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81화 (81/1,000)
  • 81화 깊은 감옥의 죄수 (4)

    좀도둑 잭 오 랜턴.

    놈은 A급 몬스터답게 불가살(不可殺)의 회복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그로기 상태라고 해도 약간의 짬만 생긴다면 얼마든지 운신이 가능할 정도로 HP를 회복해 낸다.

    “……푸스스스. 이런.”

    조디악의 표정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팟-

    놈은 잽싸게 몸을 굴려 잭 오 랜턴의 사정권에서 벗어났다.

    걸레짝이 된 발바닥으로도 저렇게 멀리 도약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난놈은 난놈이다.

    “…….”

    나와 드레이크 역시 섣불리 조디악을 추격하지 못했다.

    잭 오 랜턴의 눈은 조디악을 향하고 있었지만, 놈이 들고 있는 대낫은 우리를 향해 겨눠져 있기 때문이다.

    ‘잭 오 랜턴은 확실히 까다로운 몬스터이지.’

    나는 눈앞에 있는 호박 귀신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놈의 특성 중 하나인 ‘할로윈’은 허공에 1cm쯤 떠서 움직일 수 있게 해 주는 것.

    따라서 놈에게 들어가는 지진 등 땅 타입 공격기술의 효과는 50%로 반감된다.

    마동왕 같은 타입에게는 극악의 천적인 셈이다.

    ‘다행이네, 신발 특성을 바꿔서.’

    나는 발로 바닥을 한번 구르며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진’ 특성이었던 내 신발은 ‘불걸음’ 특성으로 바뀌어 있다.

    이는 잭 오 랜턴에게도 충분한 데미지를 줄 수 있는 특성. 고인물 메타일 때는 저 몬스터를 상대로 별 어려움이 없다.

    ‘문제는 조디악 저놈인데…….’

    잭 오 랜턴을 피해 조디악을 죽이려면 눈치껏 움직여야 한다.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괜히 놈 좋은 꼴만 보게 할 수도 있으니까.

    3파전.

    기묘한 정적이 독방 안에 흐른다.

    “푸스스스스스-”

    정적을 먼저 깬 쪽은 조디악이었다.

    뿌직! 뿌지직!

    이내, 놈의 팔다리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쿨트로 도마뱀의 미늘갑옷.

    이 갑옷의 고유 특성인 ‘고속재생’은 막대한 HP를 소모하여 잘려 나간 신체를 원상복구 시키는 스킬이다.

    조디악은 눈 깜짝할 사이에 팔과 다리를 재생했다.

    그리고는 뱀 같은 눈으로 나와 드레이크를 살핀다.

    그는 미국 중서부 지역의 사투리로 불쾌한 의사를 표현했다.

    “……너희들. 좀 귀찮네.”

    이내.

    조디악은 고개를 들어 저 위 하수도를 바라보았다.

    “어이!”

    그가 소리쳐 부른 사람은 유다희였다.

    “……에? 나?”

    유다희는 화들짝 놀라며 자신을 가리켰다.

    조디악은 그런 유다희를 쳐다보며 씩 웃는다.

    “우리 손을 잡는 게 어때?”

    파티 신청.

    이내, 유다희의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오른다.

    -띠링!

    <조디악 번디베일 님이 파티 요청을 하셨습니다>

    <수락 / 거절>

    “흐음?”

    유다희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조디악이 말했다.

    “네 눈에 보이는 증오심을 읽었어, 친구. 우리는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거야.”

    조디악이 말하자, 유다희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어차피 잭 오 랜턴은 중립.

    저 증오스러운 고인물과는 한 배를 탈 수 없다.

    언제고 틈을 노려 암살할 계획이었는데 좀처럼 그 틈이 오지 않아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참.

    그런 마당에 조디악이라는 쓸 만한 몸빵이 하나 등장한 것이다.

    ‘조디악이라고 했나? 저놈이 풀 HP 상태라면 어떻게 비벼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유다희는 생각했다. 상황이 그렇게 나쁘진 않다고.

