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71화 (71/1,000)
  • 71화 프로리그 데뷔! (1)

    [콰쾅! 우르르릉!]

    모니터 속.

    한 남자가 온 세상천지를 주름잡고 있다.

    주름잡고 있다는 것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그는 정말로 세상을 ‘주름 잡는다’.

    [우지지직!]

    그가 손을 뻗어 지면을 움켜쥐자, 대지에 거대한 ‘주름’이 생겨났다.

    [꿀렁- 꿀렁-]

    그 주름들은 이내 거대한 파도로 변해 출렁이기 시작했다.

    땅이 상하좌우로 요동치며 거대한 지진이 일어난다.

    [츠츠츠츠츠-]

    이내. 뒤집어진 땅이 빙글빙글 물결치기 시작했다. 거대한 흙의 회오리가 모든 것을 집어삼켜 버렸다. 마치 폭풍우 치는 바다를 보는 듯한 풍경.

    동시에.

    [그악! 기, 긱권……!]

    상대방의 입에서 항복 의사가 나온다.

    하지만.

    [뭐? 잘 안 들리는데?]

    그는 가면 아래로 그저 싱긋 웃어 보일 뿐이다.

    그리고.

    뻐억!

    방금 전까지 대지에 지진을 일으켰던 주먹이 상대방의 안면에 적중했다.

    상대의 쥐꼬리만 한 HP가 모조리 증발하는 동시에.

    [픽-]

    동영상은 종료되었다.

    그리고.

    이내 유튜뷰 채널의 메인 화면으로 전환됨과 동시에, 동영상의 제목이 큼지막하게 떴다.

    <무명고수 마동왕 VS 중국랭커 서초패왕>

    <충격반전! 암흑랭킹에서 벌어지는 흔한 일!?>

    <양지에서의 랭킹은 잊어라! 어둠의 랭킹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같은 동영상들이 제목만 바뀐 채 수없이 공유된다.

    그리고, 원본 동영상이 올라온 곳은 단 하나.

    <마동왕>

    정체불명의 한 스트리머가 운영하는 채널.

    이곳에 올라온 동영상은 딱 하나뿐이다.

    스트리머 본인이 불법 토토리그에 참가해 한국, 중국, 일본의 랭커들을 싹 발라 버린 뒤 우승 상금을 챙겨 가는 영상.

    그것도 원테이크 기법으로 찍은 영상이다.

    그 말인 즉슨.

    이 한 영상 안에 한, 중, 일 랭커들이 모조리 묵사발나는 게 전부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어마어마한 성과를 이룩해 낸 존재에게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       *

    “대체 누구야 이게!?”

    널찍한 사무실에는 놀라움과 감탄, 흥분, 간절함, 다급함 등등이 뒤섞인 경탄이 터져 나왔다.

    이제 40대쯤 되었을까?

    후덕한 체구에 안경, 가르마가 단정한 중년 남성이 모니터를 바라보며 두 주먹을 불끈 말아 쥐고 있었다.

    엄재영.

    서울의 프로게이머 구단 ‘국K-1’을 이끌고 있는 감독이다.

    생긴 지 1년도 되지 않은 이 팀을 현 한국 최강으로 만든 것은 다 그의 천재적인 능력 덕문이다.

    현 한국 랭킹 1위 임요셉, 5위 이연호, 6위 마태강, 7위 송병건, 9위 최연석 등등을 키워 내 보유하고 있는 것 역시 다 그의 눈썰미가 일찍부터 빛을 발한 결과였다.

    한낱 고등학생, 혹은 다른 팀의 2군 연습생이었던 그들을 쏙쏙 골라 스카우트해 집중적으로 키워낸 것이 바로 그였으니까.

    엄재영. 그는 이처럼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탁월한 사내였다. 그렇기에 한국 최고의 명감독으로 이름 높은 것이리라.

    그리고.

    그는 지금 실감하고 있었다.

