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하꼬방 (2)
나는 쿱쿱한 반지하 원룸으로 가는 지하계단 앞에 섰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중앙 철문을 연다.
쿵-
이건 손잡이를 내리는 동시에 밑의 고무떼기를 한번 차 줘야 부드럽게 열린다.
빙글-
어둡지만 주변 지리를 잘 알기에 발걸음은 딱히 멈출 일이 없다.
밑이 끊어져 허공에 붕 떠 있는 난간은 잡아봐야 소용이 없다.
좁은 계단을 내려가 보면 돌바닥 움푹 들어간 곳에 왠지 모르게 항상 물이 고여 있다.
이건 가볍게 뛰어넘어 주고.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옆에 툭 튀어나와 있는 버려진 자전거 바퀴에 바지가 닿지 않도록 주의한다.
까딱하면 바지에 타이어 자국이 남으니까.
놀랍도록 자연스러운 진행.
마치 던전을 향해 거침없이 다이브하는 고인물의 모습 그 자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현관문으로 들어서는 나를 보며, 윤솔은 깜짝 놀라 했다.
“야, 너 왜 이렇게 자연스러워. 꼭 너네 집 들어가는 것 같아!”
그야 당연하다. 불과 몇 주일 전만 해도 나는 여기서 살았으니까.
도어락 비밀번호까지 누르려다가 겨우 참았다.
도로롱♪
윤솔이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자.
이내 익숙한 안쪽 모습이 보인다.
방 안 풍경은 거의 그대로였다.
현관과 바로 붙어 있는 부엌, 그리고 그 옆에 원룸으로 이어지는 미닫이 문.
마음 아프게도, 그녀는 내가 버리고 간 밥솥이나 탁자, 서랍장, 식기 등등을 그대로 쓰고 있었다.
“아, 이것들? 전 집주인이 ‘쓰라고’ 놓고 간 건가 봐. 다 멀쩡한 거였는데… 참 좋은 사람이야.”
윤솔은 밥솥이나 전자렌지 등을 톡톡 두드리며 작게 웃었다.
나는 마음이 찔려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사를 갈 때 이것들을 ‘버리고’ 가며 했던 중얼거림이 떠올라서이다.
‘어휴, 이제 이 궁상맞은 생활도 끝이다 끝.’
하지만.
나의 끝은 누군가의 시작이었다.
“…….”
현관과 붙어 있는 부엌문을 넘어서자.
“…솔이 왔니?”
구석에 있는 이불 속에서 누군가 몸을 일으켰다.
초췌한 중년 여성이 반쯤 일어난 상태로 나를 올려다본다.
“…누, 누구세요?”
그녀는 나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허리를 90˚로 꺾으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솔이 친구 이어진이라고 합니다. 학창 시절 도움 많이 받았던.”
그러자, 윤솔이 신발을 벗고 바로 뒤따라 들어왔다.
“엄만 누워 있어. 친구가 잠깐 컴퓨터 설치 해주러 온 거야. 뭐 도와줄 것도 있구…”
“별일이다 얘. 네가 친구를 집에 다 데려오고…”
윤솔의 어머니는 이내 나를 쳐다보며 미안스럽다는 듯 말했다.
“아무튼 잘 쉬다 가요. 집안 꼴이 이래서 손님 맞기도 민망스럽네요. 오늘 내가 몸이 좀 안 좋아서…”
“어휴, 아니에요 어머니. 쉬고 계세요.”
나는 냉장고를 향해 일어나려는 어머니를 향해 연신 손사래를 쳤다.
이내.
차라라락-
윤솔은 원룸 중앙에 설치한 커튼을 쳤다.
“여기로 이사 온 뒤에는 이렇게 방송하곤 했어.”
딱 자신과 컴퓨터가 들어갈 공간만 가린 커튼 속에서, 윤솔은 멋쩍게 웃었다.
하꼬방 속에 하꼬방인 셈이다.
이내.
나는 방송 장비를 세팅했다.
ASMR 음향 장비를 달고 간단한 조명 몇 개와 반사판을 설치한다.
몇몇 플랫폼에 들어가 유료 필터를 다운받기도 했다.
“흠, 일단 기본 방송 준비는 끝났고. 시험 삼아 한번 가동해 볼까?”
“어어? 벌써?”
“응, 어떻게 나오나 한번 보자.”
나는 윤솔에게 장비 조작법을 알려 준 뒤 컴퓨터를 켰다.
이내, 영상 송출 화면이 뜨고 우리의 모습이 우측 하단의 작은 창에 잡힌다.
“오, 방송 시작됐다!”