    바로 그때.

    “어이, 무슨 생각 하는지는 대충 알 것 같은데……. 관두는 게 좋을걸?”

    유다희를 움찔하게 하는 목소리.

    바로 내 목소리다.

    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유다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놈은 미친놈이야. 붙어먹어서 좋을 게 없다고.”

    경고했다. 나는 분명히 경고했다고.

    이건 순수한 선의에서 하는 말이다.

    유다희, 그녀와는 과거의 인연으로 얽혀 있는 사이.

    미운 정도 정 아닌가?

    …….

    하지만.

    내 말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킨 듯싶다.

    울컥!

    유다희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지금까지 저 빌어먹을 알몸 변태 놈에게 죽은 게 몇 번인가!

    삥 뜯긴 금액은 또 얼마인가!

    잠재 피해액까지 따지면 일일이 추산할 수도 없다!

    유다희는 손에 쥔 도끼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이것만 있으면.’

    여차하면 믿는 구석도 있다.

    ‘좋아! 이참에 복수다!’

    그녀는 냅다 눈앞에 뜬 파티 수락 버튼을 눌러 버렸다.

    “……오우야.”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드레이크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이봐 어진. 괜찮은 건가? 저 여자 꽤나 고렙 같던데……. 적으로 돌리면 성가시지 않겠나?”

    조디악과 유다희가 손을 잡았다.

    빌런과 빌런. 나쁜 놈년 연합이다.

    …….

    그러나.

    유다희의 기세등등함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이 변태야! 니가 더 미친놈 같거든!? 지금부터 복수를…헉!?”

    그녀는 나를 향해 바락바락 대들다가 멈칫한다.

    그리고.

    “커헉!?”

    입에서 핏물을 토해 냈다.

    쿵-

    그녀는 하수도에서 굴러 떨어져 독방의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어, 어째서?”

    유다희는 급속도로 줄어들어가는 자신의 HP바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턱-

    그녀의 눈앞으로 발 하나가 다가온다.

    조디악 번디베일!

    그는 유다희를 내려다보며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푸스스스. 고마워, 파트너.”

    조디악은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 하나를 들어 보인다.

    -<와두두 여왕의 눈알> 목걸이 / A

    와두두는 집단의식이 뚜렷한 곤충이다. 그들은 동료가 받은 고통을 기꺼이 나누어 짊어진다. 하물며 여왕의 고통임에야 두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최대 HP +50%

    -재생력 +50%

    -특성 ‘갹출’ 사용 가능(특수)

    특성 ‘갹출(醵出)’

    자신이 입은 데미지를 파티원에게 일정 부분 떠넘기는 특성이다.

    파티원 중 한 사람이 100의 고통을 받았다면 다른 파티원 99명이서 1씩의 데미지를 나눠 입어줄 수 있다.

    ……문제는 이 고통 분담의 몫을 전적으로 목걸이의 주인이 정한다는 것이다.

    유다희가 조디악의 파티를 수락하는 순간.

    조디악은 자신이 입은 데미지의 99%를 그녀에게 떠넘겨 버린 것이다.

    “그러게 내가 뭐랬나.”

    나는 혀를 차며 유다희를 바라보았다.

    맨 처음 이 하수도에 왔을 때 보았던 것이 있다.

    다른 플레이어들의 시체 다섯 구.

    안 봐도 뻔한 일이다.

    조디악은 아마 정상적인 플레이어인 척 위장해 파티원들을 구했고 그들을 이곳까지 데려와서는 자신의 피 주머니로 사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희생자가 바로 유다희가 된 셈이다.

    조디악이 지금껏 입었던 HP피해의 대부분을 가져간 유다희, 그녀는 순식간에 모든 HP를 소진한 채 죽어 간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드레이크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괜찮은 건가? 놈이 HP를 상당히 회복한 것 같은데.”

    하지만, 나는 태연하게 대꾸할 뿐이다.

    “걱정 마. 저 여자도 그리 만만한 여자가 아니거든.”

