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프로리그 데뷔! (4)
-띠링!
<연쇄살인 리스트에 1명이 추가 기록됩니다>
<기본 공격력이 +1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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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레스크(Picaresque) 마스크> 가면 / A+
사이코 연쇄살인마의 얼굴 가죽을 도려내어 그대로 건조했다.
쓰는 순간, 집계는 시작된다.
-전체 공격력 +1
-특성 ‘연쇄살인’ 사용 가능 (특수)
가면에 묻은 핏물이 서서히 흡수된다.
“……이제 3:1이네?”
내가 입가에 튄 핏물을 닦으며 웃자,
오싹-
세 명의 랭커가 순간 움찔한다.
“…….”
나는 시선을 흘끗 돌려 최연석의 시체를 보았다.
‘무적 스킬이 아직 없어서 다행이군.’
전성기 시절, 최연석은 자기 스스로를 이동불가&무적 상태인 토템으로 만들고 주변 아군들의 HP를 대폭 회복시키는 스킬을 썼었다.
하지만 그것은 대격변 이후에나 등장한 특성.
방금의 최연석은 근접딜에 무방비로 노출된 힐러였을 뿐이다.
그러니 내 주먹에 죽는 것이 당연하다.
한편.
“이익!”
리더인 임요셉의 눈이 매서워졌다.
돌부처 임요셉.
그는 두 개의 거대한 방패를 앞세운 채 돌격해 왔다.
두 방패 겉면에는 커다란 뿔 두 개가 나 있어서 마치 거대한 매머드가 돌격해 오는 것 같다.
쾅!
나는 두 건틀릿으로 임요셉의 방패와 맞붙었다.
하지만, 임요셉의 방패에는 ‘밀어내기’ 특성이 있다.
콰지지직-
내 무릎이 땅에 깊게 박혔다.
나는 그 상태로 뒤로 5미터 이상 쭉 밀려났다.
‘오오? 과연. 마비가 오는군.’
나는 임요셉의 방패에 닿은 두 팔이 저릿저릿 떨리는 것을 보며 감탄했다.
그래, 이 방패는 분명 B급 아이템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적에게 상태이상 ‘마비’를 거는 특수 옵션이 붙어 있을 게다.
나는 잠깐의 시간 동안 마비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임요셉 역시 마찬가지이다.
“…….”
“…….”
우리 둘은 잠시 서로를 마주보며 대치했다.
쉬익-
그 상태에서, 송병건의 레이피어가 내 목을 노리고 길게 뻗어 나온다.
‘흐음.’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현재 송병건은 어쌔신 특유의 클로킹 특성을 발동한 상태라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방어력이 50% 감소하는 대신 공격력이 50% 상승해 있는 상태겠지.
하지만 소리를 들으면 대충 어디에서 공격이 들어오는지 알 수 있다.
‘6시 방향, 좌수인가.’
나는 충돌각을 재며 슬쩍 고개를 틀었다.
파팡!
송곳과도 같은 찌르기가 내 귓불 끝을 뚫고 쏘아져 나갔다.
“쳇!”
허공에서 혀를 차는 송병건, 하지만 그의 시도는 헛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뒤에 있는 이연호가 라이트닝 볼트를 캐스팅할 시간을 벌어 줬으니까.
“죽어라!”
이연호는 나를 향해 번개 마법을 날렸다. 라이트닝 볼트!
4클래스나 되는 고등급 마법 특성이다
뿌지지지직!
시퍼런 뇌전이 나를 향해 뻗어온다.
비록 힐러는 잃었지만 지금이라도 딜과 탱을 골고루 조합해 나를 제압하겠다는 심산.
‘큰일 났는데?’
나는 눈앞에 쏟아져 오는 참격과 마법을 보며 생각했다.
방패 밀어내기에 당해 몸에 마비가 온데다가 마법공격이 쏟아져 들어온다.
거기에 투명한 암살자의 기습까지!
……이거 정말 난감한 상황이다.
나는 이 급박한 상황 속에서 생각했다.
‘……너무 쉽게 이길 것 같잖아.’
이렇게 빨리 끝내 버리면 큰일인데? 애들 기가 너무 죽겠어.
