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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58화 (58/1,000)
  • 58화 E스포츠 불법토토 (6)

    IB인민은행 VVIP 로얄 라운지.

    은행에 맡긴 총자산이 10억 이상인 사람만 이용할 수 있는 특수한 창구다.

    일반 창구는 번호표를 받아 대기열에서 기다리다가 호명을 받아 앞으로 나가는 반면,

    이곳에서는 고객이 원하는 직원을 역으로 호명하는 것이 가능하다.

    비치된 편의시설은 여러 종류가 있다.

    우선 개인용 PC가 있었고 전신 마사지 의자, 족욕기가 있다.

    그 외에 다양한 잡지, 금융상품 안내 팜플릿들이 벽에 쭉 비치되어 있다.

    다과시설은 커다란 냉장고에 비치되어 있었는데 커피나 탄산수, 초콜릿, 간단한 브런치 메뉴들이 늘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그 VVIP 로얄 라운지에서 호출이 들어왔다.

    “네-”

    하루 이용객 수가 10명이 채 되지 않는 공간, 부장 급 이상의 인사가 직원으로 근무하는 곳.

    윤 부장은 고객이 들어왔다는 신호음을 듣고는 라운지로 나갔다.

    식물들이 잔뜩 우거져 있는 로비로 나서는 순간.

    “……!”

    윤 부장은 조금 움찔했다.

    라운지로 들어오는 남자의 모습이 조금 낯설었기 때문이다.

    다 늘어난 츄리닝.

    바닥 닳은 슬리퍼.

    구멍 뚫린 비닐우산에서는 물이 줄줄 떨어져 카펫을 적시고 있다.

    이 풍경에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추레한 복장.

    심지어 그는 이제 막 고등학생 티를 벗었을까 싶은 젊은이었다.

    “여기로 오면 번호표 안 뽑고 바로 업무 볼 수 있다면서요?”

    청년이 물어왔다.

    그러자, 윤 부장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VVIP 로얄 라운지라고 해서 특별히 가드가 있거나 출입제한을 시키는 것은 아니었다.

    이곳 창구까지 마음대로 들어올 수는 있다.

    다만 여기서 총자산이 10억 이하인 고객은 업무를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입구 앞에 크게 써 붙여 두기도 했다.

    <저희도 모든 고객님들의 편의를 봐 드리고 싶지만, 본사에서 해당 이용조건이 아닌 고객님의 업무를 처리하면 불이익을 주는 방침을 정했기 때문에 꼭 해당 이용조건을 만족하신 고객님만이 이 창구를 이용해 주시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종종. 이 문구를 읽지 않고 막무가내로 들어오는 진상들이 있다.

    ‘내가 이 은행에 해 준 게 얼만데~’

    ‘왜 내가 VVIP 로얄 등급이 아닌 거야!’

    ‘밖에 번호표 너무 오래 기다려야 돼! 여기 한산해 보이는구만! 그냥 여기서 해 줘!’

    ‘다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마사지 기계만 쓰고 갈게!’

    .

    .

    그 외 기타 등등.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이 오면 본사에서도 제재가 들어온다.

    그때는 정중한 어조로 안내를 해야 한다.

    ‘이곳은 총자산 10억 이상의 고객만 이용가능합니다.’

    라고 안내를 주면……. 반응은 둘로 나뉜다.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후다닥 돌아가는 쪽.

    지금 자신을 무시하는 거냐며 오히려 더욱 더 화를 내는 쪽.

    …….

    후자의 경우는 답이 없다. 청원경찰에게 헬프를 치는 수밖에.

    ‘얘는 또 어떤 쪽일까.’

    윤 부장은 속으로 한숨을 쉬며 청년에게 안내문을 보여 주었다.

    “네 고객님. 이곳은 총자산 10억 원 이상이신 VVIP 로얄 등급 고객님에 한해 개인업무를 도와드리는 공간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한데?

    청년의 다음 행동은 윤 부장이 생각한 선택지에 없는 것이었다.

    풀썩-

    그는 태연한 태도로 우산을 치워 두고는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윤 부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잔액조회랑 통장 정리 좀 하려고요.”

    “……?”

    “아, 커피는 괜찮아요.”

    뭐지?