    “……?”

    드레이크는 고개를 갸웃한다.

    그리고.

    내 말은 곧바로 증명되었다.

    “……!?”

    HP가 대폭 회복된 조디악.

    하지만 놈은 전신이 뻣뻣하게 굳어가는 것에 당황했다.

    그러자.

    ‘호호호! 고맙긴, 내 뒤통수를 아무나 치는 건 줄 알아?’

    죽어 가던 유다희가 비웃음을 날렸다.

    그녀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손에 쥐고 있던 도끼를 놓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실망한 연대장의 배틀액스> 양손무기 / B

    나 연대장은 너희에게 실망했다. 전원 연병장으로 집합!

    -공격력 +800

    -최대 HP +10%

    -특성 ‘연대책임’ 사용 가능 (특수)

    유다희가 사용하는 도끼.

    붙어 있는 특성은 바로 ‘연대책임’이다.

    이 특성은 그다지 특별할 게 없다.

    자신을 제외한 아군의 공격력과 방어력을 올려 주는 대신, 자신이 사망했을 때 아군에게 상태이상 효과를 준다.

    들어가는 상태이상은 독, 마비, 수면, 착란, 화상, 동상 등 다양하다.

    그리고.

    이 별로 특별할 것 없는 특성이 지금의 상황에서는 기가 막힌 카운터 특성이 된 것이다!

    휘청-

    조디악은 하필이면 최악의 상태이상 ‘수면’에 걸려 버렸다.

    “……빌어먹을.”

    그는 이를 뿌득 갈았다.

    생기 없던 눈에 처음으로 핏발이 선다.

    창백한 얼굴이 분노로 인해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마음과는 별개로 몸은 솔직했다.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고 몸이 쳐진다.

    정신은 말짱했지만 육체는 잠들고 있었다.

    스르르 무너지는 몸.

    툭-

    손에 들려 있던, 반쯤 찢어진 귀환 스크롤이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그것을 보며 고소를 머금었다.

    유다희가 하수도를 걸어오는 내내 파티를 해 달라고 징징거렸던 이유가 밝혀졌다.

    ‘나에게 연대책임을 뒤집어씌울 속셈이었겠지.’

    나는 그녀의 속셈을 다 아는 상태였기에 줄곧 거절해 왔지만, 조디악은 유다희를 이용할 생각에 그녀의 시커먼 속마음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빌런 VS 빌런

    조디악과 유다희의 승부는 그렇게 어이없는 무승부로 끝났다.

    “잘 가.”

    나는 허물어지는 조디악을 향해 윙크를 날렸다.

    그리고.

    댕겅-

    결국 축 늘어져 버린 조디악의 목, 그것을 잭 오 랜턴의 대낫이 단숨에 잘라 버린다.

    텅- 텅- 텅-

    조디악의 잘려 나간 머리통은 바닥을 세 번이나 튕기며 굴러 나갔다.

    [Trick or Treat?]

    잭 오 랜턴이 조디악의 머리칼을 잡고 들어올렸다.

    한 손에는 대낫, 다른 한 손에는 플레이어의 머리통.

    참 괴기스러운 광경이다.

    “이제 어쩌지?”

    드레이크가 내게 물었다.

    나는 팔짱을 낀 채 턱짓했다.

    “화살을 딱 세 대만 더 박아 봐.”

    드레이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행동에 착수했다.

    퍼퍼퍽-

    화살 세 대가 날아 잭 오 랜턴의 호박머리에 박힌다.

    붉은 바닥을 드러낸 잭 오 랜턴의 HP바가 또 한 번 출렁거렸다.

    그러자.

    [……뭐야?]

    갑자기, 잭 오 랜턴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놈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한다.

    “으음? 몬스터의 상태가…?”

    드레이크가 놀라서 눈을 크게 뜨는 순간.

    -띠링!

    눈앞에 선택지가 떠올랐다.

    <‘좀도둑 잭 오 랜턴’이 대화의 여지를 표합니다>

    <전투를 계속하시겠습니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