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공중파 진출 (3)
귀여운 여우마냥 샐쭉한 눈꼬리. 오똑한 코와 앙증맞은 입술.
그 모든 것들이 조막만 한 얼굴 속에 다 들어가 있다.
터질 것 같은 가슴은 한껏 오므린 팔 때문에 더욱 더 두드러진다.
“앗! 별조각 100개. 너무 고마워 오빠♥”
유다희.
그녀는 웃는 얼굴로 에이프리카 개인방송을 하고 있었다.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따라와 준 오빠들 넘나리 고마운 것~ 알라뷰, 하트뿅뿅♥ 내가 사랑하는 거 인정하는 부분? 다음 방송 때는 B급 몬스터 공략할 테니 꼭 와 줘요♥”
이내. 유다희는 에이프리카 방송을 종료했다.
캡술과 연결된 모니터가 이내 검게 물들었다.
푸슉-
관뚜껑 같은 캡슐 문이 열리자.
“아, X발.”
유다희가 몸을 일으킨다.
그녀의 표정은 아까 시청자들을 향해 짓던 것과는 180도 달랐다.
찌푸려진 미간, 구겨진 눈 밑 주름.
‘더럽고 치사해서 X같다’고 온몸으로 외치고 있는 듯한 저 표정.
“하트뿅뿅♥은 니기미.”
유다희는 캡슐에서 일어나자마자 노출도 심한 옷들을 훌훌 벗어 버렸다.
그러자 그녀의 군살 없는 몸매가 훤히 드러난다. 등과 다리에 있는 도깨비 문신이 인상적이었다.
칙-
그녀는 담배 한 개비를 빼 물었다.
그리고는.
콰-직!
발을 들어 뒷꿈치로 책상 위의 캠코더와 노트북을 찍어 버렸다.
움푹 패이는 노트북 화면. 단 한 방으로 전자기기의 수명은 다했다.
“아아아아악! 빡쳐! 내가 왜 이딴 인방을 해야 하는 거야!”
유다희는 노트북을 박살내며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
남동생 유창. 그리고 그의 밑에서 수금을 하는 부하들은 전부 입을 꾹 다물고 바닥만 바라보고 있다.
사냥도 잘 되고 길드도 잘 되고 있던 일상이었다.
그 모든 것들은 단 한 놈 때문에 망했다.
고인물!
그 빌어먹을 놈에게 죽은 게 벌써 몇 번째냐?
사망 패널티와 공탁금 삥 뜯긴 것 때문에 손해 본 것을 생각하면 정말 분노로 인해 뇌가 타 버릴 정도다.
그나마 유다희의 개인방송 후원수익이 없었더라면 길드 운영도 힘들었을 것이다.
“내 돈! 그 삥 뜯긴 돈만 아니었어도 이딴 거지같은 방송은 안 하는데!”
유다희는 주먹으로 노트북을 쾅쾅 내리찍었다.
“…….”
유창은 그걸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저 노트북…비싼 건데…98만원…….’
누나가 노트북 가격을 알았으면 저러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용기는 없다.
자칫하면 박살하는 게 노트북 화면이 아니라 자기 얼굴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었으니까.
그때.
위이이이이잉…….
핸드폰 진동이 울린다.
“누구야! 빨리 받아!”
유다희는 핏발 선 눈으로 버럭 소리 질렀다.
그러자, 무릎 꿇고 있던 조폭 중 하나가 슬쩍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저…송구합니다만……. 누님 건데요?”
“…….”
유다희는 신경질적인 태도로 걸어가 책상 위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이내.
전화를 받은 유다희의 목소리가 확 바뀐다.
“어머 오빠♥ 오늘 방송 잘 봤다고? 너무 고마워. 오늘 후원금도 많이 쏴 줬던데. 무리하는 거 아냐?”
표정은 여전히 악귀의 그것 같았지만,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내 귀의 캔디’마냥 달콤하기 그지없다.
‘무슨 장산범도 아니고…….’
한편. 유다희의 통화는 길어진다.
“으응? 한번 만나자고? 미안해. 오프 만남은 좀 어려워. 아잉, 나 낯 엄청 가리는 거 알잖아. 미안해. 방송에서만 사랑해 줘. 응응. 아냐 내가 미안하지. 알겠어, 오빠. 들어가. 고마워♥”
이윽고.
