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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98화 (98/1,000)
  • 098화 빅매치 (1)

    <뽀식이네 실내 낚시터>

    반지하에 있는 음침한 캡슐방.

    전 주인이 썼던 낚시터 간판이 그대로 달려 있는 이곳에서는 수많은 신용불량자, 고액채무자들이 퀭한 표정으로 노가다를 하고 있다.

    그들은 캡슐 속 게임세상에서 일을 한다.

    레벨이 되는 이들은 몬스터를 잡아서 아이템을 모아 온다.

    레벨이 안 되는 이들은 나무열매를 따 오거나 광산에서 광물을 캔다.

    자신의 운을 믿는 이들은 도박을 한다.

    강화소에서 아이템에 강화석을 바르며, 이들은 원금에 앞서 이자 납부의 꿈을 꾼다.

    그렇게 모인 게임머니는 고스란히 사채업자의 손에 들어간다.

    그것은 세금도 물지 않는다.

    대부업을 게임 속에서 하면 안 된다는 법 조항이 없으니 위법도 아니다.

    눈물과 땀, 뿌연 담배연기와 진한 커피 냄새로 꽉 차 있는 곳.

    꿈도 희망도 없어 보이는 이 공간에.

    랄랄랄라♪

    청아하고 아름다운 음색의 콧노래가 울려 퍼진다.

    유다희.

    그녀는 담배 두 개비를 입에 물고 구겨진 종이컵에 진한 커피를 내린다.

    “카악 퉷!”

    유다희는 콘크리트 벽에 누런 가래침을 한번 탁 뱉었다.

    그리고 담배꽁초 두 개를 침에다가 눌러 껐다.

    푸시시식-

    담배가 꺼진 뒤, 그녀는 커피 잔을 들고 작업장 구석에 마련되어 있는 작은 방송실로 향했다.

    “룰룰루루♪”

    분홍색 돌핀 팬츠를 입고 엉덩이를 씰룩거리는 유다희.

    그리고 그런 친누나를 보는 유창의 표정은 황당함에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돌았나?”

    요 며칠 간 장마전선 급 저기압에 짓눌려 있던 누나가 아닌가?

    한데 며칠 전에 음주 방송 하겠답시고 나갔다가 그냥 돌아온 뒤부터 줄곧 저렇게 기분이 좋은 상태다.

    그리고.

    유다희의 좋은 기분은 방송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오빠! 별조각 1개 감사해요! 오늘은 특별히 기분이 좋으니까 별조각 1개로도 댄스타임 간닷!”

    “어머 언니들! 후원금 고마워! 나 진짜 열심히 할게! 오늘은 특별히 기분이 좋으니까 시청자님들 닉네임 하나하나 다 불러 보련닷!”

    그녀는 연신 생글생글 웃으며 방송을 진행했다.

    가끔 진상 시청자가 갑질을 하거나 음란한 말, 욕설을 할 때에도…….

    “에이, 왜 그래요!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에요 떽!”

    “악플도 관심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겠쯥니다아♥”

    “어머? 호호호, 괜찮아요. 저 상처 안 받았어요. 다 저 잘되라고 말씀해 주신 거잖아요!”

    “다 이해해요! 오늘 하루도 힘들었죠? 저한테 털어놓으세요. 이 방에서 다 풀고 가요!”

    거의 보살 급 멘탈이다.

    평소라면 진상들을 칼 같이 얼려 버리는 그녀였지만…

    오늘만은 마치 대현자, 관세음보살이 강림한 듯 자비롭고 관대하기 그지없다.

    -다희언니!!! 계속 웃으시니까 진짜 너무 예뻐요!

    -평소에 악플달러 오는데..오늘부터 악플러 생활 접습니다. 팬 됐어요 다희씨!

    -얼굴 예쁘고 몸매 좋고 인성 갑...유다이 당신은 도덕책...

    -진짜 착하시다ㅠㅠ....얼굴도 인성도 다 가지신 듯...

    -요즘 좋은 일 있으세요? 표정이 너무 밝아요! 혹시 남친 생기신 건 아니죠? ㅠㅠ

    -저건 진짜 사랑에 빠진 눈인데?

    -당신...제발 나를 죽여 줘...당신의 품에서 다희하고 싶어..

    .

    .

    시청자들은 유다희의 방송을 보며 시종일관 좋은 평가를 내렸다.

