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빅매치 (3)
“저는 오늘 ‘BJ고인물’을 죽일 겁니다.”
나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마동왕의 가면과 목소리 변조 덕분에 내가 고인물이라는 것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댓글 반응들은 그야말로 폭발적이다.
고인물 vs 마동왕.
역대급 빅매치!
아마추어 리그에서 최고의 티어로 군림하고 있는 고인물.
프로리그에서 압도적인 행보를 이어오고 있는 마동왕.
이 둘이 붙는다는데 게이머로서 흥미가 없을 리가 있나!
<고인물> (아마추어) (언랭)
C+급 몬스터 솔로 레이드 성공 (세계최초)
B급 몬스터 솔로 레이드 성공 (세계최초)
B+급 몬스터 솔로 레이드 성공 (세계최초)
A급 몬스터 솔로 레이드 성공 (세계최초)
A+급 몬스터 솔로 레이드 성공 (세계최초)
<마동왕> (프로) (언랭)
아시아 암흑리그의 마지막 우승자
한국 랭킹 11위(아시아 랭킹 23위) ‘신박’ 이근형에게 이김
중국 랭킹 3위(아시아 랭킹 6위) ‘서초패왕’ 커제에게 이김
한국 랭킹 1위(아시아 랭킹 2위) ‘돌부처’ 임요셉에게 이겼다는 소문이 있음
엘리트즈의 금은동 자매 올킬
고인물의 커리어와 마동왕의 커리어가 줄줄이 비교되며 채팅창을 빼곡히 채운다.
그리고.
들어오는 후원금 역시도 장난이 아니었다.
유다희가 거금을 쏘는 것으로 시작해, 수없이 많은 후원금이 들어온다.
이런 상황 속에서.
“네. 그럼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내가 찾아온 곳은 ‘도리안 그레이의 숲’ 통칭 도그숲이다.
도플갱어들이 서식하는 히든 맵.
나는 일부러 주변에 있는 도플갱어들을 다른 몬스터들로 변신시켜 둔 상태였다.
[그아앙-]
[피요오-]
주변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몬스터들의 울음소리.
이 도플갱어들이 각기 다른 대륙의 몬스터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소환수 쌍뿔칠흑 덕분이다.
“잘했다.”
나는 반지 속에 있는 쌍뿔칠흑을 슬슬 쓰다듬어 주었다.
녀석은 기분이 좋은지 골골 소리를 내며 혀를 날름거린다.
쌍뿔칠흑의 특성 중 하나인 ‘과식’
이것은 몬스터를 산 채로 뱃속에 집어넣을 수 있는 특성이다.
나는 쌍뿔칠흑에게 각기 다른 서식지에 사는 몬스터를 잡아먹게 시킨 뒤 이곳에 풀어놓았고, 이는 시청자들이 몬스터의 소리로 맵의 위치를 특정 짓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윽고.
귓가에 스산한 알림음이 들려온다.
<히든 필드 ‘도리안 그레이의 숲 심층부’에 입장 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 고인물>
물론 내 귓가에만 들려오는 것이기에 시청자들은 이곳이 어디인지 알 도리가 없다.
도그숲의 심층부.
나는 이곳의 보스가 누군지 알고 있다.
짭.
레플리카.
어둠 속으로 몇 발자국을 채 뻗지 않아, 이내 저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
<도플갱어 카이저> -등급: A+ / 특성: 3/3, 연쇄살인
-크기: 1.83m
-서식지: 도리안 그레이의 숲 심층부
-이중배회자(二重徘徊者). 본체를 향한 살의로 가득 차 있다.
마동왕(魔霘王)!
과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의 암흑랭커.
놈이 어둠 속 왕좌에 앉은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자, 그럼 접선해 보겠습니다.”
나는 화면을 잠시 가렸다.
마동왕 역할로 말할 때는 음성변조기 ON.
고인물 역할로 말할 때는 음성변조기 OFF.
대사를 헷갈리지 않게 주의하며, 나는 1인 2역을 시작했다.
