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87화 (87/1,000)
  • 87화 어둠 대왕 (4)

    거무튀튀한 외형의 작은 목걸이.

    혼자서 모든 빛을 다 빨아들이고 있었기에 캄캄한 가운데에서도 유독 눈에 잘 띄었다.

    확실히 그것은 어둠보다 어둡다.

    마치 어둠 대왕의 눈동자를 그대로 빼다 박은 것처럼.

    그리고.

    그 목걸이를 보는 순간.

    “……!”

    나는 두 눈을 찢어질 정도로 크게 떠야만 했다.

    …미친!

    이 아이템을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조디악 그 자식…이걸 여기서 얻었던 거였나.”

    나는 어둠보다도 더욱 어두운 이 목걸이를 집어 들었다.

    -<솔로몬의 목걸이> 목걸이 / ?

    어둠 대왕 솔로몬이 최후의 결전 직전에 잠시 빼 놓았던 목걸이다.

    만약 솔로몬이 이것을 목에 걸고 있었다면 당신은 절대로 그를 쓰러트리지 못했을 것이다.

    -어둠 속성 저항력 +10% (특수)

    -? (특수)

    떴다.

    나와 버렸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목걸이를 만졌다.

    ‘?’ 등급.

    이것은 등급 외 아이템이라고 부른다.

    정확히 말하자면 감정을 하기 전까지는 등급이 표시되지 않는 아이템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이 아이템의 등급과 효과를 알고 있었다.

    “솔로몬 왕이 드랍한다던 히든 피스……. 아니, 솔로몬 왕 자체가 히든 NPC인 걸로 알고 있었는데……. 설마 그 정체가 어둠 대왕이었다니.”

    나는 놀라움과 황당함, 그리고 격한 흥분을 담아 중얼거렸다.

    ‘솔로몬 왕(King Solomon)’

    그는 ‘지혜의 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현명한 군주였다.

    한번은 두 명의 여자가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자신이 진짜 어머니라며 다투는 일이 있었다.

    솔로몬 왕은 이때 칼로 아이를 둘로 나누라는 판결을 내렸고, 울부짖으며 ‘자신이 가짜 어미이니 판결을 멈춰 달라’고 하는 여인에게 아이를 돌려주었다.

    이렇게 그는 특유의 지성과 지혜로움으로 나라를 태평성대로 이끌었다.

    하지만.

    그런 솔로몬 왕에게도 고민거리는 있었다.

    그는 당시 나라에 들끓던 악마들을 골칫덩이로 여겼다고 한다.

    이에.

    솔로몬 왕은 특유의 지혜와 용맹함으로 칼을 빼들었고, 나라를 좀먹는 72마리의 악마들을 붙잡아 놋쇠 항아리에 봉인해 버렸다고 전해진다.

    이후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나라를 영원토록 번영케 하며 태평성대를 누렸다고 하더라.

    .

    .

    “…라고 알고 있었는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래도, 솔로몬 왕은 이후 강력한 악마의 미움을 사 강제로 타락하게 된 듯하다.

    이 세계관 속 인간 영웅 중 하나의 비참한 몰락을 확인하니 마음이 찜찜했다.

    <이면세계에 잠겨 있던 수억 개의 눈이 ‘고인 물’ 님을 향합니다>

    나는 어둠 대왕을 쓰러트리고 들었던 알림음들 중 하나를 떠올렸다.

    ‘그렇군. 그 알림음은 이것을 뜻한 거였나.’

    어둠 대왕의 숨겨진 설정을 떠올리면 이해가 되는 알림음이다.

    전에는 왜 저런 메시지가 뜨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역시 첫 클리어를 해야 이 세계관에 대한 이해도가 더욱 더 깊어지는 것 같다.

    “그럼 호칭으로 인한 특전도 이해가 되는군.”

    나는 상태창을 켜 보았다.

    -이어진

    LV: 39

    호칭: 바실리스크 사냥꾼(특전: 맹독) / 메두사 킬러(특전: 마나 번) / 샌드웜 땅꾼(특전: 가뭄) / 어둠 대왕 시해자(특전: 선택)

    HP: 390/390

    새로운 호칭 ‘어둠 대왕 시해자’

    특전은 ‘선택’이다.

