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91화 (91/1,000)
  • 91화 올킬(Allkill) (1)

    시간이 흘러, 드디어 리그가 열렸다.

    총 상금 10억 원의 빅리그!

    서울 대표 챌린저의 자리를 걸고, 수십 개의 팀이 서로 맞붙는다.

    오늘 리그가 열리는 이곳 ‘용산 E스포츠 스타디움’에는 아침부터 구름 같은 인파가 모여들고 있었다.

    기자, 연예인 등 방송인. 프로 구단 측 관계자들. 그리고 팬들.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경기장으로 몰려들었다.

    만석도 이런 만석이 없다.

    입석  표까지 팔아야 할 판.

    직관 암표 한 장이 10만 원을 넘어가는 대성황!

    곳곳에는 OMR카드와 컴퓨터용 사인펜을 들고 있는 이들이 많이 보인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같이 눈에 핏발이 바짝 서 있다.

    그들은 국가에서 허락한 도박인 ‘E스포츠 토토’를 하러 온 이들이었다.

    토토꾼들은 선수들의 1:1 승/무(교체)/패에 한 번을 베팅할 수 있다.

    그 뒤에 팀 전체의 토털 승패에 다시 한 번 베팅이 가능하다.

    즉 선수에 한 표, 팀에 한 표.

    이렇게 총 두 번을 베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례대표제와도 아주 약간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엘리트즈 이겨라!”

    “국회의원 파이팅!”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K-1이야 머저리야!”

    “엘리트즈 잘해라! 전재산 몰빵 때렸다고!”

    곳곳에서 관중들의 함성이 빗발친다.

    동경, 질투, 열망, 흥분, 관심, 애정, 희망, 저주, 격려, 응원…….

    다양한 감정들이 휘몰아치는 스타디움 속으로,

    이내 오늘의 주인공들이 입장한다.

    [네! 오늘의 셀럽! 요즘 한창 주가가 오르고 있는 팀이죠! 엘리트즈의 선수 분들을 모십니드아아아!]

    사회자가 마이크에 대고 흥분한 목소리로 외친다.

    그러자.

    푸슉-

    요란하게 터지는 드라이아이스.

    이윽고 무대 하수에서 다섯 명의 사람이 망토를 두른 채 걸어 나왔다.

    그러자.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이 터져 나왔다.

    “콩! 콩! 콩! 콩!”

    이 요상한 응원이 향하는 쪽은 바로 엘리트즈의 리더 홍지노가 있는 곳이다.

    ‘폭풍’ 홍지노.

    그는 한국 랭킹 2위의 탑 티어 랭커이다.

    원래 1위로 군림하던 그는 최근 ‘돌부처’ 임요셉에게 1위 자리를 빼앗기며 만년 2인자 이미지가 생겨났다.

    엘리트즈의 리더인 홍지노는 무대 위에 서서 관객들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이내 주먹을 들어 보이며 빽 소리쳤다.

    “콩까지마!”

    그러자 사람들은 애정 어린 웃음으로 박수를 쳤다.

    이윽고.

    다음 선수가 걸어 나왔다.

    그의 이름은 이근형. 한국 랭킹 11위의 고수다.

    이근형의 등장에도 사람들은 환호를 보냈다.

    그리고.

    대망의 하이라이트이다.

    리더인 홍지노보다도 더욱 더 사람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는 나머지 세 선수!

    이금비, 이은비, 이동비!

    이 세 자매가 무대 위로 등장하는 순간.

    “우-와아아아아!”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환영으로 그녀들을 맞이했다.

    세 자매 모두 예쁘고 아름답다. 심지어 게임까지 잘한다.

    으레 여자 게이머는 텔런트 급으로 예쁜 대신 남자 게이머에 비해 실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인식과 달리, 이 세 자매는 각각이 한국 랭킹 20위 권 안에 들 정도로 강했다.

    심지어 이 세 자매가 턴을 교체해가며 펼치는 합격술에는 한국 내 당할 자가 없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

    때문에 엘리트즈가 이번 리그를 쓸어 가기 위해 시작부터 초강수를 던졌다는 여론이 대다수였다.

