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89화 (89/1,000)

89화 랭커들의 황금시대 (2)

제 1회 뎀 프로리그 ‘오뚝이배’가 그 장대한 서막을 올렸다.

수많은 고수들이 모여 PVP최강자를 가리는 대회.

이는 그야말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다.

맨 처음, 불과 20여 년 전인 1999년.

온라인 게임의 리그가 스튜디오도 없이 작은 방송국 휴게실에 있던 탁구대 위에서 열렸던 것을 감안한다면 오늘의 이 결과는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

깃털 펜이 키보드가 된 것만큼 어마어마한 진화였다.

오뚝이라는 국내 굴지의 식품 대기업이 거대한 규모의 투자를 하는 것이 시작이었다.

국내의 수많은 기업들이 뎀 프로리그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대회에 스폰을 하고 자신들만의 고유 프로팀을 만들어 육성한다.

거기에 나라도 한 몫 거들었다.

각종 규제를 풀어 줬을 뿐만 아니라 국가에서 운영하는 합법적 도박인 토토까지 유치해 민간의 자본까지 끌어들였다.

시장은 정말 날이 가면 갈수록 거대해졌다.

기업 투자, 민간 투자, 정부 투자, 해외 투자, 수많은 분야로 돈과 관심이 흘러든다.

그 와중에 몇몇 탑 티어 급 프로게이머, 혹은 랭커들의 화려한 생활이 공개되자 돈 냄새를 맡은 인재들이 속속 이 바닥으로 뛰어들었다.

자연스럽게, 업계 종사자들의 수도 나날이 늘어났다.

게임을 방송하는 사람, 후원하는 사람, 연구하는 사람, 가르치는 사람, 베팅하는 사람, 중개하는 사람, 중계하는 사람 등등…….

수많은 이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이곳 프로리그의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온갖 뜨내기들이 넘쳐 나는 가운데 정작 시장이 커져 가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 딱 하나 있었다.

‘선수’

정작 가장 중요한 프로게이머들의 수가 극도로 적다.

수요와 공급으로 대표되는 경제구조.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은 실로 기묘하다.

수요는 압도적인데 반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참으로 아이러니한 기현상이었다.

투자자, 후원자들이 넘치는 가운데 정작 시장을 선도해 나갈 프로게이머들이 적다는 것.

그것은 야인(野人)으로 군림하던 랭커들에게는 분명 희소식이었다.

모든 기업들이 엄청난 고액연봉을 제시하며 랭커들을 프로로 영입하려 들었다.

랭킹 100위, 아니 1000위 안에만 들어도 모든 기업들에게서 러브콜을 받는다.

어지간한 중소 프로팀 정도는 골라서 갈 수 있다.

탑 급의 랭커들은 어마무시한 대접을 받았다.

스포츠 스타들이나 받을 법한 연봉에 법인 명의의 외제차, 수영장이 딸린 전세 오피스텔 등등.

말도 안 되는 혜택과 특전들이 쏟아진다.

개인방송 규제도 풀렸기에 시청자, 팬들로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스폰도 받는다.

바야흐로 ‘랭커들의 황금시대’가 열린 것이다!

*       *       *

청담동에 위치한 뎀 프로팀 ‘국K-1’의 사옥.

마당에는 작은 연못과 소나무, 벤치, 운동기구들이 즐비하다.

두 개의 깔끔한 단독주택이 한 마당을 두고 쌍둥이처럼 마주보고 있었다.

하나는 2,3군 연습생들의 숙소고 다른 하나는 1군 연습생들의 숙소.

연습실은 두 주택이 이어져 있는 중앙의 작은 유리 돔 속에 있었다.

오늘도 불철주야 연습에 여념이 없는 연습생들.

어차피 한데 모여 있는 것은 캡슐뿐인지라 게임 속에서 플레이 하는 구역은 전부 다르지만, 오늘만큼은 한 곳에 모여서 서로 대전도 하고 시뮬레이션도 돌린다.

1, 2군 프로들도, 3군 연습생들도. 모두 분주하다.

