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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99화 (99/1,000)
  • 099화 빅매치 (2)

    으스스한 숲.

    주요 지형지물들이 모자이크 처리되어 식별이 불가능한 맵이다.

    오늘 이곳에서.

    [저는 오늘 ‘BJ고인물’을 죽일 겁니다.]

    마동왕의 폭탄선언이 터졌다.

    유창은 입을 헤 벌렸다.

    “와 쩐다.”

    그 역시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사랑하는 헤비 유저가 아닌가?

    요즘 한창 핫한 마동왕을 모를 수가 없다.

    그리고 고인물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유창이다.

    마동왕 VS 고인물.

    희대의 빅매치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누나 팝콘 가져올까?”

    유창은 옆에 있는 유다희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쿡 찌른다.

    하지만.

    딱!

    유다희는 손바닥을 들어 그런 동생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좀 닥치고 봐 이 X끼야.”

    유창은 울컥했지만 꾹 참았다.

    그래, 이 나이 먹고 누나를 힘으로 이겨서 뭐 하랴?

    …사실, 힘으로 이길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지만.

    뭐 아무튼.

    모니터 속 마동왕은 계속해서 방송을 진행해 나간다.

    [제가 지금 있는 장소를 알려드리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중간에 대결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 옆에는 계속해서 시청자들의 채팅이 뜬다.

    -오졌다리;;; 고인물 VS 마동왕…역대급 빅매치다 진짜ㅋㅋㅋ공식 프로리그보다 재밌어보리기~~~

    -? 고인물 님은 아마추어 아닌가? 프로랑 게임이 되나?

    -팩트) 고인물 님은 세계최초로 A+급 몬스터를 잡으신 분이다. 그동안 프로게이머들 다 뭐하고 있었을까?

    -제아무리 마동왕이라고 해도 A+급 몬스터 솔플로 잡을 수 있을까? 불가능에 1표~

    -않이 님들앙;;;; 레이드랑 PVP는 다르죠;;

    -몬스터는 패턴만 공부하면 잡는데 PK는 그게 아니잖슴ㅋㅋㅋ결과는 모름

    -솔까 붙어 봐야 알지 입으로만 싸움붙이면 뭐하냐?

    -나는 마동왕에 1표 던진다

    -씹닥전 아님? 고인물 횽이 누군가한테 죽는 건 상상이 안 되는데?ㅋㅋㅋ

    -고인물 님은 일부러 프로데뷔 안하시는 거임ㅋㅋㅋ 솔직히 그분이 작정하고 우리나라 프로게이머들 도장깨기 시작하면 다음 리그 개최 못됨ㅋㅋㅋ프로게이머들 다 사망패널티 때문에 접속불가잼~~

    -근데 프로게이머가 사적으로 PK하고 다녀도 됨???

    .

    .

    의견은 분분했다.

    마동왕은 승패를 점치는 댓글에는 일절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이번 PVP의 당위성을 설명했을 뿐이다.

    [암습이나 기습은 안 할 겁니다. 이건 그냥 누가 더 강한지 알아보기 위한 거예요. 순수한 투쟁심입니다. 누가 한국 넘버원인지, 오늘 가려 볼랍니다.]

    마동왕의 말에는 고인물 아니면 국내에 적수가 없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어찌 보면 참으로 오만한 말이었지만, 그런 말을 하는 당사자가 마동왕이어서인지 아무도 이견을 달지 않았다.

    그가 서울 대표 경합에서 최대의 강팀 엘리트즈를 역올킬하던 것을 본 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멋지다.”

    유다희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내, 마동왕의 후원금 계좌를 클릭하는 유다희.

    무언가에 홀린 듯 움직이는 그녀를 보며, 유창은 눈을 크게 떴다.

    “어? 누나? 지금 뭐해? 웬일로 도네를…어? 아니 0을 대체 몇 개나 붙이는 거…”

    유창이 미처 말리기도 전에, 유다희는 ‘Donation’ 버튼을 눌러버렸다.

    “으악!?”

