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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59화 (59/1,000)
  • 59화 짭 (1)

    -띠링!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당신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귓가에 울려 퍼지는 익숙한 목소리.

    게임이 출시된 지 이제 9개월.

    하지만 나는 이 알림 목소리를 지난 15년 9개월 동안 들어왔다. 당연히 남들보다 훨씬 더 익숙할 수밖에.

    부웅-

    로그인을 알리는 환한 빛과 함께.

    쿵-

    나는 필드에 떨어졌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로그인하고 로그아웃하는 것은 습관이다.

    한데?

    오늘의 나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알몸에 망토, 신발만 신고 다니던 때와 달리, 지금 내 몸은 육중한 갑옷과 커다란 건틀릿으로 무장되어 있다.

    그렇다.

    나는 오늘 고인물이 아닌 마동왕으로서 접속했다.

    ‘뭐 그래 봐야 장비밖에는 차이 없지만.’

    뎀은 두 개의 계정을 만들 수 없게끔 되어있다.

    그래서 부캐릭터를 만든다면 장비를 완전히 다른 것을 착용하는 수밖에 없다.

    계정 정보야 비공개로 돌리면 그만이니까.

    게임 내에 딱히 클래스 구분이랄 게 없으니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

    그럼 왜 본캐인 고인물을 두고 부캐인 마동왕으로 활동하느냐?

    마동왕의 프로게이머 데뷔를 앞두고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가 고인물과 마동왕. 두 개의 캐릭터로 활동한다는 것이 밝혀질 경우 발뺌할 수를 만들어 놓기 위해서였다.

    ‘아무래도 두 캐릭터가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게 활동하기엔 좋을 테니까.’

    이중계약이니 인성논란이니 뭐 이상한 말 나오기 전에 그냥 두 개의 캐릭터를 따로 분리시켜 놓는 게 좋을 것 같다.

    얄미운 밉상 고인물, 카리스마 실력자 마동왕.

    ‘뭐 대충 이런 식으로?’

    내가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부웅-

    옆에서 로그인을 알리는 또 다른 빛기둥이 반짝였다.

    “아, 먼저 들어와 있었나?”

    드레이크였다.

    “샌드웜 이후로는 처음이지? 꽤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그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샌드웜 먹튀(?)를 한 뒤 꽤나 바쁘게 지냈었다.

    제사에 가서 큰아버지 얼굴도 보고, 불법 토토리그에 참가해 상금과 배당도 쓸어 먹고, 은행 업무도 보고, 프로게이머 권유도….

    “그간 어떻게 지냈어?”

    내가 묻자, 드레이크는 별 것 없었다는 듯 대답했다.

    “그냥 컨트롤 연습 좀 했다.”

    “컨트롤 연습?”

    “음. 저번에 고르곤을 상대하다가 느꼈지. 내가 아직 부족하다는 걸.”

    “…….”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혼자서 A급 몬스터를 그 지경까지 몰아붙일 수 있는 존재가 이 게임에 또 있을까?

    하지만 드레이크는 진심으로 자신을 부족하다고 여기는 듯싶다. 아마 비교대상이…나여서 그렇겠지?

    “그래서 지난 며칠간 ‘용자의 무덤’에 다녀왔다.”

    그 말을 듣자 눈이 번쩍 뜨인다.

    용자의 무덤!

    듣는 것만으로도 피가 뜨거워지는 던전이다.

    ‘그래, 나도 조만간 거기 갈 생각이었지.’

    용자의 무덤은 총 108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탑으로 누가 더 빨리, 높이 올라가나를 겨루는 식의 이벤트 던전이다.

    “몇 층까지 올라갔는데?”

    내가 묻자, 드레이크는 표정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얼마 못 갔다. 45층.”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놀라서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게임 출시 9개월 만에 용자의 무덤을 45층까지 클리어했다고? 괴물인가?’

    과연 PK랭킹 1위였던 존재답다. 나는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다음에 용자의 무덤에 도전할 생각이야.”

