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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57화 (57/1,000)
  • 57화 E스포츠 불법토토 (5)

    나는 13년 전의 과거를 회상했다.

    ‘그래 ‘그 새끼’가 있었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다.

    온몸을 두터운 갑옷으로 두르고 전장을 질풍처럼 휘젓던 랭커.

    박력 넘치는 플레이로 마초의 상징이 되었던 존재.

    마동왕(魔動王) 마동왕(麻棟汪).

    이름도 마동왕, 별명도 마동왕.

    두 주먹 달랑 쥐고 거대한 몬스터도, 까마득한 고위 랭커도, 죄다 쥐어 패 쓰러트렸던 랭커.

    투신 마태강이 맞지 않고 때리는 깔끔한 테크니션 무투가였던 반면.

    마동왕은 수없이 맞아 가면서도 전진해 결국 상대의 골통을 까 부숴 놓는 광전사였다.

    마태강과 마동왕.

    둘은 한국 랭킹의 대표 선발주자이기도 했다.

    이 둘 때문에 한동안 한국 리그는 크게 부흥해서 ‘쌍마(雙馬)의 시대’라고도 불리게 된다.

    한국을 견인해 나가는 두 마리 말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투신과 달리, 마동왕은 그런 명예를 짊어질 인성이 되지 못했다.

    데뷔 전 무패신화를 이룩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지 고작 1년 뒤.

    그는 결국 ‘승부조작’이라는 추문에 휘말려 업계에서 매장당하게 된다.

    마동왕이라는 위풍당당한 위명은 마주작이라는 조롱으로 변했으며 이 때문에 다른 수많은 프로게이머들이 피해를 입게 되었다.

    ‘이 새끼 때문에 프로리그가 한번 망할 뻔했지 아마?’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마동왕이 등장하게 되는 것은 앞으로 1년 반 쯤 뒤.

    나는 놈이 어떤 스킬, 어떤 아이템 테크트리를 이용해 프로로 데뷔할지 이미 알고 있다.

    마동왕의 등장으로 인해 수많은 프로게이머들이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업계 관계자들의 밥줄이 날아갔다.

    팬들은 실망하고 상처 입었다.

    고개가 절로 가로로 저어지는 일이다.

    ‘그럴 바엔 형이 좀 쓸게.’

    나는 예전, 마동왕이 전성기에 군림하고 있을 때의 아이템 트리와 특성을 그대로 가져왔다.

    이번 생에 마동왕의 데뷔를 막음과 동시에, 그 당시 팬들의 인기를 한 몸에 구사했던 상마초 스타일의 영광을 그대로 재현하고 싶었다.

    ‘어차피 잠깐 하고 말 텐데 뭐.’

    나는 고개를 들어 전광판을 보았다.

    3번. ‘마동왕’

    VS

    21번. ‘서초패왕’

    마동왕.

    10여 년 전.

    불법 PK리그를 온통 뒤흔들어 놓았던 공전절후의 암흑랭커가 1년 반 먼저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재밌겠는데?”

    나는 픽 웃었다.

    마동왕의 실력과 아이템 트리만은 진짜다.

    절대 질 수가 없는 싸움 아닌가?

    나는 내가 가진 모든 베팅 자금 3억을 나에게 걸었다.

    예선에서 고만고만한 성적을 거뒀고 본선 1차는 뽑기운으로 올라왔다.

    그 탓에 나의 배당은 상당히 낮았다.

    이긴다면 수 배의 배당이 내게 들어올 것이다.

    “자, 어디 볼까.”

    아이템 창을 열어 지금 나의 장비를 확인한다.

    -<지진골렘의 무한건틀릿)> 한손무기 / C+

    수없이 많은 골렘의 몸을 파괴한 격투가가 있었다. 그의 손은 어느새인가 골렘의 것처럼 변해버렸다.

    착용한 상태로 지면을 두드리면 강력한 지진이 일어난다.

