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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115화 (115/1,000)
  • 115화 죽음의 얼음땡 (1)

    휘이이이잉-

    HP를 깎아 먹는 눈보라.

    온 세상천지를 죄다 얼음으로 뒤덮어 버릴 기세로 몰아치는 눈발 속에서.

    뿌득- 뿌득- 뿌득-

    마교의 500 추적대는 설산을 오르고 있었다.

    [크앙!]

    추적대 앞 열. 흰 눈이 붉게 물든다.

    커다란 늑대 한 마리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끼잉!]

    [깨갱!]

    우두머리의 목이 잘리자, 흰 늑대들은 일제히 뒤로 물러선다.

    녀석들은 이내 꼬리를 말고 눈보라 너머로 도망쳐 버렸다.

    “젠장. 여기 몬스터들은 잡몹도 강하네…….”

    유다희.

    그녀는 피로 물든 도끼를 눈에 문질러 씻어냈다.

    <서리 늑대> -등급: C+ / 특성: 백전노장, 뺑소니, 얼음, 야수

    -서식지: 가혹한 설산, 얼어붙은 부패

    -크기: 3m.

    -추운 곳에 적응한 늑대. 무리를 이루어 살며 사냥감이 약해질 때까지 치고 빠지기를 반복해 결국 숨통을 끊어놓는다.

    이 빌어먹을 늑대들은 한 마리 한 마리가 강력했다.

    중앙대륙이었다면 개개인이 필드 보스급으로 분류되었을 정도.

    그런 수준의 몬스터들이 무리를 이루어 습격한다.

    북방의 가혹한 기후에 적응했기 때문일까?

    놈들의 개체값은 동급 몬스터들에 비해 1.5배에서 2배까지 더 높은 듯싶었다.

    몬스터는 받지 않는 지형 데미지를 플레이어들만 받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게 체감되기도 했다.

    더욱 짜증 나는 것은 놈들의 ‘뺑소니’ 특성.

    피해를 입히다가 적당히 됐다 싶으면 도망가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또 잊을 만하면 다시 나타나 공격을 퍼붓는다.

    “보통 온라인 게임에서 늑대는 완전 쓰레기 몹인데…….”

    유창은 피 섞인 침을 뱉으며 투덜거렸다.

    이 늑대 무리 때문에 마교의 추적대는 꽤 큰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비단 늑대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어머? 이 펭귄 좀 봐. 너무 귀엽다.”

    눈보라 속에서 뒤뚱뒤뚱 걸어 다니는 펭귄.

    하지만 이 펭귄을 얕봤다가는 큰일 난다.

    퍼억-

    펭귄을 쓰다듬으려 했던 한 여자의 두개골에 바람구멍이 뚫렸다.

    [펭!]

    펭귄은 머리 위에 삐죽하게 선 깃털을 표창처럼 흩뿌리며 공격해 왔다.

    <근성가이 펭귄> -등급: B / 특성: 싸움광, 매혹, 얼음, 야수

    -서식지: 가혹한 설산, 얼어붙은 부패

    -크기: 1m.

    -싸우는 것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펭귄.

    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의외로 먹이사슬의 상위 포식자이다.

    이 펭귄은 오히려 늑대보다도 더욱 강하고 흉폭했다.

    [귄!]

    펭귄의 깃털과 부리에 또다시 마교인들이 우수수 죽어 나간다.

    “젠장! 다들 물러서! 원딜만 착실하게 넣으세요! 창아! 너는 나 따라와!”

    유다희는 배틀액스를 들고 앞으로 돌진했다.

    [펭!]

    펭귄은 부리부리한 눈을 빛내며 유다희와 맞섰다.

    쩡! 차앙! 깡!

    펭귄의 부리와 유다희의 도끼가 팽팽하게 공수를 나눴다.

    불똥이 사방팔방으로 튀며 요란한 굉음이 울려 퍼진다.

    마교인들은 그것을 보며 용기백배하기 시작했다.

    “우와! 우리 교주님은 B급 몬스터와도 1:1이 가능해!”

    “심지어 그냥 B급이 아냐! 북대륙의 B급 몬스터라고!”

    “멋지다! 사랑해요 교주님! 걸크러쉬 폭발!”

    여인네들의 응원과 환호를 들으며, 유다희는 생긋 웃었다.

    ‘꺅꺅대지만 말고 원딜이랑 서폿 좀 하라고 X발.’

    누나의 속마음을 읽었는지, 유창 역시 바스타드 소드를 역수로 쥐고 참전했다.

    “저도 들어갑니다!”

    장태익.

    올해 19살. 인천연합 길드의 마스터.

    손에 커다란 활을 든 그 역시 펭귄과의 사투에 참전했다.

    콰콰콰쾅!

    천지가 뒤집히듯 굉음이 인다.

    [귄!]

    근성가이 펭귄은 드릴 같은 부리와 칼날 같은 날개를 열심히 움직여 저항했지만, 400명이 넘는 레이드를 당해 낼 수는 없었다.

    쿵!

    [펭...귄...]

    분한 표정.

