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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78화 (78/1,000)
  • 78화 깊은 감옥의 죄수 (1)

    졸졸졸졸-

    구정물 흐르는 소리가 텅 빈 공동에 울려 퍼진다.

    나는 지금 긴 하수도 안을 걸어가고 있었다.

    핏물과 오물이 뒤섞인 물이 무릎까지 차올라 있다. 그것은 내 슬개골 어귀에 닿아 빙 에두르며 천천히 흘러간다.

    찌찍- 꾸륵- 까드득-

    하수도 벽에는 더러운 쥐들이 드글거린다.

    놈들은 빼짝 말라 갈비뼈가 드러나 보이는 옆구리에 살이 오동통하게 오른 거머리를 몇 마리씩 붙이고 있었다.

    <흡혈 생쥐> -등급: C / 특성: 어둠, 독, 고혈(膏血)

    -서식지: 악의 고성, 썩고 불타는 땅, 거인국

    -크기: 0.5m.

    -굶주린 쥐는 사람의 기름과 피를 맛본 뒤 그 맛을 기억해 버렸다.

    옆구리에 주렁주렁 늘어진 거머리들은 일부러 붙이고 다니는 것 같다.

    먹이를 오랫동안 구하지 못했을 때 거머리의 내장에 저장해 둔 기름과 피를 짜 먹기 위해.

    푹-

    화살로 생쥐 하나를 찍어 죽인 드레이크, 그는 찜찜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수도에서 왜 핏물이 흐르는지 알겠군.”

    드레이크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몇 구의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아마도 성의 하인들이었을 것이다.

    [으어- 그어억-]

    시체들은 우리의 움직임을 감지하자마자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이내 몸에 난 모든 구멍이란 구멍에서 시독을 뿜으며 걸어온다.

    원래대로라면 상당히 귀찮은 존재들이었겠지만…….

    [쉬익!]

    내가 소환한 뱀 요르문간드에게 있어서는 그저 한 끼 점심거리에 불과하다.

    덥썩! 터업! 꿀꺽!

    요르문간드는 하수도 속의 생쥐, 거머리, 좀비들을 닥치는 대로 꿀꺽꿀꺽 집어삼켰다.

    간혹 폭발하는 좀비들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요르문간드의 몸 일부가 순간적으로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을 뿐 별다른 데미지는 입지 않았다.

    좀비의 폭발도 독 공격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나는 요르문간드의 목을 슬슬 쓰다듬었다.

    “자식, 호강하는구나.”

    [쉬익!]

    녀석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몸을 슬슬 움직인다.

    한데, 어쩐지 이 녀석……덩치가 조금 커진 것 같은데 기분 탓이려나?

    그때.

    내 생각을 방해하는 소음이 들려왔다.

    “야! 너 아까부터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유다희. 그녀는 눈에 쌍심지를 켠 채 나를 노려보고 있다.

    손에 쥔 거대한 배틀액스는 나와 드레이크를 향해 겨눠져 있었다. 오는 내내 계속.

    “너 때문에 나까지 이상한 데로 들어와 버렸잖아! 오늘은 동생도 없는데!”

    “나가 그럼.”

    “어떻게 나가! 네가 여기를 밤으로 만드는 바람에 나가지도 못해!”

    “어차피 생존 다큐 찍고 있었잖아. 나가서 좀 절실하게 생존해 보든가. 시청자들 기만하지 말고.”

    “으악! 말하는 싸가지 진짜 으아아!”

    유다희는 발을 동동 구르며 괴성을 질렀다.

    하지만 이 좁은 공간에서 저런 커다란 도끼를 들고 덤벼올 정도로 멍청한 여자는 아니다.

    그녀는 죽일 듯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기는 했지만 뚜렷한 전의를 보이지는 않고 있었다.

    …….

    원래 짖는 개는 물지 않는 법이다.

    뭐 아무튼.

    유다희는 나를 따라오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이내 체념한 표정을 지었다.

    “휴, 그래. 알았어. 지금 이 상황에서는 딱히 방법이 없지.”

    “…….”

    “그럼 너를 따라갈 테니 파티라도 맺어 줘. 나는 탱커니까 꽤 도움이 될 거야.”

    이윽고, 내 앞에 파티 제안이 왔다.

    -띠링!

    <유다희 님이 파티를 신청합니다.>

    <수락 / 거절>

    생각할 것도 없다.