    -공격력 +300

    -암석 공격력 +50

    -특성 ‘지진’ 사용 가능 (특수)

    -<개미귀신의 집게발)> 한손무기 / C+

    개미귀신은 사막에 소용돌이를 만들어 지나가는 모든 것들을 빨아들인다.

    그 능력을 고스란히 옮겨온 클로다.

    -공격력 +270

    -땅 공격력 +60

    -특성 ‘와류’ 사용 가능(특수)

    .

    .

    오른손에는 ‘지진골렘의 무한건틀릿’ 총 공격력 350.

    왼손에는 ‘개미귀신의 집게발’ 총 공격력 330.

    테크트리 뭐 별 것 없다.

    마동왕은 10년 전 이 두 개의 아이템 조합만으로 왕좌에 앉았다.

    ‘기타 여러 가지 특성하고 잡템이 몇 개 더 있기는 한데. 없어도 별 상관없지.’

    내가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우와아아아!]

    [이겨라, 서초패왕!]

    내 상대편에서 서초패왕 커제가 오만한 기색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여전히 거대한 양손무기 참마도를 어깨에 메고 있다.

    이윽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       *       *

    “한국 놈들은 패기가 없지. 내 말에 동의하나?”

    서초패왕은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도발했다.

    “자신이 있다면 들어와 봐라.”

    그는 나를 향해 손바닥을 까닥거린다.

    들어오기만 하면 저 거대한 참마도로 일격에 썰어 버리겠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런 서초패왕에게, 나는 바로 대답해 주었다.

    “막고나 지껄여.”

    그 말을 들은 서초패왕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쾅-

    나는 바닥을 딛고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

    서초패왕은 경기 시작과 동시에 바로 뛰어드는 나를 보며 크게 놀랐다.

    “흐라얍!”

    그는 온 힘을 다해 참마도를 휘둘렀다.

    콰-콰콰콰쾅!

    거대한 참격이 벼락처럼 떨어져 내린다. 온 대지를 죄다 박살낼 듯한 위엄!

    하지만 나는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역발산 참마도)> 양손무기 / B

    산을 갈라 버렸다고 전해지는 무기. 어지간한 힘이 없다면 들기도 힘들다.

    -공격력 +1,200

    -땅 공격력 +50

    -특성 ‘골골’ 사용 가능 (특수)

    B급 무기 참마도. 공격력은 자그마치 1,200이나 된다.

    하지만 이 무기의 치명적인 단점은 바로 특수 옵션에 있었다.

    ‘골골’ 특성.

    한번 공격을 하면 자신에게  상태이상이 걸린다.

    상태이상이라 함은 약 0.5초 동안의 짧은 마비.

    즉, 서초패왕은 한번 공격을 하고 나면 그 뒤 0.5초간은 마비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가능한 공격력이 높은 공격을 퍼부어 상대가 멀리 떨어지게 만든다.

    그렇게 반격에 대비할 시간을 버는 전략을 쓰는 것이다.

    참마도를 제외하면 모든 아이템들은 전부 체력을 올려 주는 아이템을 착용했을 것이 분명하다.

    즉, 서초패왕 커제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몇 대 맞더라도 가까이 붙어서 미친 듯이 때리는 게 최고지.’

    나는 싱긋 웃으며 서초패왕에게 바짝 접근했다.

    “으읏!?”

    서초패왕은 당황했다.

    하지만 그는 뒤로 물러날 수가 없다.

    방금 크게 한번 휘둘렀기 때문에 몸은 0.5초간 정지되어 있다.

    팟-

    마비가 풀렸을 때. 나와 그는 이미 키스라도 할 듯 가깝게 붙어 있는 상태였다.

    “원하는 대로 가까이 왔어.”

    나는 스쳐 지나가는 짧은 순간, 서초패왕을 향해 이죽거렸다.

    “……!”

    서초패왕은 눈을 부릅뜨며 참마도를 다시 들어 올린다.

