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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82화 (82/1,000)
  • 82화 대왕의 제전 (1)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좀도둑 잭 오 랜턴.

    그는 으스스하게 타오르는 붉은 눈으로 자신의 깡마른 몸을 살핀다.

    동시에.

    -띠링!

    내 눈앞에 선택지가 떠올랐다.

    <‘좀도둑 잭 오 랜턴’이 대화의 여지를 표합니다>

    <전투를 계속하시겠습니까?>

    나는 눈앞에 선택지를 보고 잠시 고민했다.

    YES를 고르든 NO를 고르든,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어떻게 할까…….’

    양자택일은 언제나 고민스러운 일이다.

    만약 여기서 YES를 고른다면 잭 오 랜턴을 죽일 수 있다.

    조디악 때문에 HP가 상당히 깎인 잭 오 랜턴을 잡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놈이 드랍하게 될 아이템은 꽤나 좋은 것, 지금의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존재였다.

    …….

    하지만.

    “곧 상위호환 아이템이 등장하는데 굳이 쓸 필요는 없겠지.”

    그렇다.

    잭 오 랜턴이 드랍하는 아이템은 A등급으로 꽤나 좋은 편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꽤나’일 뿐이다.

    나에게는 더 좋은 아이템들을 얻을 기회가 많다. 그리고 그것들은 잭 오 랜턴을 살려 둬야 얻을 수 있다.

    ‘그래, 멀리 봐야지.’

    모두가 NO를 말할 때 나는 YES를 외쳐 왔지만……이번만은 NO다.

    내가 전투를 중단하자.

    츠츠츠츠-

    좀도둑 잭 오 랜턴의 HP바가 사라진다.

    몬스터에서 히든 NPC로 변해가는 과정이다.

    드레이크는 그것을 보며 감탄했다.

    “험담쟁이 카밀라 때도 그렇고, 히든 NPC들은 정말 교묘하게 숨겨져 있군.”

    “맞아. 맵의 구석에 숨어 있는 건 양반이지. 몬스터 탈을 뒤집어쓰고 있으면 정말 찾기 힘들어.”

    “그걸 찾아내는 너도 굉장하다.”

    나와 드레이크는 잠시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했다.

    이내.

    NPC화 된 좀도둑 잭 오 랜턴은 자신의 히스토리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는데?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 이봐, 내가 왜 여기 이 빌어먹을 지하 감옥에 갇혀 있는 줄 알아?]

    [정말 별 것 아닌 이유라고! 나는 원래 ‘낮으신 분’의 부하로 일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분의 물건을 아주 살짝 좀 훔쳤거든?]

    [그거야! 그 죄라고! 고작 그딴 것 때문에 그동안 개 같이 일해 줬던 부하를 팽해? 아니 내가 뭘 훔치면 얼마나 훔쳤다고! 겨우 요마안-큼 훔친 것 가지고 증말!]

    으스스한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게끔, 잭 오 랜턴은 상당한 수다쟁이였다.

    그는 무얼 훔쳤는지에 대해서는 끝끝내 말하지 않았지만 시종일관 별 것 아니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애초에 별명도 ‘좀도둑’이었으니 뭐…….

    이내, 그는 검붉은 낫을 야무지게 꼭 쥐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지금부터 나를 이곳에 가둔 놈에게 복수하러 갈 거야. 같이 갈래?]

    잭 오 랜턴은 기대감 어린 눈으로 나를 돌아본다.

    -띠링!

    <‘좀도둑 잭 오 랜턴’이 ‘낮으신 분’과의 싸움에 동참해달라고 합니다.>

    “NONONONONONONONONO!”

    더 들을 것도 없다.

    지금 내 레벨과 장비로 저 녀석의 싸움에 휘말리는 것은 미친 짓이다.

    나는 [SKIP] 버튼과 함께 거절 버튼을 연타했다.

    실수로라도 수락을 누를까봐 눈에 불을 켜고 거절을 눌렀다.

    그러자, 잭 오 랜턴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어쩔 수 없군. 그렇다면 나를 여기서 꺼내준 보답만 치르고 갈게.]

    이내.

    놈은 더러운 넝마를 뒤적여 품속에 있던 아이템을 꺼냈다.

    [Trick or Treat?]

    그는 내 앞에 세 개의 물컵을 엎어놓았다.

    그리고. 하나의 컵에 무언가를 담는 시늉을 한 뒤.

    사-사사사삭-

    세 개의 컵을 미칠 듯한 스피드로 뒤섞기 시작했다.

    “…….”

    나는 위치를 바꾸며 뒤섞이는 컵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중간좌우좌우좌우중간좌중간좌중간우중간좌우좌좌우중간좌좌중간중간우좌우…….

    “헉!? 놓쳤다!”

    눈썰미 좋은 드레이크조차도 중간부터는 컵의 배열을 놓쳐 버렸다.

    컵은 그 뒤로도 한 참이나 서로 뒤섞였다.

    [자, 골라 봐.]

    잭 오 랜턴은 내게 세 개의 컵을 내민다.

    나는 주저 없이 오른쪽 컵을 골랐다.

    ‘이건 패턴이 정해져 있지.’

    이미 컵 고르기에 대한 공략은 지겹게 봤다.

    아이템이 들어 있는 컵의 위치는 매번 달라지는데,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아이템이 든 컵은 항상 그림자의 귀퉁이가 깨져 있지.’

    일종의 창발적 플레이랄까? 이것은 버그라면 버그일 수 있을 것이다. 일반 사람의 눈썰미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것.

    나는 세 컵의 그림자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맨 오른쪽에 있는 컵의 그림자 귀퉁이가 아주 조금 깨져 있는 것이 보인다.