통화가 끝났다.
“아오 이 미친 X끼! 만나서 뭘 쳐 할라고! 확 마!”
유다희는 통화가 끝나마자 핸드폰을 콘트리트 벽에 집어던져 부숴버렸다.
빠각!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박살나는 전자기기.
유창은 그걸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저 핸드폰…비싼 건데……. 109만원….’
바로 그때.
“저, 형님.”
떡대 부하 중 하나가 유창에게 살금살금 다가와 뭔가를 귀뜸했다.
“…….”
그러자 유창의 두 눈이 커졌다.
“야, 임마. 왜 그걸 지금 말해.”
“죄송합니다.”
“빨리 가서 TV 틀어 놔.”
유창은 부하에게 꾸사리를 주고는 슬쩍 일어났다. 그리고 유다희를 불렀다.
“커흠. 누나.”
“……뭐야?”
유다희는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눈에는 핏발이 서 있다. 검은자위와 붉은자위만 보일 정도.
꿀꺽-
유창은 마른침을 한번 삼키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켠왕’ 할 시간이야….”
그러자.
“어머?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나?”
유다희의 표정이 확 바뀐다.
그렇다.
‘켠김에 제왕까지.’
이것은 유다희가 제일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이다.
그녀는 이 프로그램의 엄청난 골수 애청자였으며 1화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본방을 사수했었다.
“크, 요즘 이거 보는 게 유일한 삶의 낙이라니까.”
유다희는 신이 난 표정으로 사무실 구석의 냉장고를 열었다. 그리고는 캔맥주 다섯 개와 마른 오징어 한 포를 꺼내왔다.
“……휴.”
사무실에 있는 모든 떡대들이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제야 겨우 분위기가 조금 진정되는가 싶다.
…….
한데?
[네, 오늘 ‘켠김에 제왕까지’에 특급 게스트가 나옵니다! 여러분 놀라지 마세요!]
MC로 나온 엄재영이 호들갑을 떨며 말한다.
“오오. 놀라지 않을게요 엄사마♥ 근데 누구지? 누굴까?”
유다희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오징어 다리를 뜯는다.
그리고.
이내 TV 화면에 오늘의 게스트가 비춰진다.
그 순간.
“꺄아아아아아아아악!”
유다희의 고성이 울려 퍼지며.
콰-쾅!
TV가 박살났다.
유창은 그걸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저 TV…비싼 건데……640만원…….’
* * *
한편.
나는 이제 막 LGB 방송국과의 영상 접선 절차를 끝냈다.
“이제 제 시야가 바로바로 방송으로 송출되는 건가요?”
그러자.
허공에 떠 있는 작은 스크린 속에서 홍영화의 얼굴이 나타났다. 얼굴만 동동 떠 있는 게 마치 도깨비불 같은 모양새.
그녀는 바로 대답했다.
[아뇨! 바로 나가는 건 아니에요. 녹화영상만 고화질로 떠 놨다가 자막도 입히고 편집도 하고, 이래저래 할 게 많아요.]
“엥? 그럼 방송으로 나가게 되는 건 언젠가요?”
[빠를 거예요. 2주 후에 바로 나가요.]
“아아, 확실히 빠르네요. 역시 LGB의 추진력은…….”
[헤헤. 아니에요. 저희도 콘텐츠가 없어서 허덕이고 있었는데요 뭐.]
홍영화는 정말로 작은 도깨비불이라도 된 양 내 주변을 빙글빙글 맴돌았다.
내 시점 말고도, 제 3자를 위한 사이드 시야를 작은 화면으로 따로 제공하기 위해 조치한 것이다.
“자, 그럼 ‘용자의 무덤’으로 가 볼까?”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용자의 무덤’
108번뇌(百八煩惱) 콘셉트로 만들어진 이벤트 던전이다.
108개의 각 층마다 랜덤한 보스가 1마리씩 등장하며 그것을 격파해 가며 탑의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된다.
출연하는 몬스터의 등급은 다음과 같다.
01~15층-C
16~30층-C+
31~45층-B
46~60층-B+
61~75층-A
76~90층-A+
91~107층-S
108-S+
높은 언덕 위에 세워진 108층의 탑.