    ‘첫눈에 반한다는 소설 같은 이야기 요즘 누가 믿나요~’

    ‘운명이란 없다고 나 역시 믿어왔죠 그댈 만나기 전까진~’

    귓가에 들려오는 감미로운 음악.

    그렇다.

    엄재경, 그는 ‘마동왕’을 본 순간 깊은 사랑에 빠져 버린 것이다!

    ‘보석이다!’

    이건 원석도 아니다.

    더 이상 가공할 필요도 없는 보석 그 자체!

    그것도 어중간한 보석도 아니라 수백 캐럿짜리 다이아다!

    “어디 등록되어 있는 프로게이머는 아니겠지!?”

    엄재영은 황급히 마동왕의 신상을 살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그 어느 프로팀을 뒤져도 저런 스타일을 사용하는 이는 없었다. 그것은 중국, 일본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른 팀에게 뺏길 수 없어! 얘들아! 당장 컨택 쪽지 보내라!”

    엄재영의 말에, 수많은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하지만.

    “연락할 방법이 없습니다!”

    “메일도 전화번호도 없어요!”

    “유튜뷰 쪽지로밖에는…….”

    직원들의 대답은 하나같이 다 부정적이었다. 마동왕의 채널 자체가 아무런 정보가 없는 가계정이었기 때문이다.

    엄재영은 손으로 얼굴을 짚었다.

    “안 돼. 행여나 다른 나라 프로팀으로 가기라도 하면 국가적 손실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붙잡아야 하는데…….”

    “일단 입단 권유 쪽지 계속 보낼까요?”

    “그래. 계속 보내! 아주 도배를 해 버려! 그렇다고 무성의하게 복사 붙여넣기 하지 말고! 전부 다 다른 내용으로! 중복되는 내용 없게! 아침, 점심, 저녁으로!”

    “으으, 연봉이나 복지조건 같은 건 이미 다 설명했는데…무슨 내용을 또 보내야 할지…….”

    “그럼 오늘 우리 애들이 먹은 점심밥 메뉴라도 써서 보내! 밥은 잘 드셨나요! 똥은 잘 싸셨나요! 기분은 어떤지, 날씨는 좋은지, 미세먼지는 좀 어떤지, 부모님 안부는 좀 어떤지! 뭐라도 써서 보내란 말이야!”

    엄재영이 이렇게 안달복달하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직원들은 전부 놀란다.

    하지만 그럴 법도 했다.

    마동왕.

    그는 프로게이머가 성공하기 위한 조건을 전부 다 싸그리 갖추고 있었다.

    중국, 일본 랭킹 탑 티어들을 압도적으로 처발라 버리는 실력.

    온 세상천지를 휩쓸어 버리는 광역 자연재해급 능력.

    두 주먹으로 상대를 피떡처럼 으깨 버리는 상마초 광전사 스타일.

    과묵하고 신비주의적인 카리스마, 어둠의 리그에 몸담고 있던 빌런 출신.

    섬세하고 세밀한 컨트롤 실력과 미친놈 같은 광기, 거기에 승부사 특유의 투지까지!

    이쯤 되면 톱스타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이나 다름없다.

    대중들이 좋아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는, 말 그대로 ‘흥행 보증 수표’인 것이다.

    “어떤 별명이 붙을까? 폭군? 괴물? 광전사? 아냐, 마동왕 그 자체로도 괜찮겠어.”

    엄재영은 마동왕의 PK영상을 몇 번이나 되돌려 보며 홀린 듯 중얼거렸다.

    그때.

    옆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차갑게 생긴 인상, 커다란 키.

    팀 내 랭킹 1위의 에이스이자 현 한국 랭킹 1위인 임요셉이었다.

    “잘하긴 잘하나 보네요.”

    “……너 이 영상 안 봤냐?”

    엄재영이 묻자, 임요셉은 피식 웃었다.

    “저는 불법 토토충 영상은 안 봅니다.”

    “음…그래도 한번 보지 그래? 무투가 스타일을 분석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텐데.”

