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72화 (72/1,000)
  • 72화 프로리그 데뷔! (2)

    가상현실 게임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통칭 ‘뎀(DEM)’은 현재 게임이라는 단어 그 자체를 대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전 세계 수억 명이 동시에 즐기고 있는 게임.

    뎀은 게임을 넘어서 또 다른 생활, 인생이 되었다.

    현실에서 장애가 있더라도 게임 속에서는 그런 것이 없다.

    누구나 원하면 마음껏 돌아다니며 무궁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수억 개의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게임 내에서는 다양한 서브 콘텐츠들이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었다.

    어찌 사람들이 몬스터와 싸우는 것만 좋아하겠는가?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음악을 즐기는 사람도 있고 등산을 하고 싶은 사람도 있고 빠르게 달리는 것을 원하는 사람도 있고 날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고 낚시를 추구하는 사람도 있다.

    이 때문에, 게임 내에서는 다양한 활동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림 그리기 대회, 도박, 레이싱 대회, 콘서트, 사냥 대회, 등산 대회, 마라톤 대회, 낚시 대회…….

    이런 경기들은 자연스럽게 상금이 걸리게 되었고 상금은 곧 수많은 프로팀의 탄생을 야기시켰다.

    프로 구단!

    수없이 많은 프로 게이머들이 탄생했다.

    그들은 등산을 하거나 마라톤, 낚시 등등을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고 돈을 벌어 간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게임 내 프로리그에서 가장 주류인 콘텐츠는 PK였다.

    사람들은 강자와 강자가 맞붙어 싸우는 것을 좋아했다.

    오늘날의 격투기, 스포츠들이 어마어마한 인기를 구사하고 있는 것처럼 이쪽의 세계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자연스럽게, 한국에도 수많은 프로 구단이 생겨났다.

    PK의 프로들. 옛날 격투게임을 FPS 게임처럼 1인칭으로 한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게임 출시 10개월 만에, 한국에는 140개가 넘는 PK프로팀이 생겨났다.

    프로팀의 춘추전국시대.

    그것이 바로 지금이었다.

    대기업, 중견기업들이 돈 되는 시장에 너도나도 뛰어들어 자본을 풀면서 수많은 중소 프로팀들이 난립한다.

    그리고.

    그 140여개의 프로팀 중에서 서울 내 최고의 팀이라는 평가를 받는 프로팀 ‘국K-1’

    한국 랭킹 10위 권 중 5명을 보유하고 있는 최고의 프로팀.

    2군 연습생, 3군 연습생들까지 치면 랭킹 100위권 중 20명 이상이 이곳 소속이다.

    ‘명장’ 엄재영 감독은 둘째 쳐도.

    ‘돌부처’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안정적인 게임 스타일의 임요셉이 이끌고 있는 팀답게, ‘국K-1’은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무게감 있는 팀이었다.

    …….

    불과 5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       *       *

    청담동에 위치한 ‘국K-1’의 사옥 연습실.

    두 개의 깔끔한 단독주택이 한 마당을 두고 이어져 있다.

    하나는 2,3군 연습생들의 숙소고 다른 하나는 1군 연습생들의 숙소다.

    연습실은 두 주택이 이어져 있는 중앙의 작은 유리 돔 속에 있다. 모두가 함께 쓰는 공간이다.

    그리고.

    지금 이 연습실은 묘한 긴장 속에 잠겨 있었다.

    스무 명이 넘는 프로게이머들이 한 곳에 모여 있다.

    1, 2, 3군 게이머들이 모두 집합했다.

    그리고.

    “…….”

    그 가운대 표정을 찌푸리고 있는 사내가 하나.

    바로 현 한국 랭킹 1위.

    ‘돌부처’ 임요셉이다.

    그 뒤에는 랭킹 5위 이연호, 7위 송병건, 9위 최연석을 비롯한 쟁쟁한 1군 멤버들이 버티고 서 있었다.

    “…….”

    랭킹 6위인 투신 마태강 역시도 팔짱을 낀 채 구석에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약속시간…지났네.”

    임요셉은 손목시계를 보며 불편한 기분을 표했다.

    오후 5시 30분.

    오늘 이 연습실에 손님이 방문하기로 약속된 시간이다.

    마동왕.

    그가 오늘 ‘국K-1’ 연습실을 찾아오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시간은 7시 42분. 원래 약속시간보다 2시간이 넘게 지났다.

    “…….”

    스무 명이 넘는 프로게이머들이 불편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리더인 임요셉과 더불어, 숙소 멤버들 사이에서는 현재 부정적인 기운만이 팽배하다.

    ‘족보도 없는 불법리그에서 놀던 놈을 데려온다니…….’

    ‘승부조작이라도 있었을지 누가 알아?’