    내가 엄청난 물리 공격력에 놀라 화들짝 거리를 벌리기를 바라고 있겠지만…….

    아쉽게도 나에게는 그런 싸구려 허세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놈의 아이템과 특성은 이미 전부 꿰고 있다.

    나는 오른손을 들었다.

    우웅-

    지진골렘의 무한건틀릿이 옅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지진!

    거대한 진동을 일으킬 수 있는 파장이 내 손아귀 안에 갇혀 있다.

    나는 손바닥을 쫙 편 뒤, 그것을 그대로 서초패왕의 안면 정중앙에 때려 박았다.

    결과는…….

    쾅-

    안면에 내리꽂힌 지진파!

    온 대지를 뒤흔드는 지진골렘의 손바닥이 서초패왕의 안면 싸대기를 후려갈겼다.

    우지직-

    살이 찢어지고, 그 밑의 뼈가 부러지고, 그 아래에 있는 골이 곤죽이 되는 소리.

    “끄어억……!?”

    서초패왕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 비명조차 미처 다 내지를 시간도 없다.

    퍼퍼퍼퍼퍽!

    내 오른손 주먹과 왼손 집게발이 서초패왕의 전신을 녹신녹신하게 쥐어 패고 있었으니까.

    ‘0.5초면 개꿀이지.’

    남들은 짧을 수도 있다고 하겠지만, 사실 PVP를 하는 입장에서 0.5초는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다.

    눈을 한번 깜빡이는 데 걸리는 시간이 약 0.1초.

    그러니까 0.5초면 눈을 5번이나 깜빡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소리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마네킹처럼 마비된 서초패왕의 전신을 마음껏 유린할 수 있는 것이다.

    “으, 으아! 으아아아!”

    서초패왕은 혼비백산했다.

    상대방은 피에 미친 아귀처럼 달려들고 그 때마다 자신의 몸이 조각난다.

    무섭지 않을 리가 없었다.

    쾅!

    한번 주먹이 얼굴에 떨어지면 정신이 오백년 정도 나가 버리는 것 같다.

    골통이 상하좌우로 요동칠 때마다 지독한 멀미가 올라온다.

    쾅- 쾅- 쾅-

    주먹도 그냥 주먹이 아니다.

    머리든 몸이든 어디를 한 대 맞으면 묵직한 지진파가 밀려들어와 안의 내장까지 온통 곤죽을 내 놓는다.

    그 높던 HP바가 순식간에 퍽퍽 깎여 나가고 있었다.

    “제, 제기랄!”

    서초패왕은 참마도를 휘두르는 걸 그만두었다.

    0.5초 마비되는 동안 족히 십 수 대는 얻어맞는 것 같다.

    그렇다고 상대방이 자기 공격에 맞는 것도 아니었다.

    너무 딱 달라붙어 주먹을 날려대니 오히려 양손무기 입장에서는 부담스럽다.

    공격을 시도하려면 시도해 봄직도 하지만.

    ‘……만약 빗나간다면?’

    상상만 해도 무섭다.

    공격이 빗나가면 0.5초 동안 무방비 상태가 된다는 것.

    너무나도 치명적인 패널티다.

    하지만 잘 숨기기만 하면 들키지 않을 이 비밀을, 상대방은 마치 이미 알고 있기라도 하듯 접근해 오고 있지 않은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펄쩍-

    서초패왕은 체력을 올려 주는 신발 아이템을 인벤토리에 도로 넣고 그 대신 민첩성을 올려 주는 신발로 바꾸었다.

    타탁- 탁!

    바닥을 딛고 거리를 멀찍이 벌리는 서초패왕.

    하지만 당연하게도.

    “안 돼. 보내 줄 생각 없어. 돌아와.”

    나는 그렇게 두지 않는다.

    탁-

    나는 왼손을 펼쳐 바닥에 짚었다.

    그러자.

    스스스스스스스-

    개미귀신의 특성 ‘와류’가 발동되었다.