윤솔은 손뼉을 치며 옅은 흥분감을 드러낸다.
예명이…BJ부반장이야?
내가 슬쩍 고개를 돌리자, 윤솔은 멋쩍다는 듯 뺨을 긁었다.
“그게, 내가 조기졸업 하기 전까지 내내 부반장만 해서…그냥 별 생각 없이 지었어.”
이윽고.
시청자들이 급조된 하꼬방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한데?
-고인물 횽! 오늘 여기서 방송한다며!
-오늘 겜방 말고 다른 방송 하신다길래 보러 왔습니다!
-썩은물아~~방송해라~~빨리~~뭐라도해라~~후원금 충전해놈~~~
-몬스터는 언제 잡아욤? ㅋㅋ
.
.
시청자들의 수가 좀 많다?
입장객 수를 보니 벌써 백 명이 넘어섰다.
오늘 이 방에서 임시 방송을 한다는 공지를 올려서 그런 걸까?
이내, 나는 멘트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네, 안녕하세요. 고인물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정규 방송이 아니라, 조금 이색적인 임시 방송을 해 보려고 하는데요. 테마는 바로 ‘뷰티’입니다.”
내가 입에 ‘뷰티’라는 단어를 담자.
-ㅋㅋㅋ?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채팅창은 키읔과 물음표로 도배가 된다.
뭔놈의 뜬금없는 뷰티냐는 태도.
하지만, 내 옆에 있던 윤솔은 솔직하고 담백하게 자신의 방송을 이어나갔다.
“네, 오늘은 제가 고인물 님을 뷰티 모델로 모셨습니다. 게스트 초대를 흔쾌히 수락해 주신 고인물 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윤솔이 말을 하고 있는 지금도 시청자 게시판은 실시간으로 댓글이 갱신된다.
이내.
윤솔은 나를 상대로 화장을 시연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남자 화장 잘 하는 법이 주제입니다. 우선 기초 화장품으로 살결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그녀의 흰 손바닥이 내 얼굴을 매만진다.
“피부 타입에 따라 쓰시는 화장품이 다 다를 건데요. 건성, 지성, 복합성이 있는데…많은 분들은 복합성이세요.”
윤솔은 나에게 물었다.
“고인물 님은 피부 타입이 어떻게 되세요?”
으음…지성.
기름지다는 뜻이 아니라 ㅈㅅ하다는 뜻이다.
“나는 그런 거 잘 모르는데…”
내가 모르겠다고 하자, 윤솔은 희미하게 웃었다.
“잘 모르겠다 하시는 분들은 아마 복합성이실 확률이 높아요. 건성이나 지성이신 분들은 대부분 피부 갈라짐, 혹은 피지와 유분 때문에 고민이 많으셔서 아마 본인이 잘 알고 계실 거거든요. 그러면 일단 고인물 님은 얼굴의 T존 위주로 케어해 보겠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쓰는 화장품으로 내 얼굴 결을 준비했다.
눈을 감자 그녀의 꼼꼼한 손길이 내 얼굴 구석구석을 닦고 바른다.
윤솔이 내게로 가까이 다가오자, 어딘가 달콤한 냄새가 난다.
오랫동안 살아온 반지하 원룸에서 이런 냄새가 날 수도 있구나 싶어서 기분이 새로웠다.
‘그러고 보니 유다희 외에 여자랑 이렇게 가깝게 붙어 있어 본 건 처음이네…’
홍영화가 있기는 했지만 그때는 일로 만난 관계였고, 또 그것은 애초에 게임 속에서 벌어진 일이 아닌가?
심지어 그때 그녀는 머리통만 남아 둥둥 떠다니는 상태였으니…
한편.
윤솔은 계속해서 멘트를 이어나갔다.
“다음 차례는 선크림이에요. 요즘은 자외선 때문에 꼭꼭 바르고 다니셔야 해요. 바르지 않으시면 주름이나 기미도 빨리 생기고 피부암에 걸릴 확률도 높대요.”
“특히나 운전자 분들! 왼쪽 창문으로 들어오는 자외선 때문에 얼굴이 비대칭으로 늙을 수 있으니 귀찮더라도 꼭 발라 주세요!”
“의외로 많은 분들이 모르시는데, 선크림은 바르시고 난 뒤 30분이 지나야 효과가 생깁니다! 바로 외출하시면 안 돼요!”
“자외선 A를 차단하는 지수인 PA가 PA++, PA+++ 이상인 것을 고르시고, 자외선 B를 차단하는 SPF는 30이상인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아요! 손가락 한 마디 길이만큼 충분히 짜서 얼굴 전체에 두드리듯 바르면 돼요.”