    ‘기껏해야 양민학살이나 하면서 놀았을 게 뻔한 놈을 프로리그로 끌어온다고?’

    다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임요셉은 그와 별개로 기분 나쁜 일이 하나 더 있다.

    용자의 무덤 45층!

    그가 세웠던 세계 신기록이 ‘고인물’에 의해 갱신되었던 것이다.

    게임 세계에서는 고인물, 현실 세게에서는 마동왕.

    이 두 존재 때문에 아주 골치가 아프다.

    “에이 씨! 왜 안 오는 거야!”

    임요셉은 시계를 보며 계속해서 투덜거린다.

    5시 반에 마동왕이 올 테니 좋은 모습 보일 준비 해 놓고 있으라는 엄재영의 말 때문에 줄곧 대기하고 있었는데, 이거 꼴이 우습게 되었다.

    감히 데뷔도 못 한 신인 주제에 까마득한 선배들을 이토록 오래 기다리게 하다니!

    ‘오기만 해 봐라. 군기를 아주 꽉 잡아 주마.’

    모두의 불만이 자꾸 쌓여가고 있을 때.

    쾅-

    중앙 연습실의 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그리고.

    “얘들아! 손님 모셔라!”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엄재영 감독이 우산의 빗물을 털며 들어온다.

    그리고.

    마치 청룡영화제의 남우주연상이라도 수상한 것 마냥.

    보무도 당당히 레드카펫 위를 걸어 들어오는 남자.

    마동왕.

    바로 나다.

    *       *       *

    “…….”

    임요셉은 기묘한 표정을 지은 채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렇겠지.

    현재 나는 얼굴의 절반을 하얀 마스크로 가려놓은 상태. 마치 오페라의 유령을 보는 듯한 비주얼일 것이다.

    또 목소리 역시 음성변조기로 바꿔 놨다.

    “반갑습니다.”

    내가 내는 기계음을 들은 프로게이머들이 움찔한다.

    오싹하다는 표정들이다.

    임요셉이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뭡니까? 그 복장은.”

    그러자, 입이 귀밑까지 찢어진 채 웃고 있는 엄재영이 얼른 나선다.

    “아아, 화상 때문에 가면하고 인조성대를 쓰신대.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아아.”

    엄재영의 말을 듣자 사람들은 그제야 납득하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임요셉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그래서. 왜 두 시간도 넘게 늦었습니까? 약속시간은 5시 반까지 아니었던가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는 태도.

    그러자 엄재영이 더 당황한다.

    “아니야 임마! 비가 오고 차도 막혀서 그랬어! 이분 잘못이 아니야!”

    “이분이라뇨? 우리 팀 입단하러 왔는데 왜 자꾸 존댓말 쓰세요?”

    “아직 계약 안 하셨잖아! 이 자식이 근데 아까부터 왜 이리 까칠해?”

    “아, 연습시간 뺏겼잖아요!”

    엄재영 감독과 임요셉은 또 티격태격 싸운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감회에 젖었다.

    ‘명장’ 엄재영과 ‘돌부처’ 임요셉. 그 둘은 공식 석상에 나와서도 항상 저렇게 아웅다웅 싸웠었다.

    ‘그 케미 보는 맛이 또 쏠쏠했었지.’

    그것을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직관할 수 있다니 감개가 무량하다.

    이래서 덕중의 덕은 성덕, 성공한 덕후라고 했던가?

    하지만.

    지금의 나는 까칠도도하다는 콘셉트.

    앞으로 프로 생활 편히 하려면 이런 상황에서는 세게 나가 줘야 한다.

    나는 임요셉을 향해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가 기다리랬나?”

    그러자.

    갑분싸. 갑자가 분위기가 싸해졌다.

    임요셉은 표정을 찡그렸다.

    “지금 뭐라고 했냐?”

    그의 입에서 존댓말이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태연하다.

    “누가 너희 보고 여기서 가만히 기다리라고 했냐고. 내가 보고 싶었다면 너희가 직접 마중을 나오든가 했을 일이지 왜 멍청하게 기다려 놓고서는 화를 내.”

    그러자.

    스무 명이 넘는 이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확 일그러졌다.

    금방이라도 우르르 덤벼들 것 같은 분위기.

    쏴아아아-

    유리로 된 천장을 때리는 빗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통유리 벽으로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빗물.

    약간의 정적이 흐른 뒤, 리더인 임요셉이 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글쎄,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면 그렇게 했겠지?”

    그리고 임요셉의 뒤로 랭킹 5위 이연호, 7위 송병건, 9위 최연석 등 세 명도 걸어 나온다.

    “오올~ 나불대는 걸 보니 실력에 꽤 자신이 있는 것 같은데.”

    “공식 랭킹도 없으신 분이 너무 콧대가 높으시네. 조금 낮춰 드려야겠다.”

