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105화 (105/1,000)
  • 105화 폐급 (2)

    [콰쾅!]

    폭음(爆音).

    바위가 산산조각 났다.

    거대한 암반형 괴수가 무릎을 꿇었다.

    [펑! 퍼펑!]

    두 조각으로 쪼개진 바위 대가리 속.

    펄펄 끓는 뜨거운 암반수가 뇌수처럼 뿜어져 나온다.

    동시에, 붉은 건틀릿을 낀 남자가 한 손 주먹을 확 들어올렸다.

    [네! 투신 마태강! 레벨 99의 B급 몬스터 ‘안킬로기우스’를 최초로 사냥합니다!]

    사회자의 흥분한 목소리가 TV 화면 밖으로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리고.

    게임 방송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는 TV 화면 밖.

    고깃집의 널찍한 홀에서는 한창 동창회가 진행 중이다.

    “와 대박, 방금 투신 봤냐?”

    “B급 몬스터를 솔로잉으로 잡네.”

    “저 사람은 아이템이 뭐길래 저렇게 강해?”

    곳곳에서 감탄이 터져 나온다.

    요즘 젊은이들 중 이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당연히 게임에 관련된 이야기는 모두의 관심사.

    하지만.

    게임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도 있기는 있다.

    권혁웅.

    21세. 직업군인. 그는 TV를 보며 떠드는 동창들을 향해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야야, 이제 애들도 아닌데 저런 게임 방송 볼 때는 지나지 않았냐?”

    그는 군대에 입대하면서부터 게임을 딱 끊었다고 했다.

    “나는 후임들이 정신 못 차리고 BEQ까지 캡슐 들여다 놓고 게임하는 거 보면 그렇게 한심하더라. 이제 성인인데 열심히 일해서 돈 모으고 해야지. 언제까지 그런 애들 장난에 빠져 있을라고?”

    다들 그냥 하하 웃어넘기는 분위기.

    하지만 권혁웅은 계속해서 동창들에게 말했다.

    “너희들도 나중에 취업하면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거다. 게임 캐릭터가 화려해질수록 현실의 몸은 비루해지는 것 말야.”

    치이이익-

    고기가 익는다. 익다 못해 탄다.

    하지만.

    권혁웅은 자기가 집게를 쥐고 있음에도 고기를 뒤집지 않고 있었다.

    오로지 말하는 것에만 집중할 뿐.

    “애초에 게임하는 것 보다 통장에 돈 쌓이는 거 보는 게 훨씬 재밌다고. 에이, 이걸 조금만 빨리 깨달았어도 학생 때 공부나 하는 건데…….”

    바로 그때.

    딸랑-

    고깃집 문이 열렸다.

    “아, 여기가 청송량 중학교 동창회 장소 맞나요?”

    새로운 얼굴 하나가 모임에 추가되었다.

    …….

    바로 나다.

    *       *       *

    지글지글 익어 가는 삼겹살.

    고기 1인분이 6,900원인 이곳이 오늘의 모임장소이다.

    간만에 본 동창들은 술잔을 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와 너 Y대 갔다며? 늘 공부 열심히 하더니 부럽다.”

    “너 SNS 보니까 여자친구 생겼더라? 부럽…….”

    “그러고 보니까 걔는 군대 가서 지금 병장이라던데, 다음 주 전역이래. 나는 그게 제일 부럽다.”

    누구는 좋은 대학 간 얘기, 누구는 애인 얘기, 누구는 군대 얘기.

    21살의 동창회라 그런가 풋풋하기 그지없다.

    나는 열심히 고기를 구워 주며 생각했다.

    ‘여기서 10년만 더 지나면 다들  암흑진화를 하지.’

    당장 서른만 되어도 연봉 자랑, 차 자랑, 재테크 자랑… 심지어 영업을 뛰려고 나오는 녀석도 생긴다.

    지금 나름대로 자랑거리들을 재고 있다고 해도, 36살의 내가 보기에는 아직 어리고 풋풋한 모습들이었다.

    그래서일까?

    자꾸만 고기를 구워 주게 된다.

