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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60화 (60/1,000)
  • 60화 짭 (2)

    도플갱어가 셋.

    마동왕의 스텟과 특성을 고스란히 사용할 줄 아는 녀석들이다.

    ‘큰일인데. 셋이라니.’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변신한 도플갱어의 전투력은 오리지널의 33.3%.

    도플갱어를 세 번 보면 죽는다는 말에서 나온 설정이다.

    실제로.

    도플갱어가 셋 모이면 이론상으로는 오리지널의 99.9%에 해당되는 힘을 낼 수 있다.

    그러니 역으로 오리지널을 죽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심지어 놈들은 변신한 직후부터 본체를 향한 이유 없는 적개심을 품도록 설정되어 있으니 아주 귀찮으면서도 곤란한 일이다.

    콰쾅!

    두 명의 마동왕이 오른손을 들어 지면을 때린다.

    우르릉-

    묵직한 지진파가 일어 나를 덮쳐왔다.

    “쳇.”

    나는 재빨리 마동왕의 아이템을 벗었다.

    ‘지진골렘의 무한건틀릿’과 ‘개미귀신의 손톱’을 벗고 ‘깎아 내는 단말마’를 들었다.

    무거운 건틀릿 두 개가 벗겨지자 몸이 확 가벼워졌다.

    ‘아, 역시 벗고 다니는 게 편하다니까!’

    이 맛에 중독되면 나중에 다른 옷 못 걸친다.

    파팟!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점프해 지진을 피해 냈다.

    하지만.

    마동왕 하나가 뒤에서 왼손을 쓴다.

    츠츠츠츠츠츠-

    놈이 왼손을 지면에 대고 빙글빙글 젓자, 이내 거대한 모래 소용돌이가 생겨 주변을 에워쌌다.

    모든 것을 중앙으로 빨아들이는 와류(渦流)!

    그 모습을 본 드레이크가 기겁했다.

    “왜, 왜 이렇게 잘 싸우지? 인공지능이 이 정도 수준으로 컨트롤이 가능한가?”

    지진과 와류를 적절히 섞어 쓰는 세 명의 마동왕. 그들의 연계 합격을 본다면 이런 말이 나오는 것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쩌다 그런 거지 뭐.”

    내 말대로다.

    마동왕의 독문기술인 ‘지진’과 ‘와류’

    이 두 특성은 굳이 세밀한 컨트롤이 필요 없다는 장점이 있다.

    광역기. 뛰어난 파괴력. 딱히 컨트롤이 필요 없다는 것.

    이 세 가지가 마동왕의 도플갱어들을 이토록 강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

    컨트롤이 없는 인공지능의 수준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니까.

    하지만.

    '어림도 없지.'

    진짜 마동왕의 전투력을 따라오려면 한참 멀었다.

    쿠쿵-

    두 명의 마동왕이 동시에 와류를 시전했다.

    츠츠츠츠츠- 퍼퍽! 퍼퍼퍽!

    두 개의 소용돌이가 생겨나다가 말았다.

    그것들은 중간에 부딪쳤고 이내 서로를 잡아먹으며 모양을 일그러트리기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빨아들이는 힘이 확 약해졌다.

    쿠쿵!

    마동왕 하나가 지진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그것보다 내 깎단이 훨씬 빨랐다.

    뿍-

    나는 지진을 피해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고 이내 마동왕 하나의 뒷덜미에 송곳을 박아 넣었다.

    [끄륵!]

    마동왕은 재빨리 오른손을 뻗어 나를 움켜쥐려 했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사각지대에 몸을 절묘하게 숨기고 있었기에 맞지 않는다.

    “‘지진골렘의 무한건틀릿’은 어깨 부분의 뽕이 너무 툭 튀어나와 있지. 등에는 손이 잘 안 닿을 걸?”

    내 아이템의 약점은 내가 제일 잘 안다.

    나는 오른팔을 뒤로 젖히지 못해 낑낑거리는 마동왕을 보며 피식 웃었다.

    뿍-

    놈이 왼손을 뻗기 전에, 나는 깎단으로 놈의 어깨를 한 번 더 찔러 주었다.

    네, 도트 데미지 들어갑니다.

    촤악-

    마동왕의 몸에 송곳 구멍이 나며, 시커먼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이크!”

    나는 잽싸게 몸을 뒤로 뺐다.

    치이이익-

    마동왕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시커먼 혈액에는 바실리스크의 맹독이 깃들어 있다.

    나의 몸을 흉내 내어 변신한 것이니 당연하다.

    나는 엄지손가락을 깨물고는 놈의 상처에 오히려 내 피를 몇 방울 떨궈 주었다.

    [끄르르르르륵!?]