    나는 바로 거절 버튼을 눌러 버렸다.

    유다희는 발끈해서 쏘아붙인다.

    “뭐야! 왜 파티 안 받아 줘!”

    “나는 누구와도 파티 하지 않아.”

    “거짓말! 저 궁수는 뭔데!”

    “파티 아냐. 그냥 같이 다니는 거지.”

    드레이크는 내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유다희는 다급하게 외쳤다.

    “그, 그래도 파티 해서 나쁠 건 없잖아! 원한다면 아이템도 다 너한테 밀어줄게! 경험치 분배도 딱히 필요 없어. 형식상이라도 하는 게 어때? 그 편이 더 힘을 합치기에 좋잖아?”

    그녀는 꼭 파티 플레이를 하고 싶은가 보다.

    “……어쩔 수 없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유다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도끼를 치운다면 생각해 보지.”

    내가 손가락질 한 것은 유다희의 손에 들려 있는 도끼였다.

    그러자.

    “……!”

    유다희의 표정이 갑자기 싸늘하게 바뀐다. 그녀는 가늘게 좁아진 눈으로 혀를 찼다.

    “재수 없는 놈.”

    도끼를 등 뒤로 치운 채 욕설을 내뱉는 그녀.

    나는 피식 웃고는 고개를 돌렸다.

    오직 드레이크만이 고개를 갸웃할 뿐이다.

    *       *       *

    하수도는 독 외에도 온갖 함정으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이 길고 구불구불하고 지저분한 수로는 지하감옥을 지나 성 안 깊은 곳의 보스 방으로 직접 통하는 공간.

    진입이 쉬울 리가 없다.

    바위가 굴러오는 함정,

    화살이 날아오는 함정,

    바닥이 푹 꺼지는 함정,

    위에서 칼날이 떨어져 내리는 함정,

    독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함정,

    시간을 잡아먹기 위한 갈림길과 미로들…….

    하지만.

    내게 있어서 그 모든 것들은 다 의미 없는 것이다. 다 10년 쯤 전에 지겹도록 격파한 함정들이었으니까.

    “자, 여기 벽에 움푹 들어간 부분 보이지? 짚지 마. 바위 떨어져.”

    “여기부터 저기 앞까지 지나갈 때는 누워서 엉금엉금 가면 됩니다. 화살 날아오니까 코 높으신 분은 코끝 조심하시고.”

    “오, 거기는 밟지 마. 지하 500미터 아래로 떨어질 거야. 아래엔 좀비들만 드글거리니까 좋을 게 없어.”

    “잠깐. 물 아래 발목 부근에 와이어가 있을 거야. 거기에 걸리면 위에서 바로 길로틴 떨어져.”

    “슬슬, 독가스가 나오는 것 같군. 요르문간드 출동!”

    “5미터 앞에서 우회전, 이어서 좌회전. 그 앞은 막다른 골목이니 조심하고.”

    나는 눈앞에 있는 수많은 함정들을 거침없이 격파해 갔다.

    그걸 본 유다희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묻는다.

    “너……혹시 GM이야?”

    GM. 게임 관리자를 칭하는 말.

    하지만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인공지능에 의해 스스로 개발되고 운영되는 시스템이기에 GM이라고 해서 던전 내부의 속사정을 이렇게 낱낱이 알 수는 없다.

    “다 사전 조사 하고 온 거야. 그리고 내가 GM이었으면 스톡옵션으로 이미 돈방석에 앉아 있지, 게임을 왜 해.”

    나는 귀찮다는 티를 내며 대충 대답했다.

    그러자 유다희는 뭐라 하려다 말고 입을 다문다.

    딱히 반박할 구석이 없다. 사전 조사를 했다는데 뭐라 할 말이 있을까?

    ‘미친 고인물 새끼. 대체 얼마나 게임 폐인인 거야?’

    얼마나 시간을 투자해 이 루트를 조사했던 건지 감도 안 잡힌다.

    이 많은 함정들을 전부 꿰고 있을 정도라면…….

    그러나.

    사실 나는 이 맵에서 한 번도 죽었던 적이 없다.

    ‘집단지성의 힘이랄까?’

    이 루트를 공략할 때는 전부 꺼라위키, 인포벤, 플레이포람 유저들의 경험담을 참조했었다.

    집단지성의 힘은 위대했다.

    어디에 어떤 함정이 있고 어디에 무슨 몬스터가 있는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며 남긴 데이터.