    펭귄은 장엄한 모습으로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뚱뚱했기에 꿇을 무릎이 없어 지면에 동그랗게 앉은 모양새가 되었을 뿐이다.

    꽤 귀여운 모습이었지만, 이 펭귄 하나에게 100명이 넘게 죽었기에 딱히 애호하는 감정은 들지 않았다.

    썩-

    유다희는 도끼를 들어 근성가이 펭귄의 목을 쳐 버렸다.

    녀석은 목이 떨어진 뒤에도 그 자리에 꿋꿋이 앉아 버텼다.

    귀엽고 장엄한 모습이었다.

    그러자.

    땅그랑!

    아이템 하나가 떨어진다.

    -<근성의 얼음도끼> 양손무기 / B

    근성가이들에게는 수없이 많은 인내의 과정이 닥친다. 이 단단한 얼음도끼는 그 과정을 조금 더 잘 버틸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공격력 +500

    -얼음 공격력 +200

    -수리불가(내구도 7,800/7,800)

    -특성 ‘근성’ 사용 가능

    깡 공격력 500에 얼음 공격력 200.

    도합 700의 공격력을 가진 좋은 아이템이다.

    순수 얼음으로만 만들어진 아이템이라서 그런가 내구도가 딱 정해져 있다.

    ‘수리 불가’ 옵션이 있었기에 사실상 1회용 아이템이나 다름없었지만, 그래도 썩 나쁘지 않다.

    ‘근성’ 특성은 ‘한 종류’의 ‘지형 데미지’를 랜덤으로 무시할 수 있는 능력.

    썩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느낌이다.

    유다희는 도끼를 집어 들었다.

    “아이템은 경매소에서 처분한 뒤 균등하게 분배하겠습니다.”

    이런 쪽에서는 또 공정하고 칼 같은 유다희다.

    하지만, 마교인들은 모두 유다희가 그 아이템을 갖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교주님이 거의 다 잡으셨는데 당연히 교주님이 가지셔야죠!”

    “언니 너무 공정하다! 이럴 때는 그냥 눈 딱 감고 받으세요!”

    “마침 아이템도 딱 양손무기 도끼네! 교주님 맞춤형!”

    이쯤 되면 유다희도 딱히 고집부리기 뭐하다.

    B급 무기!

    경매소에서도 거의 찾아보기 힘든 고등급 레어가 아니던가!

    “에헴! 그럼 못 이기는 체하고 받겠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강한 유다희가 고등급 무기를 쓰는 편이 레이드의 생존에도 유리하다.

    마교인들은 대체로 고개를 끄덕이는 편이었다.

    유다희가 막 새로 얻은 아이템을 장비하는 그 순간.

    “어이~ 다들 잘 따라오고 있는 거야?”

    저 멀리- 산봉우리 위에서 무언가가 고개를 쏙 내민다.

    핑크색 대머리.

    바로 BJ고인물이었다!

    뿌득-

    고인물의 얼굴을 보는 순간 유다희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무방비로 갑자기 툭 튀어나온 고인물, 갑작스럽긴 하지만 죽이려면 지금이 기회다!

    “뒈져라!”

    유다희는 방금 얻은 얼음도끼를 휘둘렀다.

    콰콰콰쾅!

    도끼에서 뻗어나간 아우라가 눈 폭풍을 일으키며 쇄도해 나간다.

    바닥에 깊은 크레바스가 생겨날 정도로 강력한 일격!

    하지만.

    고인물은 그 공격을 정면으로 앞둔 상태에서도 그저 멀뚱멀뚱 서 있을 뿐이다.

    퍼억-

    이내, 유다희의 참격이 고인물의 몸에 적중했다.

    공격력 700짜리 일격!

    …….

    하지만.

    고인물은 아무런 데미지도 입지 않은 듯 싱긋 웃었다.

    “땡 고마워.”

    유다희는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후두둑- 후두둑- 후두둑-

    고인물의 몸에 얼어붙어 있던 얼음들이 부서져 내리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히히히히-

    바람에 이상한 소리가 실려 오기 시작했다.

    *       *       *

    “꺄아아아아악!”

    유다희는 지금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어디선가 갑자기 툭 튀어나온 끔찍한 괴물 하나가 바닥을 기어 다니며 마교인들을 죄다 얼음덩어리 속에 가두고 있다.

    눈보라 속 늑대 떼와 무시무시한 펭귄의 습격에도 300명 이상 남았던 정예 마교인들이 속절없이 얼음 속에 갇혀 죽어간다.

    500 추격대의 수는 눈 깜짝할 사이에 100명 정도로 줄어들어 버렸다.

    “얼음! 얼음을 만지면 땡이 됩니다! 서로를 만져 주세요!”

    유다희는 이 와중에도 길드원들을 위해 열심히 전장을 누비며 땡을 해 주고 다닌다.

    하지만.

    쩌저적-

    이히히히의 사정권에 들어온 그녀 역시도 술래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힉힉힉!]

    이히히히는 얼어붙은 유다희의 앞으로 기어가 보라색 혀로 그녀의 얼굴을 핥는다.