    독성이 3배 더 강한 내 피에 중독되자, 마동왕은 온몸을 긁으며 울부짖는다.

    펄쩍!

    나는 놈의 머리통을 밟고 허공으로 점프했다.

    동시에 아까 깨물었던 엄지손가락을 휘저어 허공에 피를 뿌렸다.

    후두둑- 후두둑-

    검은 핏방울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고 이내 나머지 두 명의 마동왕들도 중독되었다.

    [크아아악!]

    뒤에 남은 마동왕 하나가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공격해 왔지만.

    퍼퍼퍼퍽!

    놈은 그대로 드레이크의 화살받이가 될 뿐이다.

    콰쾅-

    두 명의 마동왕이 각각 지진과 와류로 공격해 왔다.

    쿠쿵-

    나 역시, 카이도우의 발가죽을 이용해 지진을 일으켜 맞섰다.

    우지지직-

    오버 스러스트(Over thrust)!

    땅거죽이 서로 맞대응하는 방향으로 밀려 올라간다.

    순식간에 지면에 산 하나가 생겨났다.

    그것은 높은 장벽이 되어 나와 적들의 사이를 두텁게 가로막았다.

    콰콰콱!

    두 명의 마동왕이 엄청난 속도로 장벽을 기어올라 반대편으로 넘어오려 했다.

    하지만.

    퍼퍼퍼퍼퍽-

    지면 위로 멀리 떨어져 있는 이상, 드레이크의 과녁에 불과할 뿐이다.

    화살 고슴도치가 된 채 장벽 기슭으로 굴러 떨어지는 적들.

    ‘역시, 드레이크를 데리고 오길 잘했네.’

    나는 생각했다.

    마동왕과 드레이크.

    둘 다 물리 공격력으로 승부를 보는 타입.

    다만 마동왕의 경우에는 큰 데미지를 넓은 구역에 고루 뿌리는 타입이고, 드레이크는 큰 데미지를 화살 한 대, 한 대에 실어 쏘는 타입이다.

    거리를 두고 붙으면 객관적으로 드레이크 쪽이 우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크윽…꾸르르륵!]

    두 명의 마동왕이 화살 받이가 되어 죽자, 그 뒤에서 독을 뒤집어쓴 마동왕 하나가 비틀거리며 걸어 나온다.

    하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놈은 이미 빈사상태.

    깎단의 도트 데미지와 맹독의 도트 데미지가 그간 1초도 쉬지 않고 계속 들어가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쿵-

    결국 세 번째 마동왕마저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드레이크는 손으로 이마를 한번 쓸었다.

    “인공지능이라 그런가 무식하게도 덤벼 오는군. 이렇게 폭급한 몬스터는 처음 본다.”

    “맞아. 그나마 각각이 본체 능력의 33.3% 밖에 발휘하지 못해서 망정이지.”

    “그래도 너를 카피해서 그런가 상당히 매서웠다.”

    나는 드레이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99.9%가 아니라 33.3%, 33.3%, 33.3% 이라서 다행이다.

    33.3% 짜리 셋이 덤비는 것보다는 99.9% 하나가 덤비는 것이 더 무섭다.

    쪽수가 많으면 아무래도 손발이 안 맞게 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나치게 공격적인 성향에 단조로운 공격 패턴은 이를 더욱 심화시킨다.

    이런 이유 때문에.

    도플갱어의 합격술은 일반 유저라면 몰라도 프로급 이상에서는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

    ‘그래도 혼자였으면 진땀 좀 뺐겠는데?’

    나는 마동왕의 장구류를 다시 착용하며 생각했다. 드레이크가 서포트를 잘해 줘서 참 다행이라고.

    한편.

    드레이크는 그런 나를 향해 농을 건네 온다.

    “이걸로 목숨 빚 하나 갚은 건가?”

    “아니? 무슨 소리야. 혼자서도 잡을 수 있었어.”

    “힘든 것 같아 보였는데?”

    “네 도플갱어가 나한테 한 방에 잡혀 죽은 것 기억 안 나?”

    “…그 얘기는 또 왜 꺼내나.”

    나는 드레이크와 티격태격거리며 도그숲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이내.

    숲 속의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       *       *

    검은 안개가 자욱한 숲의 심부.

    비스듬히 경사지는 기슭을 향해 계속 걸어 내려온 탓일까?

    숲은 점점 깊고 어두워지고 있었다.

    낮아지는 지형, 높고 앙상해지는 나무들.

    뾰족한 나뭇가지들과 검은 안개는 이미 하늘 위의 햇빛을 완전히 가려 버렸다.

    하얀 곰팡이 솜털들이 수북하게 돋아 있는 바닥.