    뭔가 막내동생과 그 친구들을 보는 느낌.

    ‘…많이들 먹으렴.’

    기억 속 동창들은 멀고 어려운 존재로만 여겨졌는데 실제로 이렇게 보니 참 어리고 미숙하기 그지없다.

    내가 어릴 때, 그들도 어렸었다.

    “어어, 어진아. 너도 먹어!”

    “이리 줘, 이제부터는 내가 구울게!”

    “잔 비었네? 받아!”

    동창들은 내 눈치를 살피는 듯 했다.

    내가 별다른 말없이 웃기만 하자, 그들은 슬슬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어진아 사실 나 너 방송 되게 잘 보고 있어. 진짜 팬이야. 후원도 했다?”

    “나도 나도! 우리 오빠가 너 사인 좀 받아달라고 난리거든. 으으, 사실 아까부터 인사하고 싶었어!”

    “근데 학교 다닐 때 우리가 좀 어색했던 것 같아서…말 걸기가 조금 그랬달까…”

    나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중학 시절이라 하면 동창들에게야 얼마 전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거의 20년 전의 일이다.

    “허허허. 괜찮아. 이렇게 보니 좋다 야.”

    나는 그만 아저씨처럼 말해 버렸다.

    그러자 동창들이 한바탕 빵 터진다.

    “와 뭐야 너! 완전 아재 같애!”

    남녀 가릴 것 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었다.

    그때.

    “야.”

    테이블 뒤 의자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

    고개를 돌리니 빡빡머리를 한 남자 하나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그리 크지도 않은 키, 나이에 비해 삭아 보이는 얼굴.

    권혁웅.

    학창 시절 잘나가던 일진이다.

    덩치 빼고는 변한 것이 없다. 아니, 덩치도 변한 것이 없는 건가? 키는 내가 훨씬 클 것 같은데.

    ‘저 녀석이 중학교 때는 왜 그렇게 크고 무서워 보였을까…’

    지금 보니 정말로 평범한 21살짜리일 뿐인 것을.

    한편.

    녀석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애들 반응 보니까 요즘 잘 지내나 보네? 인싸 다 됐구나 너.”

    “응, 뭐.”

    “그래, 요즘 뭐 하고 지내냐? 학생이야? 아니면 일?”

    권혁웅은 아예 의자 등받이에 팔까지 받쳐 놓고 반쯤 돌아섰다.

    나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게임.”

    “…뭐?”

    권혁웅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나는 한 번 더 대답해 주었다.

    “그냥, 게임하고 SNS로 리뷰하고. 뭐 그런 거 하고 있어.”

    그러자, 권혁웅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너는 어떻게 학교 다닐 때랑 변한 게 하나도 없냐. 몸만 컸지 완전 속은 그대로네.”

    “…?”

    “이제 좀 건실하게 살 때도 안 됐냐?”

    권혁웅의 말에 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녀석은 나에게 훈계를 하기 시작했다.

    “나이 먹고도 게임하는 건 문제가 있는 거야. 차라리 그 시간에 알바라도 해서 시급을 벌 생각을 해야지. 네가 부자도 아니고 노후준비가 되어 있는 것도 아닌데. 자랑할 의도는 없다만…나는 벌써 2천만 원이나 모았어. 아니 뭐 이건 그냥 예를 드는 거야. 자랑하는 게 아니라.”

    “…….”

    “네가 아직 제대로 된 일을 안 해 봐서 그러는데…진짜 땀 흘려 일하고 그 대가가 모이는 거 보면 게임 같은 거 할 생각 안 들 거다. 통장에 돈이 차곡차곡 모이는 거 보는 재미가 그 어떤 오락보다…”

    바로 그때.

    한 여자 동창이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어? 오빠 뭐라구? 아, 지금 TV에 나온다고? 알았어, 이따가 사인해 달라고 해 볼게.”

    그녀는 전화를 끈 뒤 재빨리 내게 말했다.

    “어진아! 우리 오빠가 지금 TV에 너 나온다는데 한번 틀어 봐도 돼?”

