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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92화 (92/1,000)
  • 92화 올킬(Allkill) (2)

    “쯧쯧쯧…….”

    나는 모니터로 보이는 광경에 혀를 찼다.

    한국 랭킹 2위 홍지노.

    모두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선수이지만…….

    안타깝게도 오늘 무대의 주인공은 그가 아니다.

    투신 마태강!

    오늘은 그가 화려하게 날아오르는 날이기 때문이다.

    나는 15년 뒤의 미래를 살다 왔기에 이번 경기의 승패를 잘 알고 있었다.

    불과 몇 분 뒤, 투신은 E스포츠 역사에 길이 남을 레전드 경기를 펼치며 일약 스타로 급부상하게 된다.

    베스트리그의 탑3 로스터 중 하나였던 홍지노.

    승부욕, 판단력, 순발력, 인내심, 심리전, 연산능력, 정치력, 사회성, 체력.

    그는 분명 프로게이머에게 요구되는 9대 덕목을 모두 갖추고 있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스타 플레이어다.

    하지만.

    그는 단 한 가지를 간과했다.

    ‘그 모든 덕목을 상대도 갖추고 있다는 것’

    그것까지 감안하지 못한 것이 바로 홍지노의 패착이었다.

    애초에 마태강을 임요셉에게 가기 위한 통과점 정도로 생각한 것이 뼈아픈 오판이다.

    지금의 기량만으로 따지면 마태강은 임요셉을 뛰어넘을 정도일 테니까.

    “……캬, 전설의 3연뻥이 재현되는구나.”

    나는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무대 위를 올려다보았다.

    15만 명이 넘게 몰린 인파.

    15년 전의 나는 저 15만 인파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것도 저 멀리 입석으로 간신히 낑겨 서서 경기를 관람했었지.

    하늘을 펄펄 날아다니는 랭커들의 화려한 승부를 보며, 나는 처음으로 청운의 꿈을 가슴에 품었었다.

    그때 그 경기를 보지 않았었더라면 뭔가가 달라졌을까?

    “…….”

    이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인생에 ‘만약’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현실을 똑바로 인식하고 직시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지금의 나는 어떤가?

    무대 위 VIP 로얄석, 투신과 그의 동료들이 있는 곳에 떡하니 앉아서 보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지만…사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투신에게 전 재산을 몽땅 걸었다는 것이지!’

    가면 밑으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랭킹 1위를 찍은 적도 있었던 홍지노와 랭킹 6위로 갓 올라온 마태강.

    그 둘의 토토 배율은 약 7:1정도였다.

    홍지노 쪽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선택은 언제나 옳다.

    마치 어둠 대왕을 죽이고 얻은 ‘솔로몬의 선택’ 특성이 현실에서 발동되기라도 한 것처럼.

    투신 마태강은 당당히 승리했다.

    내가 가진 모든 현금이 앉은 자리에서 7배로 불어나는 순간이었다.

    푸확-

    홍지노의 심장이 가슴 밖으로 뽑혀 나올 때, 나도 목젖이 뽑혀 나올 정도로 환호했다.

    …물론, 속으로만.

    슬쩍 내 명의의 핸드폰을 열어 계좌 속 잔액을 확인해 보았다.

    -잔액: 7,803,021,910 원.

    지금까지 쌓아온 현금 원기옥이 제대로 폭발했다!

    미래를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해도, 잭팟이 터지는 이 순간은 너무나도 짜릿하다.

    ……,

    하지만, 아직. 아직이다!

    아직 3배가 터지는 판이 남았다.

    그것은 바로 국K-1과 엘리트즈의 승패 맞추기 토토!

    투신이 터트리는 7배짜리 역배, 그리고 팀 단위의 게임이 터트리는 3배짜리 역배!

    그리하여 총 21배의 역배가 터지는 전설의 경기가 바로 오늘 일어나고 있다.

    원래 역사에서는 그 3배가 엘리트즈 쪽에서 터진다.

    투신은 초반에 눈부신 성과를 거두며 분투하지만 임요셉 등 4명이 부진을 겪으며 끝끝내 엘리트즈에게 승리를 내주게 된다.