    “오! 그거 멋지군! 나중에 네 스코어를 꼭 알려줘.”

    “……뭐, 그럴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드레이크는 나에게 뜨거운 눈빛을 보낸다.

    아무래도 나에게 라이벌 의식을 조금쯤은 갖고 있는 것 같은데…….

    뭐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이곳은 시커먼 안개가 부유하고 있는 한 숲이었다.

    지나다니는 플레이어는 하나도 없다.

    <도리안 그레이의 숲> -등급: ?

    통칭 ‘도그숲’이라 불리는 오픈필드.

    하지만 말이 오픈필드이지 이 숲 전체는 하나의 커다란 던전이나 다름없다.

    숲을 온통 뒤덮고 있는 불쾌한 안개가 바로 던전의 벽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꼬챙이처럼 말라죽은 고목.

    음흉하게 끓는 곰팡이와 이끼.

    잿가루를 풀어놓은 듯 탁한 시냇물.

    군데군데 돌아다니는 어슴푸레한 도깨비불.

    한눈에 보기에도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은 외형의 숲이다.

    마치 숲 전체가 오염되고 타락한 채 왜곡되어 있는 느낌.

    “필드 등급이 ‘?’라니, 뭐지?”

    드레이크는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 던전이나 필드는 돌아다니는 몬스터들의 등급 평균을 내어 표시해 둔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간혹 등급이 ?로 처리되는 장소들을.

    그런 장소들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무지 위험하다는 뜻이지.”

    “…….”

    내 말에 드레이크는 고개를 가만히 끄덕거렸다.

    우리는 한동안 숲속을 걸었다.

    기분 나쁜 습기가 숨통을 조여온다.

    마치 목구멍에 주먹 하나를 박아 넣은 듯 답답했다.

    부스럭-

    드레이크는 정글도 하나를 빼들었다. 그리고 보라색 넝쿨들을 탁탁 쳐내며 길을 낸다.

    숲의 입구는 매우 꽁꽁 숨겨져 있었지만 막상 들어오니 내부는 굉장히 넓었다.

    그때.

    [그르르륵…….]

    어디선가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들자, 숲 저편에 머리통 하나가 삐죽 튀어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오우거였다.

    B등급의 악귀, 거인 타입 몬스터.

    다만 다른 오우거와는 차이점이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커먼 일색이다.

    [그르르륵…킁킁!]

    놈은 코를 벌름거리며 숲 저편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드레이크가 물었다.

    “이 숲에 오거가 사나?”

    “아니.”

    나는 간단히 대답했다. 오우거는 남쪽 ‘고기 삶는 밀림’이나 동쪽‘썩고 불타는 땅’에서만 서식한다.

    한데 그런 몬스터가 왜 이곳에 돌아다닌단 말인가? 그것도 새까만 모습을 한 채로.

    귀한 몬스터는 아니지만 그래도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돌아다니는 것은 오우거 뿐만이 아니었다.

    드레이크는 숲을 지나면서 독특한 몬스터들을 제법 많이 보아야만 했다. 하나같이 이곳에 사는 놈들이 아니었고 몸은 시커먼 색이었다.

    “흐음. 뭔가 이상한 숲인데?”

    드레이크는 도그숲 곳곳을 둘러보며 표정을 찡그렸다.

    아까부터 뭔가 기분이 나쁘다. 이 숲은 이질적인 공기로 가득했다.

    그때.

    부스럭-

    회색의 곰팡이 덤불을 헤치고,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드레이크는 눈을 가늘게 떴다.

    나타난 것은 웬 유저였다.

    보라색의 커다란 플로피 햇, 손에 든 흰 지팡이, 치렁치렁한 붉은색 로브.

    누가 봐도 마법사임이 분명해 보이는 여자 플레이어다.

    “이런 곳에서 솔플을 하는 마법사도 있군.”

    드레이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스쳐 지나가려 했다.

    하지만.

    나는 봤다.

    그녀의 눈에 흰자위가 없는 것을.

