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108화 (108/1,000)
  • 108화 하꼬방 (3)

    “아하하…아이고, 오늘 굴욕 방송이네요. 쌩얼 공개라니.”

    윤솔은 멋쩍은 표정으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하지만. 나와 시청자들은 그녀의 얼굴을 보고 크게 놀라야 했다.

    짙고 도톰한 눈썹, 반달처럼 큰 눈, 오똑한 코, 붉으스름한 입술.

    동그란 귀와 살짝 내려온 귀밑머리.

    그녀는 연예인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예뻤던 것이다.

    심지어 화장을 전혀 안 한 상태로도!

    ‘아니 저런 얼굴을 지금까지 왜 가린 거야?’

    나는 황당한 시선으로 윤솔을 쳐다보았다.

    이 정도 외모라면 굳이 내 도움 없이도 엄청난 인기를 끌 것 같은데?

    거기에 그녀는 학벌까지 대단하지 않은가!

    ‘기만자였어!’

    내 생각은 굉장히 보편적인 것이었다.

    방송을 보던 모든 시청자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것 같으니까.

    -ㅁㅊㄷㅁㅊㅇ…♥

    -외모 클라스 무엇?

    -...저 얼굴로 왜 하꼬방임???

    -고인물아 저리 좀 비켜봐라 부반장님 안 보인다!!!!!

    -와;;;진짜 다른 여캠방 BJ들 압살하는 클라스…ㅎㄷㄷ

    -도네 쏩니다♥♥♥

    -BJ부반장님 오늘부터 꾸준히 구독하겠습니다!!!

    -고인물님 보러 왔다가 부반장님 팬 됐네요♥ 충성충성충성^^7

    -횽 이제 갈 길 가~ 우린 여기서 놀게…

    .

    .

    내 팬들은 기다렸다는 듯 나를 배신하고 윤솔에게 가 붙었다.

    언제든 배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 저 태도들이라니.

    얄밉고 치사한 것들…

    “아하하하. 친구가 알고 보니 기만자였네요. 왜 나는 얘가 이렇게 예쁜 줄 몰랐지?”

    “야아! 무슨 소리야 갑자기!”

    내가 멘트를 치자, 윤솔의 얼굴이 순간 빨갛게 물든다.

    그 모습을 본 시청자들은 또다시 귀엽다고 난리다.

    반면 나에게는 작업 멘트 날리지 말라고 쌍욕을 박아 대는 시청자들.

    ‘음, 분명 이 사람들 내 팬 아니었나?’

    거 참 너무하네.

    예쁜 여자 앞에서는 의리고 뭐고 없구만.

    그러나 윤솔의 얼굴을 보면 또 아주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의 맨얼굴은 충격이었다.

    커다란 안경과 부스스한 앞머리 뒤에 저런 외모가 숨겨져 있을 줄이야.

    하지만 나는 서른다섯. 외모에 취해 멍 때릴 나이는 아니지.

    나는 이 상황을 전략적으로 판단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나보다 빨리 실버버튼을 단 사람이 있었지.’

    유튜뷰 구독자 수 10만 명이 넘으면 주어지는 칭호 ‘실버 버튼’

    나는 이 칭호를 얻는 데 약 1개월 정도가 걸렸다.

    보통 인기 BJ들이 이 타이틀을 따는 데에 2~3년 정도가 걸리는 것을 감안한다면 어마어마한 속도이다.

    …….

    그러나.

    놀랍게도, 나보다 훨씬 빨리 실버 버튼 타이틀을 딴 기록은 다수 존재한다.

    바로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

    얼마 전,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한 여자 공시생이 아무 생각 없이 켠 공부 방송에 시청자 수만 명이 몰려든 사건이 있었다.

    단 3일 만에 그녀의 구독자 수는 10만 명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여학생은 공부를 접고 BJ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 뒤로 잘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뿐만이 아니다.

    한 잘생긴 경찰 시험 준비생이 일상 방송으로 이틀 만에 십만 명의 구독자를 모으는가 하면, 한 연예기획사 걸그룹 예비멤버가 먹방으로 하루 만에 십오만 명의 구독자를 모으는 등등.

    우리 사회는 예쁘고 잘생긴 이들에게 어마무시한 관심을 쏟고 있다.

    정말 외모만 준비되어 있다면 하루만에 인생역전, 돈방석에 오르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뭐, 이는 앞으로 15년 뒤의 미래에서도 여전히 똑같다)

    ‘잘생기고 예쁘면 고시에 패스한 것과 같다는 말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지…….’

    나는 부러운 얼굴로 옆에 있는 윤솔을 바라보았다.