    그 때문에 승리를 점치는 사람이 3배 이상 많았던 국K-1은 통한의 패배를 겪고 서울 대표 챌린저 팀 자격을 박탈당하게 되는 것이다.

    (나중에 모종의 사정으로 인해 엘리트즈가 챌린저 자격을 내려놓아 자동으로 국K-1이 올라가기는 하지만, 그것은 이겨서 얻은 영광은 아닌 셈이다)

    이후 투신은 개인 자격으로 듀얼 토너먼트 등을 휩쓸며 챌린저 타이틀을 따로 따게 된다.

    “…….”

    나는 고개를 돌렸다.

    지금 배당은 국K-1쪽이 압도적으로 높다.

    ‘팀 전에서 3배를 따는 건 힘들겠네.’

    나는 생각했다.

    엘리트즈에 돈을 걸고 일부러 진다면야 원래 역사대로 21배를 딸 수도 있겠지만, 내가 국K-1 팀의 선수로 출전한 이상 그것은 승부조작이 된다.

    나는 그냥 평범하게 내 팀에 돈을 걸었다.

    배율이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꽤 불어날 것이다. 투신으로 인해 7배 이상 불어난 금액이기에 그것도 상당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절대로 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에 가능한 ‘투자’다.

    도박이 아니라 투자.

    한편.

    나는 고개를 돌려 무대 저편에 있는 엘리트즈의 선수들을 바라보았다.

    이금비, 이은비, 이동비.

    통칭 금은동 자매.

    나와 몇 번인가 악연으로 얽힌 적이 있던 이들이다.

    “언니들 저 마태강이라는 선수 어떻게 생각해?”

    “꼭두각시 회동에서부터 알아봤지. 크게 될 줄 알았어.”

    “야, 그거 말고 이 기집애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각 나오냐고.”

    그녀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한 채 저희들끼리 경기를 분석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는 잘 알고 있다.

    원래의 미래대로라면 그녀들은 곧 우리 팀 국K-1의 선수들을 모조리 찍어 누르고 챌린저 타이틀을 가져갈 것이다.

    금은동 자매를 비롯한 수많은 랭커들이 각자의 시간대를 풍미하는 이 시대.

    이 시대를 우리들은 ‘랭커들의 황금시대’라고 불렀었지.

    …….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제는 나의 시대지.’

    나는 마음을 차갑게 먹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지난 번 엄재영 감독과 나눴던 연봉협상의 기억이 떠오르고 있었다.

    *       *       *

    ‘금은동 자매라고 있거든? 그 세 명이 아주 골치야. 바톤 터치를 이용한 합격술이 거의 예술이거든. 사실상 1:3으로 싸우는 거나 다름없어. 요셉이는 홍지노를 견제해야 하니까 히든 카드로 빼 두고, 나머지 우리 애들 중에 얘들을 막을 수 있을 애가 있을지 걱정이다.’

    하지만.

    나는 자료를 보지 않았다.

    다만 그저 웃을 뿐이었다.

    ‘간만에 보네.’

    자료 1페이지에 대문짝만 하게 박혀 있는 세 명의 신규 랭커들.

    그녀들은 바로 금은동 자매였다.

    프로게이머 은퇴 후 본업인 고시생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한 뒤 바로 고시에 합격한 초엘리트들을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다.

    심지어 나에게 한 번씩 다 괴롭힘 당했던 이들이 아닌가?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엄재영에게 물었다.

    ‘제가 이 셋 다 잡아 주면 두당 천만 원씩 가능한 부분입니까?’

    비단 금은동 자매 셋뿐만이 아니다.

    ‘올킬(Allkill)’

    나 혼자서 5명을 연달아 부숴 버리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이 정도의 기량을 지닌 나에겐 고정 연봉보다 성과급 제도가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것.

    내 제안을 들은 엄재영은 끙 소리를 냈다.

    보통 ‘건실한’ 프로팀의 1군 주전 같은 경우에는 3~4천 대의 연봉을 받는다.

    팀 내의 에이스가 되면 성과급이나 상금, 인센티브 등을 포함해 1억을 넘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

    2군이나 3군의 경우에는 일반 직장인 정도, 혹은 그에 조금 못 미치는 급여를 가져간다.