    윤 부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내, 그는 청년의 앞에 앉아 업무용 컴퓨터를 만지기 시작했다.

    몇 번인가 클릭을 마치자.

    통장 속 잔액이 떴다.

    ‘헉!’

    윤 부장은 속으로 헛바람을 집어삼켜야 했다.

    ‘아니 나이도 어린 친구가 무슨 현금이 이렇게 많아?’

    그는 제멋대로 움직이려는 얼굴근육을 애써 제자리에 고정시켰다.

    그리고는 최대한 친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커피 말고 다른 음료도 있습니다만?”

    *       *       *

    호록-

    나는 코코아 한 잔을 마시며 은행 2층 라운지의 마사지 기계에 몸을 묻었다.

    위이잉-

    목과 등을 두들기는 감각. 캡슐 속에만 있느라 뭉친 몸이 조금은 풀어지는 느낌이다.

    마사지 기계 옆의 파티션 너머에서 윤 부장이라는 사람이 곰살맞게 웃으며 말을 걸어온다.

    “아, 고객님. 새로운 투자 상품이나 금융 상품 정보를 원하시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펀드나 적금도 요즘은 훌륭한 게 많으니까요! 저는 이 옆에 계속 있겠습니다! 아, 참! 저희는 세무나 법률 서비스도 따로 제공해 드리는데 혹시 알고 계신지…….”

    과연 한국.

    돈 없으면 그 어디보다 살기 힘든 곳.

    돈 많으면 그 어디보다 살기 좋은 곳이다.

    “네. 고맙습니다. 다음에 부탁드려요.”

    나는 적당히 고개를 꾸벅 숙여보였다.

    팔락-

    옆에 있던 신문을 펴자, 수많은 기사들 중 저 아래에 자그맣게 기사가 난 것이 보인다.

    <불법 토토!? 이제는 당당하게 하세요! 월말부터는 합법!>

    -정부는 지난 2일. 중국, 일본, 대만 정부와 협력하여 국내외 메이저급 E스포츠 토토 세력들을 불시에 단속, 근절하여…이에 시스템 일체를 압류……정부 차원에서 운용키로…(중략)…….

    -지난 2일까지 불법이었던 E스포츠 토토는 이번 달 말부터 국가가 운영하는 합법적인 사업으로 거듭나게…….

    .

    .

    “좋은 현상이네.”

    나는 신문을 덮고 목을 뒤로 젖혔다.

    한편.

    내 핸드폰에서는 지난 번 불법 토토리그에서 PK를 하는 영상이 돌아가고 있다.

    [콰쾅!]

    [우-와아아!]

    [마동왕 만세!]

    [내 전 재산 너한테 건다!]

    [다 부숴 버려라! 마동왕 출격 가즈아아아!]

    .

    .

    나는 일찌감치 ‘마동왕’이라는 이름으로 가계정 하나를 만들어 지난번의 PK동영상들을 업로드하는 중이었다.

    쾅쾅거리는 소음, 역동적으로 흔들리는 대지.

    주먹으로 칼도 방패도 모두 뚫고 나아가는 상남자 마초 액션!

    불법 리그이긴 하지만, 역사나 마동왕의 플레이 스타일은 호응이 좋다.

    -와! 저 중국랭커 얼굴에 주먹 때려박는 거 봐라;;;

    -10년 묵은 체증이 한 방에 내려간다!! 핵사이다 상마초!!!

    -서초패왕 그동안 한국 무시하면서 깐족대는거 얄미웠는데 잘됐네ㅋㅋㅋㅋ

    -ㅋㅋㅋ이번에 임자 제대로 만난 듯

    -와 근데 진짜 X나 잘 싸운다;;;;불법리그만 아니었어도 팬 됐을 듯

    -불법 아니잖아 이제..합법이잖아! 난 팬 됨! 마동왕 짱짱맨!!

    -나는 오히려 히어로보다는 빌런이 더 좋더라ㅋㅋㅋㅋ

    .

    .

    빛의 리그가 아니라 어둠의 리그에서 활동한다는 점도 뭇 팬들의 취향을 저격한 듯싶다.

    때론 빌런도 히어로만큼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 증거일까?