    내가 저 정도로 예뻤다면 아마 이미 인방계를 싹 털어 삼켰을 텐데.

    한편.

    윤솔은 당황한다.

    “아이코! 도네 감사합니다. 네? 왜 얼굴을 가렸냐구요? 어…그냥 별 생각 없었어요. 안경은 늘 쓰던 거고, 머리는 공부만 하느라 굳이 안 정리한 거였는데… 네? 렌즈요? 아 저는 무서워서 렌즈 못 껴요. 눈에 손가락 대는 게 무서워서…….”

    윤솔은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 눈을 가늘게 뜨고 컴퓨터 화면에 바짝 다가온다.

    안경을 벗어서 눈이 잘 안 보인다나?

    그 모습이 귀엽다며 시청자들은 또 난리다.

    그때.

    -뭐야! 방송 처음 하는 거면 콘텐츠 좀 자극적으로 뽑아봐라~~~

    -이 방은 가슴 노출도 없고 이거…안되겠구만?

    -뷰티 방송이니까 가슴골 쉐딩 같은 거도 좀 하고 그럽시다!! 그래야 시청자 늘지~

    -의상 노출도 좀 올려주세요~~~

    -ㅅㄱㅅㄱㅅㄱㅅㄱ슴가 하악

    .

    .

    어디에나 있는 진상 시청자들이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멀쩡한 방을 ⑲금 방으로 만들려는 움직임.

    문제는 꼭 이런 댓글에 동조하는 인간들이 있다는 것이다.

    ‘흠, 다 강퇴하고 채팅방을 잠시 얼려야 하나?’

    강제 퇴장과 채팅 금지.

    나는 한동안 시청자들이 댓글을 쓰지 못하게 막아 버릴까 생각했다.

    …….

    한데?

    “아, 가슴골 쉐딩이요? 물론 가능합니다!”

    윤솔은 OK 사인을 그리며 해맑게 웃었다.

    “오늘은 화장법이 주제니까요. 가슴골이나 복근 쉐딩도 중요한 화장법 중에 하나이죠.”

    “가슴과 가슴이 접히는 부분에 생기는 그림자 부분에 검은 칠을 해서 굴곡이 깊어 보이게 하는 건데요. 가슴이 무지 커진 것처럼 보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완전 꿀팁이죠? 어디 놀러 가시거나 무대에 서실 일 있으시면 추천드려요!”

    “많은 분들이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궁금해 하실 테니까, 직접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의외의 효과에 놀라실 거예요.”

    말마따나 의외로, 윤솔은 섹드립에도 기분 나빠하지 않고 멘트를 이어갔다.

    나는 잠시 당황했다.

    아무리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했다지만, 이렇게까지 해서 시청자들의 요구를 들어줄 필요가 있나?

    “저… 솔아. 가슴골 화장은 좀…….”

    “어? 왜? 이거 무대에서도 많이 쓰는 화장법인데? 할리우드에서도 배우들 다 이거 하잖아.”

    “그래도… 조금 선정적인 것이 아닐는지…….”

    “에이! 무슨 소리야! 엄연히 무대 화장법의 일부인데!”

    “뭐… 나는 괜찮은데. 네가 괜찮을까 해서…….”

    소극적인 나와 적극적인 윤솔.

    이내.

    다음 콘텐츠가 정해졌다.

    바로 가슴골 쉐딩!

    “자, 먼저 브러쉬에 브라운 톤 쉐딩을 듬뿍 묻히고요!”

    윤솔은 브러쉬를 들어 가슴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확-

    그녀는 이내 와이셔츠를 풀어헤친 뒤 양 가슴을 모아 골을 만든다.

    출렁-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적당히 보게 좋게 꽉 찬(?) 가슴.

    그것은 양 팔에 눌려 서로 밀착하며 봉긋한 둔덕을 형성했다.

    그 사이로 보드라운 솔이 솔솔- 움직여 양 가슴 사이의 깊은 골을 표현한다.

    두 가슴 사이의 깊은 골!

    부드러운 붓이 흰 살결을 타넘을 때마다, 곡선은 더욱 부드럽고 더욱 선명해진다.

    …….

    …문제는 그것이 내 가슴이라는 것!

    “아이 참, 이거 너무 선정적인데…….”

    나는 셔츠 사이로 보이는 내 가슴에 힘을 팍 준 채 중얼거렸다.

    쇄골 아래로 시퍼런 핏줄이 펄떡인다.

    요즘 헬스를 다녀서 그런가 데피니션이 아주 잘나왔다.

    한편.

    내 가슴 사이의 깊은 골을 본 시청자들은 하나같이 격렬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야, 이 XX XX끼 XXXX발 XXX노 XXX이!

