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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80화 (80/1,000)
  • 80화 깊은 감옥의 죄수 (3)

    나는 냉정하게 판단했다.

    “내가 잡으려고 하는 건 잭 오 랜턴이 아니야.”

    조디악 번디베일.

    저놈은 지금 죽여야 한다.

    더 크기 전에. 지금 당장!

    저런 사이코가 힘을 얻게 되면 그 폐해는 게임 세상을 넘어 현실에까지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검은 씨앗은 미리 밟아 놓는 게 좋다. 하물며 떡잎까지 돋아난 지금에야!

    내가 뛰어내릴 준비를 하자, 드레이크가 내 옆으로 와서 섰다.

    “네가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은 처음 보는군.”

    그는 이번에도 묵묵히 나를 돕는다.

    다만.

    “나는 빠질래.”

    유다희, 그녀만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팔짱을 낀다.

    “내가 왜 네 ‘개인적인’ 원한에 휘말려야 하는지 모르겠네? 우리는 ‘파티’도 아닌데 말이야.”

    그녀는 날이 선 표정으로 나를 힐난한다.

    뭐,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그녀의 입장에서는 딱히 틀린 소리가 아니었기에, 나는 그냥 고개만 끄덕여 주기로 했다.

    “방해만 하지 마.”

    나는 그녀의 도끼를 힐끗 쳐다보고는 말했다.

    이내.

    펄쩍-

    나와 드레이크는 허공으로 뛰어내렸다.

    목표는 저 아래의 지하 감옥 독방.

    괴물 둘이 싸우고 있는 전쟁터의 중앙이다.

    *       *       *

    “푸스스스스! 거의 다 잡았네!”

    조디악은 손등에 튀어나온 다섯 자루의 칼날을 혀로 핥았다.

    촤악!

    잭 오 랜턴의 대낫이 허공을 쓸며 지나갔다.

    하지만 조디악은 그것을 피해 몸을 낮췄고 이내 대낫이 지나가고 난 빈 공간에 또다시 손톱을 날렸다.

    “끝이다!”

    놈이 막 잭 오 랜턴의 몸에 손톱을 박아 넣으려는 순간!

    퍼억!

    어깨에 묵직한 충격이 가해진다.

    “……?”

    조디악은 옆으로 나가 떨어졌다. 그리고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게 되었다.

    고개를 돌리자, 어깨에 박힌 화살 두 자루가 보인다.

    “여어. 방해해서 미안하…….”

    드레이크가 그런 조디악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는 사과를 끝까지 할 수도 없었다.

    후욱-

    조디악이 갑자기 엄청난 속도로 뛰어든 것이다.

    까앙-

    눈 깜짝할 사이에 거리를 좁히며 날아든 조디악의 손톱.

    “……!”

    드레이크는 재빨리 허벅지 안쪽의 단검을 뽑아 그 손톱을 받아쳤다.

    하지만 너무나도 뜻밖의 반격이었기에 오른쪽 팔이 살짝 긁히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푸스스스, 이건 또 뭐야?”

    조디악은 자신의 공격을 막아 낸 드레이크의 순발력에 놀라는 듯싶었다.

    이내, 둘은 서로 날카롭게 대치하기 시작했다.

    따앙-

    조디악은 손톱을 들어 드레이크를 노린다.

    드레이크 역시 거리를 벌리며 화살을 쏴 조디악을 겨냥했다.

    피핏-

    드레이크의 쇠뇌에서 화살이 발사된다.

    하지만.

    “푸스스스. 무슨 장난감을 들고 왔어?”

    조디악은 너무나도 쉽게 드레이크의 화살을 피해 버렸다.

    “……!”

    드레이크는 눈을 가늘게 떴다.

    ‘정말이군.’

    뛰어들기 직전 들은 충고가 떠오른다.

    ‘저놈은 하드코어한 변태 플레이로 이름 높은 놈이야. 절대 접근전은 하지 마.’

    그 말대로였다.

    피픽-

    화살이 날면 조디악은 그것을 똑바로 바라본다.

    으레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무언가가 겨누어져 있을 때 위축되기 마련.

    그러나 조디악에게는 그런 게 전혀 없다.

    화살이 발사되면 자기의 몸에 꽂히기 바로 직전까지 그것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노려보다가 간발의 차로 피해 버린다.

    그것은 현실의 조디악이 무통증후군을 앓고 있기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레쉬-나이한 증후군.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특이한 질병.

    아무리 게임이라도, 사람들은 맞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현실에서 충격을 받았을 때 고통을 느꼈던 경험이 있기 마련이다.

    탑 티어급 프로게이머들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눈앞에 다가오는 충격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것은 인간인 이상 불가능하다.