    마치 배추벌레가 한 입 앙 파먹은 것처럼 미약하게 패여 있는 그림자.

    턱-

    내가 오른쪽 컵을 짚자, 잭 오 랜턴은 박수를 쳤다.

    [축하해. 당첨이야.]

    잭 오 랜턴은 나머지 컵 두 개를 회수했다.

    저 회수되는 두 개의 컵 속에는 각각 이동속도 저하 디버프 스크롤, 잔여 HP의 절반을 깎아먹는 폭탄이 들었다.

    은인에게 이런 장난을 치다니, 이 잭 오 랜턴이라는 놈 아주 고약한 NPC다.

    뭐 아무튼.

    나는 정상적인 보상을 받게 되었다.

    이내. 드레이크와 나에게 아이템 하나씩이 떨어졌다.

    “……이건?”

    드레이크가 고개를 갸웃한다.

    -<할로윈 구름과자> / A

    할로윈의 마녀들이 피우곤 하던 담배.

    지독한 마약성분이 있는 잎사귀를 건조한 뒤 빻아서 만든 것이다.

    -흡입 시 1초에 100의 HP 회복 (특수)

    -총 60분간 사용 가능 (특수)

    구름과자 한 갑씩이 나와 드레이크에게 주어졌다.

    빨간 상자에 붙어 있는 호박 스티커. 손으로 집어 드니 보라색 기운이 넘실거린다.

    달그락- 달그락-

    갑을 흔드니 안에 들어 있는 스무 개비의 궐련이 소리를 냈다.

    드레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입에 물고 빨면 되는 포션인 셈인가? 꽤나 효과가 좋군.”

    궁수만큼 양 손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 직업은 없다.

    화살을 전통에서 뽑아서 시위에 걸고 당겨서 겨누고 쏘고.

    계속해서 상대방의 위치를 파악하고 발을 놀려 거리를 벌리고…….

    더군다나 드레이크처럼 근접전도 불사하는 타입은 정말 손이 쉴래야 쉴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인벤토리나 허리춤에 찬 포션 병을 들고 뚜껑을 열어 입가로 가져가는 것은 정말로 번거로운 일이다.

    하지만.

    이 아이템이 있다면 그런 번거로운 과정들이 사라진다.

    그냥 궐련처럼 입에 물고 쭉 빨면 되니 손이 갈 이유도 없다.

    어차피 제한시간이야 빠는 시간들의 총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 입에 물고 있기만 하면 시간도 닳지 않는다.

    나처럼 최대 HP가 적은 이는(총 370임) 이것을 두세 번만 빨아도 금세 풀 HP 상태가 될 것이다.

    슥-

    나는 구름과자 20개비가 든 담뱃갑을 품속에 갈무리했다.

    ‘잭 오 랜턴을 죽였다면 이것을 영구적으로 쓸 수 있었을 텐데……. 약간 아쉽네.’

    잭 오 랜턴은 사망 시 이 할로윈의 구름과자를 떨군다.

    그렇게 습득한 구름과자에는 시간제한이 없다.

    반영구적 소모품인 셈이다.

    ‘하지만 이걸로 만족해야지. 일단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HP를 항상 최고 상태로 유지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아이템 중에는 할로윈 구름과자보다 좋은 것들이 많다.

    그리고 나는 그 상위호환 아이템 중 하나를 바로 다음 스테이지에서 구할 것이다.

    악의 고성의 최종 보스가 기다리고 있는 보스방!

    그것이 이제 바로 코앞이다.

    잭 오 랜턴은 내게 말했다.

    [너희들은 이 성의 주인을 만나러 온 것이지? 내가 문을 열어 줄 수 있어.]

    말을 마친 그는 대낫을 휘둘러 하수도 저편을 향해 내리그었다.

    쩌저적-

    벽과 하수도가 찢겨지며, 시커먼 균열이 만들어진다.

    이내.

    저 깊은 곳의 보스방으로 통하는 직통 백도어가 생겨났다.

    쿠르르륵-

    시커먼 불꽃이 타오르며 문의 형상을 만들었다.

    그것은 어딘가 깊은 곳으로 통하는 구멍.

    마치 앞에 선 자들을 끌어들이려 유혹하는 것처럼 깊고 달콤하게 타오르는 어둠.

    보스방 백도어.

    그것이 드디어 현실로 구현되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길. Bon voyage!]

    잭 오 랜턴은 우리가 갈 곳의 반대편으로 걸어가더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

    나는 턱을 한번 쓰다듬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샌드웜, 바실리스크에 이은 세 번째 A+급 몬스터.

    하지만 지금부터 만나러 갈 녀석은 앞의 두 존재보다도 더욱 더 강하고 무서운 놈이다.

    나와 드레이크의 시선이 마주친다.

    “……이렇게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게 낯설군.”

    “하긴. 그동안의 A+급 몬스터들은 전부 난데없이 튀어나왔으니까.”

    우리는 눈앞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어둠을 바라보았다.

    <악(惡)의 고성 - 심층부 ‘대왕의 제전’> -등급: A+

    저 포탈 안에 마지막 3신기를 드랍하는 보스 몬스터가 있다.

    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원래대로였다면 저 방의 보스를 최초로 살해하는 이는 조디악 번디베일.

    하지만.

    그는 나의 손에 의해 죽었다.

    조디악의 수중에 들어가 수많은 이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그 ‘히든 피스’는 이제 내 손에 들어올 것이다.

    이제 역사가 바뀐다.

    앞으로 등장할 단 하나의 아이템으로 인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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