    회색 시냇물이 졸졸졸 흘러들어 바닥에 고인다.

    “…기분 나쁜 숲이로군.”

    드레이크는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바로 그 순간.

    귓가에 으스스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띠링!

    <히든 필드 ‘도리안 그레이의 숲 심층부’에 입장 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드레이크가 한쪽 눈썹을 까닥 움직였다.

    “호오? 오픈 필드가 아니었던 건가? 경계가 있었군.”

    숲의 심부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검은 안개는 점점 더 무거워진다.

    “이쯤에서 마스크를 쓰는 게 좋다.”

    나는 드레이크에게 흰 마스크 하나를 건넸다.

    그것을 입뿐만이 아니라 얼굴 절반을 가릴 정도로 큰 마스크였다.

    -<일회용 입마개> 가면 / D

    -독이나 미세먼지를 소량 막아준다. 큰 효과는 없다.

    드레이크는 내가 마스크를 쓰는 걸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걸 굳이 쓸 필요가 있나? 별로 효과도 없는 것 같은…….”

    바로 그때.

    “쉿.”

    나는 그런 드레이크를 향해 손바닥을 뻗었다.

    “…….”

    드레이크는 내 기세가 변한 것을 알고는 숨을 죽였다.

    그는 언제 진지해져야 할지를 빠르게 눈치 챈다.

    “…….”

    나 역시도 숨을 죽였다. 그리고 드레이크를 뒤에 둔 채 앞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철커덕- 철컥!

    앞으로 움직이며, 나는 내가 가진 모든 아이템을 풀로 착용했다.

    바실리스크를 잡고 얻은 ‘패륜아의 심장’ 갑옷 (A+)

    샌드웜을 잡고 얻은 ‘샌드웜의 가죽’ 망토 (A+)

    메두사를 잡고 얻은 ‘똬리를 튼 사념’ 반지 (A)

    두 개의 아이템을 융합해 얻은 ‘카이도우의 발가죽’ 신발 (B+)

    여기에 깎아낸 단말마가 아니라 지진과 와류를 일으키는 두 개의 C+급 건틀릿을 착용했다.

    완벽한 마동왕 풀세트.

    여기에 바실리스크의 ‘맹독’, 샌드웜의 ‘가뭄’, 메두사의 ‘마나 번’ 특성까지 발동되었다.

    그러자.

    뒤에 오던 드레이크가 조심스럽게 한마디 했다.

    “저기, 그러다가 또 도플갱어에게 발각되면 어쩌려고 그러나?”

    그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보라고 이러는 거야.”

    “……뭐?”

    드레이크는 화들짝 놀란다.

    고작 건틀릿 두 개를 카피했던 도플갱어들에게 그렇게 무섭게 쫓겼으면서, 지금은 장비 일체 풀세트를 제공하겠다고?

    잠시 당황했던 드레이크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도플갱어는 오리지널의 33.3% 밖에는 흉내 내지 못하니. 상관없겠지?”

    그러나.

    “글쎄 그럴까?”

    나는 드레이크의 말에 어깨를 한 번 더 으쓱해 주었다.

    드레이크가 내 말에 또다시 불안함을 표시하려는 순간.

    꿈틀-

    저 앞쪽.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이윽고.

    스스스스스스스-

    도그숲 심부에 낀 검은 안개가 더더욱 짙어졌다.

    안개가 아니라 가스가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역한 대기.

    이내.

    무겁고 습한 어둠의 저편에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꿀렁-

    그것은 한 마리의 도플갱어였다.

    …….

    한데?

    “…음?”

    드레이크가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 눈앞에 나타난 도플갱어는 여태껏 봐 왔던 도플갱어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끈적거리는 반액체, 탄가루 섞인 가래침마냥 시커먼 몸.

    하지만 그 크기는 일반적인 도플갱어보다 족히 열 배는 더 거대했다.

    <도플갱어 카이저> -등급: ? / 특성: 3/3, 연쇄살인

    -크기: ?

    -서식지: 도리안 그레이의 숲

    -정체를 알 수 없는 암흑물질들의 황제. 생명체인지는 여전히 불분명.

    이 거대한 암흑물질은 이내 나를 의식하며 음흉한 움직임을 보인다.

    꾸륵- 꾸르륵-

    그리고 천천히, 모습을 나에게 맞춰가며 변화해 가고 있었다.

    “…이, 이래도 되는 건가?”

    드레이크의 표정이 하얗게 질린다.

    하지만.

    “레플리카 짝퉁 등장이네.”

    나는 그저 빙긋 웃을 뿐이다.

    지금 이 녀석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아니.

    지금 이 녀석에게 ‘발견된 것만으로도’

    여기에 온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