    그것들을 면밀히 연구하고 분석해 한데 취합한 결과.

    지금의 내가 탄생한 것이다.

    ‘말하자면……썩은물이랄까?’

    지난 15년간 고이다 못해 썩어버린 물.

    그것이 바로 나다.

    어쩌면 나는 이 냄새나는 하수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일지도?

    그때.

    “엇, 빛이 보인다.”

    드레이크가 하수도 끝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에는 빛이라고 하기에는 좀 뭣한, 어슴푸레한 주홍빛이 보였다.

    이윽고.

    우리는 철창으로 막혀 있는 곳에 이르렀다.

    따앙-

    깎단으로 철창을 때리자, 그것은 붉은 녹 가루로 변해 부서져 내린다.

    철창을 통과하자 꽤 널찍한 공간이 보였다.

    하수도와 연결되어 있는 지하공간.

    이곳은 바로 감옥이었다.

    우리는 하수도를 지나 지하감옥의 깊숙한 방으로 들어온 것이다.

    고개를 들자 건너편 허공 너머로 또다시 하수도가 보인다.

    다음 스테이지로 가기 위해서는 그리로 건너가야 한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았다.

    “여기에서 중간 보스가 나올 거야.”

    내 말에 드레이크와 유다희 모두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슬쩍 몸을 빼어 지하감옥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저 아래에 갇혀 있을 죄수.

    놈이 바로 이 구역의 중간 보스다.

    -띠링!

    <히든 던전 ‘지하감옥 503구역’에 입장 하셨습니다>

    이내, 귓가에 익숙한 알림음이 뜬다.

    동시에 이 구역의 중간보스가 모습을 보였다.

    [Trick or Treat.]

    음산한 목소리로 말하는 호박 괴물.

    썩어서 흐물거리는 호박머리 아래에는 껑충한 키에 시커먼 넝마를 두른 몸이 보인다.

    마치 귀신들린 허수아비 같은 외형, 손에는 커다란 낫을 들었다.

    호박에 난 두 개의 눈구멍에서는 으스스한 붉은빛이 타오르고 있었다.

    <좀도둑 잭 오 랜턴> -등급: A

    무려 A등급의 고레벨 몬스터.

    놈은 원래 이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다.

    이 몬스터를 거쳐 가야 다음 스테이지인 보스 방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원래대로였다면 감옥 구석에 잠들어 있는 이 몬스터를 깨워서 전투를 치러야 한다.

    …….

    한데?

    [Trick or Treat!]

    놀랍게도, 좀도둑 잭 오 랜턴은 이미 깨어난 상태였다.

    콰쾅! 까드드드득-

    그것도 모자라 광폭화 된 상태로 대낫을 휘두르며 날뛰고 있다.

    그리고.

    그에 맞서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아니. 플레이어‘들’은 아니다.

    “…다 죽은 건가?”

    유다희는 인상을 찌푸렸다.

    좀도둑 잭 오 랜턴의 주위에는 대낫에 난자되어 갈가리 찢겨진 시체들이 보인다.

    전부 플레이어들로 추정되는 존재들이었다.

    젊은 여자가 셋, 젊은 남자가 둘.

    깨지거나 박살나 있는 장비들을 보면 전부 좋은 아이템들이다.

    주변에 흩어져 있는 골드들의 양도 상당했다.

    아무래도 야무지게 준비한 레이드가 실패한 모양.

    오직 한 명만이 살아남아 좀도둑 잭 오 랜턴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드레이크와 유다희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생존자를 내려다보았다.

    “허어. 우리보다도 먼저 이곳에 온 레이드가 있다니. 놀랍군.”

    “대단한데? 엄청 잘 싸우잖아?”

    그들은 호기심, 감탄이 가득한 표정으로 살아남은 한 명의 플레이어를 바라본다.

    …….

    하지만.

    오직 나만은 그럴 수가 없다.

    오싹-

    차가운 소름이 관자놀이를 기어올라 정수리까지 쫙 뻗친다.

    나는 지금 저 아래, 지하감옥의 생존자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낯익다. 분명 아는 얼굴이다.

    푸석한 검은 머리, 생기 없는 검은 눈, 광대뼈까지 내려온 다크서클, 시체처럼 창백한 피부, 저 감정 없는 표정…….

    오, 세상에 맙소사.

    ‘앙신(殃神)!’

    저 미친 사이코가 벌써 여기까지 왔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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