“야, ‘엘리트즈’ 멤버 중에 마법사 있지? 걔 상대로 할 건데 맞춰 줄 수 있냐?”

“걔가 쓰는 템 트리 가져와 봐. 아이템만 똑같이 끼면 스타일은 흉내 내 줄 수 있을 듯.”

“아, 부산 ‘스타파이브’ 팀 1위가 쓰는 아이템 중에 투구 능력치가 뭐지? 비슷한 걸 못 찾겠네…….”

“PVP 자신 있냐? 적어도 두 명은 잡아야 하는데…….”

“아, 요즘 게임 잘 풀리네. 이러다가 내가 상대팀 올킬하는 거 아님?”

코앞으로 다가온 오뚝이배 리그.

이 거대한 리그에 앞서 열리는 ‘챌린지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이다.

모든 프로팀이 다 오뚝이배에 참가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국내에 존재하는 140여개의 크고 작은 팀들, 이 중에서 ‘베스트리그’로 올라갈 수 있는 팀은 오직 10개뿐이다.

서울.

인천.

경기도.

강원도.

충청남도.

충청북도.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

경상북도.

베스트리그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이 10개 구역에서 각각 경합을 벌여 살아남아야 한다.

때문에 챌린지리그는 도내리그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런 시스템의 경우 인구 수가 많이 있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의 베스트리그 진출 자격을 같게 만들면 불합리하지 않느냐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모든 리그를 통틀어 챌린지리그 자체가 메인이고 베스트리그는 오히려 투자유치 규모 면에서 보면 챌린지리그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이 사실.

실질적으로는 그냥 명예직에 불과하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신기하게도 1차 대회가 2차 대회보다 더욱 더 집중도가 높고 투자 규모도 큰 것이다.

사실상 챌린지리그에서 좋은 성과를 거둬 도내대표가 되고 베스트리그 진출 자격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탑 티어 대우를 받는 것이 사실.

그리고 인구가 많은 곳의 ‘챌린저’일수록 더욱 더 귀한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고로.

서울의 챌린저가 되기 위한 ‘국K-1’ 연습생들의 노력은 정말로 대단한 수준이었다.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의 생존경쟁이 제일 치열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때.

삐걱-

연습 열기로 치열한 ‘국K-1’ 연습실의 문이 열렸다.

“워후! 열기 장난 없네!”

방형근.

올해 19살의 연습생.

소속은 ‘국K-1’의 2군이며 군내 랭킹은 4위이다.

주 플레이 스타일은 마법사.

그는 가벼운 교통사고 때문에 근 4주 정도를 병원에 입원해 있느라 연습실에 나오지 못했다.

사실 주차장에서 후진하던 차에 무릎을 통 부딪친 정도라 곧바로 연습실에 나올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에이,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쉬어요! 이참에 휴가라고 생각할래요! 아아앙, 감독님 제발! 저 여자친구랑도 거의 한 달 넘게 못 만났단 말이에요오오오!’

감독에게 무진 떼를 써서 겨우 병가를 허락받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기다려라, 챌린저! 내가 간다!”

방형근은 원대한 야망을 품고 연습실로 복귀한 것이다.

역대급 규모의 프로리그가 열린다는 소문을 듣고서.

이내.

그는 자신의 캡슐로 향했다.

“……응?”

방형근은 자기 전용 자리를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와 캡슐 옆에 쓰레기통 이거 더러운 거 봐, 아후! 내가 병원 입원하기 전 그대로네? 나 이러면 캡슐 못 들어가는데. 막내들은 뭐 하는 거야?”

그는 고개를 슥슥 두리번거리며 주변에 1군 로스터들이 있는지 살폈다.

주변에 온통 자신과 같은 2군, 혹은 더 낮은 3군 연습생들 밖에 없는 것을 확인한 방형근은 기세등등하게 소리쳤다.

“야, 거기 3군!”

그는 옆을 지나가는 한 3군 연습생을 손짓해 불렀다.

“…네?”

올해 23살의 3군 연습생은 표정을 찡그렸다.

4살이나 어린 방형근의 손 까닥임 한 번으로 쪼르르 불려가야 하는 것이 썩 기분 좋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형근은 원래 이런 놈이다.

