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73화 (73/1,000)
  • 73화 프로리그 데뷔! (3)

    눈앞에 있는 것은 한국랭킹을 대표하는 간판 프로게이머들!

    나는 그런 이들을 향해 손바닥을 까닥거렸다.

    “귀찮으니까 깔끔하게 5:1 가자.”

    폭탄선언.

    하지만 그 말에 대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

    다들 멍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너무 황당해서 화도 안 난다는 표정들.

    “저…….”

    엄재영 감독이 곤란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원래 입단 테스트는 1:1이 원칙인지라…아무리 자신이 있어도…….”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을 일축했다.

    “지금 태도들을 보니 굴러온 돌은 인정 못하겠다는 것 같은데. 시작부터 쐐기를 박아 둬야 나중에 군말이 안 나올 겁니다. 팀 내 랭킹 문제도 있고요.”

    “그, 그래도 5:1은 좀…….”

    “싫으면 그냥 돌아가고요.”

    내가 어깨를 으쓱하자 엄재영 감독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요 며칠간 나에게 들인 공이 있는지라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하지만.

    나 역시도 프로 데뷔를 접을 생각은 없었다.

    과거, 엄청난 실력과 스타성으로 프로리그를 풍미했던 암흑랭커 마동왕.

    그 뛰어난 실력에 제대로 된 인성만 탑재되었어도, 인류는 더욱 더 뛰어난 게이머의 활약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번 기회에 그 밝은 미래를 현실에 재현해 내고자 한다.

    그때.

    “……허허. 나 참.”

    임요셉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는 이내 못 이기는 척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래요. 좋아요. 어디 한번 붙어 봅시다. 5:1로.”

    엄재영 감독이 만류하려 하자, 임요셉은 눈을 부릅뜨고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다.

    “감독님. 이건 저희끼리의 서열 문제예요. 이번에는 저희끼리 자체적으로 정리하게 해 주시죠.”

    “야, 이놈아…그래도 5:1은 좀…….”

    엄재영이 막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손을 드는 한 사람이 있었다.

    “난 빠지겠습니다.”

    바로 투신 마태강이었다.

    그는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뻔한 싸움’에는 끼고 싶지 않군요.”

    그 말에 임요셉이나 이연호, 송병건, 최연석 등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눈치 챘군.’

    마태강은 나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불법 토토리그에서 한번 마주친 적이 있으니까.

    뻔한 싸움이라는 말이 상당히 미묘한 뉘앙스였다.

    그는 무엇을 뻔하다고 보고 있는 것일까?

    한편.

    “그럼 시작하지.”

    임요셉은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내.

    우리는 캡슐 속으로 들어가 누웠다.

    기이잉-

    캡슐의 문이 닫힌다.

    그러자 캡슐에 부착되어 있는 모니터 앞으로 모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아휴, 이거 참. 이 녀석들 다구리를 얼마나 심하게 놓으려고…….”

    걱정된다는 듯 중얼거리는 엄재영, 그는 팀원들이 새로 들어온 신입을 너무 심하게 망신 주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다.

    엄재영 감독의 뒤로 몰려든 다른 연습생들 역시 비슷한 결과를 예상하고 있는 것 같다.

    하기야,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들처럼 생각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게임 강국 한국. 그 중에서도 국내 랭킹 1, 5, 7, 9위가 한데 모였는데 아직 랭킹도 없는 뉴비 따위가 뭘 할 수 있으랴? 그것도 4:1로.

    하지만.

    “…….”

    오직 투신만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모니터를 감상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한 눈빛.

    그런 미묘한 분위기 속에서.

    4:1.

    한국 랭킹 1, 5, 7, 9위를 상대로, 한 ‘뉴비’의 PK가 시작되었다.

    *       *       *

    이윽고.

    텅 빈 황무지에 나와 네 명의 랭커들이 마주섰다.

    나는 눈앞에 선 네 명의 랭커를 쭉 돌아보았다. 동시에 그들의 아이템과 스킬 등등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어디보자, 옛날에 임요셉이 한국랭킹 1위였을 때 템 트리를 어떻게 짰었더라?’

    머릿속 필름을 조금 앞으로 감아본다.

    그러자 뿌연 흑백화면 속에 10여 년 전, 과거의 영웅들이 등장했다.

    눈부시게 활약하던 초대 랭커들. 바로바로 떠오르는 그들의 아이템 빌드, 스킬 트리.

    ‘그래, 초대 한국랭킹 1위 임요셉. 별명은 돌부처. 특이하게도 방패만 두 장 들고 다니는 매머드 탱커였지.’