-마동왕: 나는 마동왕이다.
-고인물: 아하! 이번에 프로리그 데뷔하신 분! 축하드려요. 경기 잘 보고 있어요.
-마동왕: 지금부터 너를 죽이겠다.
-고인물: …? 머징? 저를 죽인다고여?
-마동왕: 그렇다.
-고인물: ??? 미친놈이신가?
-마동왕: 알몸으로 다니는 놈에게 그런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군.
-고인물: 않이, 가만히 있는 저를 왜 죽여요?
-마동왕: 누가 ‘진짜’인지 가리기 위해서이지.
-고인물: 님 프로가 이렇게 막 PK뜨고 다녀도 됨?
-마동왕: 그러지 말라는 룰은 내 계약서에 없어.
.
.
그리고. 전투가 벌어졌다.
나는 고인물 모드로 장비를 다시 세팅한 뒤 화면을 와이드 비전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마동왕 상태인 도플갱어 카이저와 일약 접전을 치렀다.
첫 판에는 그리 필사적일 필요가 없었다.
나는 적당히 어울려 준 뒤 도플갱어 카이저가 만들어 내는 와류에 휘말려 가며 방송을 종료했다.
“푸하!”
방송을 끈 뒤, 나는 토류에서 재빨리 기어 나와 탈출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죽지 않았다.
그리고 로그아웃을 하는 동시에 재빨리 SNS에 후기를 남겼다.
“아 진짜, 난데없이 PK를 걸어온 미친놈 때문에 죽었네요. 여러분 오늘은 사망 패널티 때문에 방송 더 못 하고요. 내일 이 시간에 다시 하겠습니다.”
“여러분! 저는 당하고는 못 사는 거 아시죠? 내일 바로 복수전 갑니다!”
“내일 이 시간에 바로 마동왕 님의 목을 따러 가겠습니다! 많은 시청 부탁드립니다!”
나는 분노에 몸을 부들부들 떠는 척 하면서 ‘리벤지 매치(Revenge match)’를 예고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판에 대한 기대 역시도 폭발적이었다.
-(분석글) 마동왕 VS 고인물 승부 예측 (댓글 231)
-(성지글) 다음 리벤지 매치 때도 고인물은 마동왕을 이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댓글 119)
-(HIT글) 내 생각에는 다음판도 마동왕이 압살한다.text (댓글 987)
-(정보글) 다음 판에는 무조건 고인물이 이기는 이유 10가지 (댓글 187)
-(HIT글) 이번 마동왕VS고인물 매치를 보니 프로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알겠다 (댓글 1,217)
.
.
고인물이 죽은 것에 대해 분노하는 팬들이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았다.
주로 10대의 저연령층이 고인물을 지지한다.
반면 마동왕의 팬들은 조금 더 나이대가 있었다. 주로 20대, 30대 이상이 지지해 주는 편이다.
‘…합치면 전연령이네?’
어차피 고인물도 나고 마동왕도 나다.
그러니 나는 ‘전체연령가’라고 할 수 있겠다.
둘 중 어느 쪽을 응원하고 어느 쪽에 후원금을 보내든, 결국은 다 내 돈이라는 말씀.
그리고 그 와중에…….
-희야날좀바라봐: 아니, 마동왕 님은 프로게이머이신데 그런 알몸 변태 아마추어한테 당하실 리가 없죠 ^^;;
...유다희, 얜 또 뭐냐?
* * *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나는 예정대로 방송을 켰다.
오늘은 처음부터 고인물 모드다.
나는 이번에도 모자이크 처리된 도그숲에 들어갔다.
그리고 카메라를 보며 담담한 척 열연을 펼쳐나간다.
“비록 어제는 마동왕 씨에게 졌지만, 오늘은 각 잡고 한번 제대로 겨뤄 보려고 합니다.”