    씨익-

    마법사 여자는 이내 입을 쩍 벌리고 웃기 시작했다.

    입꼬리가 귓불에 닿을 정도로 찢어지며, 여자의 검은자위만 가득한 눈에서 시커먼 빛이 뿜어져 나왔다.

    ‘얼굴이 낯이 익은데?’

    나는 턱을 한번 쓰다듬었다.

    하지만 생각할 시간은 짧다.

    콰콰콰쾅!

    그녀의 흰색 지팡이에서 강력한 마법이 쏟아진다!

    쿠르릉-!

    흑색 뇌전이 몰아쳐 나와 드레이크를 노렸다.

    “!?”

    드레이크는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퍼퍼퍽!

    미래 PK랭킹 1위가 될 남자답게, 그는 물러나는 순간에도 쇠뇌를 들어 적의 머리통에 화살 세 대를 박아 넣는다.

    비틀-

    마법사 여자는 몸을 크게 휘청거린다.

    그리고.

    풀썩-

    그대로 쓰러져 죽어 버렸다.

    마법사 캐릭터라 그런가 방어력과 HP가 약한 모양이었다.

    “음?”

    PK에서 승리한 드레이크.

    하지만 그는 이내 깜짝 놀라야만 했다.

    마법사 여자가 쓰러져 죽은 자리.

    곰팡이처럼 무성한 덤불 탓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밑에는 또 하나의 시체가 깔려 있었다.

    플레이어의 것으로 보이는 시체.

    그 시체는 드레이크를 공격해 온 마법사 유저와 완전히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

    드레이크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픽 웃으며 그의 어깨를 쳐 주었다.

    “저것 때문이야.”

    드레이크는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꾸물텅- 슬슬-

    검은색 덩어리 하나가 이쪽을 향해 기어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슬라임보다 훨씬 더 작지만 꽤나 영글어 보이는 검은 액체. 마치 탄가루가 섞인 가래침 같은 외형이었다.

    <도플갱어> -등급: ? / 특성: 1/3, 연쇄살인

    -크기: ?

    -서식지: 도리안 그레이의 숲

    -정체를 알 수 없는 암흑물질. 생명체인지조차도 불분명.

    그렇다.

    그 정체는 바로 몬스터였던 것이다.

    꾸륵! 꾸륵! 꾸륵!

    도플갱어는 숲의 바닥을 음침하게 기어 다니다가 처음 본 존재의 외형으로 변신한다.

    “아까 본 오우거나 마법사 플레이어도 모두 저 녀석이 변신한 거야.”

    내 말에 드레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금 그렇게 한담이나 나누고 있을 때는 아니었다.

    꾸르륵!

    내 샌드웜의 망토가 가진 ‘흙장난’ 특성의 은신능력 때문일까?

    도플갱어는 드레이크의 존재를 먼저 감지한 듯싶었다.

    꾸르륵-

    도플갱어는 몸을 꾸물꾸물 흔드는가 싶더니 이내 드레이크의 모습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도플갱어> -등급: B+ / 특성: 1/3, 연쇄살인

    -크기: 1.97m

    -서식지: 도리안 그레이의 숲

    -이중배회자(二重徘徊者). 본체를 향한 살의로 가득 차 있다.

    드레이크와 완전히 똑같이 생긴 외형이었다. 다만 눈에 흰자위가 전혀 없다는 점이 유일한 차이.

    “허어…….”

    드레이크 본인은 황당하다는 얼굴로 도플갱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렇게 여유부릴 틈이 없다.

    퍼퍼퍼퍽-

    도플갱어 드레이크는 엄청난 속도로 연사를 해 왔다.

    드레이크가 가진 아이템의 특성과 스킬들을 그대로 따라 쓰는 것이다.

    “으앗!?”

    드레이크는 기겁을 하며 몸을 낮췄다. 난데없는 공격인지라 반격할 겨를이 없었다.

    기껏해야 피하는 것이 고작.

    파파파팟!

    도플갱어 드레이크는 엄청난 속도로 화살을 쏘아 왔다.

