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103화 (103/1,000)
  • 103화 연말 시상식 (3)

    “…그래서 저희 측에서는 이어진 님에게 보상과 더불어 ‘상당한 특전’을 드릴 계획입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 유튜뷰 코리아의 새로운 도전이기도 합니다.”

    박수한 대표는 신대륙을 향해 돌진하는 모험가 같은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모든 스트리머들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나에게 주어지는 ‘특전’

    그것은 동시에 유튜뷰의 ‘모험’

    거 사람 궁금하게 하는 냄새가 물씬 풍겨 나오는 단어들의 조합이다.

    하지만 그 보상과 특전이라는 게 무엇인지는 유튜뷰 코리아의 대표와 나만이 아는 비밀.

    저번에 송승우 실장을 통해 기별을 넣었던 결과가 잘 풀려서 다행이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꾸벅 인사를 하고 자리로 내려왔다.

    “특전이라는 게 뭐에요?”

    내가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물어보는 홍영화.

    참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영혼이다.

    “…….”

    “…….”

    “…….”

    홍영화가 아무 생각 없이, 진짜 궁금해서 던진 질문에 테이블 공기가 변한다.

    자리에 앉아 있던 모든 이들이 순간 이쪽을 향해 귀를 쫑긋 세우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웃으며 대답을 얼버무렸다.

    “나중에 따로 말해 줄게요.”

    그러자 홍영화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아쉬움으로 일그러지는 순간이었다.

    *       *       *

    인기 개그맨이 와서 사회를 본다.

    요즘 핫한 걸그룹이 와서 댄스 공연도 했다.

    나는 조용히 사이다에 담긴 새우를 까고 있었다.

    화려한 분위기에 이끌려 왔지만, 어쩐지 이런 시끌벅적 유쾌한 분위기는 내게 맞지 않는다.

    어쩐지 전에 살던 쿱쿱한 반지하 골방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한편 무대 위.

    “…그래서 제가 그랬지유. 콩나물 팍팍 무쳤냐!”

    요즘 한창 핫한 개그맨이 유행어로 좌중을 들었다 놨다 한다.

    하지만 나는 회귀자가 아닌가?

    15년 전 유행했던 개그를 다시 듣고 있자니 재미가 하나도 없다.

    남들 배꼽 빠지게 웃는 개그를 나 혼자 심드렁하게 흘려듣고 있을 때.

    “…저기요.”

    누군가 나를 부른다.

    고개를 돌리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투신 마태강!

    그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맞다, 투신도 인방 했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투신 역시 핫한 프로게이머. 최근 개인방송 규제도 풀리면서 시청자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스트리머이기도 하다.

    나는 약간 어색한 모양새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때 이근형 잡는 방법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투신은 내게 지난번 프로리그 때의 일을 언급했다.

    팀 엘리트즈와 서울 대표 자리를 걸고 맞부딪쳤을 때, 마태강은 힐러인 ‘신박’ 이근형과의 대결에서 꽤나 곤혹을 치렀었다.

    내가 힐러를 잡는 버그(?)를 알려 주지 않았더라면 경기는 꽤나 난전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문제는, 내가 그때 마태강에게 조언을 해 줬을 때는 마동왕 역할을 하고 있을 때였다는 것이다.

    “…눈치챘냐?”

    내가 묻자, 마태강은 희미하게 웃었다.

    “모를 수가 없지요.”

    그는 나를 향해 눈을 반짝였다.

    “어디 가서 이야기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걱정 마세요.”

    “…….”

    “다만 늘 빚을 지는 것 같아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왔을 뿐입니다.”

    마태강은 나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아직 19살밖에 되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참 어른스럽기도 하다.

    그때.

    “어머? 사이가 참 좋아 보이네? 탑 급들은 서로 통하나 봐?”

    노골적으로 빈정거리는 목소리가 하나.

    뭔가 싶어 고개를 돌리자.

    ‘…헉!’

    헛바람이 절로 토해진다.

    유다희.

    그녀가 도끼눈을 뜬 채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그녀 역시 인방계의 스타.