“마, 선배가 불렀으면 빠딱빠딱 와야지 네? 는 무슨.”

“…무슨 일이신데요?”

“나 몸 풀고 올 동안 여기 캡슐 옆에 쓰레기통들 좀 비워 놔.”

방형근은 발로 쓰레기통을 툭 찼다.

쓰레기통이 살짝 비스듬하게 기울며 한번 빙글 회전했다.

“…….”

3군 연습생은 똥 씹은 표정으로 쓰레기통을 들었다.

그동안 방형근은 화장실에 가서 세수와 양치를 하고는 마당으로 나가 몸을 풀었다.

“게임을 장시간 하려면 또 몸이 풀려야 하지.”

가상현실 게임이니만큼, 현실에서의 몸놀림도 가상현실 속 몸놀림에 큰 영향을 끼친다.

프로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현실의 몸 관리도 철저하게 해 놔야 한다.

한동안 운동을 한 방형근은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난 뒤 자신의 캡슐로 돌아왔다.

……한데?

“…아, 이게 뭐야 진짜.”

방형근은 자기 캡슐 옆의 쓰레기통을 보고 인상을 팍 찌푸렸다.

쓰레기통 바닥에는 딱딱하게 굳은 껌과 노오란 주스 자국 등이 그대로 달라붙어 있었다.

“요즘 3군 애들 왜 이렇게 개념 없냐. 쓰레기통 비우고 나서 치약으로 물세척도 안 해?”

방형근은 아까 쓰레기통 청소를 시켰던 3군 연습생을 찾았지만, 이미 그는 사라진 지 오래다.

주변에는 이미 연습에 들어가 있는 3군 연습생, 혹은 자신과 동급의 2군 프로들 뿐.

“하, 나 미치겠네. 내 짬밥에 내 쓰레기통 내가 닦아야 돼?”

방형근은 자기 쓰레기통을 집어 들며 투덜거렸다.

“내가 어? 여기서나 2군이지 진짜. 어디 다른 도내 중소 프로팀 가면 바로 1군 주전에 에이스인데…어휴 진짜! 여기서 꼴랑 월급 100만원 받아 가면서 뭐 하는 건지 진짜! 3군 놈들 오늘 다 집합이다 진짜.”

그러자 옆 캡슐에서 막 나오던 몇몇 2군 멤버들이 헛웃음을 지었다.

어린 나이에 오만이 아주 하늘을 찌른다.

19살이지만 꼰대의 떡잎이 벌써부터 남다른 인물이었다.

바로 그때.

끼걱-

연습실의 문이 열렸다.

한 남자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

연습실에 있던 모든 이들이 벌떡 일어났다.

2군, 3군 가릴 것 없이 모든 이들이 하던 것을 멈추고 문을 돌아본다.

“…….”

심지어 1군 로스터들까지 얼어붙은 채 말이 없다.

마동왕!

하얀 마스크에 음성변조기를 달고 나타난 건장한 체격의 사내. 그가 등장하자 연습실이 정적에 잠겼다.

하긴 당연한 일이다.

모두들 똑똑히 지켜봤었기 때문이다.

1군 로스터들 중에서도 최강의 에이스이자 ‘탑4’라 불리는 임요셉 군단이 이 한 명에게 박살나는 것을!

그것도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로 처참하게 말이다.

“…….”

정적은 계속된다. 그 누구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뱀 앞에 놓인 작은 생쥐들처럼.

바로 그때.

“야.”

혼자서만 분위기 파악을 전혀 하지 못한 이가 한 명.

방형근.

약 4주 동안 연습실에 나오지 않았던 2군 멤버.

녀석은 마동왕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우리 유니폼 입었네? 너 신입이냐?”

그 순간.

‘헉!’

연습실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들이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심지어 소화기 옆 화분에 심어져 있는 산세베리아도 놀라서 잎사귀를 파르르 떨 정도.

하지만.

그런 연습실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방형근은 마동왕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그것은 껌과 주스가 말라붙어 있는 쓰레기통이었다.

방형근은 오만한 기색으로 말했다.

“닦아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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