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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85화 (85/1,000)
  • 85화 어둠 대왕 (2)

    [카학!?]

    어둠 대왕의 허리가 확 꺾였다.

    동시에 놈의 입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후두둑- 후둑-

    희고 창백한 턱선을 타고 흘러내리는 검은 혈액.

    피의 색깔은 마치 심연에서 분출되는 것 마냥 시커멓다.

    치이이익-

    어둠 대왕이 흘린 피가 돌바닥에 떨어지자, 바닥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녹아내린다.

    “……먹혔네.”

    나는 어둠 대왕의 파리해진 안색을 똑바로 마주보았다.

    나의 패시브 특성 중 하나인 ‘맹독’

    바실리스크를 죽이고 빼앗은 특성이다.

    일반 독 데미지보다 4배 이상 강하고 4배 이상 오래 지속된다.

    거기에 맹독 특성은 피를 통해 체내에 직접 들어가게 되었을 시 데미지가 또 4배 늘어나는 특징이 있다.

    어둠 대왕은 나를 향해 혈액포식자를 썼고 그 결과, 내 피가 직접 어둠 대왕의 몸속으로 들어가 그를 중독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펄떡- 펄떡- 펄떡-

    맹독에 절여진 심장이 한번 펌핑될 때마다 몸 전체에 검은 피가 돈다.

    지독한 도트 데미지가 어둠 대왕의 몸 내부를 맹렬하게 갉아먹고 있었다.

    뿌득- 우득- 꿈틀-

    어둠 대왕의 창백한 피부 위에 점점 검은 핏줄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시커먼 나무뿌리 같은 핏줄이 곧 그의 볼과 눈 밑을 완전히 뒤덮었다.

    “어디 보자, 데미지가 얼마나 들어가려나?”

    나는 생각했다.

    일반 독 데미지는 초당 최대 HP의 0.0025%를 깎는다.

    그리고 맹독은 이의 4배인 0.01%의 초당 데미지를 준다.

    또한, 나는 맹독을 바닥에 뿌려 2차 접촉을 유도했다거나 피부 등에 뿌린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체내에 직접 집어넣었다.

    이 경우 데미지는 4배로 뛰어서 0.04%가 된다.

    ‘…거기에 내가 먹인 깎단의 도트 데미지까지 적용하면.’

    계산은 그리 어렵지 않다. 1초당 들어가는 데미지는 최대 HP의 0.05%.

    어둠 대왕의 HP가 5,450,500, 약 오백 오십만 가량인 것을 감안하면…초당 데미지는 약 2,700가량인 셈이다.

    ……즉,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도중에도 꼬박꼬박 데미지가 박혀들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약 30분. 그 안에 승부가 나겠군.’

    어둠 대왕의 잔여 HP를 계산해 보면 얼추 견적이 나온다.

    앞으로 30분만 죽지 않고 잘 버틴다면 나의 승리.

    ……그러나.

    어둠 대왕은 30분간 가만히 앉아서 당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크아아아악!]

    놈의 머리에 난 뿔이 족히 두 배 이상 커졌다.

    우드득- 우드득- 우드득-

    어둠 대왕의 전신이 부풀어 올랐다.

    유약한 미공자 타입이었던 그의 외모는 순식간에 우락부락한 광전사의 모습으로 변했다.

    하기야, 저 모습이 어둠 대왕이라는 위명에 부합하는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천마전쟁의 최전선에서 수많은 천사들의 심장을 노획했던 존재이니.

    콰쾅!

    놈은 손톱을 들어 휘둘렀다.

    쩌저저저적!

    돌 바닥이 반으로 갈라지며 깊은 크레바스가 생겨난다.

    ‘땅 가르기’

    극도로 높은 물리공격력을 가진 이들만이 이 ‘특성’을 평타로 사용한다. 아주 부러운 능력이었지만……지금의 나에게는 언감생심.

    호다닥-

    나는 어둠 대왕이 날뛰는 것을 피해 요리조리 도망쳤다.

    차라라라락-

    박쥐들이 모여서 또다시 거대한 채찍 줄기들을 이룬다.

    그것들은 마치 단체 줄넘기의 밧줄마냥 나를 향해 휘둘러졌다.

    쾅! 콰콰쾅!

    돌기둥들이 썩은 두부처럼 허물어져 내린다. 주위의 모든 것들이 박살나고 갈가리 찢겨졌다.

    “졸지에 아케이드 게임이 됐네.”