나는 그것을 올려다보며 15년 뒤의 미래를 떠올렸다.
‘내가 뉴스에서 마지막으로 본 건 106층 클리어 소식이었지?’
그렇다.
15년 뒤의 미래에서도 이 던전은 결국 올클리어 되지 못했다.
107, 108 번뇌층은 그 누구도 클리어하지 못한 마의 구역. 게임 서비스가 종료되어 갈 무렵까지도 공략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었다.
참고로 나는 템빨, 돈빨로 90층까지는 가 본 적 있다.
91층부터는 정말 프로급 탑 티어들의 영역이었고 100층부터는 프로들 중에서도 천외천의 영역이라나?
‘뭐 보고 듣는 건 많이 했는데. 직접 겪어 본 적이 있어야지?’
나는 인류가 공략하는 데 성공한 106까지의 상황을 거의 다 알고 있었다.
수많은 개인방송과 뉴스 기사, 공략집들을 보고 또 봐온 탓이다.
나는 옆에 있는 홍영화의 도깨비불을 향해 물었다.
“현 시점 최고 기록이 몇 층이죠? 솔로 레이드로요.”
[음. 게임 출시 이후 10개월 정도 흘렀는데…솔로잉 최고 기록은 45층이에요!]
“호오? 꽤나 높이 올라갔네요. 누가 세운 건가요?”
[프랑스 랭킹 1위, 미국 랭킹 1위, 한국 랭킹 1위가 공동으로요.]
팩트를 전하는 홍영화의 말에는 옅은 기대감이 실려 있었다.
나는 공식 랭킹에 등록되어 있지 않지만, 왠지 랭킹 1위들의 기록에 거의 근접하거나 심지어 넘어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한편, 나는 생각했다.
‘45층에서 다들 떨어졌다면, 아직 탑 티어 급 프로들의 수준이 B+급 몬스터를 1:1로 잡을 정도는 안 된다는 건가.’
하긴 당연한 것이다.
내가 A+급 몬스터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놈들의 생태와 패턴을 완벽하게 알고 있는데다가 꼼수까지 썼기 때문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실력으로 잡은 건 아니다.
그러니 아무런 정보도 없는 유저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불가능한 것이겠지.
옆에서는 홍영화가 재잘거리는 소리가 연신 들려온다.
[고인물 님이라면 분명 하실 수 있어요! 야무지게 파이팅! 아자아자!]
옆에서 미녀가 열정적으로 응원하니 기분은 좋다.
‘예전 생에서는 유다희가 해 줬었지 아마?’
그러고 보니 그렇다. 13년 쯤 전, 용자의 무덤 90층을 공략할 때 유다희가 도깨비불 모드로 열심히 응원해 줬었는데.
‘그리고 사이드각 시야로 녹화한 방송을 고스란히 자기 채널에만 먼저 올렸지. 후원금도 다 가로채고.’
하여간 지금 생각하면 괘씸하기 짝이 없다니까. 뭐 자청해서 호구가 된 입장에서야 할 말 없다만.
‘이번 생에서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겠다.’
나는 머리를 흔들어 잡생각을 털어 버렸다.
과거의 시시콜콜한 원망을 곱씹을 때가 아니다.
나는 지금 이곳 ‘용자의 무덤’에서 더욱 중요한 것을 얻으려 하고 있었다.
“고작 세계 신기록이 중요한 게 아니지.”
그걸 세워서 공중파에 방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그것은 겸사겸사일 뿐.
진짜 중요한 것은 이곳에서 ‘3신기’의 마지막 아이템을 구할 수 있는 단서를 찾는 것이다.
1. 3신기의 마지막 아이템에 관한 단서를 찾음.
2. 3신기를 얻음.
3. 신을 죽임.
심플하게 세 파트로 요약되는 것이 나의 미래 계획.
“자, 질질 끄는 건 질색이니 던전으로 바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몇 층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기대해 주세요!”
[오오오! 상남자특) 바로 다이브함! 세계 신기록 가즈아아아!!]
홍영화가 흥분에 겨워 환호성을 지른다.
동시에.
안내 메시지가 떴다.
-띠링!
<용자의 무덤 ‘제 1번뇌층’에 입장 하셨습니다>
<랜덤 몬스터가 등장합니다>
자, 어디 한번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