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102화 (102/1,000)
  • 102화 연말 시상식 (2)

    크르릉-

    엔진이 묵직한 배기음을 토해낸다.

    나는 포르쉐 크로커다일을 몰고 영등포 데오큐브시티의 메릿지 호텔로 향했다.

    주차를 마치고 1층 로비에 들어가자 깨끗한 레드카펫이 보인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과 밝은 조명 빛.

    분수와 조각상, 고아한 분위기의 그림, 사진이 담긴 액자들.

    그리고 주변에는 투숙객들이 언제든 앉아 쉴 수 있도록 소파 등이 쭉 늘어 놓여 있다.

    하지만 곳곳에 서 있는 정장 차림의 직원들 때문에 눈치 보여서 편히 앉지도 못하겠다.

    어디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뭐 필요한 거 있으시냐고 물어보니 부담스러워서 원…….

    심지어 화장실 문 앞에도 정장 차림의 직원이 서 있을 정도!

    “물은 어떻게 내리는 거야 이거?”

    나는 변기 앞에 서서 쩔쩔맸다.

    비데는 물론 페이퍼 타월과 휴지, 수도꼭지와 세면대까지 딸려있는 대변기 칸.

    심지어 변기 커버에 씌울 비닐 시트지까지 구비되어 있다.

    …하지만 정작 물을 내리는 버튼이 없다 이거.

    한참을 쩔쩔매던 끝에.

    나는 바로 정면에 붙어 있는 작은 버튼을 발견하고는 겨우 물을 내릴 수 있었다.

    “화장실도 되게 어렵게 만들어 놨네. 진입 장벽 무엇?”

    게임에서는 어떤 숨겨진 아이템이나 퀘스트도 곧잘 찾아내지만, 현실에서는 변기 물 내리는 버튼 하나 못 찾는 신세다.

    ‘지난 35년간 이런 곳에 와 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나는 투덜거리며 로비로 나왔다.

    “어디 보자······ 어딘가.”

    1층을 돌아다니며 두리번거리자, 이내 안쪽에 오늘의 행사일정을 알리는 입간판들이 보인다.

    <9층 i901-대한민국 변호사협회 송년회>

    <9층 i902-네2버 웹소설&웹툰 연말 파티>

    <9층 i903-유튜뷰 연말 시상식>

    .

    .

    “오, 여기 있네. 3번째 파티룸.”

    한눈에 알기 쉽게 해 놨다.

    나는 곧바로 걸어가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이윽고,

    ‘i903’ 번호표가 붙어 있는 커다란 호텔 파티룸이 내 눈앞에 보인다.

    흰 보자기가 덮인 원형의 테이블들이 즐비한 홀.

    커다란 샹들리에와 촛불들이 이곳저곳에 화려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작지만 또렷하게 들리는 클래식 음악이 잔잔하다.

    정장을 입은, 수려한 외모의 직원들이 파티룸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입장하는 이들에게 기념품이 담긴 가방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유튜뷰 스트리머 THE 슈퍼노바★2020>

    요란한 글귀가 적혀 있는 에코백이다.

    가방 안에는 향초와 달력, 다이어리, 블루투스 스피커 등이 들어있었다.

    직원에게 가방을 받자, 그녀는 나에게 이름을 묻는다.

    “고인물입니다.”

    내 자기소개를 들은 그녀는 밝은 미소와 함께 명찰을 내주었다.

    “고맙습니다.”

    나는 에코백과 명찰을 받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 테이블은 1번 원탁. 겜방 BJ들 그룹이다.

    “안녕하세요.”

    내가 들어가 인사를 하자.

    “……?”

    이미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던 스트리머들이 다 나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한다.

    내가 누군지 못 알아보는 분위기.

    “…옷을 벗어야 알아보실까요?”

    슬쩍 웃옷을 뒤집어 벗는 시늉을 하자.

    “아! 고인물 님!”

    “와 대박! 저 진짜 팬이잖아요!”

    “아앗!? 고인물 님이셨구나! 옷 입고 계셔서 못 알아봤어요!”

    “독점 스트리머들만 모이는 자리라기에 당연히 안 오실 줄 알고!”

    옷을 조금 벗자, 그제야 요란한 반응들이 터져 나왔다.

    역대 최단시간 내에 골드 버튼을 단 스트리머.

    그것도 비독점으로.