    그 말에 권혁웅은 말을 하다 말고 인상을 찌푸린다.

    그게 뭔 소리냐는 표정.

    “…….”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핏-

    이내 고깃집 홀 중앙의 대형 TV가 켜진다.

    <유튜뷰 코리아 THE 슈퍼노바★2020 송년 파티&시상식>

    넓고 호화로운 호텔의 중앙, 커다란 무대 위에서 수많은 스트리머들이 트로피를 받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내 모습이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다.

    [겜방 부분! 슈퍼노바 ‘초신성(超新星)’ 상에 이어진 님!]

    [어진 씨는 올해의 유튜뷰 초신성 50인에 선정되셨습니다.]

    [2020년 기준 겜방 부문에서 ‘시청자 수 1위’와 ‘상승세 1위’를 동시에 기록하셨죠. 매달 전 분야 시청자수에서도 꾸준히 10위권 안에 랭크 중이시고요. 거의 전례가 없는 기록입니다.]

    유튜뷰 코리아의 대표와 악수를 하고 사진을 찍는다.

    단상으로 내려오자 커다란 자막이 떴다.

    <이 시대와 소통하는 스트리머 ‘이어진’에게 묻다.>

    <게임 방송으로만 연봉 15억 이상! 역대 최단기 골드버튼의 위엄!>

    <대한민국의 성공한 20대 10위권 안에 노미네이트 된…>

    고깃집 전체에서 감탄사가 터진다.

    [아,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의 짤막한 수상 소감만이 이어질 뿐이다.

    잠시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치이이이익-

    고기가 익는 소리만 요란하다.

    다들 입만 딱 벌린 채 멍하니 TV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어색한 정적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대화 중이었던 권혁웅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맞아. 나도 통장에 돈 쌓이는 거 보면 재밌더라.”

    *       *       *

    술자리가 무르익어 간다.

    “…….”

    권혁웅은 이제 자기가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TV 방송을 본 뒤로, 녀석은 급격히 말수가 적어졌다.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자, 반장인 장혜원을 비롯한 몇몇 여자애들이 말을 걸어왔다.

    “어진아, 나 쇼핑몰 차렸는데 좀처럼 홍보가 잘 안 되고 있어서…혹시 너 방송에서 언급 좀 해 줄 수 있을까? 아니면 내가 소품들 협찬할게!”

    “힝, 우리 부모님이 은퇴 후 식당 차리셨는데. 혹시 너 채널에 광고 걸 수 있을까? 단가는 얼마나 돼? 많이 비싸?”

    “셀카 한 번만 같이 찍어도 돼? 내 SNS에 올리게!”

    계속되는 접근들, 나는 점점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21살일 때 같으면 갑작스러운 관심에 좋아서 헤헤 웃었겠지만…

    지금의 나는 36살이 아닌가? 15살 어린 친구들의 속셈이야 빤히 보인다.

    ‘그만 일어나야겠다.’

    더 이상 앉아 있을 이유가 딱히 없다.

    나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사장님, 여기 지금까지 나온 거 계산해 주세요.”

    내가 손을 흔들자, 사장이 계산서를 가져왔다.

    지금까지 나온 금액은 약 50만 원 정도.

    내가 그것을 결제하자.

    “오-오오오오오!”

    주변에서 요란한 환호성이 터졌다.

    이 정도 금액으로 흥분하는 것을 보니 역시 다들 20대이긴 20대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조금 이따가 갈 거니까, 뭐 더 시키고 싶은 것 있으면 시켜.”

    그러자 동창들은 한 번 더 환호성을 질렀다.

    “어진아! 맥주도 시켜도 돼!?”

    “고기 조금 더 시켜도 되는 거야?”

    “우와, 나 회비 딱 만 원밖에 없는데! 은혜롭다!”

    거의 뭐 지구를 구한 영웅 분위기다.

    내가 막 자리를 뜨려 하고 있을 때.

    딸랑-

    고깃집 문이 열리며 한 중년 남자가 들어왔다.

    최남용.