    “서초패왕을 꺾었다는 말은 들었어요. 하지만 그 녀석, 불법 리그에서 놀면서 기량이 많이 떨어졌던 놈이에요. 그런 놈쯤은 저도 얼마든지 이길 수 있어요.”

    임요셉의 자신감에 엄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임요셉 역시도 엄재영이 첫눈에 반한 인재 중 하나였으니까. 그라면 이런 오만한 말을 내뱉을 자격이 있다.

    그때.

    임요셉이 넌지시 물었다.

    “……감독님.”

    “왜?”

    “혹시 BJ고인물……. 그 사람은 컨택 안 하시나요?”

    임요셉의 말에 엄재영은 인상을 찌푸렸다.

    “컨택하려고 했는데 연락을 당최 안 받더라.”

    “조금 더 적극적으로 어필해 보시지.”

    “관두려고. 그 사람은 잘하긴 잘하는데 흥행성은 별로 없을 것 같아. 얄밉게 도망 다니는 것만 잘하잖아. 그리고 알몸으로 다닌다는 점에서도 조금…아니 뭐, 와준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인데. 도통 답장이 없으니까.”

    “에이, 그래도 저 마동왕이라는 놈보다는 나을 것 같은데.”

    “얌마. 너는 가서 연습이나 더 해. 신인 컨택은 감독한테 맡기고.”

    엄재영은 손사래를 치며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래도 마동왕 영상을 한 번 더 돌려볼 심산인 것 같다.

    하지만 임요셉은 자리를 뜨지 않고 계속 깐족거렸다.

    “어둠의 리그에서 놀던 놈이면 돈맛을 봐서 이제 양지로는 잘 안 올라오려고 할 걸요? 우리 구단 연봉도 암흑랭킹에서 도는 돈에 비하면 쥐꼬리고…….”

    “이제 불법 리그 다 폐지됐잖아. 나라에서 단속한다고. 그러니 거기서 놀던 놈들도 대거 양지로 이동할 거야. 마동왕을 포섭하기엔 최적기다.”

    엄재영은 간절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들여다본다.

    그걸 본 임요셉은 입술을 삐죽였다.

    “아, 저를 좀 그렇게 챙겨줘 봐요!”

    “헛쭈? 뭐야, 너. 질투하냐?”

    “질투하는 게 아니라요! 요즘 너무 마동왕 마동왕 하시잖아요! 어차피 우리 팀으로 올 것 같지도 않은데 왜 그렇게 열정…….”

    그때였다.

    임요셉의 말을 끊기라도 하는 듯, 엄재영의 모니터 위에 새로운 메일 표시가 떠올랐다.

    “...!”

    그러자, 엄재영은 빛의 속도로 메일을 클릭했다.

    <특급정보! 블루베리 가장 싼곳! 부여 옥산면 옥산북로 010990*658*...무농약 블루베리&아로니아, 손수 따서 보내드리는...>

    “에이 씨, 광고잖아!”

    엄재영은 짜증을 내며 메일을 닫았다. 그러자 옆에서 임요셉이 또다시 깐족거린다.

    “그것 봐요. 안 온다니까. 애초에 한국인인지도 확실하지 않잖아요.”

    “조용히 안 해? 초치지 말고 가서 연습이나 하라고.”

    엄재영과 임요셉이 투닥투닥거리고 있을 때.

    띠링!

    또다시 메일 오는 소리.

    “또 스팸인가?”

    엄재영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

    한데?

    “가, 감독님. 이거…….”

    모니터를 바라보는 임요셉의 표정이 어째 심상치 않다.

    “이 자식아, 안 속는다.”

    엄재영은 피식 웃으며 임요셉의 귀를 잡아당긴다.

    한데?

    귀를 잡아당겨도 임요셉의 멍한 표정을 풀리지 않는다.

    “……?”

    문득.

    엄재영은 임요셉의 두 안경알에 비친 모니터 화면을 보고 말았다.

    두 안경알에는 다음과 같은 메일 내용이 비쳐 보인다.

    보낸사람: / 마동왕

    연봉...  / ...얼마?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