    그리고 그 외에도, 게임계에서 내가 일으키고 있는 돌풍을 따져보면 이런 반응들은 당연한 것이다.

    겜방을 하는 거의 모든 스트리머들의 관심이 내게 우르르 몰린다.

    “고인물 님, 진짜 저랑 합방 한 번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소원입니다.”

    “제 채널 한번만 들러주십쇼 형님! 제발!”

    “인증샷 한 번만 남겨도 되겠습니까 고인물 님. 어디 공개도 안 하겠습니다. 제가 진짜 너무 팬이어서…….”

    “아앗! 사인을! 가문의 영광입니다!”

    “흑흑, 다 좋은데… 제발 프로리그로만 넘어오지 말아 주세요. 저희 밥그릇 다 박살날 듯…….”

    겜방 쪽이 시끄러우니 다른 방송 테이블 측에서도 관심이 쏟아진다.

    뷰티, 힐링, 일상, 공부, 운동, 반려동물, 음악, 웹툰, 댄스 등등…….

    수많은 분야의 유명인들이 나를 향해 우호적인 눈길을 보내오고 있었다.

    ‘전생에서는 모니터 속에서만 보던 사람들이네…….’

    나는 감탄했다.

    <느그티스 리그(Justtheir League)>

    통칭 ‘그들만의 리그’

    전에는 방구석에 틀어박혀 모니터로만 봤었다.

    남들의 화려한 삶, 서로간의 우정, 시트콤 같은 일상, 젊고 예쁘고 잘생기고 유쾌한 존재들.

    그들은 주체할 수 없는 끼와 매력으로 서로를 끌어들이고 또 그 관계를 과시한다.

    +에 +가 더해져서 ++의 시너지 효과를 낸다.

    그들은 자기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화려한 것, 유쾌한 것, 친밀한 것, 예쁜 것, 잘생긴 것, 모두의 사랑과 축복, 관심을 받는 것을 뽐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중심에 내가 있다.

    “아휴, 고맙습니다.”

    나는 새로 생긴 수많은 인맥들을 관리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 했다.

    ‘와, 이것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악수하고 사진만 찍는데도 땀이 줄줄 났다.

    예전 같으면 말도 못 걸어봤을 미녀들이 뷰티 방송 테이블에서 일어나 이쪽으로 또각또각 걸어온다.

    온몸에 문신이 있는, 덩치 큰 아저씨들이 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형님 동생 어깨동무를 걸어온다.

    수없이 걸려오는 친구 신청들. 관계와 관계들.

    ‘뭐 이렇게 걸어오는 게 많아!’

    예전에는 남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친한 척을 해 주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35년간 아웃사이더, 언제나 외톨이 마음의 문을 닫고 슬픔을 등에 지고 살아가던 게 어디 가나?

    막상 이런 사교의 장 한가운데 서니 정말로 적응이 안 된다.

    내가 막 억지미소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을 때.

    “요이! 어진 씨!”

    누군가 내 등을 팡 쳤다.

    고개를 돌리니 낯익은 얼굴이 방실방실 웃고 있는 것이 보였다.

    홍영화.

    LGB 방송국 ‘켠김에 제왕까지’ 프로그램의 막내 PD.

    그녀도 여기에 온 것이다!

    “어? 여긴 어쩐 일이에요?”

    “제가 또 어진 씨 스토커잖아요. 으흐흐~”

    홍영화는 두 손을 들어 쌍권총을 만들어 내가 빵빵 쏘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탁-

    그런 홍영화의 머리를 명찰로 때리는 손이 하나.

    “어휴, 저희 막내가 이런 무례를… 죄송합니다.”

    LGB의 조태오 부장.

    그는 화색이 만연한 얼굴로 손을 뻗어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제가 정말 엄청난 팬입니다. 아들이랑 같이 열심히 응원하고 있습니다.”

    그는 나에게 여러 가지 말을 해 주었다.

    방송 잘 보고 있다느니, 평소에 내 팬이었다느니, 저번 방송으로 인해 자기 입지가 많이 섰다느니, 프로그램의 은인이라느니, 다음에도 한번 꼭 출연해 달라느니…….

    뭐 업계 관계자들끼리 흔히 나눌 법한 그런 이야기들이다.

    홍영화는 밝게 미소 지었다.

    “오늘은 제휴사 직원 입장으로 온 거거든요 사실. 근데 여기서 어진 씨를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 갑자기 일이라는 생각이 안 드는데? 나 좀 활기차졌어!”