    경기장의 바닥에 통째로 모래로 변한다.

    그리고 천천히 원을 그리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츠츠츠츠츠츠-

    천천히 움직이던 모래는 이내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며 맹렬하게 회전한다.

    “어? 어어어?”

    멀찍이 도망갔던 서초패왕은 모래에 휩쓸려 소용돌이의 중앙으로 끌려오게 되었다.

    …….

    바로 내가 서 있는 곳으로!

    “반갑다 친구야.”

    나는 모래 소용돌이에 잡혀 끌려온 서초패왕의 안면에 또 한 번 오른 주먹을 꽂아 주었다.

    콰-앙!

    묵직한 지진파가 서초패왕의 안면을 깨부수고 뒤통수까지 죄다 으깨 놓는다.

    게임 속 모자이크만 아니었어도 끔찍한 상황이 연출되었을 것이다.

    “그악! 기, 긱권……!”

    서초패왕은 한계까지 깎여 나가는 HP를 보며 기겁했지만…….

    아쉽게도 지진에 맞은 탓인가, 발음이 새서 정확한 기권 의사를 듣지 못했다.

    옛날에 채팅으로 대화하던 시절이었다면 ‘GG’나 ‘서렌’이라는 글자라도 쳤겠지만…….

    “뭐? 기…긱! 뭐? 잘 안 들리는데?”

    나는 서초패왕을 계속해서 흠씬 두들겨 팼다.

    이쯤되면 뭐.

    거의 살아 있는 샌드백이다.

    ‘피통이 높아서 그런가 잘 버티네…….’

    이참에 불법 토토충들의 기도 좀 꺾어 주고, 오만한 중국 랭커들의 콧대도 좀 눌러 줘야지.

    무엇보다 나의 영웅 투신을 모욕한 죄가 크다.

    쾅! 콰쾅! 쾅!

    오른 주먹에 맞으면 몸뚱이 전체에 지진이 일어난다.

    살점과 뼈, 내장들이 제멋대로 출렁거리며 속이 온통 곤죽이 되어 버린다.

    왼주먹에 맞으면 몸뚱이 전체에 소용돌이 모양의 파문이 일어난다.

    머리가 사타구니로 가고 팔과 다리의 위치가 강제로 바뀔 정도.

    당연히 가죽도 뼈도 전부 뒤틀려 찢어지는 것이다.

    결국.

    뿌직- 뿌지직- 뿌작!

    서초패왕은 쪽 한번 써 보지 못하고 고깃덩어리마냥 다져졌다.

    풀썩-

    형체를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으깨진 서초패왕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잔여 HP는 0.

    사망 로그아웃이다.

    *       *       *

    […….]

    토토쟁이들이 모인 관중석에는 오싹한 침묵이 감돈다.

    거구의 무투가.

    중국 대륙 내에서 꽤나 유명한 랭커.

    서초패왕이라는 닉네임을 쓸 정도로 패도적이었던 존재.

    그런 존재를 일방적으로 쥐어 패 무릎 꿇리는 신위 앞에서.

    [오-오오오오오!]

    [저, 저게 뭐야!? 저렇게 싸울 수도 있어!?]

    [크! 상남자다!]

    [Power Overwhelming!]

    모든 이들은 뜨겁게 열광했다.

    마동왕(魔動王)!

    혜성 같은 암흑랭커의 등장이다!

    한편.

    “…….”

    투신 마태강.

    그는 손에 쥐고 있는 전표를 꽉 움켜쥐었다.

    전 재산을 3번 참가자 마동왕에게 걸었다는 증표.

    참고로 베팅 비율은 서초패왕:마동왕=10:1이었다.

    …….

    하지만.

    지금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대단하잖아.”

    쑥밭이 된 경기장을 바라보는 투신의 눈에 기묘한 열기가 감돌고 있었다.

    기존에 있었던 투쟁심이나 승부욕과는 조금 다른.

    ……그런 미묘한 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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