    심지어 게임의 동기화 수치가 높을 경우 실제로 느껴지는 고통도 꽤나 높은 축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조디악 번디베일은 ‘움찔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한 번도 아픔을 겪어 본 적이 없기에, 그는 눈을 깜빡이거나 몸을 움찔하는 0.0001초의 시간마저도 철저하게 냉정하게 계산할 수 있는 것이다.

    “푸스스스스! 그런 건 안 맞아.”

    심지어 그는 천재적인 게임 감각에 운마저 지니고 있다.

    드레이크가 화살을 쏘면 쇠뇌의 각도를 계산해 애초에 화살이 닿지 않는 곳으로 몸을 피한다.

    그리고는 무작정 앞으로 파고들어 양 손에 달린 열 자루의 긴 손톱을 휘두르는 것이다.

    “호전적이군.”

    드레이크는 눈살을 찌푸렸다.

    퍽! 퍽! 퍽! 퍽!

    조디악의 손톱은 드레이크의 전신을 노리고 휘둘러진다.

    이런 좁은 공간에서는 궁수인 드레이크가 불리하다. 거리를 벌려 놓을 수 있는 한도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조디악을 그걸 아는지 더욱 더 매섭게 드레이크를 몰아쳐 갔다.

    핏!

    다섯 번째 공격이 드레이크의 허벅지를 스치는 순간.

    번쩍!

    조디악의 특성 중 하나가 발동했다.

    ‘오체분시’

    네 번 연달아 공격했을 경우 다섯 번째에 막대한 추가 데미지가 들어가는 특성이다.

    “……!”

    드레이크는 표정을 찡그렸다.

    살짝 스친 것뿐이지만 꽤 큰 데미지가 들어왔다.

    HP가 많이 깎였고 한쪽 다리도 저릿하다.

    “푸스스스스! 끝이다!”

    조디악은 장검과도 같은 손톱을 뻗어 드레이크의 머리를 움켜쥐려 했다.

    몇 초 뒤의 미래가 뻔하다. 드레이크의 머리는 조디악의 손톱에 할퀴어져 여섯 조각으로 쪼개질 것이다.

    …….

    내가 놈의 머리통을 발로 걷어차지만 않았어도 분명 그렇게 됐겠지.

    뻥-

    내 하이킥이 적중했다.

    쿠르륵-

    간쇼마루의 신발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콰콰쾅!

    조디악 놈은 머리통에 불이 붙은 채로 나가 떨어져 벽을 부수고 틀어박혔다.

    퍼펑! 퐁! 퐁!

    학처럼 들어 올린 내 한쪽 발등에서 용암 몇 방울이 바닥에 떨어져 불탄다.

    “……늦었군.”

    드레이크는 몸에 묻은 피를 털며 투덜거렸다.

    그가 시선을 끈 사이 내가 일격을 먹일 계획이었는데, 생각보다 뛰어들 타이밍이 잘 안 왔다.

    바로 그때.

    “푸스스스스……이건 꽤 아프네.”

    놀랍게도, 벽에서 조디악이 걸어 나온다. 저 자식……안 죽었어?

    ‘대체 최대 HP가 얼마나 되는 거야?’

    한국 랭킹 1위인 매머드 탱커 임요셉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솔직히 조금 경악스럽다. A+급 아이템에 정타를 맞고도 버티다니.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무기가 아니라 신발이라서 그런가?’

    한편.

    나 못지않게 조디악도 놀란 것 같다. 놈은 나와 드레이크를 번갈아 보며 감탄했다.

    “푸스스스. 너네는 뭐야? 어디서 이런 놈들이 튀어나왔지?”

    나는 입을 다물었다.

    놈은 단신으로 A급 몬스터를 그로기 상태까지 몰고 갔던 존재.

    게임 출시 10개월 만에 혼자서 악의 고성에 도전할 정도의 괴물.

    반드시 여기서 죽여 놔야 한다.

    “푸스스스스!”

    조디악이 손톱을 빼들고 달려들었다.

    나는 침착하게 움직였다.

    이 괴물의 공격 콤보 스타일이 주로 어떻게 되더라?

    분명 유튜뷰에 올라온 동영상을 봤었는데?

    “…….”

    머릿속에 수많은 정보가 살아 꿈틀거린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몸이 반응하고 있었다.

    ‘일단 첫 타는 → ←↗⥁⤿ 콤보를 주로 썼던 것 같았는데…….’

    스팟-

    나는 허공을 가로로 베어 가르는 손톱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다음 손 공격 역시도 곧바로 피해 버렸다.

    “어라?”

    조디악은 재미있다는 듯 눈을 크게 뜬다.