    마동왕의 계정으로도 후원수익이 꽤나 짭짤하게 들어오고 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지.”

    나는 일찌감치 불법 토토에서 발을 뺐다.

    마지막까지 단물을 다 털어먹고 난 뒤, 내 재산은 근 3배에 가깝게 불어났다.

    중국, 대만, 일본에서 흘러온 검은 돈.

    하지만 돈에 색깔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게임을 거쳐 가상화폐 형식으로 내 계좌에 들어온 것들이라 아무런 문제가 없다.

    세무조사도 필요 없고 금융 규제도 없는, 그야말로 눈먼 돈이다.

    뭐 차후에 세법이 개정된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는 마음껏 벌면 된다.

    세금 규제에서 자유롭다는 것.

    초기 시장을 선도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또 하나의 특전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정식 리그에다가 베팅하는 일만 남았네.”

    앞으로 펼쳐질 모든 E스포츠 토토.

    정식으로 세금도 내고 하는 합법적인 일이다.

    그리고.

    나는 E스포츠 리그에서 자웅을 겨루게 될 프로게이머들의 모든 것을 꿰고 있다.

    성격.

    스킬 조합.

    특성 스택.

    아이템 트리.

    플레이 스타일.

    약점.

    심지어 언제, 누가 누구와 붙는지, 어떤 스코어로 어떻게 이기는지 까지.

    모든 것은 내 손바닥 안에 있다는 말씀.

    …….

    이것은 뭐, 돈을 못 벌고 싶어도 못 벌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파밍을 게을리 할 수는 없지.”

    그것과는 별개로, 게임에서 아이템을 모아 경매소에 파는 일 또한 꾸준히 할 것이다.

    사람은 본업에 충실해야 하니까.

    토토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부업.

    마찬가지로, 개인방송 후원금이나 광고비 등 역시도 부업이다.

    <본업: 레이드 및 아이템 판매>

    <부업: 개인방송, 토토 베팅, 프로게이머 연봉(?)>

    ……부업들이 너무 짭짤해서 문제지만.

    “그래도 본업만 한 게 또 없지.”

    지금 시장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S급 무기를 판다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

    모르긴 몰라도 어디 해외의 작은 섬 하나는 살 수 있을지 모른다.

    요즘이 아이템 시세를 제일 높게 받을 수 있을 때이니 파밍을 부지런히 해놓는 것이 답이다.

    “자, 그럼 또 레이드나 돌아볼까?”

    이제 진짜로 ‘본업’에 충실할 시간이다.

    막 게임에 접속하려는 순간.

    -띠링!

    동영상을 업로드한 플랫폼 채널로 메일 하나가 온 게 보였다.

    “……뭐야?”

    접속에 앞서 메일을 확인하자.

    <안녕하세요. 프로게이머 팀 ‘국K-1’의 엄재영 감독입니다. 귀하의 인상 깊은 플레이를 보고 메시지 드립니다. 저희 프로게이머 팀 국K-1은 명실공이 국내 최고의 팀으로…(중략)…괜찮으시다면 저희 팀에 가입하셔서 귀하의 꿈을 마음껏 펼쳐 보시지 않으시겠...연봉 및 기타 조건은 최고 대우로 맞춰 드리겠…….>

    “……뭐야? 전에 왔던 거잖아. 또 보냈네, 이 사람.”

    예전에 ‘이름 없는 여왕’ 레이드 당시, 저런 종류의 프로게이머 데뷔 권유가 꽤나 많이 왔었다.

    그때는 규제도 심하고 돈도 안 될 때라서 거절했지만,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E스포츠 쪽을 키워보려고 하는 지금은 딱 적기다.

    “하긴. 지금이 프로게이머 하기 좋을 때긴 하지.”

    나는 꽤나 짭짤한 연봉을 기대하며 메일을 열었다.

    …….

    한데?

    프로게이머 데뷔 권유 메일을 여는 순간.

    무심코 잊고 있던 사실 하나가 떠올랐다.

    “…가만? 이거 마동왕 계정이잖아?”

    프로게이머 데뷔 제안.

    그것은 본캐릭터인 ‘고인물’에 온 것이 아니라 부캐릭터인 ‘마동왕’에 온 것이었다.

    …….

    그것도 최고 대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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