    그럴 수밖에.

    무슨 말을 들어도 웃어 주고 정성스럽게 대답해 주니까.

    덕분에 요 며칠간 그녀의 고정 악플러들이 눈에 띄게 감소했고 팬들의 수가 급속도로 늘어나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나 여성팬들이)

    후원 수익도 대폭 증가했다.

    “오늘도 고마웠어요! 다음 이 시간에 만나요오오!”

    유다희는 앙증맞은 표정으로 볼을 부풀리고는 애교를 부렸다.

    이윽고.

    핏-

    방송이 종료된다.

    카메라가 꺼진 뒤.

    원래라면 ‘어, 쉬이펄~ 사는 거 X같네!’ 등의 걸쭉한 욕설이 터져 나올 차례.

    하지만.

    “난나나나 쏴-♪”

    유다희는 욕을 하지 않는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여전히 하이 텐션을 유지한 채 방송장비를 정리한다.

    끼익-

    방송실을 나와, 그녀는 초췌한 표정으로 사채를 갚고 있는 악질 채무자들을 향해 인사를 건넨다.

    “어머, 언니. 이제 빚 얼마나 남았어? 뭐? 벌써? 와아 거의 다 갚았네! 나머지는 그냥 받은 걸로 칠게 내일부터는 나오지 마~ 앞으로는 남편 몰래 도박하지 말구!”

    “오빠는 변제 잘 돼가? 오 많이 갚았네요! 이자율 조금 내려줄 테니까 더 열심히 해 봐요! 한 달 연속 무결근이니까 봐 드리는 거예요!”

    “너는 어디서 노가다 뛰어? 광산? 언니가 곡괭이 더 좋은 걸로 사 줄 테니까 열심히 해. 얼른 빚 갚고 새출발 해야지!”

    “아저씨도 빚 거의 다 갚았네요? 내일부터는 안 나오셔도 돼요. 이따가 저녁 사 드릴 테니까 먹고 가세요~”

    유다희는 몇몇 성실한 채무자들의 빚을 즉석에서 탕감해 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유창의 표정은 여전히 황당 그 자체다.

    “아니, 사채업 하는 우리도 쓰레기지만. 우리한테 돈 빌리고 떼먹으려 하다가 잡혀 온 저 사람들도 쓰레기야! 탕감은 무슨 얼어죽을…! 왜 호의를 베풀어 저런 것들한테!”

    그러자.

    유다희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누가 뭐래? 그냥 내가 기분이 좋으니까 그런 건데?”

    “…진짜 죽을 때가 됐나? 누나 돌았니?”

    그러자.

    퍽-

    유창의 아구창을 향해 날아오는 주먹.

    “꼑!”

    유창은 코피를 터트리며 비명을 질렀다.

    유다희는 구겨진 얼굴로 주먹을 확 들어 보인다.

    “뒤질래?”

    “...”

    유창은 슬그머니 시선을 내리깐다.

    ‘왜 나한테만 평상시대로야?’

    유창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미 유다희는 쌩 하고 소파로 가 버린 뒤다.

    털썩-

    소파에 주저앉아 맥주를 마시는 그녀에게, 유창이 물었다.

    “누나. 방송 안 피곤해?”

    진상 악플러들을 향한 분노.

    큰 손 시청자들의 갑질을 견뎌 내기 위한 억지미소.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관심종자 짓을 하는 자괴감.

    그 모든 것들의 집약체가 바로 인터넷 개인방송이 아닌가? 피곤하지 않을 리가 없다.

    하지만.

    유다희는 시큰둥한 태도로 대답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뭐가 힘들어?”

    유창은 입을 딱 벌렸다.

    “놀랄 노(浶)자네. 천하의 찡찡퀸 유다희가 이런 말을 하다니. 평소에는 방송 집어치고 싶다고 맨날 입이 닳도록…….”

    “닥치고 수금이나 다녀와라. 요즘 너네 실적 저조한데… 내 개인방송 수익 없으면 이 작업장 돌릴 수 있겠냐?”

    유다희는 맥주를 마시며 태연하게 대꾸했다.

    유창은 할 말이 없어 입을 삐죽였다.

    요즘 대부업 단속이 심해서 성과가 저조한 것은 사실이니까.

    그나마 빚을 변제할 길 없는 이들을 작업장에 데려와 게임이라도 시키지 않았다면 진작 사업 접었을 것이다.