    20여년 전 내 담임이었던 남자.

    그가 들어오자 동창들은 한 번 더 박수를 보냈다.

    이내, 학생들을 돌아보며 밝게 웃던 최남용 씨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어어, 너도 왔구나. 그 게임만 하던 애! 너 이름이 뭐였더라?”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냥 웃어 주었다.

    최남용 씨는 내게 한 번 더 물었다.

    “그래, 너는 요즘 뭐 하니? 밥은 먹고 다니냐?”

    그러자 주변 동창들의 분위기가 조금은 굳는다.

    “…….”

    나는 대답하기도 귀찮은 마음에 그냥 주머니에서 리모콘 키를 꺼냈다.

    삑-

    버튼을 누르자.

    크르릉!

    밖에 주차되어 있는 포르쉐 크로커다일에 시동이 걸렸다.

    팡팡-

    나는 최남용 씨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셔츠 깃을 펴 주고 정장 웃옷의 매무새를 고쳐 주었다.

    “밥 잘 챙겨 먹고 다니세요.”

    그게 끝이었다.

    딱히 할 말도, 답도 없는 사람이었기에.

    딸랑-

    내가 고깃집 문을 열고 나가자.

    “…? 쟤 뭐냐? 뭔데 저런 차를 끌고 다녀?”

    최남용 씨는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내 뒷모습을 바라본다.

    그러자, 동창들은 일제히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뭐긴요! 우리학교 최고 아웃풋이죠!”

    *       *       *

    “…휴. 생각보다 별것 없었네.”

    나는 차에 탄 채 잠시 숨을 돌렸다.

    이미 예상했던 것이었지만.

    36살에 21살들의 동창회에 갔으니 공감할 만한 소재는 전혀 없었다.

    학창 시절의 기억은 유난히 더 나지 않았고, 15년 전 어떤 것들이 유행했었는지 생각이 안 나니 대화에 참여하기보다는 그냥 맞장구 쳐 줘야 할 때가 더 많았다.

    “이제 이런 자리는 오지 말아야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핸들을 잡았다.

    바로 그때.

    지이잉-

    핸드폰이 울린다.

    화면을 켜니.

    -장혜원: 어진아ㅠㅠㅠㅠㅠ나 화장실 갔다 온 사이에 어디갔엉…ㅠㅠㅠ왜 벌써 가ㅠㅠㅠㅠㅠ갈 거면 나 좀 데려다주지! 집 같은 방향인데!!  -√읽음

    …집이 같은 방향?

    내가 어디 사는지도 모를 텐데 무슨.

    나는 귀찮은 마음에 그녀를 차단해 버렸다.

    쇼핑몰 모델이든 광고든 간에, 어차피 이제는 영원히 볼 일 없을 테니까.

    내가 핸드폰을 막 조수석에 던져 놓으려는 찰나.

    지이이잉-

    한 번 더 진동이 온다.

    “…응?”

    나는 눈썹을 까닥 움직였다.

    화면에는 의외의 이름이 떠 있었다.

    -‘윤솔’ 님이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

    학창 시절 부반장을 했던 여자 동창생.

    내가 힘들 때 유일하게 도움을 받았던 친구이기도 했다.

    아까 전에 고깃집에서 한번 인사를 하긴 했었다.

    여전히 얼굴을 가리고 있는 앞머리, 두터운 뿔테안경.

    입고 있는 옷만 교복에서 허름한 체크남방으로 바뀌었을 뿐, 그녀는 그대로였다.

    “아까 고깃집에서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얘기를 제대로 못 했었지 참. 깜빡했네.”

    20년 전 수학여행비 지원 신청서를 담임 대신 전해 주었던 성의.

    오늘 동창회에 나온 것도 사실 이 친구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는데…

    반장이었던 장혜원을 차단한 것과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나는 부반장 윤솔의 메시지를 열어 보았다.

    그러자.

    -띠링!

    조금은 뜻밖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윤솔: 어진아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런 말 해서 정말 미안해… 네 시간이 괜찮을 때 따로 한번 만날 수 있을까? 염치없지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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