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63화 (63/1,000)
  • 63화 공중파 진출 (1)

    방송국 LGB.

    2018년 3월 21일에 개국한 한국 최초의 가상현실 게임 전문 방송국이다.

    한국 최초의 가상현실 게임 방송, 각종 대회, 온라인 방송, 위성 중계 등등, 한국 E스포츠의 역사를 이끌어 나가는 방송국이라고 할 수 있다.

    주로 케이블 TV에서 방영해 왔지만 금년도부터는 공중파에서도 볼 수 있을 만큼 입지가 나날이 커지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에 힘입어, LGB는 프로 팀 ‘국K-1’을 인수했고 나아가 국내 ‘뎀’ PK리그를 최초로 개최하는 등 많은 업적을 세웠다.

    그 외에도 모든 게임 콘텐츠 방송을 100% 자체 제작하며 그 중에는 현 10대 20대 시청률 상위권을 달리고 있는 프로그램이 다수 포진되어 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압도적인 시청률을 자랑하는 프로그램은 바로 ‘켠김에 제왕까지’ 라는 프로그램이었다.

    …….

    물론.

    이 모든 것들은 지금으로부터 3년 뒤의 타이틀이다.

    *       *       *

    “야! 홍영화! 너 회의록 작성 했냐 안 했냐!”

    파티션 너머로 벼락같은 호통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책상에 앉아 졸고 있던 여자 하나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흐헣!?”

    부스스한 머리, 화장기 없는 맨얼굴에 흐르는 개기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출 수 없는 미모가 엿보인다.

    후줄근한 셔츠와 펑퍼짐한 청바지, 꼬질꼬질한 무릎담요 위로도 그녀의 이기적인 몸매와 비율은 도드라진다.

    “네, 넵!”

    홍영화. 올해 25살.

    게임에 대한 넘치는 열정으로 이곳 ‘켠김에 제왕까지’ 프로그램의 PD가 된 막내.

    그녀는 입가의 침을 닦은 뒤 부리나케 달려갔다.

    그러자.

    사무실 중앙에 서 있는 깡마른 남자가 하나 서 있는 게 보인다. 극도의 초조함과 분노로 뒤범벅된 표정이다.

    조태호 부장.

    올해 39세.

    지독한 게임광이자 일중독자인 조태호 부장은 자신이 제작하는 콘텐츠에 단 하나의 오차가 발생하는 것도 용납 못하는 인물이다.

    그는 눈앞에 새앙쥐처럼 웅크리고 선 홍영화를 마구 털기 시작했다.

    “내가 어제 회의록 정리 다시 해오라고 했냐 안 했냐!”

    “하, 하고 있었습니다!”

    “하긴 뭘 해! 꿈에서 했냐!? 입가에 침 좀 닦아라!”

    “헉! 죄송합니다! 삼 일 째 집에 못 가서…….”

    홍영화는 황급히 손바닥으로 입가의 허연 침 자국을 훔쳤다.

    조태호 부장은 계속해서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자식들아! 정신 똑바로 좀 차려! 우리 다음 주면 콘텐츠 바닥난다고! 그나마 있는 쥐꼬리만 한 예산도 다 짤리는 꼴 봐야겠냐!?”

    그는 홍영화를 비롯한 모든 팀원들을 향해 다그치기 시작했다.

    ‘켠김에 제왕까지’

    이 프로그램은 영세 방송국인 LGB의 유일한 보물이다.

    게임영상콘텐츠사업부 조태호 부장이 목숨을 걸고 사수하고 있는 마지막 구명줄이기도 했다.

    프로그램의 주된 얼개는 다양한 게임 중 주어진 1개의 게임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엔딩을 보는 것.

    하지만 요즘에는 트렌드를 반영하여 90% 정도를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만 쏟고 있는 실정이었다.

    한데?

    요즘 개나소나 속속 게임 관련 채널을 편성하고 있는 바람에 시청률은 날이 갈수록 저조한 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타 방송국들이 유명 연예인 MC나 게스트, 자극적이고 잡다한 다른 콘텐츠들을 휘발적으로 끼워 넣어 소모한 결과였다.

    하지만 조태호 부장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게임 방송은 게이머들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정론이 바로 그의 신념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예산은 오로지 알차고 흥미있는 게임 콘텐츠로.

    그 외의 모든 예산 집행은 일절 허용하지 않는다.

    ……뭐, 사실 다른 데 낭비할 돈도 없긴 했지만.

    아무튼.

    ‘…무언가 참신한 콘텐츠를 준비해야 하는데.’

    조태호 부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 가다간 가상현실 게임 방송 선두주자의 체면이 땅에 떨어진다.

    무언가 국면을 반전시킬 묘수가 필요했다.

    하지만.

    가뜩이나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는 LGB에서는 지금 ‘켠김에 제왕까지’의 방송 편성 예산까지 줄이려 들고 있었다.

    ……뭔 자연 방송 전문 방송국으로 전환할 계획을 짜고 있다나?

    그쪽이 차라리 돈이 될 것 같다고?

    게임 외길 인생만 걸어왔던 조태호 부장으로서는 미쳐 버릴 일이다.

    “좀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내란 말이다 이것들아! 획기적인 콘텐츠 없어!? 이러다가 우리 다 뿔뿔이 타 부서로 날아가! 너네 ‘토종 양서류의 생태, 올챙이부터 떡두꺼비까지’, ‘본격 분석! 북부지방 나비의 산란기’……뭐 이런 프로그램 찍고 싶어!?”