    나는 검은 채찍들을 피해 폴짝폴짝 뛰었다.

    “꼬마야 꼬마야 줄을 넘어라…….”

    요즘 애들은 이 노래를 알려나? 어렸을 때 많이 했던 줄넘기 노래인데…….

    [캬아아악!]

    어둠 대왕은 더 많은 채찍들을 만들었다.

    딱히 패턴도 없이 몰아치는 채찍 웨이브.

    온 세상이 검은 격자로 뒤덮여 간다.

    퍼퍼퍼퍽!

    역겨운 살점, 내장 조각들이 사방팔방으로 튀었다.

    싸구려 독 데미지라지만 중첩되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데미지다.

    “꼬마야 꼬마야 담배를 빨아라…….”

    나는 할로윈 구름과자를 훅 빨며 박쥐들에게서 벗어났다.

    담배의 끝이 바싹 가까워진다. HP는 다시 풀(Full) 상태로 돌아왔다.

    “자, 그럼 이제 슬슬 마무리를 지어 볼까?”

    나는 신고 있는 신발의 ‘불걸음’ 특성을 발현했다.

    쿠르륵-

    내가 디딘 땅에서 발자국 모양의 불꽃이 피어오른다.

    나는 그 상태로 재빨리 뒤로 이동했다.

    타닥- 타닥- 타닥-

    발자국을 새로 남길 때마다, 그 전에 만들어 놓은 족적들이 뜨겁게 불타며 빛을 내뿜었다.

    이내 그것들은 시뻘겋게 녹아내리며 용암의 길을 만든다.

    꾸르르륵- 끄륵! 푸드득!

    달려들던 박쥐들이 뭉텅이로 죽어 나간다. 털과 가죽이 타며 지글지글 풍겨오는 냄새.

    그러자.

    촤악-

    또다시 어둠 대왕의 손가락이 넓게 퍼졌다.

    “인공지능은 어쩔 수 없다니깐.”

    나는 픽 웃고 말았다.

    어둠 대왕, 그는 한계까지 내려간 HP에 위기의식을 느꼈는지 또 흡혈을 하려 하고 있었다.

    ‘혈액포식자’

    모두를 공포에 떨게 만든 그 특성이 또다시 발현되었다.

    …….

    그러나.

    이미 혈액포식자는 완벽하게 봉인된 특성.

    최대 HP가 극도로 낮은 나에게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

    쭈욱- 쭈욱- 쭈욱- 쭈욱-

    내 몸에 난 상처들이 벌어지며 혈액이 허공으로 뽑혀 올라간다. 그것은 검붉은 실처럼 길게 늘어져 어둠 대왕의 다섯 손가락으로 향했다.

    그러나 닳는 HP는 고작 1초당 1에 불과하다. 모기가 빠는 피보다도 적은 수준.

    ……한데?

    씨익-

    어둠 대왕은 나를 보며 미소 짓는다.

    그 순간.

    ‘……!’

    나는 미증유의 불길함을 느꼈다.

    뭐지? 뭘까? 어디서 오는 불안감일까 이것은?

    고민해 보았지만 딱히 변수는 없다. 상황은 이미 내가 완벽하게 틀어쥐고 있었다.

    ‘인공지능이 꼼수를 쓸 리는 없으니…….’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어둠 대왕을 노려본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은 이내 잘못된 것임이 드러났다.

    쫘악-

    어둠 대왕이 혈액포식자 특성을 쓰는 동시에, 다른 손으로 또 다른 특성을 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콰-콰콰콰콰-

    박쥐 소환 특성이 또다시 발동되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박쥐들이 튀어나와 검은 소용돌이를 만든다.

    그것은 이내 커다란 손의 형상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특성을 동시에 두 개 쓴다고!?’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분명 어둠 대왕은 혈액포식을 쓰는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못할 텐데!?

    하지만, 분명히 보인다.

    어둠대왕의 공격기술 중 가장 강력한 한방기술이 만들어지고 있다.

    검은 손! 그것은 이내 나를 향해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어둠 대왕의 살인적인 물리공격력! 그리고 그것의 500%가 발휘되는 이 최강의 필살기!

    “……젠장! 첫 공략이라서 뭐가 다른 건가!?”

    예정된 대사가 아니라 다른 대사가 튀어나올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

    어둠 대왕은 분명히 전에 없던 공격 패턴을 선보이고 있다.