    유창은 계좌에서 빠져나가는 돈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누나 미쳤어!?”

    하지만 유다희는 오히려 눈을 치켜뜬다.

    “야! 너는 좋아하는 스트리머한테 후원하는 게 미친 짓이냐!?”

    “…….”

    유창은 어이가 없어 입을 딱 벌린다.

    언제는 인터넷에 돈 쓰는 놈들은 다 돈 썩어 나는 미친놈들이라고 까더니만…

    하지만.

    유다희의 후원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큰 금액이 한번 기부되자, 소소한 액수들을 후원하는 시청자들이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

    마동왕은 후원자 목록을 한번 흘끗 돌아본 뒤 말했다.

    [‘희야날좀바라봐’ 님 후원 감사합니다.]

    그러자.

    “꺄아아아악! 내 이름을 불러줬어!”

    유다희의 얼굴이 순간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녀는 옆에 있는 떡대들의 어깨를 팡팡 치며 호들갑을 떨었다.

    “…….”

    유창은 그런 누나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 금액을 후원했는데 닉네임 한번 안 불러주면 그게 사람 새끼겠냐?’

    하지만 속마음을 그대로 말했다간 분명 아구창을 맞을 테니 조용히 있는 수밖에.

    어차피 요즘 대부분의 돈을 벌어오는 쪽은 누나가 아닌가?

    그러니 돈 쓰는 것에는 군소리 말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누나가 요즘 이렇게 삶에 활력이 넘치는 것도 오랜만이니, 썩 나쁜 기분만은 아니었다.

    유창은 방송 중인 마동왕에게 약간은 고마운 감정을 느꼈다.

    이윽고.

    [자, 그럼 고인물이 나타났다는 제보대로. 움직여 보겠습니다.]

    마동왕은 카메라 시점을 여러 인칭으로 나눴다.

    그리고 점점 더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아앙-]

    [피요오-]

    주변에서 몬스터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시청자들은 그 울음소리를 토대로 지금 장소를 추측하고 있었다.

    -이거 오우거 울음소리인데?

    -방금 그건 하피의 노랫소리였어!

    -서대륙인가보다!

    -아님 남대륙임

    -먼 소리임 오거는 동대륙에 사는 몬스터인데?

    .

    .

    온갖 몬스터들의 울음소리가 섞여서 맵을 특정 짓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이내 마동왕이 카메라에 대고 말했다.

    [자, 발견했군요. 이제 접선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핏-

    갑자기 화면이 꺼졌다.

    방송이 종료된 것은 아니었다.

    마동왕의 방송에서는 검은 화면만이 송출되고 있었다.

    화면을 일부러 가린 것이다.

    -뭐야? 먹튀임?

    -설마 PK 직전에 쫄려서 튄 거?

    -화면 왜 끄냐!! 보여줘!!

    -뭐임?? 진짜 후원금 먹튀하는 건가??

    .

    .

    시청자들의 불만이 폭주한다.

    하지만.

    [뭐야? 누구세요?]

    이내 검은 화면 너머로 들어온 목소리에, 채팅창이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는 바로 고인물의 것이었다!

    그리고.

    검은 화면 속에서, 두 사람의 대화가 계속 이어진다.

    [나는 마동왕이다.]

    [아하! 이번에 프로리그 데뷔하신 분! 축하드려요. 경기 잘 보고 있어요.]

    마동왕의 자기소개에 고인물은 친절하게 대답한다.

    -ㅋㅋㅋ고인물 횽님 해맑으신거 보소

    -자기 죽이러 온 사람한테 인사ㅋㅋㅋㅋ

    -고인물님은 진짜 아무것도 모르시는 것 같은데ㅠㅠㅠㅠ무슨 날벼락임..

    -저렇게 상냥하게 인사하면 싸움걸기 민망하지 않음? 엌ㅋㅋㅋㅋㅋㅋ

    .

    .

    하지만, 시청자들의 의견과는 달리.

    [지금부터 너를 죽이겠다.]

