먼 얼음바닥에 자루 속에 든 것들이 쏟아진다.
그것은 아직 덜 굳은 선지였다!
NPC 빌에게서 얻어온 무언가의 핏덩이.
뜨끈한 김과 비린내가 좁은 얼음굴 안에 확 번진다.
그러자.
후욱-
발 아래, 검은 바다 저 밑에서 무언가 엄청난 속도로 솟구쳐 오르는 것이 보였다!
콰-쾅!
얼음바닥이 통째로 박살난다.
[크-워어어어억!]
바다 밑에서 괴물이 튀어나왔다!
1M도 넘는 두께의 얼음바닥을 부수고 튀어나온 몬스터.
그것은 몸에 묻은 바닷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우리를 향해 이빨을 드러낸다.
“낚았네.”
나는 손뼉을 쳤다.
얼음바닥을 뚫고 심해에서 곧장 올라온 몬스터.
그것은 전신이 흰 빛깔이었는데 그것은 사실 피부 표면에 얼어붙은 서리와 눈 때문이었다.
그 밑의 본래 피부색은 짙은 청색이다.
뾰족한 대가리 맨 끝에 붙은 노란 눈은 마치 야광등처럼 으스스하게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아래로 쩍 벌어진 붉은 입 속에는 칼처럼 날카로운 이빨들이 기형적으로 많다.
등에 곧게 솟은 지느러미와 배 부분에서 팔랑거리는 사각형의 작은 배지느러미.
목과 허리 사이의 부분에 시뻘건 핏빛으로 펄떡거리며 약동하는 수 갈래의 아가미는 그것이 어류(魚類)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얼음상어 ‘서리이빨’> -등급: A / 특성: 물, 얼음, 뺑소니
-서식지: 검은바닥 얼음굴. 가혹한 바다 연안
-크기: 4m.
-얼음상어 무리를 이끄는 보스. 한때 심해 깊은 곳에 서식했지만 어째서인지 최근 서식지를 바꿔 수면 근처로 올라왔다.
네임드 몬스터 ‘서리이빨’
놈이 나와 드레이크의 앞에 나타나는 순간.
-띠링!
<히든 퀘스트를 발견하셨습니다>
익숙한 알림음이 뜬다.
<‘심해의 악몽’ 001-얼음상어의 이빨은 해적들에게 인기 있는 부적입니다. (0/28)>
아쉽게도 직접적인 퀘스트는 아니다.
다만 구체적인 퀘스트 넘버가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어떤 퀘스트의 일부가 되는 서브 퀘스트인 듯싶었다.
“심해의 악몽 퀘스트? 이게 뭐지?”
“…….”
드레이크가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나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다른 고민을 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저놈의 이빨을 모아야 하는데…….”
나는 턱을 쓸며 고심했다.
서리이빨을 죽이면 이빨을 모을 수 없다.
놈의 이빨을 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것은 놈이 이빨을 미사일처럼 발사할 때 그것을 피해 땅에 떨어진 이빨을 줍는 것이다.
“어쨌든 싸워야 한다는 것이군.”
드레이크는 쇠뇌를 꺼내들었다.
예전에 악의 고성 레이드 당시, 그는 조디악 번디베일이 잭 오 랜턴과 싸우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바 있었다.
그 때문일까?
드레이크는 서리이빨과 1:1로 붙어 보고 싶어 했다.
“나쁘지 않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드레이크는 강한 적과 마음껏 싸워 볼 수 있어서 좋고, 나는 서리이빨의 이빨을 모을 수 있어서 좋고.
윈윈 전략이다.
[가-아아아!]
상어가 얼음바닥을 돌진해 왔다.
파캉! 팡! 끼긱!
놈은 네 개의 지느러미 끝에 달린 칼끝으로 얼음을 찍어 몸을 밀며 이동했다.
A급 네임드 몬스터답게, 놈은 강하고 민첩했다.
힘차게 펄떡거리는 꼬리가 한번 휘저어질 때마다 수십 미터를 미끄러진다.
“이놈!”
드레이크는 얼음바닥에 마름쇠를 뿌렸다.
그리고 화살을 들어 서리이빨을 요격했다.
하지만.
드레이크와 맵의 상성은 영 좋지 않은 듯하다.
콰콰쾅!
서리이빨은 얼음바닥에 구멍을 뚫고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퍼펑!
그리고는 마름쇠와 화살을 피해 전혀 다른 구멍을 뚫고 솟구쳐 오른다!
우드드득-
얼음들이 무더기로 부서져 나간다.
마름쇠와 화살이 봉인된 것과 동시에, 바닥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젠장. 툭하면 물속으로 숨으니 이건 뭐…….”
드레이크는 얼음 구멍 속 깊은 바다를 바라보며 이를 뿌득 갈았다.
촤악!
어김없이, 서리이빨은 수면 위로 머리를 내민다.
“패턴을 모르면 잡기 힘들지.”
나는 고전하는 드레이크를 보며 피식 웃었다.
서리이빨의 경우는 딜 넣는 타이밍을 맞추기가 꽤 까다롭다.
두더지처럼 얼음구멍 속으로 도망쳤다가 다시 나오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놈에게도 패턴이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콰쾅!
나는 박살나고 있는 얼음바닥을 보며 생각했다.
‘놈은 항상 1턴 전에 만들어놓은 얼음 구멍 속으로 들어간 뒤 새로운 구멍을 만들지. 그 전에 놈이 들어갈 구멍을 얼려서 막아 버리면 놈은 2초 정도 바닥 위에서 허둥거리게 된다. 그때가 딜 타이밍!’
요컨대 이것이다.
1.서리이빨이 바닥에 제1구멍을 뚫고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2. 나올 때 제2구멍을 뚫는다.
3.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갈 때는 제1구멍으로 들어간다.
4. 나올 때 제3구멍을 뚫는다.
5.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갈 때는 제2구멍으로 들어간다.
6. 나오면서 제4구멍을 뚫는다.
이 패턴이 무한하게 반복되는 것이다.
모든 바닥이 무너질 때까지.
‘저놈을 잡기 위해서는 구멍을 ‘얼려서’ 막을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하지.’
나는 바닥에 숭숭 뚫린 얼음구멍들을 보며 생각했다.
빨리 내가 기다리고 있는 그 존재가 나타나야 할 텐데…….
“…발자국까지 뚜렷하게 남겨 놨으니 곧 따라오겠지?”
내가 혼자 중얼거리고 있을 때.
부스럭-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얼음굴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왔다!”
나는 서리이빨을 낚았을 때처럼 소리쳤다.
이윽고.
드레이크가 솔로잉을 포기하고는 내 옆으로 뛰어온다.
“어진! 이제 어떻게 할 텐가?”
숨을 헐떡이는 드레이크의 질문에, 나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 우리는 직접 나설 것 없이 싸움 구경이나 하자고. 팝콘 챙겨!”
그리고 그 순간.
얼음굴 밖에서 살기등등한 호통 소리가 들려온다.
“고인물 이 X끼! 거기 있는 거 다 안다! 딱 기다려라!”
얼음 동굴 안에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바로 유다희였다!
그러자 드레이크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돌아본다.
“어진. 마교 놈들과 서리이빨을 싸우게 할 생각이었나?”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대답했다.
“…음. 아니. 이건 뭔가 잘못됐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