    나도 잘 모르는 특성이었지만, 밑에 설명이 친절하게 나와 있었기에 이해하는 것에는 어렵지 않았다.

    ※선택: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언제나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상당히 좋은 특성이었다.

    ‘아마도 솔로몬 왕이 아이의 어머니를 찾아 준 고사에서 모티프를 따 온 게 아닐까 하는데…….’

    50%의 확률이라면 무조건 당첨, 이것은 앞으로 게임을 해 나갈 때 상당한 메리트가 된다.

    당장 서큐버스의 ‘양자택일’ 특성만 하더라도 50%의 확률로 마공과 물공이 나뉘지 않는가?

    이럴 때 나는 무조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흐름을 집도해갈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수없이 많이 펼쳐질 선택지들에도 도움이 된다.

    ‘도박 같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

    나는 씩 웃었다.

    나중에 게임 내에는 수많은 도박장이 생겨난다.

    이 특성은 그 때에 가서 정말 엄청난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음, 가령 바카라라거나…….’

    짤랑짤랑-

    벌써 인중에 돈 냄새가 달라붙는 것 같다.

    그때.

    -띠링!

    금고에서 목걸이를 꺼내자,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히든 퀘스트 ‘솔로몬 왕의 유언’을 발견하셨습니다!>

    이내, 나는 목걸이 밑에 있던 낡은 일지를 발견했다.

    그것은 어둠 대왕, 아니 솔로몬 왕이 이성을 상실하기 전 남겨 놓은 메시지였다.

    [나는 일찍이 지혜로운 왕으로 소문난 존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세계를 지배하는 일곱 악마 중 하나가 나를 끝없는 시험에 빠트렸다.]

    [나는 나의 덕망과 지혜를 믿고 맞서 싸웠으나 결국 이렇게 무릎을 꿇는다.]

    [아아, 나는 그렇다손 쳐도. 나를 믿고 이 땅의 번영을 함께 일궈 낸 백성들은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너무나도 두렵도다.]

    [이 메시지를 읽는 이여! 그대라면 이미 나의 덕망과 지혜, 용기와 함을 아득히 초월한 존재일 터, 부디 나의 원한을 풀어 주기를 바란다.]

    [나를 이렇게 만든 악마의 이름은 벨제ㅂ…….]

    .

    .

    응, [SKIP]

    나는 긴 지문 읽기를 생략해 버렸다.

    솔로몬 왕에게는 조금 미안한 일이지만…….

    “미안, 유서를 3줄 요약하지 않은 당신이 나빠.”

    요즘 사람들은 바쁘다. 3줄이 넘어가면 잘 읽지 않는단 말이다.

    하지만 뭐, 그래도 상관은 없다.

    히든 퀘스트의 내용은 일지, 혹은 아카식 레코드에 저장되어 언제든 다시 열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히든 퀘스트 ‘어둠 대왕의 회한(悔恨)’을 발견하셨습니다>

    <...처치 0/1>

    나는 이 히든 퀘스트를 곱게 접어 시스템 창 한곳에 밀어두었다.

    시간이 흘러, 이 세상이 큰 변화를 맞게 되었을 때.

    그때 이 목걸이는 다시 쓰이리라.

    “복수는 확실히 해 줄게요.”

    나는 어둠 대왕의 옥좌를 향해 굳게 다짐했다.

    유서는 길어서 안 읽었지만, 그의 억울함과 분노에는 충분히 공감이 간다.

    “이 아이템이 조디악의 손에 들어가지 않아서 다행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옥좌를 내려왔다.

    이런 유익한 비밀 설정과 히든 퀘스트, 아이템이 미친 사이코의 손에 들어갔더라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어디…녹화가 잘 됐겠지?”

    나는 지금까지 찍었던 모든 영상들을 확인했다.

    ●REC

    모든 동영상이 잘 찍혔다.

    나는 파일을 백업해 저장한 뒤 녹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괜히 애먼 상태창을 켜 몸을 점검했다.