    마동왕은 여전히 마이 페이스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검은 화면 속에서, 둘의 대화는 이어진다.

    […? 머징? 저를 죽인다고여?]

    [그렇다.]

    [??? 미친놈이신가?]

    [알몸으로 다니는 놈에게 그런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군.]

    [않이, 가만히 있는 저를 왜 죽여요?]

    [누가 ‘진짜’인지 가리기 위해서이지.]

    [님 프로가 이렇게 막 PK뜨고 다녀도 됨?]

    [그러지 말라는 룰은 내 계약서에 없어.]

    .

    .

    고인물과 마동왕의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님들아 고인물 님 본인 맞는거 같습니다! 목소리 판독기 돌려보니 99% 일치네요!

    -와 데박, 진짜 마동왕 VS 고인물 빅매치인가ㄷㄷㄷ

    -아아아아 직관하고싶다!! 저기 맵 어디입니까!!!

    .

    .

    시청자들의 아우성이 빗발치는 가운데.

    핏-

    화면이 다시 커졌다.

    여러 개의 시야는 하나로 통합되었다. 리그 때처럼 멀리서 찍는 듯한 카메라.

    이윽고.

    마동왕과 고인물의 한판 승부가 시작되었다!

    *       *       *

    우르릉-

    땅이 미친 듯이 날뛴다.

    화면 가득히 잡히는 것은 온통 진동!

    그리고 무너지는 흙과 바위들이었다.

    온 세상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싸움 끝에.

    [으아악!]

    결국 고인물이 토류 폭풍에 휘말리는 것으로.

    PK는 끝났다.

    마동왕의 승리!

    핏-

    고인물이 땅에 파묻히며, 영상 송출은 종료되었다.

    시청자들은 난리가 났다.

    -와 대박 잘 싸운다 둘 다 진짜!!!

    -마동왕 클라스 오짐;;;;온 지면을 다 지진으로 무너뜨리네

    -저건 알아도 못 피하겠다…광역기…

    -천하의 고인물 횽이 죽다니ㅠㅠㅠㅠ

    -이걸로 코리아 넘버원은 정해졌따…

    -근데 고인물 횽 진짜 죽은 거 맞음?

    -영상 막바지에 토사에 휩쓸려가는 건 봤는데…진짜 죽었나?

    .

    .

    시청자들은 약간 찝찝하게 끝난 마무리에 긴가민가 한다.

    하지만.

    -님들아! 고인물 님 개인방송 떴어요! 지금 바로 보셈!

    -www,rhdlsanf3021.co...

    한 시청자가 올린 링크.

    다른 시청자들은 허겁지겁 그 링크를 클릭한다.

    그러자 고인물 채널로 자동 연결되며, 방송이 떠올랐다.

    고인물 본인이 하는 방송이었다.

    [아 진짜, 난데없이 PK를 걸어온 미친놈 때문에 죽었네요. 여러분 오늘은 사망 패널티 때문에 방송 더 못 하고요. 내일 이 시간에 다시 하겠습니다.]

    고인물 본인이 인정했다.

    마동왕과 PK를 떠서 졌다는 사실을.

    그러자.

    “야호!”

    사무실에 쩌렁쩌렁한 환호가 울려 퍼진다.

    유다희는 온몸을 흔들며 기쁨의 댄스를 추고 있었다.

    “마동왕 님! 사랑해요!”

    그녀는 마동왕의 채널로 되돌아가 또다시 후원금을 쏘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이어진 고인물의 방송 멘트가 그런 유다희를 멈칫하게 한다.

    [여러분! 저는 당하고는 못 사는 거 아시죠? 내일 바로 복수전 갑니다!]

    고인물이 던진 특급 폭탄!

    리벤지 매치(Revenge match)의 예고였다!

    [내일 이 시간에 바로 마동왕 님의 목을 따러 가겠습니다! 많은 시청 부탁드립니다!]

    고인물은 당당한 목소리로 예고했다.

    이내.

    우측 상단에 작게 창 하나가 뜬다.

