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106화 (106/1,000)
  • 106화 하꼬방 (1)

    나는 일찌감치 집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강남 테헤란로의 작은 음식점.

    양이 적고 비싸며 맛도 없는 곳이다.

    다만 조용하고 인테리어가 예뻐서 얘기를 나누기에는 꽤 적합하다.

    나는 오늘 이곳에서 학창 시절 부반장이었던 윤솔을 만나기로 했다.

    먼저 도착해서 앉아 있자니, 이내 문이 열리며 한 여자가 들어온다.

    얼굴을 온통 가린 앞머리, 펑퍼짐한 남방, 두터운 뿔테안경.

    윤솔이다.

    그녀는 학창 시절 그대로였다.

    “어, 솔아. 오랜만이야.”

    “앗, 어진아. 먼저 와 있었네?”

    내가 손을 흔들자, 윤솔은 나를 향해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이윽고.

    우리는 테이블에 마주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저번에 동창회 때는 얘기 많이 못해서 아쉬웠어. 사람이 워낙 많아서.”

    “맞아. 그래도 다들 분위기 좋았어. 너 가고 나서 한동안 네 얘기로 떠들썩했거든. 다들 멋있다고 그러더라.”

    윤솔은 동창회 그 이후에 있었던 일들을 말해 주었다.

    가령 권혁웅이 술에 취해 장혜원에게 다시 사귀자고 달라붙었다가 성추행 신고를 받고 출동한 헌병대에게 잡혀 간 것이라거나.

    최남용 씨가 동창회가 끝난 뒤 술을 진탕 마시고 운전을 하다가 사람을 가볍게 치는 바람에 경찰 수사를 받은 것이라거나.

    …뭐 그런 시시콜콜한 내용들이다.

    “다들 참 재밌게도 사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윤솔에게 물었다.

    “그래. 너는 요즘 어떻게 지내?”

    그러자 그녀는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나는 Y대 경영학과 다니다가 지금은 휴학 중이야.”

    “아아. 이제 2학년? 아니, 3학년인가?”

    “아냐, 나 이제 졸업이야. 고등학교를 조기졸업 하기도 했고, 학교 다닐 때도 학점을 좀 빡빡하게 들어서…….”

    새삼. 나랑은 참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 같다.

    “오오, 대단하다. 예전부터 공부 잘하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에이, 뭘…그냥 나름대로 열심히 하다 보니까…”

    윤솔은 고개를 떨군 채 우물쭈물했다.

    이내.

    주문을 위해 메뉴판을 펼쳤다.

    나는 새우와 게가 섞인 볶음밥과 셀러드를 주문했다.

    “너는?”

    내가 묻자, 윤솔은 한참 동안이나 메뉴판을 바라보며 고민한다.

    “…나는 우동.”

    우동? 여기 그런 메뉴가 있나?

    잘 찾아보니 점심 특선 메뉴 쪽에 있기는 있다.

    가장 저렴한 메뉴였다.

    나는 별 생각 없이 메뉴판을 반납했고 이내 직원에게 주문을 넣었다.

    볶음밥과 샐러드가 나오고 우동이 나왔다.

    내가 볶음밥의 토핑이나 샐러드를 권했지만 윤솔은 사양했다. 그녀는 자기가 시킨 우동만을 먹었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별다른 이야기는 오가지 않았다.

    계산을 위해 카운터로 나가는데…

    “앗, 어진아! 내가 낼게!”

    윤솔이 지갑을 꺼내며 다가온다.

    “아냐, 괜찮아.”

    “그래도 내가 불러낸 건데… 그리고 여기 비싸잖아! 저번에 술이랑 고기도 다 얻어먹었고…”

    “너만 사 준 것도 아닌데 뭐, 괜찮아 진짜. 또 너한테 고마운 것도 있고.”

    나는 예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수학여행비 지원 서류를 담임이나 반장 대신 건네줬던 일 말이다.

    그밖에 수학여행 버스에서 짝이 되어 준 일 등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내가 그랬었나?”

    윤솔은 그때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너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가지고 감사받는 것 같아서 조금 그렇다.”

    “아니야. 그때의 나에게는 큰 도움이었어.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고.”

    나는 윤솔과 함께 거리로 나왔다.

    그녀를 차에 태우고 지하철역까지 가는 길.

    이내, 윤솔이 내게 묻는다.

    “근데 어진아.”

    “응?”

    “…그, 오늘 만나자고 한 거 있잖아. 부탁이 뭔지 안 물어봐?”

    나는 차를 잠시 세우고 윤솔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네가 말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어. 무슨 일인데?”

    내가 묻자.

    이내, 윤솔이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사실은 요즘 어머니가 조금 편찮으시거든. 병원비랑 약값이 꽤 많이 나와서, 얼마 전에 전셋집 빼고 월세로 옮겼는데…아앗!? 물론 돈 빌려달라는 건 절대 아니고!”

    그녀는 괜스레 혼자서 파다닥 놀란다.

    “…….”

    나는 그런 윤솔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티가 난다.

    한평생 남에게 힘들다는 소리, 아쉬운 소리를 해 본 적 없이 혼자서 꿋꿋하게 살아온 사람.

    지금 그런 사람이 무진 애를 쓰며 부탁을 하려 하고 있다.

    윤솔은 얼굴만 빨갛게 물들인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나는 그녀가 말을 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이내.

    윤솔은 본론을 꺼내들었다.