쿵-
나는 마비가 풀리는 즉시 바로 오른손으로 땅을 때렸다.
우직-
땅봉우리가 불거지며 앞으로 쏟아지는 공격을 전부 막아낸다.
동시에.
나는 얼마 전 얻은 새로운 아이템의 힘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간쇼마루(岩漿丸)의 발가죽> 신발 / A+/ (융합)
성정이 불같았던 악귀의 발을 잘라 만든 신발.
깃들어있는 분노와 한은 바위를 녹일 정도라고 한다.
-화염 공격력 +1,000
-이동 속도 +70% (특수)
-특성 ‘불걸음’ 사용 가능 (특수)
내가 신고 있는 워커가 마치 불에 달군 쇠처럼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동시에.
쿠르르르륵!
나를 중심으로 반경 10미터 안의 땅이 모조리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바위도, 흙도, 모래도.
모든 것들이 흐물흐물 녹아내리며 시뻘겋게 타오른다.
“어엇!?”
세 명의 랭커는 갑자기 흐물흐물해진 바닥에 기겁했다.
갑자기 단단하던 땅이 질퍽질퍽한 갯벌처럼 변해 버렸다.
그것도 뜨거운 용암으로 가득한!
“자, 이제 쇼타임이다.”
나는 오른손의 건틀릿을 뻗어 용암으로 변해 버린 땅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퍼퍼퍼퍼펑!
지진!
시뻘건 용암들이 미친 듯이 날뛰며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크윽!?”
두 개의 방패로 용암을 막아내던 임요셉이 신음소리를 냈다.
이연호는 그런 임요셉의 방패 뒤에 숨어 안절부절 못할 뿐.
“크학!?”
은신 상태로 있던 송병건만 날벼락을 맞았다.
철퍽! 철퍽!
용암에 난 발자국 때문에 송병건의 위치는 훤히 노출되었다. 심지어 방어력이 50% 떨어져 있는 탓에 화염 데미지가 두 배로 박히고 있었다.
콱!
그런 송병건의 어깨를 잡는 손이 있었다. 바로 임요셉이었다.
“걱정 마라! 이곳만 벗어나면 돼!”
임요셉은 두 동생을 끌어안고 용암의 갯벌을 허우적거리며 건너가기 시작했다.
그는 현재 지형으로 인한 데미지를 모두 반감시키는 ‘반반무’ 특성을 발동한 상태.
하지만.
나는 곱게 보내줄 생각이 없다.
턱-
내 왼손 건틀릿이 용암의 뻘을 짚는다.
츠츠츠츠츠…….
이내, 용암의 대지에 소용돌이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콱!
맹렬한 와류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세 명을 소용돌이 중앙으로 잡아끈다!
“으아아아아아!”
용암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송병건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소용돌이의 중앙으로 끌려가는 것은 둘째 치고, 전신에 가해지는 화염 데미지는 이미 그의 빈약한 HP칸을 전부 태워 버렸다.
철썩- 꾸르르륵-
용암의 쓰나미에 파묻힌 송병건은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즉사했다.
“크윽!?”
마법사이기에 화염저항력이 비교적 높은 이연호.
하지만 그도 별수 없었다.
퍽! 퍼억!
와류에 휩쓸리자, 반쯤 녹다 만 바위들이 날아들어 몸을 강타한다.
이것은 고스란히 물리 데미지로 변해 이연호의 몸에 박혀들었다.
번개타입 마법사만큼 지형 데미지에 취약한 존재가 또 있을까?
“젠장!”
지팡이를 휘저어 강력한 번개마법을 퍼부어 보았지만 쏟아지는 바위들을 감전시킨다고 해서 딱히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윽고.
이연호는 소용돌이에 빙글빙글 휘말려 중앙으로 끌려오게 되었다.
“웰컴!”
바로 내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터억-
나는 손을 뻗어 이연호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으으.”
이연호의 두 눈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번도 패배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어린 천재.
나는 그에게 오늘 새로운 무언가를 알려 주려 한다.
‘바로 굴욕의 맛이지.’
그래.
한번쯤 임자 만나보는 것도 인생에 도움이 된다.
나는 이연호를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리고.
뻐-억!
