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고인물 VS 마동왕 (2)
[뒤.]
돌아온 것은 짧은 대답이었다.
유다희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아, 놔… 뒤? 뒤지고 싶나 이게 진짜…지가 무슨 초능력자여? 내 뒤에 어떻게…헉!?”
백미러를 본 그녀는 이내 헛바람을 집어삼킬 수밖에 없었다.
차 뒤에 누군가가 서 있다!
검은 도로 위, 마치 유령처럼 부유하고 있는 남자.
‘뭐야 저 사이코는?’
유다희는 그의 가면을 바라보며 인상을 팍 찌푸렸다.
…….
하지만.
자세히 보니, 가면이 꽤 낯익다.
유다희는 이내 저 남자가 게임 속 캐릭터를 그대로 현실에 재현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동왕.
본인 등판이다!
달칵-
유다희가 차 문을 열어 주자, 마동왕은 이내 조수석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쿵-
마동왕은 마세리티 팬들럼의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출발해.”
짧고 딱딱한 명령.
목소리를 알 수 없게끔 변조된 음성.
“…….”
유다희는 불안한 표정으로 엑셀을 밟았다.
이내, 둘은 밤거리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 * *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유다희.
그녀와 단 둘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정말로 오랜만이다.
전생에서는 그렇게 죽자사자 따라다녔어도 그녀와 개인적으로 드라이브한 횟수는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은근히 그녀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 차보다 더 좋은 차를 타고 다니고 있었네.
‘참 나, 이런 여자를 그냥 평범한 일반 대학생으로 생각했다니…’
나는 황당한 마음에 실소가 나올 지경이었다.
무리해 가며 비싼 차를 콜떼기 해 와서 그녀를 태우고 다녔을 때, 유다희는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쩐지 그녀를 알고 지냈던 전생의 10여 년 보다 지금 그녀와 몇 개월 남짓 얽힌 것이 더 길게 느껴졌다.
유다희의 본모습(?)을 본 횟수로 따지면 오히려 이번 생이 압도적이다.
한편.
유다희는 내 눈치를 보며 어색하게 웃는다.
“…그러고 나오신 거예요?”
그녀는 내 가면과 음성변조기를 보며 말했다.
“클럽 가시려고 나오신 건 아닌가 봐요. 헤헤, 만약 가셨으면 여자들 무서워서 다 도망갔겠어요!”
“응.”
“…여긴 어떻게 나오셨어요? 택시? 아니면 어디에 차 주차해 두셨나?”
“차 없어. 뚜벅이야.”
“…아하, 되게 당당하시다.”
나는 정면을 응시한 채 담담하게 되물었다.
“움츠러들어야 하나?”
“아뇨 아뇨! 보통 남자들은 여자가 차 있는데 자기가 차 없는 경우라면 조금 민망해 하는 경향이 있으니…”
“당신은 여자가 아니라 의뢰인이지.”
“…와, 프로시네요 역시.”
유다희는 말을 마치고 잠시 눈치를 보았다.
이내, 그녀는 차를 한적한 갓길에 댔다.
그리고는 진지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그런데… 프로로 데뷔하신 분이 이렇게 사적으로 PK를 하셔도 될까요?”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는 유다희다.
나는 그녀의 성격을 잘 안다.
애매모호하고 불투명한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
설사 자신이 불리한 경우라고 해도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를 분명히 하는 여자다.
나는 확실하게 말을 했다.
“꼭 당신의 부탁 때문에 PK를 하는 것은 아니야.”
“…?”
유다희는 고개를 갸웃한다.
나는 쐐기를 박았다.
“나는 알고 있어. ‘고인물’ 그는 어마어마한 강자라는 것을.”
내 얼굴에 금칠해 버리기~~~
슬쩍 자화자찬을 하자, 유다희의 얼굴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이내, 그녀는 똥 씹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변태 사이코에 찢어 죽여도 모자랄 X로 X끼 X XXX할 XXX놈이지만 실력은 있죠.”