    그때.

    “누님!”

    입구 쪽에 서 있던 정장 떡대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누님, 켠왕 할 시간입니다.”

    그는 유다희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리모콘을 내밀었다.

    하지만.

    “오늘은 안 봐.”

    유다희는 그 좋아하는 켠왕을 거른다.

    “……?”

    유창은 수금 나갈 준비를 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유다희.

    그녀는 초조한 표정으로 시계를 보고 있었다.

    “아, 오늘 시간 너무 안 간다!”

    그녀는 전역식을 기다리는 말년 병장처럼 굴었다.

    시계 초침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여지껏 살아왔던 것 중에 제일 반짝이고 있다.

    이내.

    시간이 되었다.

    따르르르릉-

    핸드폰 알람이 시끄럽게 울린다.

    “됐다!”

    유다희는 맥주캔을 집어던지고는 재빨리 컴퓨터 앞으로 뛰어갔다.

    모니터에서는 한 개인방송 스트리머의 실시간 방송이 중계된다.

    이것이 그녀가 지금껏 초조하게 굴었던 원인.

    가장 좋아하던 TV프로마저 제쳐두고 뛰어간 이유였다.

    <마동왕님이 ‘Live’ 방송 중입니다>

    마동왕!

    그가 오랜만에 방송을 시작한 것이다.

    이윽고.

    마동왕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다.

    그는 하얀 마스크를 쓴 얼굴, 그리고 변조된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프로게이머 마동왕입니다. 추천, 구독, 즐겨찾기, 선호작, 같이 보는 중 부탁드립니다.]

    무게를 잡는 와중에도 단골 홍보멘트는 잊지 않는 그이다.

    이윽고.

    수많은 시청자들이 활발하게 채팅을 친다.

    -동왕이형ㅎㅇ

    -마왕등장!

    -ㅋㅋ마왕 횽 오늘은 뭐해?

    -지금 있는 필드가 어디신가요? 직접 만나러가고 싶어요>ㅁ<

    -근데 진짜 저기 어디임??

    .

    .

    시청자들은 순식간에 불어난다.

    하긴, 마동왕은 구독자 수가 하루만에 10만을 넘어선 입지전적인 인물.

    이 정도는 당연한 것이다.

    오죽했으면 오늘 방송을 한다는 예고도 없었는데도 벌써 시청자들이 이만큼 쌓였을까.

    심지어 방송이 시작된 직후, 아무런 특이점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후원금이 팡팡 터지고 있었다.

    -동왕이형! 직관하고 싶어요 위치 알려주세요!!!

    -마동갓 있는 곳 어디임?? 처음 보는 필드 같은데...

    -지금 위치 알려주시면 도네 쏩니다!! ㄹㅇㄹㅇㄹㅇ

    -저기 어디지? 남대륙? 서대륙? 고기삶는 밀림인가?

    ↳거기 식물들은 저렇게 꺼무죽죽하지 않음ㅋㅋㅋ첨보는 맵이당~

    .

    .

    수많은 시청자들이 채팅으로 마동왕의 현 위치를 궁금해 하고 있었다.

    그것은 유다희 역시 마찬가지였다.

    -희날좀바라봐너는나를좋아했잖아: 마동왕 오빠 하이♥ 근데 지금 어디에 계신 거예욤???

    유다희 역시 채팅창에 메시지를 쳤다.

    왜냐하면…….

    마동왕은 현재 있는 맵의 위치를 전부 모자이크 처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니맵도 모자이크, 주변에 보이는 풍경들도 전부 모자이크.

    유일하게 알 수 있는 것이라면 그가 지금 어두운 분위기의 숲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동왕은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결코 말해 주지 않았다.

    [제 위치를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오늘 저는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데… 혹시라도 팬 분들이 구경 오셨다가 휘말리게 되실까 걱정이 되어서 그렇습니다.]

    중요한 일이라? 그게 뭘까?

    시청자들은 기대감에 부풀어 채팅을 친다.

    레이드?

    히든 퀘스트?

    아이템 제작?

    다양한 콘텐츠들이 채팅창을 채운다.

    그러던 와중.

    마동왕의 폭탄선언이 터졌다.

    [저는 오늘 ‘BJ고인물’을 죽일 겁니다.]

    그리고 동시에.

    쿵-

    유다희의 심장도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격하게 떨리는 동공.

    그녀는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심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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