    조태호 부장의 말에 모든 직원들은 파티션 아래 고개를 두더지처럼 파묻었다.

    하지만 어쩌랴? 사람의 뇌라는 게 쥐어짠다고 무조건 즙이 나오는 게 아닌 것을.

    “하아…….”

    조태호는 고개를 저었다.

    찌릿-

    이내, 그의 시야에 홍영화의 모습이 다시 들어왔다.

    “…….”

    막내 PD인 홍영화는 조태호의 서슬 퍼런 눈빛에 기가 눌려 잔뜩 쪼그라들어 있었다.

    그 주눅 든 모습이 너무나도 가녀리고 청순해 보인다.

    어지간한 남자였다면 쓴 소리 한 마디 못했겠지만…게임광인 조태호 부장은 애초에 3D 여자의 매력 따위는 잘 모른다.

    조태호는 홍영화에게 까칠하게 물었다.

    “야, 막내.”

    “……넵!”

    “저번에 회의록 작성한 거 어딨어?”

    “…어, 어딨지?! 금방 찾아올게요!”

    허둥거리는 막내를 보며, 조태호 부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됐고, 기억나는 내용 뭐 있냐?”

    조태호 부장이 묻자, 홍영화는 왼쪽 상단을 향해 시선을 맞춘 채 더듬더듬 말했다.

    “으음, 유쾌하고 신선한 게스트를 모셔서 게임 방송을 함께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개그맨이나 아이돌 말고, 현업에서 뛰는 랭커로요.”

    “…좋아. 잘 기억하고 있네. 후보자로는 누가 나왔었지?”

    “음……. 현 ‘국K-1’ 프로팀의 핫이슈 랭커 투신. 아니면 게임 잡지 모델 미녀 삼총사 금은동 자매. 음, 그것도 아니면 유명한 신생 길드의 마스터이자 인기 여캠 BJ 유다희. 아! 급식 패밀리가 떴다?의 인천연합 길드도 요즘 제법 주목을 끄는…….”

    홍영화가 더듬더듬거리면서도 회의록의 내용을 정확히 기억해내자, 조태호 부장의 눈도 조금은 덜 사나워졌다.

    “잘 기억하고 있네.”

    “…헤헤.”

    “웃어?”

    “…….”

    홍영화가 입을 다물자, 조태호 부장은 미간을 팍 찌푸렸다.

    “그런 게스트들 좋아. 좋은데, ……뭐랄까, 한 방이 없어. 다른 프로그램들을 누르려면 더 강한 임펙트가 있어야 해. 그런 게스트나 콘텐츠 없을까?”

    그러자, 모든 직원은 칼라의 신경삭을 통해 같은 생각을 공유한다.

    ‘X바! 그걸 알면 벌써 찾아왔지.’

    하지만 조태호 부장이 악의가 있어서 이렇게 버럭버럭 소리치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모두가 안다.

    그는 그저 게임을, 이 부서를, 팀원들을, 그리고 시청자들을 누구보다도 사랑할 뿐 나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걸 알기에 모두들 답답한 표정으로 한숨을 쉴 수밖에 없는 것이다.

    …….

    바로 그때.

    “…에?”

    자신의 노트북을 바라보던 홍영화가 문득 김빠진 소리를 냈다.

    그러자 조태호 부장의 이마에 또 핏줄이 솟는다.

    빠릿빠릿한 기합 소리가 들려와도 모자랄 판에 이런 멍청한 소리라니.

    “야 막내! 기합 안 넣지!? 누가 사무실에서 그런 바보 같은 소리 내래!?”

    하지만.

    “…….”

    홍영화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마치 주변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리는 것마냥.

    “얼쑤? 저것이 밤 몇 알 까먹더니 아주 그냥 넋 놓고 근무하는구만. 야! 너 혼자 날밤 깠냐? 여기 집에 못 들어간 지 4일 이하다 손 들어 봐!”

    화가 난 조태호 부장이 저벅저벅 걸어와 홍영화에게로 다가간다. 아주 단단히 악에 받친 표정으로.

    파티션 너머로 홍영화를 걱정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으아, 오늘도 역시 분위기 헬이네.”

    “후우, 막내 괜찮을까? 쟤 오늘 새벽까지 일했던 앤데….”

    “……그렇게 따지면 부장님은 일주일 내내 한숨도 못 주무셨지.”

    “으으, 또 된통 깨지겠다. 막내 가엾어….”

    직원들은 모두 침울한 표정으로 홍영화를 바라본다.

    하지만.

    “……에?”

    호통 소리 대신, 또다시 요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이번에는 홍영화가 낸 것이 아니었다.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홍영화의 옆으로 다가온 조태호 부장.

    바로 그가 낸 소리였다.

    “…….”

    “…….”

    멍한 표정으로 노트북을 바라보고 있는 홍영화.

    그리고 그녀의 옆으로 다가간 조태호 부장 역시도 같은 표정으로 그녀의 노트북을 응시한다.

    “……?”

    그러자, 호기심을 느낀 직원들이 하나 둘씩 파티션 위로 머리를 들었다.

    이내. 사람들이 홍영화의 노트북 앞으로 삼삼오오 모여든다.

    모니터에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떠 있었다.

    [방송 출연하겠습니다]

    -From. 고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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