    만약 팀의 성적이 부진하거나 스폰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라면 아르바이트보다 수입이 적을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요구한 금액은 연봉으로 따지면 거의 수억대에 육박할 정도.

    프로게이머로서는 거의 최정상급 대우이다.

    물론 1년 안에 얼마나 많은 경기를 소화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중 승리가 몇 개나 될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엄재영은 나를 붙잡기 위한 조건으로는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눈치였다.

    내가 싱글싱글 웃고 있자, 엄재영은 나를 보며 기가 막히다는 듯 물었다.

    ‘너 진짜 신인 맞냐?’

    20대 초중반의 어린 선수들은 경기력에만 집중하다 보니 연봉 협상이나 계약 관리, 노동자로서의 권리 등등을 잘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은퇴 후 사회적으로 뒤처지게 되는 안타까운 결과를 야기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게 있을 수가 없다.

    줄창 게임만 하긴 했어도 나름 이 바닥 더러운 것은 숱하게 보고 듣고 겪어 왔으니까.

    아주 나이를 헛먹지는 않은 셈이다.

    ‘당연하죠. 저 신인 맞아요.’

    그렇다.

    나는 게임을 시작한 지 이제 막 1년차가 된 뉴비다.

    ……전생의 15년간 닳고 닳은 뉴비라서 그렇지.

    겉은 21살의 청년이지만 속은 35살의 사회인.

    이른바 ‘겉바속촉’같은 것이지.

    겉은 바삭, 속은 촉촉.

    이내.

    엄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번 경합 성과 보고, 정규리그 1승당 천만 원으로 연봉협상 결과 위에 올려 볼게. 리그 결과로 설득하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다.’

    꽤나 만족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눈을 감은 채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내가 알기로는 지금 이미 이 조건으로 뛰고 있는 선수가 국내에 적어도 셋은 있단 말이지?’

    일단 ‘국K-1’소속의 임요셉이 이와 비슷한 조건이다.

    그리고 엘리트즈의 홍지노 등등…….

    곧 투신 등 몇 명도 같은 조건으로 올라선다.

    하지만 그들은 승리 한 건당 700만원 안팎으로 받는다.

    그러니 나 정도 대우면 정말로 현 시점에서는 업계 탑클래스 급의 조건인 셈이다.

    *       *       *

    이내.

    나는 회상을 끝내고 눈을 떴다.

    “결국, 모든 것은 이번 데뷔전을 얼마나 화려하게 장식하느냐에 따라 달린 셈이로군.”

    나는 무대를 올려다보았다.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한 투신이 다시 한 번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내 기억대로라면 투신은 다음 경기도 무난하게 이길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으로 나오는 금은동 자매의 연합 전술은 그동안 1:1 PVP에 익숙해져 있던 프로 선수들에게는 다소 낯선 것.

    투신은 3번째 판에서 승리를 내주게 된다.

    그리고 이후 임요셉 등등이 연달아 좌초되며 이변이 일어나게 된다.

    금은동 자매가 이끄는 엘리트즈가 화려하게 급부상하는 것이다.

    하지만.

    “너희들은 얼른 고시 공부나 해라.”

    금은동 자매들은 프로게이머 은퇴 후에 오히려 더욱 잘 나가게 되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그러니 이번 무대는 나에게 좀 양보해라.

    나는 가면을 꾹 눌러 고정시켰다.

    그리고 음성 변조장치가 달린 겉옷을 입었다.

    무대로 올라갈 준비가 모두 끝났다.

    이제 출격할 일만 남은 시점.

    나는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15만 관중을 한번 쭉 돌아보았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폭죽, 드라이아이스, 셀 수도 없이 많은 카메라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망막들.

    이제 잠시 뒤면 그 모든 것들을 전부 나를 위한 것이 되리라.

    나는 숨을 한껏 들이쉬었다.

    경기장 내부의 화약 냄새, 먼지 냄새, 땀 냄새, 목재 접착제 냄새, 락스 냄새…….

    그 모든 것들이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와 부풀어 오른다.

    그래.

    이제는 정말로 나의 시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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