지진파가 가득 담긴 오른손 손바닥으로 녀석의 뺨을 후려쳐 버렸다.
뿌지지직-
한 방.
그 한 방으로 인해 이연호는 즉사하고 말았다.
텅- 텅-
머리통이 몸에서 떨어져 나가며 긴 척추뼈도 함께 뽑혀 나왔다.
공교롭게도, 그것은 저 멀리서 와류에 저항하고 있던 임요셉의 발치에 떨어졌다.
“너, 너 이 새끼……!”
순식간에 동생들을 모두 잃은 임요셉의 눈이 뒤집어졌다.
돌부처라는 별명답지 않게, 그는 평정심을 잃은 채 소리쳤다.
“죽여 버린다!”
이내, 그는 용암의 파도를 방패로 밀어붙이며 이쪽으로 돌진해 왔다.
철썩- 퍼엉-
때론 방패를 기울여 파도를 받아넘기고, 때론 방패를 가로로 세워 급류를 자른다.
그는 방패 두 장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내게로 바싹 다가와 붙었다.
콰쾅!
이내, 매머드의 두 뿔이 나를 노리고 달려든다.
저 공격은 조금이라도 스치는 순간 몸에 마비가 온 채로 뒤로 밀려나게 된다.
방패가 두 장이나 붙어 있어 공격 범위도 상당히 넓다.
용암을 불도저처럼 밀어내며 돌진해 오는 탓에 시야 확보도 어려워 피하기도 난감했다.
하지만.
저 공격에도 분명히 약점은 존재한다.
‘이 참에 보완하렴.’
나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리고.
콰-쾅!
두 방패가 붙어있는 접점, 가운데를 향해 오른 주먹을 힘차게 내뻗었다.
우기긱-
불도저 같던 두 장의 방패가 마치 심벌즈를 치는 모양새로 접힌다.
그리고 내 오른 주먹은 두 방패 사이를 관통해 마치 핫도그의 소시지처럼 중앙을 뚫고 들어갔다.
콱!
그렇게 뚫고 들어간 내 주먹은 임요셉의 멱살을 잡았다.
“으윽!?”
임요셉은 내 손을 뿌리치려 발버둥쳤지만, 늦었다.
콰쾅!
나는 소용돌이를 통째로 꽉 쥐고 있는 왼손 주먹을 내뻗었다.
그리고 그대로 그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철-썩!
임요셉의 볼살이 소용돌이를 그리며 회전한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그의 몸 전체를 180° 홰까닥 뒤집어 놓았다.
퍼펑!
그는 이내 용암으로 변해 버린 바닥에 거꾸로 처박혔다.
뒤는 더 볼 것도 없었다.
쾅! 쾅! 쾅! 쾅! 쾅!
나는 용암에 잠긴 그의 몸뚱이에 지진의 힘이 담긴 주먹을 연신, 무차별적으로 내리찍었다.
머리를 때리는지, 배를 때리는지, 발을 때리는지, 알지도 못하겠고 관심도 없다.
나는 그저 이 HP뚱땡이의 힘이 죄다 빠질 때까지 때리고 또 때릴 뿐이다.
행여나 일어나 반격하려고 하면 또 와류를 써서 용암의 폭류에 묻어 버린다.
그리고 또 미친 듯이 지진 주먹으로 때려 박는 것이다.
망치로 못을 박는 것처럼 꾸준히, 집요하게.
어느덧.
임요셉을 제외한 세 명은 용암 파도에 휩쓸려 시체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오직 용암 속에 파묻힌 임요셉만이 나의 주먹을 견뎌 내고 있을 뿐이다.
마치 용광로에 파묻힌 쇳덩이마냥, 두들겨 맞고 또 두들겨 맞으면서.
이윽고.
“……응?”
몇 번인가 주먹질을 하던 나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더 이상 주먹 끝에 뭔가가 닿는 감각이 없다.
슬슬-
손을 뻗어 용암을 휘저어 보니 만져지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뜨겁고 걸쭉한 용암만이 손가락 사이로 줄줄 흘러내릴 뿐이다.
“이런. 뼈도 못 추렸군.”
나는 픽 웃었다.
4:1의 싸움.
그 결과는…그야말로 압도적인 것이었다.