나는 유다희의 입에서 나오는 무시무시한 말들에 조금 움찔했다.
다행이야, 가면과 음성변조기가 나를 가려 주어서.
만약 내 정체가 마동왕인 동시에 고인물이라는 걸 안다면…
그녀는 아마 사이드포켓 밑에 숨겨져 있을 망치를 꺼내 내 머리통을 깨 버릴지도 모른다.
나는 슬쩍 문 쪽으로 붙으며 말했다.
“크흠. 그래서 뭐. 어차피 당신 의뢰가 아니었더라도 한번 붙어 보고 싶었지.”
“아하! 누가 더 강한지요? 천상계 탑 티어들의 호승심 같은 건가요?”
“뭐, 그런 셈이야.”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유다희는 손뼉을 치며 웃었다.
“그러면 그림이 더욱 좋네요. 제가 꽤나 멋진 판을 깔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녀는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머리가 참 비상한 여자였다.
주변 사람들을 이용하고 조종해서 자기 입맛대로 부리는 데에는 도가 튼 인물.
유다희는 마동왕과 고인물의 대결 구도를 개인방송의 주제로 삼아 새로운 방송 콘텐츠를 제작할 계획 같았다.
“그 편이 마동왕 님에게도 좋을 것 같아요. 아마 상당한 이슈거리가 될 거예요. 조회수 수익과 후원 수익도 팡팡 터지고!”
“나쁘지 않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식적으로 맞장구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요즘 한창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두 고수의 PK라.
꽤나 흥행성 있는 아이템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의 관심은 딱히 필요 없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팬들에게 좋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편이 좋겠지?
유다희는 흔쾌히 말했다.
“저는 PK전까지 저희 길드 측 댓글부대 운용해서 최대한 이번 대결을 홍보하고 이슈를 만들어 볼게요. 물론 대가는 전혀 필요 없고요!”
인심 한번 쓴다는 듯한 말투였다.
요컨대.
내가 고인물을 죽이면 발생할 모든 수익들을 극대화시켜서 나에게 몰빵해 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지?”
고인물을 청부살인하는 데 드는 비용, 거기에 댓글부대 운용비, 홍보비, 후원 수익 등을 생각하면 상당히 큰 파이가 예상된다.
그런 파이를 한 입도 먹지 않고 빠지겠다고 하는 게 과연 진심일까?
하지만.
유다희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무슨 생각하시는지 알아요. 의심스러우실 수도 있겠죠.”
“…….”
“하지만 저는 진심이에요. 고인 물 그놈을 꼭 죽이고 싶어요.”
으드득-
이 가는 소리.
이내, 유다희는 운전석 위 선바이저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통장이었다.
유다희는 그 통장을 내게 내밀며 말했다.
“이건 암살 의뢰비용이에요. 열어 보시면 제 살의(殺意)가 어느 정도인지 느껴지실 거라 믿어요.”
…?
나는 뭔가 싶은 마음으로 통장을 열었다.
그리고.
‘허억!’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아니 0이 대체 몇 개야 이거?
오싹-
수없이 늘어진 0의 행렬을 세다가, 나는 그만 소름이 돋아 버렸다.
유다희 이 여자…대체 나를 얼만큼 증오하고 있었던 걸까?
내가 잠시 말이 없자, 유다희는 그새를 못 참고 얼굴이 시뻘겋게 달궜다.
“아아아악! 진짜 그 인간 생각만 하면 잠을 못 자겠어요! 그놈한테 공탁금 삥 뜯긴 거랑 죽은 거 다 합치면 벌써 건물 한 채는 올렸겠어!”
“그동안 받은 스트레스를 돈으로 따지면 지구도 살 수 있어요! 여기 봐! 여기 원형탈모 보여요!?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이게 다 고인물 그놈 때문이야아아아아앗!”
“반드시! 반드시 그 놈을 죽여요! 사망 패널티를 먹여서 이 게임에서 축출해야 해! 하루라도 그놈 없는 세상에서 게임하고파!”
유다희는 아무래도 불안증에 걸린 듯싶다.