    HP가 거의 10만에 육박하는데다가 들고 있는 아이템이 전부 HP나 방어력을 올려 주는 아이템들 뿐.

    거기에 양 손에 든 두 장의 방패는 정면에 뿔이 돋아나 있기에 공격용으로도, 방어용으로도 쓰인다. 정면에서 보면 마치 코끼리, 혹은 매머드의 뿔처럼 생겼다.

    아무리 때려도 줄지 않는 HP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 돌부처, 훗날 ‘돌진기’로 유명해지기에 매머드 탱커라는 별명이 붙게 된다.

    ‘다음은 한국 랭킹 5위, 이연호인가.’

    나는 임요셉의 옆에 서 있는 꼬맹이를 바라보았다.

    ‘천재’ 이연호.

    훗날 자라서 세계 급 랭커가 되는 천재.

    녀석은 이후로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서 최연소로 우승컵을 차지하게 된다.

    스타일은 지금이나 10년 후나 똑같다. 근접 전투를 즐기는 마법사 캐릭터. 특기는 전격계열 마법이다.

    원거리에 있으면 머리 위에 바로 벼락을 떨어트리는 ‘라이트닝 볼트’

    근접 거리에 있으면 일정 범위 내를 전부 지져 버리는 ‘훌라후프 쇼크’

    그 외에 다수의 상대들과 싸울 때 한 명만 맞아도 그 데미지가 연쇄적으로 퍼져 나가는 ‘체인 라이트닝’

    이 세 개의 특성을 적절히 섞어 쓰면서 동시에 기동성도 있는 밸런스형 캐릭터를 키운다.

    ‘다음은 한국 랭킹 7위 송병건. 이 친구는 오랜만에 보네.’

    ‘송곳’ 송병건.

    그는 몇 년 뒤 은퇴하는 프로게이머이다.

    이후 한동안 시간이 지난 뒤 한 프로팀의 코치로 모습을 드러냈다.

    듣기로는 협회와 마찰이 있어 한동안 이 바닥을 떠났다고는 하는데 자세한 것 까지는 모른다.

    다만 지금 현재의 템트리나 스킬트리 정도는 확실하게 꿰고 있다.

    가늘고 긴 레이피어를 귀신같이 다루는 칼잡이. 스피드와 공격력, 은신 스킬로 대표되는 어쌔신 스타일.

    특히나 큰 데미지를 입히는 찌르기 기술을 반동 없이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것이 송병건의 가장 큰 강점이다.

    이것은 세계에서도 통할 법한 스타일.

    ‘마지막은 최연석이라. 거 참 엔트리 호화롭군.’

    ‘귀족’ 최연석. 그에게 귀족이라는 별명이 붙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힐러였다.

    동시에 아군에게 버프를 걸어 주고 적군에게 디버프를 걸어 주는 역할.

    단순한 것 같지만 힐과 버프, 디버프의 타이밍을 간파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또한 최연석은 적들의 딜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정도의 기동력과 공격력도 갖추고 있었다.

    아마 지금은 어디엔가 숨기고 있겠지만, 분명 꽤 공격력이 강한 메이스 등의 한손무기를 장비하고 있을 것이다.

    ‘이걸로 분석 끝.’

    나는 눈앞에 있는 임요셉, 이연호, 송병건, 최연석을 쭉 흩어보았다.

    탱커, 법사, 딜러, 힐러. 아주 조합이 좋은 파티다.

    ……하지만.

    ‘진짜 힘 앞에서는 다 부질없는 짓이지.’

    나는 조용히 인벤토리를 열어 아이템 하나를 꺼냈다.

    -<피카레스크(Picaresque) 마스크> 가면 / A+

    사이코 연쇄살인마의 얼굴 가죽을 도려내어 그대로 건조했다. 쓰는 순간, 집계는 시작된다.

    -특성 ‘연쇄살인’ 사용 가능 (특수)

    ※이 가면은 착용자의 PK 카르마 수치를 대신 적용받습니다.

    ※가면을 착용한 순간부터 Kill 수에 따라 공격력이 증가합니다.

    ※1Kill 당 상승하는 공격력은 1입니다.

    ※Kill 수의 집계는 오로지 플레이어 캐릭터에 한정되어 이루어집니다.

    .

    .

    도플갱어 카이저에게서 뜯어낸(?) 히든 피스!

    이것은 도플갱어 카이저를 죽이는 것으로는 얻을 수 없다.

    몬스터를 죽이면 아이템이 떨어지는 것은 너무 흔하지 않은가?

    그런 흔하고 평범한 방식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히든 피스다.

    이것을 얻기 위해서는 도플갱어 카이저가 젠 되자마자 자기 얼굴의 쓴 마스크를 벗어던져야 한다.