“네? 기습 PK에 당했으니 억울하지 않냐고요? 음 아뇨. 갑작스럽기는 했지만 저 역시 풀 컨디션이었습니다. 억울하지 않아요. 오히려 세상에는 강자가 많다는 것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인배라고요? 맞습니다. 저는 대인배입니다. 살다 보면 뭐 PK 한 번쯤 걸 수도 있죠 뭐.”
“거기는 작다고요? 네가 봤어요? 저 작지 않습니다. 저는 뭐든지 대인배입니다.”
.
.
나는 시덥잖은 농담을 시종일관 중얼거렸다.
이건 나중에 크게 성공하게 되는 한 개인방송 BJ의 방송방법을 조금 따라한 것인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다.
이내, 나는 카메라를 잠시 끈 채 도그숲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또다시 1인 2역을 시작했다.
-마동왕: 또 보는군.
-고인물: 이번에는 제 차례네요. 죽이러 왔습니다, 마동왕 씨.
-마동왕: 어제 져 놓고 오늘은 이길 것 같나?
-고인물: 마동왕 씨는 정말 강하니까 확신은 없지만. 그래도 해보는 거죠.
-마동왕: 너 역시 강하더군. 그 점은 인정한다.
-고인물: 저도 당신을 인정합니다. 존경스러울 정도로 강해요.
-마동왕: 너 역시도 그렇다. 알몸으로 다니는 것은 변태라서가 아니라 아무도 자신을 때릴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었군.
-고인물: 알아줘서 고맙네요. 다들 변태라고 욕하는데.
-마동왕: 후훗. 천재끼리는 통하는 부분이 있는 법이지.
-고인물: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쉽지 않을 겁니다.
-마동왕: 나는 단 한 번도 져 본 적이 없다. 와라.
.
.
음성변조기를 뗐다 붙였다 하면서 혼자 대사를 중얼거리자.
[?]
눈앞에 있던 도플갱어 카이저가 고개를 갸웃한다.
이내.
방송 중계가 시작되었다.
나는 화면을 켜고는 도플갱어 카이저와 일전을 시작했다.
콰콰콰쾅!
천지가 뒤집어졌다.
어마어마한 지진파가 지면을 온통 두들겨 패 놓는다.
동시에 일어나는 거대한 흙의 소용돌이!
파앗!
나는 쌍뿔칠흑을 소환해 흙의 소용돌이를 역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동시에 신발의 불걸음 특성을 발동해 주변을 온통 불바다로 만든다.
쿠르르륵-
온 필드를 붉게 물들이는 불의 소용돌이!
그 중앙에서 나와 마동왕은 격전을 펼쳤다.
콰쾅!
도플갱어 카이저는 내 몸에 지진과 와류의 힘이 담긴 주먹을 때려 박았다.
나는 바실리스크의 심장을 이용해 그 데미지를 반사했다.
그리고.
꿀꺽- 꿀꺽- 꿀꺽- 꿀꺽-
어둠 대왕의 특성 혈액포식자가 그 진가를 발휘한다.
도플갱어 카이저는 나에게 끊임없이 피를 빨린다.
물론, 도플갱어 카이저의 피는 맹독이지만 나 역시도 맹독 특성이 있기에 별로 상관은 없다.
도플갱어 카이저, 아니 마동왕은 정말 강했다.
놈은 단신으로 필드의 90% 정도를 초토화시킨 뒤.
쿵-
장엄한 모습으로 지면에 무릎을 꿇었다.
마치 패왕의 최후 같은 모습이었다.
덜렁덜렁-
나는 알몸으로 불의 소용돌이를 빠져나왔다.
고개를 들어 소용돌이의 중앙을 내려다보자.
[…….]
도플갱어 카이저가 나를 우수에 젖은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보인다.
척-
이내.
도플갱어 카이저는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그리고.
천천히 용암의 와류 중앙으로 잠겨 들어간다.
[I will be back.]
도플갱어 카이저는 랜덤으로 발생하는 대사 중 하나를 치고는 용암 속으로 완전히 잠겨 버렸다.