    -이어진

    LV: 39

    호칭: 바실리스크 사냥꾼(특전: 맹독) / 메두사 킬러(특전: 마나 번) / 샌드웜 땅꾼(특전: 가뭄) / 어둠 대왕 시해자(특전: 선택)

    HP: 390/390

    <아이템>

    -깎아내는 단말마 / 한손무기 / S / (능지처참)

    -혈액포식자의 링 / 반지 / A+ / (혈액포식자)

    -패륜아의 심장 / 갑옷 / A+ / (패륜아)

    -샌드웜의 가죽 / 망토 / A+ / (앙버팀)

    -피카레스크(Picaresque) 마스크 / 가면 / A+ / (연쇄살인 +4)

    -간쇼마루(岩漿丸)의 발가죽 / 신발 / A+/ (불걸음)(융합)

    -똬리를 튼 사념(巳念) / 반지 / A / (요르문간드 소환)

    -솔로몬의 목걸이 / 목걸이 / ? / (?)

    .

    .

    레벨이 39.

    독보적이다.

    현 공식 세계랭킹 1위의 레벨은 29.

    튜토리얼의 탑을 막 나왔을 때 나의 레벨이 32였고 랭킹 1위의 레벨이 25였으니…….

    지금은 그 격차가 더욱 더 벌어진 셈이다.

    …….

    그리고.

    이제 그 격차는 더욱 더 엄청나게 벌어질 것이다.

    감히 좁히려는 엄두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대격변을 빨리 일으켜야겠군.”

    나는 앞으로 4년 2개월 정도 남은 대규모 업데이트를 떠올렸다.

    대격변(大激變)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제 1차 대격변.

    그것은 이 세계의 모든 생태계 질서를 통째로 뒤집어 놓을 것이다.

    플레이어들도, NPC들도, 몬스터들도. 모든 것들의 질서가 뒤엉키겠지.

    그리고 그 세계에서, 솔로몬의 목걸이와 히든 퀘스트는 빛을 발한다.

    오로지 나만이 그 혼돈의 중심에서 패왕으로 군림하리라!

    3신기와 솔로몬의 목걸이의 케미라면 그 모든 것들도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좋아.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착수해야겠어. 준비는 미리미리 해둬서 나쁠 게 없으니…….”

    나는 이 땅에 불러올 대재앙, 대규모의 업데이트를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이것을 어느 타이밍에 터트려야 밸런스를 붕괴시키지 않는 동시에 나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지 잘 따져봐야 한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끼익-

    대왕의 제전 (2) 구역의 문이 열린다.

    “이봐! 무사한가!”

    드레이크의 목소리였다.

    …! 아차! 깜빡 잊고 있었다!

    이 방에 들어오기까지 많은 도움을 주었던 나의 파트너.

    내가 설명도 없이 서큐버스들의 하렘에 밀어 넣어서 많이 당황했겠지?

    나는 미안한 마음으로 고개를 돌렸다.

    …….

    한데?

    드레이크의 모습은 내가 지금까지 봐 왔던 것 중에 가장 쌩쌩해 보였다.

    반지르르한 얼굴, 흐트러진 옷매무새, 목과 볼에 난 저 키스마크는 뭐야?

    내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자, 드레이크는 당황스럽다는 듯 웃었다.

    “서큐버스라는 몬스터가 원래 그런가? 전투를 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아 보이던데……. 자꾸 키스를 하질 않나, 포옹을 해 오질 않나……. 그 와중에 내가 미남이라느니 뭐라느니 하면서 추파까지 던지더군. 물론 인공지능이 누구한테나 내뱉는 대사겠지만.”

    ……?

    뭐야. 나랑 싸울 때는 그런 거 없었는데?

    “그, 그럼. 내가 용자의 무덤에서 만났던 서큐버스도 그랬어…….”

    나를 향해 죽일 듯 칼을 휘두르던 서큐버스의 독살스러운 표정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요즘 인공지능은 상대방 얼굴을 인식해서 미의 점수도 측정한다던가?

    그에 따라 NPC나 몬스터의 대사나 행동이 달라진다고도 들었던 것 같다.

    아무나 만나지 않는다는 거냐!

    무슨 소개팅 어플도 아니고…….

    한편.