    칼잡이 이금비, 마법사 이은비, 궁수 이동비.

    여기에 한국랭킹 2위인 홍지노와 11위인 이근형까지 포진했다.

    확실히 이번 경합에 작정하고 나온 티가 났다.

    [네! 미녀 삼총사의 합류로 한층 더 단단해진 팀 ‘엘리트즈’였습니다! 그럼 그 상대는~!]

    사회자는 마이크를 들고 우렁차게 소리 질렀다.

    이윽고.

    콰쾅!

    무대 상수에서 뜨거운 불꽃이 피어오른다.

    다섯 개의 그림자가 불의 장벽을 넘어온다.

    ‘국K-1’!

    엘리트즈와 함께 쌍벽을 이루고 있는 서울의 강팀.

    현 한국 랭킹 1위 임요셉이 이끌고 있는 팀이다.

    이윽고. 멤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임요셉, 이연호, 마태강, 송병건.

    네 명의 얼굴을 보자 팬들은 미친 듯이 환호한다.

    ……한데?

    다섯 번째 그림자가 무대 상수에 비쳤을 때.

    “와아아아아…엥?”

    일시적으로 함성 소리가 조금 사그라든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당연히 마지막 타자로는 팀 내 랭킹 5위인 최연석이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대신 모습을 드러낸 이는 많은 사람들이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훤칠한 키에 얼굴을 가린 가면, 목에 달려  는 음성변조기까지.

    마동왕!

    바로 나의 첫 데뷔 무대였다.

    *       *       *

    ‘호오? 이것 봐라? 힐러 최연석이 빠졌어?’

    홍지노. 현 한국 랭킹 2위.

    그는 국K-1의 엔트리를 보며 피식 웃었다.

    5번째 멤버 마동왕. 한국 랭킹 9위인 최연석을 밀어내고 들어온 존재. 공식 랭킹은 아직 없기에 언랭(Unran)이다.

    ‘심해에서 바로 올라온 건가.’

    홍지노는 마동왕을 보며 눈을 빛냈다.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불법 지하리그에서 놀다가 올라온 놈.

    거리의 양아치가 반짝 스타로서 스포츠 링에 오르는 것이야 흔한 일이다.

    ‘하지만 자극적인 드라마를 위한 설계자들의 꼭두각시일 뿐.’

    홍지노는 고개를 저었다.

    길바닥에서 굴러먹던 놈팽이에게 프로의 링이 어울릴 리 없다.

    대부분은 근성 부족, 자질 부족, 멘탈 부족으로 인해 알아서 격침된다.

    ‘저런 변수 캐릭터 보다는…확실한 위협을 견제해야지.’

    홍지노는 눈을 부릅뜨고 정면을 노려보았다.

    이번 엘리트즈의 비밀병기는 새로 영입한 금은동 3자매.

    때문에 초반부터 강력한 패를 빼들 계획이다.

    첫 타자 홍지노.

    그는 자신의 별명인 폭풍처럼 몰아져 최대한 많은 적을 꺾어놓을 심산이었다.

    ‘상대는 누구냐!’

    홍지노는 정면의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이내.

    엘리트즈 첫 타자의 사진으로 홍지노의 얼굴이 뜬다.

    그리고, 바로 뒤이어.

    그의 상대가 정해졌다.

    투신 마태강!

    그가 국K-1의 첫 타자로 나온 것이다.

    마태강의 얼굴을 확인한 홍지노는 약간 김이 샜다는 표정이다.

    ‘흐음. 임요셉이 나왔으면 했는데…뭐 상관없나?’

    홍지노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태연한 기색으로 무대로 올라가 업라이트 구역에 구비된 캡슐에 앉았다.

    이윽고.

    초대형 전광판에 홍지노의 시야가 각각 1인칭, 3인칭으로 표시된다.

    “…….”

    마태강 역시 별다른 말없이 바로 캡슐로 들어가 앉는다.