나를 상대로 했던 네 명은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로그아웃 당해 버렸다.
죽으면서 시체를 남기지 못할 경우 사망 패널티는 더욱 커진다. (초보자 마을에 괜히 관을 파는 장사꾼 NPC가 있는 것이 아니다)
“역시 인생은 템빨이야.”
나는 어깨를 한번 으쓱한 뒤 용암 뻘에서 걸어 나왔다.
사실 템빨이라고는 했지만 장비들의 평균값을 내 보면 거의 비슷했다.
아니, 나는 장갑 두 개와 신발 하나만 썼으니 오히려 내 쪽이 후달렸을지도?
‘저들의 장비 평균값은 B(3.0). 내 장비 평균값도 B{(4.5+2.5+2.5)/3= 3.16666666667}. 4:1이었던 걸 감안하면 꽤 공평했지 뭐.’
……뭐 아무튼.
참교육 끝!
깔끔하게 로그아웃할 시간.
이제는 현실에서 저 4명을 만날 차례다.
* * *
푸슉-
캡슐의 문이 열린다.
내가 상쾌한 기분으로 밖으로 나오자.
“…….”
무덤 속처럼 고요한 연습실.
스무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전부 다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모여 있는 이들은 전부 한국 랭킹 100위 안에 드는 고수들, 프로 게이머들이다.
그리고.
그 맨 앞에는 네 명의 사람이 서 있었다.
“…….”
임요셉, 이연호, 송병건, 최연석.
그들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본다.
“……인간이세요?”
임요셉이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그저 픽 웃었을 뿐이다.
이윽고.
옆에서 엄재영 감독이 다가온다.
“계약서 쓰……시죠.”
그는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반존대를 하고 있었다.
이내.
나는 엄재영 감독에게서 계약서를 받아들었다.
어디보자, 연봉은 얼마쯤이려나? 복지 조건은 좋을까?
그런데.
“……응? 이게 뭐야?”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엄재영 감독이 계약서라고 들고 온 것은 그냥 평범한 A4용지였던 것이다.
“감독님. 이거 그냥 빈 종이인데요?”
내가 A4용지를 팔랑거리며 묻자, 엄재영 감독은 무언가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뇨, 계약서 맞아요.”
“……?”
“사인만 하세요. 원하는 조건은 나중에 빈 칸에 다 적읍시다.”
엄재영 감독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말로만 듣던 백지 계약서.
내 살아생전 이런 걸 쓰게 될 줄이야!
* * *
한편.
먼발치에서 ‘백지 계약서’를 쓰는 걸 지켜보는 시선이 하나 있었다.
투신 마태강.
그는 지금껏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어떻게 도발했고 어떻게 받았으며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를 모두.
한국 랭킹의 천상계.
탑 티어.
천외천.
프로리그를 대표하는 간판 랭커들.
그들이 네 명씩이나 모여 짠 드림팀. 최고의 조합.
그런 파티가 고작 한 명에게 농락당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마동왕. 고인물. 아니……이어진!
그는 불법 지하리그에서 마주쳤을 때보다 더욱 더 파괴적이고 잔인하며 압도적으로 강해져 있었다.
그리고 종국에는 자신에게 텃세를 부리던 선배들마저 무참하게 발라 버렸다.
그것도 4:1로 싸워서!
내면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투지? 용기? 희망?
그런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가슴 벅찬 무언가가 더욱 짙다.
감동.
그래, 바로 감동이다!
마태강은 자신에게 설거지나 청소 등 잔심부름을 시키던 1군 선배들의 고개가 바닥으로 꺾여 있는 것을 보았다.
고개를 돌리자, 다른 이들의 시선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계약서를 작성하는 어진이 보인다.
마태강은 생각했다.
‘그래, 저런 게 진짜 선배다. 존경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저절로 우러나오게끔 하는 것.’
어진을 바라보며, 마태강은 두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따라잡고 싶다.
인정받고 싶다.
같이 달리고 싶다.
저렇게 되고 싶다.
저 옆에 서고 싶다.
저 사람에게 있어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얽혀든다.
결국.
마태강은 저도 모르게.
아무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그러나 분명히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고 말았다.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