    놈은 왼손, 오른손 공격이 이어 바로 왼손 공격을 한 뒤 그대로 크게 빙 돌아 한방기를 날린다.

    오체분시 특성!

    다섯 번째 공격에 추가 데미지가 가해지는 것만 피하면 된다.

    까가가가각-

    조디악의 손톱이 돌벽을 긁으며 듣기 싫은 소리를 냈다.

    그 다음 공격은 아래에서 위로 쓸어오는 것!

    터억-

    나는 발바닥을 조디악의 왼팔 관절에 올려놓아 놈의 공격을 막았다.

    “……어?”

    조디악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녀석이 당황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당황할 틈도 없이 죽는 것을 원하지.

    뿌-드득!

    나는 놈의 팔을 밟은 그대로 땅에 찍어 버렸다.

    쿠르륵!

    바위도 녹이는 강력한 화염 데미지가 발생, 놈의 왼팔을 그 자리에서 끊어 버린다.

    “…….”

    조디악은 자신의 왼팔이 날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감흥도 없이 그것을 바라본다.

    이내, 녀석은 허리를 탁 튕겨 일어나며 두 발로 나를 노렸다.

    삐죽-

    발바닥에 독가시가 튀어나와 있다.

    ‘……허어.’

    솔직히 놀랐다. 이 상황에서조차 반격을 시도하다니.

    나는 HP가 얼마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놈의 공격을 허용했다.

    빵!

    요란한 소음과 함께, 내 HP가 확 떨어진다.

    동시에, 내 몸이 시커멓게 물들었다.

    바실리스크의 심장!

    퍼퍼퍼퍽!

    조디악 놈은 내 갑옷이 반사하는 데미지를 입어야 했다.

    놈의 발바닥은 순식간에 만신창이가 된다.

    심지어.

    콰삭!

    놈의 오른쪽 어깻죽지에 깎단을 한 방 대차게 찔러 넣어 주었다.

    원래 조디악을 상징했던 독문병기 ‘깎단’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지금 그 무기가 원래 주인을 노리고 있다.

    “푸스스스!”

    조디악은 오른쪽 팔과 가슴 사이에 커다란 구멍이 난 채 빙글빙글 웃는다.

    놈은 내게서 멀찍이 떨어진 뒤 만신창이가 된 자기 몸을 내려다보며 낄낄 웃었다.

    “너 재미있는 무기를 쓰는구나? 갑옷도 무척이나 흥미로와.”

    놈은 시커멓게 변한 내 가슴과 손에 들린 깎단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이내, 조디악은 나와 드레이크를 향해 씩 웃었다.

    “너희들 때문에 재미없게 됐네. 얼굴 기억해 놨어, 특히 너 동양인.”

    말을 마친 놈은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든다.

    ‘아차!’

    나는 이를 악물었다.

    조디악이 꺼내든 것은 ‘던전 탈출 스크롤’ 이었던 것이다.

    1회에 한해 어떤 던전에서든 몸을 뺄 수 있는 귀환용 주문서.

    무조건 중부대륙 한가운데 초보자마을의 신전으로 이동한다는 점에서 패널티는 꽤 있지만, 그래도 죽는 것보다야 나을 것이다.

    ‘제기랄! 저걸 깜빡하다니!’

    와두두 거신병.

    발견하기도 힘든 히든 몬스터에게서 희박한 확률로 떨어지는 아이템, 그렇기에 잠시 그 존재를 잊고 있었다.

    찌이익-

    이내, 조디악은 스크롤의 한 귀퉁이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너덜너덜한 오른손으로 반대편을 잡고 주욱 찢는다.

    스크롤이 반으로 찢어지면 귀환 마법이 자동 발동한다.

    “놓치면 안 되지.”

    드레이크가 재빨리 쇠뇌에 살을 먹였지만, 이미 늦었다.

    드레이크의 화살은 방어도를 무시하지만 큰 데미지를 한 방에 주기에는 부족하다.

    조디악의 HP는 아직 꽤 남아 있는 상태, 이대로라면 놓친다!

    ‘젠장!’

    내가 다급한 마음으로 내달리는 순간.

    썩-

    짧은 절삭음(切削音)이 들려왔다.

    “……아?”

    조디악은 입에 문 귀환서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반쯤 찢어지다 만 귀환서.

    귀환마법은 발동되지 않았다.

    툭-

    귀환서의 반대편을 잡아당기고 있던 오른팔이 바닥에 맥없이 떨어졌다.

    조디악의 오른손을 자른 것은 거대한 사이드(scythe)였다.

    [Trick or Treat?]

    그의 뒤로 으스스한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좀도둑 잭 오 랜턴!

    썩은 호박 속 붉은 눈알이 조디악을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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