    <마동왕 님의 실시간 위치 제보를 받습니다!>

    <모바일로 쪽지 보내는 법 알려드릴게요^^>

    <1. 고글 쿠롬 접속>

    <2. 본인이 보는 개인방송플랫폼 검색>

    <3. 우측 상단 점 세 개 클릭 후 MC 검색>

    <4. ‘고인물’ 입력>

    <5. 쪽지 전송>

    <저는‘ 반.드.시’ 복수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수많은 시청자들이 쪽지 보낸 것을 채팅창에 인증한다.

    -병! 형신이야? 왜 졌어!

    -고인물님! 다음에는 지지 마세요! 위로금으로 도네합니다!

    -복수전 꼭 성공하시라고 후원합니다!

    -덜렁교의 수치다! 이단자를 죽여라!

    -마동왕 죽이러 갈 파티 모집(1/10000000000..)

    ↳마동왕 죽이러 갈 파티 모집(2/10000000000..)

    ↳마동왕 죽이러 갈 파티 모집(3/10000000000..)

    ↳마동왕 죽이러 갈 파티 모집(4/10000000000..)

    .

    .

    .

    주로 나이 어린 시청자들이 격려 메시지를 많이 인증하는 편이다.

    코 묻은 후원금들이 엄청나게 쌓이기 시작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고인물은 죽어서도 돈을 번다.

    한편.

    고인물과 마동왕의 대결은 단순히 두 사람의 채널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게임 커뮤니티 전반에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분석글) 마동왕 VS 고인물 승부 예측 (댓글 231)

    -(성지글) 다음 리벤지 매치 때도 고인물은 마동왕을 이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댓글 119)

    -(HIT글) 내 생각에는 다음판도 마동왕이 압살한다.text (댓글 987)

    -(정보글) 다음 판에는 무조건 고인물이 이기는 이유 10가지 (댓글 187)

    -(HIT글) 이번 마동왕VS고인물 매치를 보니 프로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알겠다 (댓글 1,217)

    .

    .

    고인물과 마동왕의 다음 승부를 예측하는 게시물들이 무수히 뜨기 시작했다.

    조회수나 달리는 댓글들의 수도 어마무시하다.

    다른 개인방송 플랫폼도 온통 이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넘쳐났다.

    BJ나 스트리머, 프로게이머들은 모두 고인물과 마동왕을 비교 분석하며 대결이 어땠는지, 다음 결과는 어떻게 나올 것인지에 대해 썰을 풀어놓는다.

    그런 게시물들을 보며.

    “…….”

    유다희는 초조한 표정으로 마우스 커서를 움직인다.

    그녀는 열심히 댓글을 달고 있었다.

    -희야날좀바라봐: 아니, 마동왕 님은 프로게이머이신데 그런 알몸 변태 아마추어한테 당하실 리가 없죠 ^^;;

    온 게시판을 돌아다니며 고인물 팬들과 설전을 벌이는 유다희.

    이내 그녀는 키배에서 밀리자 발끈해서 벌떡 일어났다.

    “안 돼! 이런 멍청한 짓 할 시간에 차라리 모금이라도 해야겠어! 마동왕 님이 내일 그 변태 놈한테 패배하시는 일 없도록 아이템이라도 맞춰 드려야…”

    그러자, 유창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누나, 그건 에바지. 우리가 무슨 마동왕 팬클럽도 아니고…애초에 고인물 그 X끼를 한 번이라도 죽였으니 원하던 것은 다 이뤘잖아? 이후에 마동왕이 죽든 말든 우리랑 뭔 상관?”

    “…그, 그런가?”

    동생의 팩트 나열에 유다희는 약간 시무룩해진다.

    하지만.

    동생에게 핀잔을 들었으면서도 그녀의 시선은 자꾸 모니터의 ‘후원하기’ 버튼에 머물러 있다.

    유다희 본인도 근원을 알 수 없는 아쉬움, 불안함.

    그리고 그것들과는 다른.

    조금 색다른 감정 하나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꾸물거리며 진한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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