그것은 음성변조된 목소리가 아니라 도플갱어 카이저 전문 성우의 멋들어진 목소리였다.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엄지손가락.
마치 터미네X터2의 엔딩 같은 그 장면에…….
“와, 진짜 멋있게 죽네.”
나는 진심을 담아 칭찬해 주었다.
음, 나도 마동왕 모드일 때 사람들에게 저렇게 멋있게 보이려나?
이윽고.
나는 카메라에 대고 얄밉게 웃었다.
“이걸로 마동왕 님과는 1승 1패네요.”
그리고.
방송은 종료되었다.
* * *
아니나 다를까.
이번 방송의 여파도 엄청났다.
고인물과 마동왕의 2차전!
그 승리는 고인물에게 돌아갔다!
이걸로 둘의 전적은 1승 1패.
온갖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양측의 지지여론들이 격렬하게 맞붙는다.
그리고.
양측의 지지세력과는 또 다른, 전혀 다른 여론이 하나 더 거대하게 자리 잡는다.
-마동왕 오빠 너무 멋져!!!
-와 마지막에 마동왕 목소리 들음? 무슨 성우인줄;;;
-진짜 목소리 하나로 팬 될 수 있구나...중저음 간지...
-맨날 음성변조기 끼고 있어서 몰랐는데...이제 들으니 완전 동굴 보이스임...어뜩케...ㅠㅠ
-마동왕 형 멋져요...용암에 묻히실 때 진짜 장엄해 보였음...
-영화 촬영하는 줄 알았잖어ㅋㅋㅋㅋ간지폭발 마동왕!!!
-고인물 쓰레기 변태 놈!! 울 마동왕 오빠를 죽이다니!!!
.
.
마동왕의 장엄한 최후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꽤나 많은 것 같았다.
특히나 여성 팬들의 환호가 빗발친다. 목소리에 반했다나?
마동왕을 향한 후원금도 마구 쏟아지고 있었다.
한편.
고인물의 이미지는 점점 나쁜 놈, 얄미운 놈이 되어 가고 있다.
여성 팬들은 원래 고인물을 변태 같다고 싫어했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싫어하게 되었다.
반면 남자들은 그런 고인물을 향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어찌되었건 2차전의 승자는 고인물이기도 했고.
…….
그리고.
여기에 누구보다도 고인물을 욕하고 누구보다도 마동왕을 찬양하는 여자가 하나.
“안 돼요 마동왕 님!”
모니터를 끌어안고 엉엉 우는 그녀.
…바로 유다희였다.
“고인물 이 변태 쓰레기 놈! 감히 우리 마동왕 님을 죽이다니!”
그녀는 울면서 이를 간다.
그리고 모니터를 끌어안은 채 계속 통곡했다.
모니터의 배경화면은 이미 용암의 소용돌이 중앙에 가라앉고 있는 마동왕의 사진이다.
“…누나 좀 진정해.”
유창이 그런 유다희에게 휴지를 내민다.
팽!
유다희는 코를 한번 풀었다.
그리고 다 번진 마스카라를 닦지도 않은 채 눈을 번뜩였다.
“안 되겠어.”
누나의 단호한 목소리에, 유창은 벌써부터 불길한 표정이다.
아니나 다를까.
유다희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어조로 말했다.
“내 YouDie 길드를 마동왕 팬클럽으로 변경하겠어!”
“에엥?”
유창은 인상을 찌푸렸다.
어차피 YouDie 길드에는 여자들이 더 많고, 또 남자들도 대부분 유다희가 하자는 대로 순순히 따르는 이들로만 이루어져 있기에 별다른 난항은 없겠지만…….
‘굳이 왜?’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했다간 진짜로 아구창을 맞을 것 같았기에 별다른 반박은 못했다.
다만 조심스럽게 물어봤을 뿐이다.
“…만들어서 뭘 하려고?”
동생이 묻자.
유다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비장한 어조로 외쳤다.
“마동왕 님을 위하여, 고인물 놈을 죽여 버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