    홍영화의 외침에 옆에 있던 조태오 부장도 헛웃음을 짓는다.

    나도 그만 웃어 버렸다.

    이윽고.

    유튜뷰 연말 축제 및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여느 시상식이 그렇듯.

    시작은 유튜뷰의 역사와 그간의 성장폭, 그리고 이념과 기치 등의 설명회였다.

    “저희 유튜뷰는 모든 사람들이 개인의 방송국을 가질 수 있다는 이념 하에… 2004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해 왔으며 최근 5년간 2016년 80억 분, 2017년 187억 분, 2018년 257억 분, 2019년 320억 분, 그리고 현 시점 2020년 12월 1일 기준으로 월 400억 분의 사용시간을…”

    유튜뷰의 창업주와 역사, 그리고 그간의 성장폭들이 그래프와 연표로 쭉 설명된다.

    그 밑으로는 투자액과 앞으로의 전망, 신사업 계획 등이 발표되었다.

    으레 이런 행사의 마지막은 언제나 똑같다.

    “그럼 지금의 유튜뷰를 만들어주신 가장 큰 1등공신들, 스트리머 분들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논공행상.

    각 분야별로 인기가 가장 많은 이들, 혹은 단기간에 바짝 뜬 이들이 상을 가져간다.

    프로게이머, 혹은 연예기획사의 연습생, 전직 운동선수…….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많은 이들은 ‘일반인’이다.

    “ㅇㅇ부분 대상에······.”

    “ㅅㅅ부분 우수상에······.”

    “ㅈㅈ부분 금상에······.”

    .

    .

    수많은 이들이 상을 받고 자기만의 인생역전 스토리를 늘어놓는다.

    자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지금 이 자리가 얼마나 영광된지, 지금 심정이 얼마나 기쁘고 얼떨떨한지.

    “…….”

    나는 시큰둥한 얼굴로 그들의 사연을 들었다.

    딱히 자세히 들은 것은 아니다.

    어차피 저들 중 90%는 내년에 이 자리에 있지 못하게 될 테니까.

    다시는 안 볼 사람들의 수상만큼 관심 없고 재미없는 것이 또 없다.

    하지만······.

    “겜방 부분! 슈퍼노바 ‘초신성(超新星)’ 상에 이어진 님!”

    내가 엔트리에 끼어 있으면 느낌이 확 달라지지.

    원래 독점 스트리머가 아닌 자에게 상을 주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경우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수상에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였다.

    “하긴, 고인물 님은 성적이 워낙 넘사벽이니까.”

    “독점이 아니라고 그 성과를 무시할 수도 없지.”

    “무조건 받는 게 맞아.”

    단기간에 대박을 낸 뉴비들이 받는 최고의 영예.

    으레 가장 많은 다툼과 논란이 벌어지는 자리이지만, 이번만은 그런 것이 없었다.

    많은 겜방러들은 이 상을 아예 내 몫으로 찍어 두고 욕심도 내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공지로 이미 내 수상 사실을 통지받았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복적으로 고개를 숙이며 단상 위로 올라가자, 수많은 박수소리가 쏟아졌다.

    유튜뷰 코리아의 대표 박수한은 후덕한 몸집의 중년인.

    그는 나를 보며 껄껄 웃더니 악수를 청한다.

    “어진 씨는 올해의 유튜뷰 초신성 50인에 선정되셨습니다.”

    “아, 네.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2020년 기준 겜방 부문에서 ‘시청자 수 1위’와 ‘상승세 1위’를 동시에 기록하셨죠. 매달 전 분야 시청자수에서도 꾸준히 10위권 안에 랭크 중이시고요. 거의 전례가 없는 기록입니다.”

    박수한 대표는 말미에 살짝 덧붙였다.

    “그래서 저희 측에서는 이어진 님에게 보상과 더불어 ‘상당한 특전’을 드릴 계획입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 유튜뷰 코리아의 새로운 도전이기도 합니다.”

    박수한 대표의 말에 모든 스트리머들의 표정이 변했다.

    다들 머리 위에 물음표 하나씩은 띄우고 있는 듯 보인다.

    나에게 주어지는 ‘특전’

    그것은 동시에 유튜뷰의 ‘모험’

    거 사람 궁금하게 하는 냄새가 물씬 풍겨 나오는 단어들의 조합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