    그러면 도플갱어 카이저는 자신의 얼굴 살가죽을 잡아 뜯게 되고 그제야 이 아이템이 생성되는 것이다.

    그 후 벌어지는 난전에서 이 아이템을 회수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전적으로 플레이어의 재량에 달린 것.

    철컥-

    나는 맨얼굴이 드러나지 않게끔 이 마스크를 착용했다.

    이윽고.

    마동왕의 아이템들을 장비한 내가 앞으로 이동한다.

    그때까지도 임요셉, 이연호, 송병건, 최연석은 팔짱을 낀 채 저희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4:1은 좀 심하지?”

    “엄재영 감독님의 입장도 있고 하니까.”

    “맞아. 너무 심하게 갈구면 나중에 얼굴 보기도 좀 껄끄러울 수 있어.”

    “형님들 체면도 있는데, 그냥 막내인 제가 가서 적당히 상대해보는 게 낫겠죠?”

    그들은 아직도 4:1로 싸운다는 것에 현실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기야 그럴지도. 어디 가서 4명에게 협공을 당해 본 적은 있어도 4명이서 협공을 해 보는 것은 처음일 것이다. 다들 쟁쟁한 고수들이니 말이다.

    …….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점을 노리고 있었다.

    ‘어디 제대로 합을 맞춰 본 적이나 있겠어?’

    몬스터를 잡을 때라면 몰라도, 플레이어를 상대로 파티를 짜 본 적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렇기에, 조금 놀래켜 주기로 했다.

    콰-쾅!

    나는 대뜸 오른손으로 지면을 때렸다.

    우지지지직-

    묵직한 지진파가 대지를 온통 뒤흔들어 놓는다.

    그러자, 격변하는 땅을 본 임요셉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뭐야!? 진짜 혼자 덤빌 생각인가?”

    그는 기가 막히다는 듯 소리쳤다.

    하지만 황당한 것은 둘째쳐도, 당장 닥쳐 오는 공격은 피해야 한다.

    임요셉이 방패 두 장을 땅에 박는 동시에, 이연호와 송병건, 최연석이 허공으로 펄쩍 뛰어올랐다.

    그래. 위로 올라가야지. 지진을 피하려면.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은 반응이다.

    그 틈을 타서.

    타탁-

    나는 시소처럼 불거져 나온 바위를 밟고 허공으로 도약했다.

    “어엇!?”

    4명 중 하나가 비명을 지른다. 바로 힐러인 최연석이다.

    턱-

    나는 허공으로 뛰어오르자마자 재빨리 최연석에게로 돌진했다.

    그리고 그의 하얀 사제복 멱살을 잡아 그대로 허공에서 지면을 향해 팽개쳤다.

    모든 것이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콰쾅!

    맥없이 땅에 처박히는 최연석. 그는 허공에서 메다 꽂히는 그 순간에도 현실을 똑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긴, 몬스터만 상대해 봐서 뭘 알겠나? 몬스터가 힐러 먼저 노리는 경우는 드물지.

    하지만 PVP에서는 너무나도 상식적인 일. 그것이 다구리이든 개떼전이든 다 똑같다.

    이윽고.

    마법사인 이연호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 자식!”

    그는 자신의 허리에 시퍼런 뇌전을 휘감았다.

    훌라후프 쇼크! 자신을 중심으로 일정 범위 이내를 번개로 휩쓸어 버리는 특성!

    하지만 그것이 나올 것임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나는 허리를 뒤로 훌떡 젖혀 번개를 모조리 피해 버렸다.

    이 번개는 직선으로만 뻗어 나가기에 처음 궤도만 알면 피하는 건 쉽다.

    쿵-

    이내, 최연석을 제외한 세 명이 다시 지면으로 착지했다.

    쾅!

    나 역시도 다시 지면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곳은 먼저 떨어진 최연석이 있는 곳이었다.

    “으아아!”

    최연석은 자신을 향해 떨어져 내리는 나를 보며 기겁했다.

    그는 허리춤에 숨겨 놓은 짧은 곤봉을 빼들어 저항했지만, 이미 암기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나한테는 무의미한 수고다.

    우지직!

    나는 공중제비를 돌아 곤봉을 피했고 최연석의 머리통을 바로 발로 밟아 깨 버렸다.

    바닥에 그어지는 시뻘건 핏물.

    랭커 세 명의 얼굴이 파랗게 질린다.

    아주 찰나의 방심 때문에 귀족 힐러를 잃었다.

    나는 그런 셋을 향해 씩 웃어 주었다.

    “……이제 3:1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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