    수많은 팬들의 함성이 무색해질 정도로 침착하고 건조한 반응들.

    하지만 그 둘의 매치는 벌써부터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었다.

    특히나 ‘토토꾼’들에게 말이다.

    이윽고.

    한국 랭킹 2위 홍지노와 한국 랭킹 6위 마태강의 PVP가 시작되었다.

    *       *       *

    맵은 ‘무통증 협곡’

    이미 대회 운영진들이 골렘들을 싹 제거해 놓았기에 황무지에는 아무것도 없다.

    늪이나 밀림, 광산지대와 달리 지형의 영향이 적은 곳이라서 선수들이 꽤나 선호하는 맵이기도 했다.

    턱-

    폭풍 홍지노. 그는 커다란 창을 들고 싸우는 스타일.

    무기는 자주 바꾸는 편이지만 공격 스타일만은 늘 한결같다.

    그는 삭풍을 정면으로 받으며 높은 바위 위에 섰다.

    그리고 그 반대편 바위 위로 투신 마태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홍지노는 눈을 가늘게 떴다.

    ‘내 상대는 임요셉뿐이지. 이참에 만년 2인자 이미지를 확 벗어 버려야겠다!’

    그는 자신했다.

    현 국K-1 멤버들 중 자신의 상대가 될 만한 이는 없다.

    굳이 꼽자면 랭킹 1위의 탱커 임요셉과 랭킹 9위 힐러 최연석의 조합이 조금 걱정될 뿐이었는데…….

    이번 리그에 어째서인지 최연석이 불참하게 되면서 일이 쉬워졌다.

    ‘가볍게 첫 번째부터 네 번째까지 올킬한 뒤 다섯 번째일 임요셉과 승부를 내야지!’

    그렇게 되면 져도 면이 선다. 앞의 넷을 혼자서 잡았다는 카리스마도 있으니 말이다.

    홍지노는 창을 들고 힘차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내.

    눈앞에 마주 달려오는 마태강이 보인다.

    홍지노는 피식 웃었다.

    ‘저놈은 초중반 가벼운 공격으로 혼을 빼 놓고 틈을 노려 한방기를 먹이는 스타일이지. 초반에 적당히 맞아 주다가 후반부에서 승부를 보면 된다!’

    홍지노는 창을 들어 마태강의 공격에 대비했다.

    마태강의 지금까지 경기를 보면 대부분 초반에는 탐색전을 위한 잔 펀치나 킥을 달린다.

    홍지노는 HP를 최대한 아끼기 위해 가드를 단단히 굳혀서 데미지를 최소화할 생각이었다.

    …….

    한데?

    후욱-

    마태강은 초반부터 바로 온 힘을 다한 주먹을 내뻗었다.

    뜨거운 열기가 실려 있는 주먹!

    상대방의 방어도를 무시하고 데미지를 입히는 ‘단조’ 특성이 터져 나왔다!

    마태강의 주먹은 홍지노의 단단한 가드를 뚫고 그의 얼굴을 강타했다.

    뻐-엉!

    요란한 소리와 함께, 홍지노의 HP가 순식간에 22% 가량 증발해 버렸다!

    “크윽!?”

    홍지노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초반 전략을 잘못 파악했다.

    차라리 정공법으로 나갔다면 딜 교환이라도 했을 것을!

    홍지노는 창을 들어 전방을 겨냥했다.

    한방기를 써서 반동 데미지를 입은 마태강은 지금의 짬을 소강상태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지!”

    마태강이 방어, 혹은 회피에 전념할 것이라고 판단한 홍지노는 재빨리 창을 들어 반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마태강은 반동 데미지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0.1초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그는 바로 뒤이어 불타는 주먹을 날린다.

    뻐-엉!

    2연뻥!

    또다시 마태강의 한방기가 홍지노의 가슴에 사무쳐든다.

    “카학!?”

    홍지노의 HP가 또다시 22% 증발했다.

    “이런 빌어먹을!”

    하지만 홍지노도 괜히 탑 티어가 아니다.