“눈 주위는 피부가 약하기 때문에 피하고 돌출된 부위인 코나 광대에 꼼꼼히 발라줍니다! 귀와 목에도 바르는 것이 좋습니다! 2~3시간마다 덧발라야 효과가 지속되니까 유의하세요!”
윤솔은 내 얼굴에 선크림을 두드려 바른다. 문대지 말고 톡톡 두들기면서 바르라나?
그 다음으로는 파운데이션과 비비크림, 눈썹 짙게 그리기, 코, 턱, 쉐딩, 마지막으로 입술 혈색 돋우기였다.
그 모든 복잡하고 까다로운 일련의 과정을 행하며, 윤솔은 자연스럽게 방송을 진행한다.
“제가 사용하는 상품은 PPL이 하나도 없어요. 전부 제 기준에서 고른 베스트 남자 화장품들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가장 잘 나간 제품들이면서 가격대도 착해요~”
윤솔은 자신의 화장품 가게 알바 경험을 살려 재치 있게 멘트를 이어나갔다.
동시에 계속해서 내 얼굴을 쓸고, 닦고, 조이고, 기름친다.
이내.
내 얼굴은 조명과 반사광 아래 점점 화려하게 변해 간다.
-???
-저거 누구임?
-고인물 횽 맞아?
-고인물 님…은근히 잘생기셨는데?
-이게 ㄹㅇ화장빨 아니냐ㅋㅋㅋㅋㅋ
-화장빨무 1:1 고수만~ㄱㄱ
-고인물 횽 오늘 방송실 왤케 좁음?
-어휴 누추하신 분이 이런 귀하신 곳에…
.
.
시청자들은 의외로 잘생긴 내 얼굴을 보며 놀라고 있었다.
댓글 반응은 계속해서 호의적이었다.
시청자들의 수는 점점 늘어난다.
처음에는 내가 뭐 하나 궁금해서 들어왔던 사람들도 윤솔의 멘트에 빠져 슬쩍 눌러앉게 된다.
어느새 진심으로 내 화장을 구경하고 있는 이들의 수가 수백 단위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쨔잔! 완성이에요!”
윤솔은 내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누가 그랬던가? 잘 된 화장은 성형과도 필적한다고.
한층 짙어진 눈썹, 커진 눈, 오똑해진 코, 작아진 얼굴, 붉은 입술.
나는 달라진 외모를 뽐내며 화면을 그윽하게 쳐다보았다.
-어우 눈빛 재수없어…
-ㅁㅊ평소엔 게임만 얄밉더니 오늘은 생긴거도 얄미움ㅋㅋㅋ
-근데ㅋㅋㅋ진짜ㅋㅋㅋㅋ잘생겨지긴했네ㅅㅂ
-잘생겨지긴 했는데ㅋㅋㅋ먼가 억울하게 잘생겨짐ㄹㅇㅋㅋㅋㅋ
-근데 옆에 여자 분 누구심??? 화장 개잘하시네ㄷㄷㄷ
-오!! 나도 이거만 따라하면 외모 한등급 업글되겠는디??
-구독버튼 눌렀습니다~~ㅋㅋㅋㅋ앞으로 챙겨볼게용!
.
.
시청자들의 관심은 슬슬 내 옆에 있는 윤솔에게도 쏠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뷰티 방송인데 여자는 왜 화장 안함?
-여자도 얼굴 까라!!! 궁금하다!!!
-BJ부반장 님도 얼굴 보여주세요~~~
-솔아~~앞머리까봐라ㅋㅋㅋㅋ
-뷰티방송할라면 채널주 얼굴은 보여줘야지~~~
-여자 화장법도 보여주세요!!!
.
.
시청자들은 윤솔의 얼굴을 궁금해 한다.
“네? 아, 아니. 오늘은 남자 화장이 주제인데…”
윤솔은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시청자들의 요구에 꽤나 당황한 듯싶었다.
평소에 이렇게 많은 요구를 받아본 것은 처음이라 놀란 모양.
하지만.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는 법이다.
이내.
“…알겠습니다. 앞머리 까는 건 별로 안 좋아하지만…해 볼게요!”
윤솔은 굳건한 결심을 한 듯 캠 앞에 섰다.
그리고 그동안 눈을 좁쌀만 하게 만들고 있던 두터운 뿔테안경을 벗었다.
동시에, 코 위로 거의 모든 부분을 가리고 있던 그녀의 앞머리가 커튼처럼 젖혀졌다.
그러자.
“…!”
나도, 시청자들도 순간 할 말을 잃어버렸다.
…오잉? 부반장, 아니 윤솔의 상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