듣자하니 사냥 도중에도 언제 내가 튀어나올지 몰라 전전긍긍하느라 레이드도 못 돈다나?
‘누가 들으면 내가 자기 스토커인 줄 알겠네.’
나는 조금 억울한 마음이다.
지금껏 그녀를 많이 죽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가는 길을 그녀가 방해했기 때문이다.
이름 없는 여왕 레이드 당시.
유다희는 나를 몸빵으로 쓴 뒤 보스 막타를 스틸하려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미리 알고 그녀를 역으로 방패삼아 보스를 잡았다.
우는 천사 레이드 당시.
유다희는 자기 동생과 함께 복수를 하러 왔다.
그녀는 나를 다구리로 죽이려 했지만, 좋은 보상을 주는 던전을 안다는 내 꾐에 빠져 들어왔다가 생존비를 삥 뜯겼다.
그것도 모자라 메두사와의 눈싸움에 패해 돌이 되어 버리기까지 했다.
샌드웜 레이드 당시.
유다희는 몇 개의 세력을 규합해 나를 척살하려 했다.
하지만 내가 필드 보스 샌드웜을 소환하는 통에 역으로 몰살당했다.
악의 고성 레이드 당시.
유다희는 내 충고를 무시하고 조디악 번디베일과 손을 잡았다가 뒤통수를 맞고 죽어 버렸다.
나는 그저 뚜렷한 악의 없이 내 계획대로 움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괜히 그걸 훼방 놓다가 역으로 된통 당한 건 전부 그녀의 자업자득.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전생에 나한테 끼친 금전적 피해만 따져도 이 모든 것들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 아닌가?
‘뭐 전생에서는 내가 못나서 셀프 호구짓 한 거였으니 딱히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다만…’
나는 속으로 혀를 끌끌 차고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유다희는 한참 동안을 더 씩씩거리다가 아차 싶은 듯 황급히 표정을 고쳤다.
“아앗, 너무 흥분했네요. 죄송.”
“아닙니다. 들어보니 화나실…아니, 화날 만도 하네.”
나는 살짝 쫄아서 무의식중에 존댓말을 썼다.
하지만 유다희는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서 그런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는 계속해서 속에 쌓인 울분을 풀어내었다.
“제가 그놈한테 어떻게든 피해를 주려고 했는데! PK를 뜰 실력이 안 되니까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구요…현피라면 차라리 자신 있는데 주소도 모르고…어디 방송에 민원 넣는 게 고작…”
현피라는 말에 나는 다시 한 번 움찔했다. 그녀의 사이드 포켓에 숨겨져 있을 망치가 조금은 두렵다.
‘아니, 그보다 민원 3,021통이 고작이라고?’
나는 ‘켠김에 제왕까지’의 시청자 게시판에 빼곡하게 남겨진 항의 메일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내가 말이 없자, 유다희는 깊게 심호흡을 한 뒤 차분하게 돌아온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초면인데 자꾸 분노조절장애 같은 모습만 보이네요.”
“…입금이나 똑바로 해.”
“네네, 그럴게요. 덕분에 속이 좀 풀리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아무한테도 말 못했던 건데…들어주셔서 고마워요.”
유다희는 내게 감사인사를 하며 슬쩍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이내.
그녀는 굉장히 태연한 기색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중요한 질문을 툭 던진다.
“한데 이왕 PK를 하실 거, 저희 길드의 이름을 걸고 뛰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유다희의 손에 들린 통장. 그녀는 내게 그윽한 눈길을 보내온다.
탁-
내 허벅지를 짚어오는 유다희의 손길.
하지만 나는 일언지하에 대답했다.
“무리생활은 별로야.”
듣는 사람이 절로 무안해질 정도로 단호한 말.
하지만 유다희가 누군가?
그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거야 무리생활을 누구랑 하는지에 따라 다른 것 아닌가요?”
이윽고.
그녀는 나를 향해 상체를 천천히 굽혀 오기 시작했다.
“어디, 라면이라도 먹으면서 얘기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