    아무래도 첫 클리어 난이도와 그 이후의 클리어 난이도 간에 차등이 있는 모양.

    어둠 대왕은 아무에게도 공략된 적 없을 때까지만 해도 이성이 조금은 남아 있었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에게 패배를 경험한 이후부터는 이성이 아예 사라지고 그저 피에 미쳐 날뛸 뿐인 괴물이 되어 버렸다.

    ……뭐 이런 종류의 ‘숨겨진 설정’일까?

    “…….”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 가다간 내 메타에 중대한 약점이 발생한다.

    샌드웜의 망토가 ‘앙버팀’ 특성으로 나를 지켜 주고 있지만...그것은 어디까지나 풀 HP 상태에서만 발동 가능한 것.

    지금처럼 1초당 1의 HP가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이라면 ‘앙버팀’ 특성은 발동되지 않는다.

    나는 힐끗 눈을 돌려 내 상태창을 바라보았다.

    -이어진

    LV: 37

    HP: 370/370

    -이어진

    LV: 37

    HP: 369/370

    -이어진

    LV: 37

    HP: 370/370

    -이어진

    LV: 37

    HP: 369/370

    .

    .

    .

    .

    .

    나의 HP는 풀피와 –1데미지를 왔다갔다하고 있다.

    그것은 내가 지금 할로윈 구름과자를 미친 듯이 빨고 있기 때문이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고작 1의 HP를 회복하기 위해 구름과자를 먹는 것은 너무나도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1의 HP가 너무나도 중요했다.

    모기에만 물려도 닳는 HP 1.

    그것이 지금 내 생사를 통째로 좌지우지하고 있는 엄청난 수치가 된 것이다.

    이내.

    콰콰콰콰쾅!

    어둠 대왕이 만들어 낸 공격이 내 전신을 휩쓴다.

    나는 내 모든 신경을 총동원했다.

    지난 15년간 게임 폐인 생활을 하며 익힌 모든 숙련도!

    고인물로서의 모든 게임 감각이 총동원되었다.

    박쥐떼가 만들어낸 검은 주먹이 내 몸에 닿기 직전.

    그러니까 수없이 많은 박쥐떼 중 제일 처음 녀석이 내 몸에 닿는 그 순간!

    ‘후욱!’

    나는 온 힘을 다해 담배를 빨아들였다.

    치이이이이익-

    할로윈 구름과자가 눈 깜짝할 사이에 타들어 간다.

    하지만 나는 결코 들숨을 멈추지 않았다.

    동시에-

    퍼퍼퍼퍼퍼퍽-

    내 전신을 사납게 깎아가는 데미지!

    ‘……! ……! ……!’

    아득해지는 정신 속에서, 나는 샌드웜의 망토가 내 전신을 질기게 감싸는 것을 느꼈다.

    앙버팀 특성이 성공적으로 발현되었다!

    나는 정신줄을 높지 않으려 애쓰며, 구름과자를 미친 듯이 빨아댔다.

    한 개비, 두 개비, 세 개비, 네 개비, 다섯 개비, 여섯 개비, 일곱…….

    남아 있는 구름과자의 개수가 미친 듯이 줄어든다.

    그리고.

    돛대(Last ggachi)!

    나는 마지막 남은 구름과자를 재빨리 입에 물었다.

    꾸깃-

    빈 담뱃갑이 사납게 구겨진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꿈틀!

    나의 전신이 시커먼 핏줄로 뒤덮였다.

    꾸드득- 꾸드득- 우득!

    왼쪽 가슴에서 시작된 검은 멍은 이내 내 전신을 금속마냥 코팅했다.

    바실리스크의 심장!

    그것은 내 전신을 두들기는 충격에 반응해 사납게 날뛰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쾅!

    어둠 대왕이 500%의 힘을 담아 쏴 갈긴 한방기술.

    그것이 내 몸에서 반사되어 내뿜어졌다!

    ‘패륜아’ 특성!

    나보다 레벨이 낮은 적에게는 90%를, 나보다 레벨이 높은 적에게는 99%를 반사한다.

    어둠 대왕의 레벨은 나보다 한참 높다.

    총 495%의 데미지가 반사되어 나갔다.

    퍼퍼퍼퍼퍼펑!

    어둠 대왕은 두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밀려오는 거대한 데미지 폭풍을 마주했다.

    이윽고.

    번쩍-

    온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흑빛의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던전 내부는 지독한 암흑의 소용돌이에 잠겨 버렸다.

    완전히.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