    “집에서 어머니를 간호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최근에 인터넷 방송을 시작했거든. 아직 하꼬방이지만…”

    나는 말을 듣자마자 얼추 가닥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인방을? 어느 플랫폼? 어떤 분야로?”

    “유튜뷰 뷰티 쪽이야. 내가 화장품 가게 알바를 좀 오래 해서 잘 알거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살짝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왜 하필 뷰티일까?

    공부 방송, 아니 꼭 방송이 아니더라도 과외나 학원에 취직을 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왜 과외나 학원 같은 거 안 하고? 너 공부도 잘하잖아.”

    “내가 남 가르치는 걸 잘 못해. 나는 이해해도 남을 이해시키는 건 또 다른 문제더라. 또 집에서 어머니도 수시로 돌봐 드려야 해서…”

    하긴 맞는 말이다.

    서율대 나온 강사의 강의를 들어도 정작 내가 멍청하니까 이해 못하겠더라.

    또한 학원 일이라는 것이 원체 집에 들어올 시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바쁜 것이 아니겠나?

    아무튼.

    나는 윤솔의 부탁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합방(합동방송).

    나의 유명세를 이용해서 그녀의 하꼬방을 붐비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네.’

    나에게 있어서는 쉬운 부탁이었다.

    그저 그녀의 뷰티 방송에 몇 번 게스트로 출연해 화장품 모델만 해 줘도 충분한 것이었으니까.

    뭐 처음부터 구독이나 후원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트래픽이 발생한다는 것 자체에 큰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겠나!

    “그동안은 혼자 어떻게 했어?”

    “으응, 그냥 화장품 샘플 늘어놓고 손등 같은 곳에 바르고 효과 설명하고 그랬지.”

    “으음, 시청자들 반응은 어땠고?”

    “반응이고 뭐고, 사람이 하나도 안 들어오니까…그래도 지금 방송 열면 한 15명 정도는 봐. 그마저도 맨날 얼굴 좀 공개하라고…”

    “하긴, 너 머리카락이랑 안경 때문에 얼굴이 잘 안 보이겠다.”

    “그래서 화장품을 대신 발라줄 모델을 구하고 있던 참이였어. 뷰티는 가뜩이나 외모 많이 보는데…나는 예쁘지 않으니까.”

    윤솔은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나는 그녀의 앞머리와 안경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나저나, 나를 모델로 화장품 소개 동영상을 찍는다고?

    그렇다면 시청자들에게 잘 보여야 하잖아?

    나는 혹시나 해서 윤솔에게 물었다.

    “음, 우선 장비부터 준비하는 게 낫겠다. 너 카메라는 뭐 쓰니?”

    “나? 나는 그냥 폰으로 하는데…”

    “조명은?”

    “없어. 그냥 원룸 형광들 켜고…”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인방 초보들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하꼬방이 메이저가 되지 못하는 것에는 방송장비의 퀄리티가 큰 영향을 끼친다.

    일단 조명판 하나가 있고 없고가 스트리머나 BJ의 외모를 확 달라지게 하니까 말이다.

    나는 잠시 생각한 끝에 말했다.

    “일단 내 차에 여분 방송장비들 있으니까 그거 쓰자.”

    내 방송의 경우는 대부분 가상현실 캡슐 속 콘텐츠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전문적이거나 비싼 장비는 없었다.

    하지만 가끔 하는 오프라인 일상 방송을 위해 조명, 카메라 등의 기본적인 장비 세트 정도는 구비해 놨었다.

    그러자, 윤솔은 당황한 표정으로 묻는다.

    “어어? 그거 비싼 거 아냐? 나 빌려줘도 돼?”

    “빌려주는 거 아냐. 주는 거야.”

    “아아앗! 아냐! 아냐!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

    “이왕 돕는 거 확실하게 돕는 거지. 나중에 수익 많아지면 갚든가.”

    나는 바로 네비게이션을 켰다.

    “너희 집 주소나 불러줘.”

    그러자, 윤솔은 눈에 띄게 당황한다.

    “…어, 어? 집 주소는 왜?”

    “왜냐니? 가서 방송장비 세팅해야지.”

    “내, 내가 할게! 혼자 하게 해 줘!”

    “아냐, 이거 무겁기도 하고. 복잡해서 너 혼자 못해.”

    내가 네비게이션을 켜고 금방이라도 버튼을 누를 듯 자세를 취하자.

    “…….”

    윤솔은 안절부절 못하며 눈치를 본다.

    “나 원래 누구한테 집 주소 잘 안 말해 주는데…”

    한참 동안 뜸을 들이던 그녀.

    이내, 윤솔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입을 열었다.

    “OO구 XX 1동 285-30번지…소망씨티빌라…B01호…”

    빌라의 반지하임을 알 수 있는 주소.

    그냥 평범한 지번 주소이다.

    하지만.

    “……!”

    그 주소를 듣는 순간, 나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굳을 수밖에 없었다.

    윤솔의 입에서 나온 저 주소.

    그것은 너무나 낯익은 주소였다.

    내가 비싼 오피스텔을 얻어 이사 가기 전까지 살았던 곳.

    나중에는 아예 신발을 신고 들락날락 했던 곳.

    늘 곰팡이와 습기, 해충들에 시달렸던 곳.

    사는 곳이라 소개하기에 조금쯤은 창피한 곳.

    그렇다.

    윤솔 모녀가 전셋집을 빼고 월세로 들어간 그곳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살았던 곳.

    바로 그 반지하 원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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