    “불법리그에서 좀 놀았던 실력이 프로리그에서도 통할 것 같은가 보지?”

    그러자.

    엄재영 감독이 당황해서 우리 사이를 가로막았다.

    “이 녀석들이 왜 이래? 아이고, 죄송합니다. 우리 팀이 원래 화목한 분위기인데 이거, 비가 와서 애들이 좀 까칠한가…….”

    하지만. 나는 그런 엄재영에게 말했다.

    “어차피 입단 테스트는 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재밌겠네요. 이참에 한번 붙어 보는 것도.”

    나는 눈앞에 있는 네 명의 랭커들을 쭉 돌아보았다.

    임요셉, 이연호, 송병건, 최연석. 전부 다 한 시절을 풍미했던 추억의 랭커들.

    그들의 플레이를 보며 울고 웃던 지난날이 떠오른다.

    PC방의 짜장면, 희미한 담배연기, 헤드셋 너머로 들려오던 이 친구들의 함성, 승리, 영광, 눈물…그리고 함께 울고 웃고 소리 질렀던 젊은 시절의 나.

    그리고 지금, 나는 그들의 앞에 서 있다. 어쩐지 뭉클한 기분이 든다.

    …….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지금 이 자리는 나의 실력을 확실하게 증명해야 하는 자리.

    또한 연봉협상의 자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부러 조금 싸가지 없게 질러 본 것도 있다.

    ‘여기서 어떤 성과를 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연봉도,

    팀 내 대우도,

    그리고 장차 이 팀을 어떻게 장악하여 나가는지도.

    모든 것이 지금 이 자리에 달린 것이다.

    *       *       *

    한편.

    “하하하하. 붙어 보자는 건가? 나 이거 미치겠군.”

    임요셉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이마를 짚는다.

    현 한국 랭킹 1위인 그에게 누가 이렇게 오만불손하게 굴 수 있을 것인가?

    그로서는 참으로 신선한 경험임에 틀림없다.

    랭킹도 없이 띡 찾아온 뉴비.

    원래라면 3군으로 보내 설거지나 죽도록 시켜야 했지만…….

    ‘아무래도 친히 하늘 위의 하늘을 보여 줘야겠군.’

    임요셉은 든든한 동생들이자 자랑스러운 후배들인 이연호, 송병건, 최연석 등 1군 동생들을 돌아보았다.

    “누가 먼저 할래?”

    그러자, 세 명은 앞다투어 손을 든다.

    “제가 1:1 잘하는 거 아시죠? 먼저 할게요.”

    “아냐, 형 내가 먼저 갈게!”

    “제가 공식 랭킹이 제일 낮으니까 먼저 나갈게요!”

    셋 다 눈앞에 있는 건방진 후배를 꺾어 놓고 싶어 죽겠다는 표정이다.

    임요셉은 흐뭇한 표정으로 동생들을 돌아보다가 문득 구석에 있는 마태강과 눈이 마주쳤다.

    “태강이, 네가 나갈래?”

    임요셉이 묻자, 마태강은 그저 말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다.

    “난 됐어.”

    그러자, 팀 내 서열 2위인 이연호가 마태강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싸가지 없는 놈. 텃세 못 견디겠다면서 뛰쳐나갈 때는 언제고…….’

    마태강은 한번 팀을 탈주했다가 돌아온 전적이 있었다.

    급전이 필요하다며 연습실을 뛰쳐나가더니, 갑자기 다시 돌아와서는 아무 말 없이 독하게 연습만 한다.

    ……그 이후로 군기가 좀 잡혔나 했더니만 아직도 저 모양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마동왕은 마태강과는 느낌이 다르다.

    마태강이 박힌 돌을 빼러 온 굴러온 돌이라면…마동왕은 박힌 돌을 으스러트리러 온 설악산 흔들바위다.

    하지만.

    지금 여기 모인 1군 멤버들 중에 커다란 바위가 아닌 이는 없다.

    ‘기선제압을 해 놔야 해. 여기서 꺾어놓지 않으면 앞으로 골치 아플 놈 같다. ’

    임요셉은 동생들 세 명을 한데 불러 모았다.

    그리고 누가 제일 먼저 마동왕을 테스트 해 볼지 정하기 시작했다.

    “가위 바위 보로 순서를 정하자.”

    임요셉의 의견에 모두들 동의했다.

    이윽고, 네 명이 주먹을 한 데 모아 막 순번을 정하려는 순간.

    “얘들아, 형아가 시간이 많이 없거든?”

    마동왕의 건방진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내, 그는 눈앞에 있는 넷과 저 뒤에 서 있는 마태강을 한데 싸잡아 묶었다.

    그리고는 손바닥을 까닥거렸다.

    “귀찮으니까 깔끔하게 5:1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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