    오늘 이 자리에 초대받아 오는 것이 당연하다.

    ‘에이프리카가 주 무대라서 안 올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이번에 유튜뷰랑 독점 계약을 체결한 모양이다.

    뿌득-

    유다희는 나를 보며 이를 간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이내, 그녀는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고인물 씨. 저는 게임과 현실을 혼동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으니까.”

    …그러면서 접시 위에 있는 족발 뼈다귀는 왜 그렇게 꽉 움켜잡고 있는 것일까?

    뿌직!

    이내, 유다희의 손에 잡혀있던 족발 뼈다귀가 부러져 버렸다.

    “…???”

    시골 진돗개가 온 힘을 다해 깨물어도 안 부러지던 족발 뼈다귀가…

    ‘에이 설마, 오래 푹 삶아서 그렇겠지?’

    이런 고오급 호텔에서 내온 족발이니 뭔가 다를 수도 있겠다.

    살점이 부드러웠으니 뼈다귀도 부드러웠을지 몰라.

    “…하하, 실례합니다.”

    나는 유다희의 도끼눈을 피해 슬쩍 자리를 떴다.

    마침 자리도 지겨웠던 차에 이대로 집으로 가야겠다.

    딱히 도망가는 것은 아님.

    아무튼 아님!

    *       *       *

    “…휴!”

    나는 파티룸을 빠져나와 차에 탔다.

    좁고 어두운 공간에 들어오자 마음이 조금 놓인다.

    -위잉!

    나는 파티룸에 들어왔을 때부터 꺼두었던 핸드폰의 전원을 켰다.

    SNS 친구 요청이 너무 많이 와 핸드폰이 뜨거워지는 바람에 허벅지에 화상 입을 뻔했다.

    때문에 배터리 나갔다는 핑계로 잠시 꺼 놨었지.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핸드폰이 켜지자, 지진이라도 난 듯한 진동과 함께 SNS 알림들이 몰아 뜨기 시작했다.

    “…많이도 왔네.”

    나는 혀를 내두르며 페이스노트, 잉스타 등의 친구 요청란을 쭉 훑어보았다…….

    친구 요청 칸은 수없이 많은 빨간 +표시로 한가득이다.

    -새 친구 요청 +1,991

    -알 수도 있는 친구 +3,021

    내가 지난 15년간 SNS를 하며 모은 친구가 200명이 채 안 되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로 엄청난 변화였다.

    나는 일단 친구 요청을 전부 수락하기로 했다.

    팬들의 친구 요청만으로도 버거운 5,000명 제한이지만… 나중에 팔로우를 받든 계정을 하나 더 파든 하지 뭐.

    그때,

    “어라?”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인방 스트리머, DJ, PD, 피팅 모델, 개그맨, 웹툰&웹소설 작가, 파워블로거, 기업 홍보부서, 쇼핑몰 사장······.

    다양한 유명인들이 보내 온 무수한 친구요청들 사이로 낯익은 이름들이 간간이 보인다.

    -장혜원: 어진아 안녕? 나 중학교 때 같은반이었던 짱혜! ㅋㅋㅋ기억하려나 모르겠네 ㅠㅠ 잘 지내? 나는 요즘 인터넷 쇼핑몰 차렸거든! 나름 사장임! 헤헤^^ 언제 한번 보자! 내가 술 거하게 살게♥ 꼭 연락 줘 번호는 010…   -(안읽음)

    -장근형: ㅎㅇㅎㅇ고인물ㅋㅋㅋㅋ야! 나 기억나냐? 우리 중딩 때 같은반ㅋㅋㅋ너도 유튜뷰 하는구나! 나도 요즘 스트리머하는데~~우리 뭔가 통했네ㅋㅋㅋ내 방송도 한번 놀러와줘! 내 크리에이터 명은…  -(안읽음)

    -권혁웅: 오오 이게 누구야ㅋㅋㅋ어진이! 너 되게 유명해졌네ㅋㅋㅋㅋ나 기억하지?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잖어~~ 야 내 여자친구가 너 방송 보는데 너랑 나랑 친하다고 하니까 안 믿더라ㅠ 나중에 술 한 잔 사주라 너 돈 많이 벌잖…  -(안읽음)

    -이재민: ㅎㅇㅎㅇ 어진 올만! 나 기억하냐ㅋ 중딩 때 이후로 첨 연락해보네ㅋㅋㅋ 우리 여전히 절친이지? 내가 좋은 투자 건 있어서…  -(안읽음)

    .