    -XXXX! XXXXX!! XX!! X! X! XXX!!!!

    -고인물 횽 50만원 후원할 테니 그만…우리가 잘못했어…

    -XX아 XXX 확 XXX XXX 제발 치워!

    -눈 썩는다 XX XXX아!

    -형 저는 자꾸 보다보니까 좋은 것 같아요...

    -혹시,,,아조시랑,,,비밀친구,, 할래요?,,,^^ 010-9XXX-6589,, 그냥 비밀친구만~~ㅎ

    .

    .

    하도 부들거려서 채팅창에 지진 난 줄 알았네.

    아니, 오늘의 뷰티 모델은 나이니 가슴골 쉐딩을 하는 것도 나인 것이 당연하잖아?

    왜 욕을 하는 거지?

    끝에 뭔가 이상한 반응도 섞여 있었지만, 아무튼 그렇게 가슴골 쉐딩도 끝났다.

    방송이 끝날 때쯤 해서, 내 계정으로 브래지어 광고 문의가 들어온 것이 유우머 포인트.

    “자, 이제부터 제 가슴 가지고 슴가왈부 하시는 분들 전부 강퇴입니다.”

    나는 엄격한 유교 방송을 지향하며 섹드립 앵무새들을 전부 내보냈다.

    인방은 건전해야 한다는 것이 내 주의다.

    뭐, 아무튼 이렇게 해서.

    성황리에 윤솔의 첫 파일럿 방송이 종료되었다.

    *       *       *

    [어진아…고마워…]

    정확히 사흘 뒤.

    나는 윤솔의 울먹임 가득한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그녀는 방송 시작 후 3일 만에 구독자 수 15만 명을 찍는 기염을 토해 냈다.

    실버 버튼 타이틀과 함께 유튜뷰에서 제공하는 여러 혜택들을 받은 것은 물론이다.

    [고마워 어진아. 너랑 합방한 이후로 시청자들이 엄청 유입되어서 베스트 랭킹에 엄청 빨리 갈 수 있었어. 다 네 덕분이야.]

    “에이 뭘, 네 능력이 원래 좋았던 거지.”

    [흑…진짜 너무 고마워…방송장비도 그냥 주고, 어머니 병원비까지 빌려주고…지금 막 광고도 들어오고 있고 후원 수익들도 쌓이고 있으니 다다음 달에 곧바로 갚을게. 진짜 너무 너무 고마워.]

    “어휴, 아냐. 친구끼리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거지. 내가 중학생 때 받은 도움도 있는데…….”

    [아 참! 어머니 이제 많이 괜찮아 지셨어! 네 덕분에 입원치료 하시고 수술도 잘 받으셔서 거동도 잘하셔. 네게 굉장히 고마워하고 계시고. 너 언제 한번 놀러 오래! 저녁식사 만들어 주신다고!]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윤솔과 그녀의 어머님과 함께 하는 저녁식사라.

    ‘훈훈해서 좋군.’

    나는 윤솔에게 시청자 수 유지를 잘 하라고 조언한 뒤 전화를 끊었다.

    “뭐, 이제 유튜뷰에서 집중 관리 들어갈 테니 잘하겠지. 기량도 있고.”

    BJ부반장. 아니, 윤솔.

    그녀는 앞으로 잘해 나갈 것이다.

    “내 앞가림이나 잘해야지.”

    나는 서둘러 움직였다.

    윤솔의 뷰티 방송을 돕느라 하루 정도 게임에 접속하지 못했다.

    남을 돕는 것도 좋지만 그것 때문에 정작 자기 일을 똑바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넌센스.

    나는 머릿속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떠올리며 캡슐 속으로 들어갔다.

    …한데?

    캡슐에 누워 헬멧을 쓰자.

    -띠링!

    눈앞에 게임 메시지가 떠올랐다.

    드레이크에게서 온 메일이었다.

    ‘뭐지?’

    드레이크는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야 나에게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내가 자신을 불러주기를 기다릴 뿐.

    그런 그가 먼저 연락을 해 왔다는 것은…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 거야.’

    나는 메일을 클릭해 보았다.

    그러자, 드레이크가 보낸 영어 메일의 제목이 떴다.

    <어둠 속에 숨어있는 적의 무리. 아름다운 이 세계를 지구를 침범하려 해. 침범하려 해.>

    ……?

    뭐라는 거야?

    고골 번역기를 그대로 돌렸더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것을 일본어로 변역한 뒤 다시 한국어로 번역했다.

    이내, 나는 드레이크가 보낸 메일의 전문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런 것이었다.

    ‘너에게 척살령이 선포되었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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