    이 와중에, 유다희는 이히히히의 맨얼굴을 보고 말았다.

    “……!”

    보는 이를 실제로 기절시킬 정도로 끔찍하게 생긴 얼굴.

    하지만.

    “하핫!”

    유다희는 이히히히의 얼굴을 보고도 코웃음만 칠뿐이다.

    “옛날에 술 취해서 나 때리던 아버지 얼굴이 훨씬 더 무섭거든? 하나도 안 무서우니까 꺼져!”

    그러자 오히려 이히히히가 당황한다.

    [히히히…….]

    녀석은 김 샜다는 듯 유다희에게서 떨어져 다른 마교인들을 잡으러 간다.

    “…젠장.”

    유다희는 얼음 속에 갇힌 채 몸을 바둥거렸다.

    -띠링!

    <이 얼음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파괴할 수 없습니다>

    <이 얼음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파괴할 수 없습니다>

    .

    .

    하지만 얼음은 전혀 깨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휘이이잉-

    이 와중에 눈보라는 그녀의 HP를 착실하게 깎아 먹고 있었다.

    바로 그때.

    “땡 해 줄까?”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하나.

    “……?”

    유다희는 눈동자만 데굴 굴렸다.

    옆에 사람이 있나? 왜 옆에 있으면서도 땡을 안 해 주지? 싶었는데…….

    “……!”

    이내 유다희의 눈에 실핏줄이 섰다.

    고인물!

    이 빌어먹을 핑크 알몸 변태 대머리 자식이 옆에 서서 이죽이죽 쪼개고 있는 것이 보인다!

    “...! ...! ...!”

    유다희는 욕을 하려 했지만 턱까지 죄다 얼어 있었기에 불가능했다.

    고인물은 유다희의 몸을 만질 듯 말 듯 주위를 뱅글뱅글 맴돈다.

    “해 줄까? 마알-까? 해 줄까? 마알-까?”

    “...! ...! ...! ...!”

    원래 얼음땡을 할 때 술래보다 미운 놈이 땡 안 해 주는 놈 아닌가!

    유다희는 격분했다.

    -띠링!

    <얼음이 아주 약간 녹았습니다>

    어찌나 열 받았던지 파괴불가 속성을 가진 얼음이 약간이나마 녹았을 정도다.

    하지만 아직 탈출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정도.

    결국.

    “아, 안 해 줄래 그냥. 그러다가 나도 잡히면 어떻게 해.”

    고인물은 바로 지척까지 다가왔다가 그냥 쌩 하고 튀어 버린다.

    ‘죽인다. 죽여 버릴 거야. 너만은 내가 죽인다!’

    유다희는 얼음 속에서 부들부들 떨며 복수를 다짐했다.

    그때.

    땡!

    유다희의 얼음이 깨졌다.

    “누나! 빨리!”

    옆에서 동생 유창이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이 보인다.

    “...!”

    유다희는 고개를 돌렸다.

    끔찍한 혼란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미 수없이 많은 이들이 얼음 속에 갇혔고 좌절하며 로그아웃했다.

    아직 생존해 있는 이들은 약 100명 남짓.

    유다희는 재빨리 상황을 판단했다.

    “자세히는 못 봤지만… 놈은 분명 A급 이상의 몬스터가 틀림없어.”

    그녀의 판단은 정확한 것이었다.

    “몰골을 보아하니 저놈은 어둠/언데드/얼음 타입입니다! 낮이 되면 4배로 약해질 거예요! 거기에 화염이나 강철 속성 공격을 하면 8배 데미지입니다! 곧 동이 트니 그때까지만 도망쳐 봅시다!”

    동시에, 유다희는 살아남은 이들을 꾸렸다.

    마교는 이히히히를 피해, 그리고 놈을 여기로 떠넘기고 도망간 고인물을 잡기 위해 서둘러 이동하기 시작했다.

    ‘두고 보자! 반드시 잡아 죽인다!’

    유다희는 머릿속에 고인물의 밉살맞은 얼굴을 떠올리며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동시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또 다른 얼굴이 하나.

    마동왕.

    자신의 검은 속마음과도 같은 재떨이를 손수 비워 주었던 남자.

    그리고 게이머로서 순수하게 동경할 수 있는 강자.

    ‘그에게 인정받고 싶다.’

    마동왕조차도 1승 1패를 겪었던 고인물 놈을 잡아 죽인다면 그 역시도 싫든 좋든 자신을 신경 쓸 수밖에 없으리라.

    유다희 역시 여자였고 한 명의 게이머였다.

    뭔가 다른 남자, 뭔가 다른 랭커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면 거짓이리라.

    그리고, 이곳에 살아남은 100명의 마교인들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동왕의 눈길을 끌기 위해서, 그리고 고인물을 잡아 자신의 입지를 세우기 위해서.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감정은…….

    ‘죽여 버리고 싶어!’

    고인물, 저 얄미운 X끼에 대한 순수한 살의(殺意)였다!

    “우리는 끝까지 갑니다!”

    사랑과 복수심에 불타는 유다희의 음성이 산봉우리에 메아리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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