    그는 공격에 적중당한 순간 창을 들어 마태강의 왼쪽 어깨를 콱 찍어 눌렀다.

    -<쌍두사(雙頭巳)> 양손무기 / C+ / +8

    기형 장창의 한 종류이다.

    창극은 두 갈래로 갈라져 있어서 마치 두 마리의 뱀이 길게 뒤엉켜 뻗어 있는 모양새. 머리 부분의 두 갈래 창끝에서는 독 기운이 뚝뚝 떨어진다.

    -공격력 +200

    -독 공격력 +50

    -추가 공격력 +80

    -특성 ‘독’ 사용 가능 (특수)

    8강까지 강화된 장창.

    C+등급에서는 1강당 10의 공격력이 올라간다.

    독 공격력까지 감안하면 최종 공격력은 330! 상당한 수준이다.

    그러나.

    -<단조(鍛造) 건틀릿> 양손무기 / C+ / +7

    한계까지 달궈져 시뻘겋게 보이는 강철 건틀릿. 어지간한 방어구는 그냥 뚫어 버린다.

    착용자에게는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한다.

    -공격력 +350

    -화염 공격력 +100

    -추가 공격력 +70

    -특성 ‘관통’ 사용 가능(특수)

    마태강이 쓰고 있는 아이템은 그보다 공격력이 훨씬 높다.

    강화 공격력에 화염 공격력까지 합치면 총 공격력이 520!

    서로 한 방씩을 교환했다고 한다면 마태강 쪽이 압도적으로 이득이다.

    하지만.

    홍지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독 데미지! 제대로 들어갔다!’

    마태강은 상태이상 ‘독’에 걸려있는 상태. 매 초당 HP의 0.025%가 깎여 나간다.

    나름 거센 한방기를 먹인데다가 도트 데미지까지 걸었다.

    마태강은 무조건 뒤로 빠져 몸 상태를 점검할 것이다.

    ‘그때를 노려서 돌풍처럼 몰아친다!’

    홍지노는 여기서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원래라면 서로 한 번씩 딜 교환을 했으면 멀리 떨어져서 다음 각을 잴 차례.

    하지만 홍지노는 오히려 창을 더욱 바짝 끌어 쥔 채 아귀처럼 달려들었다.

    도망치는 적의 숨통을 완벽하게 끊어 놓겠다는 듯!

    …….

    한데?

    달려들던 홍지노는 경악해야 했다.

    후욱-

    눈앞으로 끼쳐오는 열기(熱氣)!

    마태강은 전혀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 심지어 거리를 바짝 좁혀 따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한방 딜을 교환한 직후임에도 불구하고, 반동 데미지를 입어 가면서까지 미친 듯이 따라붙는 마태강.

    그 모습은 과연 투신(鬪神)이라는 위명다운 모습이었다.

    ‘아, 안 돼!’

    홍지노는 자신이 상대방의 페이스에 완전히 휘말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뻐-엉!

    3연뻥이 작렬!

    마태강의 주먹이 홍지노가 입은 갑주의 왼쪽 가슴팍을 부수고 틀어박혔다.

    치이이이익……

    시뻘건 피가 뿜어져 나오다가 건틀릿의 열기에 익어 선지처럼 굳어 버린다.

    홍지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시선을 내렸다.

    두근… 두근… 꽉-

    심장의 두근거림이 멈췄다.

    이 상황이 급박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가슴을 뚫고 들어온 뜨거운 손이 심장을 꽉 움켜쥐고 있었기에 펄떡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내.

    푸확-

    홍지노의 심장이 밖으로 뽑혀 나왔다.

    그나마 있던 HP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바…바톤 터…….”

    홍지노는 뒤에 있는 이근형에게 교체 사인을 보냈지만, 이미 늦었다.

    그의 HP가 0이 되는 순간.

    번쩍!

    투신은 폭풍의 심장을 뽑아내 허공으로 치켜세워 보인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어마어마한 함성이 스타디움을 통째로 뒤흔들었다!

    E스포츠의 역사에 영원히 남을 레전드.

    3연뻥의 전설이 생겨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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