    썩은 나무들 사이를 딛고 날아오르듯 점프하는 최강의 저격수.

    심지어 그 화살은 방어구를 관통하는 힘을 가졌다.

    상대하기에 무척이나 까다로운 적수임이 분명하다.

    심지어 드레이크 본인이라고 해도 말이다!

    …….

    하지만.

    나는 다르다.

    “거, 미리미리 대비해야지.”

    나는 마동왕의 힘으로 반격에 나섰다.

    내가 오른손 주먹으로 지면을 때리자, 땅거죽이 수면처럼 출렁였다.

    꿀렁- 콰콰콰쾅-

    굉음과 함께, 놈의 발판이 될 나무들이 죄다 쓰러졌다.

    동시에 거대한 흙의 파도가 일어 도플갱어 드레이크를 뒤덮어 간다.

    [……!?]

    도플갱어 드레이크는 재빨리 피하려 했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츠츠츠츠츠츠-

    내가 왼손으로 지면을 짚어 와류를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플갱어는 드레이크가 바실리스크를 잡고 얻은 ‘땅’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는 샌드웜에게서 ‘가뭄’ 특성을 빼앗았기에 땅, 바위 특성을 가진 존재에게 데미지를 1.5배에서 2배까지 줄 수 있다.

    촤아아악-

    내가 만든 모래 소용돌이에 붙잡힌 도플갱어 드레이크는 빙글빙글 돌며 나에게로 끌려왔다.

    그리고.

    뻐억-

    내 주먹은 도플갱어 드레이크의 안면을 두들겨 부순다.

    우르릉- 우득-

    묵직한 지진파가 일어 도플갱어 드레이크의 안면과 목뼈를 온통 바스러트려 놓았다.

    뚜둑!

    내 오른손에 잡힌 도플갱어 드레이크의 목뼈가 ㄱ자로 꺾였다.

    그리고 이내.

    놈은 소금 먹은 배추마냥 축 늘어져 버렸다.

    “……음.”

    멀리서 그걸 지켜보고 있던 드레이크는 괜히 자신의 뒷목을 한번 잡아 본다.

    *       *       *

    “번거로운 자식 같으니…….”

    나는 한번 투덜거려 주고는 도플갱어의 시체를 바닥에 툭 내버렸다.

    놈은 그 흔한 잡템 하나 떨구지 않았다.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드레이크의 얼굴이 보인다.

    전에는 라이벌 의식이 언뜻언뜻 보이는 눈빛이었다면 지금은…….

    “어진. 내가 뭐 도울 거라도 있나?”

    뭔가 상당히 상냥해진 느낌인데?

    내가 어깨를 으쓱하는 순간.

    꾸물- 꾸물- 꾸물렁-

    곳곳에서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온다.

    한바탕 난동을 쳐 놨기에, 나의 은신 상태가 해제된 모양.

    더러운 덤불 밑에서 도플갱어 세 마리가 나를 향해 기어오고 있었다.

    “이런.”

    나는 표정을 구겼다.

    도플갱어들은 서로 사이가 나빠 으레 단독생활을 한다. 세 마리가 동시에 뭉쳐 다니는 것은 정말 보기 힘든 경우.

    이내, 놈들의 특성 ‘1/3’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1/3 특성. 그것은 처음 본 이의 모습으로 똑같이 변하는 능력이다.

    다만 이 경우, 도플갱어는 오리지널이 가진 능력의 33.3% 밖에는 가지지 못한다.

    도플갱어를 세 번 보면 죽는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란 말이다.

    쿵- 쿵- 쿵-

    결국, 세 명의 마동왕이 우리를 포위했다.

    드레이크는 나를 믿는다는 듯 물었다.

    “…이거 괜찮은 거 맞겠지?”

    나라면 분명히 이 상황을 예측하고 대비했을 것이라는 믿음.

    …….

    하지만.

    내 대답은 그의 기대와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X됐네.”

    세 마리가 동시에 나올 줄은 나도 몰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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