    .

    중학교 인맥.

    대부분은 중학교 때 나를 게임 폐인, 오타쿠라며 무시하고 욕하던 이들이었다.

    “이 여자애는 내가 부모가 없어서 게임만 한다고 소문 퍼트리던 앤데······.”

    “아, 기억난다. 얘는 운동부였지? 맨날 나한테 게임 아이템 구해 오라고 시키던 애······.”

    “얘는 공부 잘한다고 맨날 나 무시하던 애네.”

    “허어, 이 자식은 우리 학교에서 소문난 일진이었는데. 사업은 무슨 놈의 개뿔이······. 아직도 남의 돈 뜯는 근성 못 고쳤나 보네······.”

    간만에(15년 만에) 이렇게들 보니 참 감회가 새롭다.

    대학도 가고 사업도 하고, 참 재밌게들 산다 싶었다.

    내가 막 SNS를 끄려는 순간.

    -띠링!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장혜원: 우와! 어진아! 친추 받아줘서 고마워ㅎㅎㅎㅎ!!!!>ㅁ<  -√읽음

    장혜원.

    기억나는 이름이다.

    수련회 날.

    버스에 탈 때 자기 옆자리에 내가 앉는 것이 싫다며 나를 강제로 맨 앞 담임 옆자리로 옮겨가게 한 여자애.

    뭐 거기까진 이해할 수 있지만, 부모가 없는 애라서 옷도 더러울 것이라는 이유를 댄 것은 조금 너무했다고 생각한다.

    ‘기억이나 할라나 몰라.’

    내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녀에게 메시지는 계속 도착한다.

    -장혜원: 어진아 오랜만에 연락 돼서 너무 좋다ㅎㅎ 유튜뷰에서 너 게임하는 것 봤어~~대박이더라! 나도 요즘 그 게임 하거든~~레벨은 10이지만ㅠ  -√읽음

    -장혜원: 예전부터 너 게임 좋아했잖아ㅋㅋ교실 뒤에서 맨날 게임만 하구~~ 그러더니 결국 대성했네! 역시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인 듯ㅋㅋㅋㅋ  -√읽음

    -장혜원: 군대갔다오더니 얼굴도 완전 훈훈해졌다~ 어깨도 넓어지구ㅎㅎ 모델인 줄 알아써!! >ㅁ

    얘가 인터넷 쇼핑몰을 한다고 했었나?

    확실히 내가 홍보를 해 주면 매출은 좀 오르겠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마음은 별로 들지 않는다.

    돈이라도 많이 준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럴 돈이 있었으면 굳이 옛날의 얄팍한 인연을 들먹이지도 않았겠지?’

    그때.

    -장혜원: 어진아 너 동창회에도 좀 나오고 그래! 너 보고싶어하는 애들 되게 많아ㅎㅎㅎ혁웅이도 그렇고 재민이도 그렇고…  -√읽음

    동창회라?

    별로 썩 좋은 기억은 없는 학창 시절이다.

    원래대로였다면 절대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뭐, 애초에 저들로부터 연락도 안 왔겠지만.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애초에 지금 나는 35살이 아닌가?

    ‘어떻게들 사나 한번 구경이나 해 볼까?’

    미래가 달라졌다고 과거가 달라지진 않지만, 적어도 과거를 마주보는 내 태도는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서른다섯에 스물 하나의 동창회라.

    딱히 갈 만한 값어치가 있는 자리는 아니지만…

    ‘어차피 나도 나잇값 못 하는 놈이니 상관없지 않을까?’

    한번쯤은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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