    드레이크는 고개를 갸웃한다.

    “음? 어진, 왜 눈을 그렇게 뜨나? 몸은 또 왜 그렇게 부들부들 떨고?”

    “……아무것도 아냐.”

    나는 고개를 돌렸다.

    한데?

    드레이크에게서 고개를 돌린 나는 두 눈을 크게 떠야 했다.

    요르문간드!

    드레이크에게 딸려 보냈던 내 소환수.

    마법 방어력이 뛰어나니 서큐버스들을 처치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소환했던 녀석이다.

    그런데…이 녀석의 외형이 뭔가 좀 이상하다?

    “오잉? 몬스터의 상태가…?”

    나는 휘둥그레진 표정으로 눈앞에 있는 뱀을 쳐다보았다.

    이 녀석, 덩치가 훌쩍 커지고 비늘도 두터워졌다.

    머리에는 두 개의 뿔까지 돋아나 있었다.

    <쌍뿔칠흑> -등급: B+ / 특성: 백전노장, 과식, 독 면역, 마법면역

    -서식지: 거인국, 똬리를 튼 사념(巳念)

    -크기: 20m.

    -노오란 눈알, 두 개의 뿔을 보고 있자면 저도 모르게 홀려 버린다. 사악한 주술을 이용해 자기보다 강한 적에게 맞선다.

    몸을 촘촘히 덮고 있는 칠흑의 비늘은 모든 독, 마법 데미지를 흘려 버린다.

    ‘이 자식…진화했잖아?’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눈앞의 뱀을 바라보았다.

    쌍뿔칠흑. 이 괴상한 이름을 가진 몬스터는 마치 애완동물처럼 나에게 다가와 머리를 부비적거린다.

    드레이크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이 자식, 막판에 서큐버스 10마리를 그냥 삼켜 버리더군? 그러더니 갑자기 이런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이걸 진화라고 봐야 하는가?”

    10마리의 서큐버스는 사라지고 대신 이 뱀 녀석이 나에게 호감을 보인다라…….

    ‘음…기분이 조금 미묘하군.’

    확실히.

    몬스터는 경험치가 어느 정도 쌓이면 전혀 다른 모습의 상위 등급 몬스터로 진화하곤 한다.

    아주, 굉장히, 드물고, 희박한 확률로.

    15년 동안 겜창 생활을 해 온 나조차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니 말 다한 셈이다.

    ‘하지만 그게 소환수에게도 적용되는 줄은 몰랐는데?’

    나는 15년 전의 기억을 샅샅이 뒤졌지만 ‘소환사’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단서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이런 현상이 보편적인 것이었다면 분명 소환사라는 개념도 있었을 테니까.

    ‘아무래도 ‘백전노장’ 특성에 내가 모르는 비밀이 있는 것 같군.’

    백전노장.

    ‘그냥 경험치가 쌓이면 강해진다’ 정도로 알고 있었던 특성이다.

    하지만.

    지금 B급 몬스터 ‘요르문간드’가 B+급 몬스터 ‘쌍뿔칠흑’으로 진화한 것을 보니 이 특성을 조금 더 자세히 연구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나는 혹시 이것과 관련된 정보가 있나 찾아보기 위해 게임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로그인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가계정으로 접속해서 ‘백전노장’ 특성에 관한 정보글을 뒤져 봤지만…….

    “딱히 뭐 나오는 게 없네.”

    유의미한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하긴, 15년 전의 지식 수준이니 당연한가?

    …….

    내가 막 사이트를 닫으려는 순간.

    -띠링!

    갑작스럽게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TO. 마동왕]

    [FROM. 엄재영]

    “……뭐야?”

    이 가계정은 마동왕의 계정이다.

    엄재영은 프로팀 ‘국K-1’의 감독.

    그가 나에게 무슨 메시지를 보냈을까?

    나는 별 생각 없이 메시지를 클릭해 보았다.

    이내, 내용이 떴다.

    [엄재영: 프!!로!!데!!뷔!!전!! 날짜 잡혔드아아아아아아!!!!!!!!!!]

    읽는 것만으로도 시끄러운, 흥분과 환희에 가득 찬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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