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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56화 (56/1,000)
  • 56화 E스포츠 불법토토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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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뷰 영상 첫 화면에는 커다란 글귀가 대문짝만 하게 박혀 있다.

    그것을 클릭하면.

    띵 또로로롱 쀼쀼 두두둥 둥둥 콰쾅! 우우우-♪

    꽤 웅장한, 그러나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겨운 BGM이 뭔가 있는 양 흘러나온다.

    그리고 채널 로고가 등장한다.

    <<고인물TV>>

    동시에, 거대한 괴물 보스 샌드웜의 사진이 올라오며.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안녕하세요, 채널 관리자 고인물입니다. 오늘은 전설까진 아니고 레전드급 필드보스 샌드웜을 혼자 잡아 볼 텐데요~]

    BJ고인물!

    그는 얼마 전에 모든 게임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궈 놓았던 샌드웜 레이드,

    그것의 영상을 올린 것이다!

    1. 수없이 많은 현상금 사냥꾼들에 의해 추격 받음.

    2. 궁지에 몰린 순간 샌드웜을 불러내 적들을 쓸어버림.

    3. 적들이 거의 다 잡은 샌드웜을 막타로 뺏어먹음.

    4. 빤스런.

    영상은 총 4부로 기획되어 있었다. 1, 2, 3부는 무료 영상이고 4부는 유료 영상이다.

    영상 마무리 무렵, 고인물은 또다시 정해진 멘트를 친다.

    [네, 추천, 구독, 즐겨찾기, 선호작, 같이 보는 중, 눌러 주시고요. 밑에 있는 관련 영상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관련 영상>

    -우는 천사 레이드 / 조회수 : 790.2만

    -메두사 눈 감고 잡기 / 조회수 : 860.2만

    -바실리스크 레이드 (1) / 조회수 : 1520.2만

    -바실리스크 레이드 (2) / 조회수 : 403.7만 (VIP 열람제한)

    -아카오니 숟가락으로 때려잡기 실화냐?/ 조회수 : 121.2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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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상이 끝났다.

    “…….”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는 기지개를 켰다.

    “좋아. 이번 영상도 잘 올라갔네.”

    조회수는 여전히 대박 행진이다.

    올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유튜뷰에서만 조회수 1백만을 돌파했다. 물론 유료 조회수 기준으로.

    그 외에 후원수익과 광고수익도 상당하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돈을 더 벌어야 하는데…….”

    내가 원하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이 정도 돈으로 어림도 없다.

    고인 물 콘셉트가 하나의 아이콘이 된 데다가 막대한 홍보비, 후원금이 들어오고는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그래서!

    오늘 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불법토토 사설 PK리그!’

    나는 남대륙 ‘고기 삶는 밀림’ 심층부에 있는 암석지대에 서 있었다.

    ‘어차피 불법 토토는 곧 합법화된다.’

    정부는 불법 사설 토토중 가장 메이저한 이 대회를 단속해 압류한다.

    그리고 국가사업의 일부로서 관리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E스포츠에 대한 경계가 크게 허물어지게 되는 것이다.

    셧다운제, 캡슐방 규제, 프로게이머 개인방송 금지 등등. 각종 악질 규제가 풀리게 되는 것도 이 즈음이다.

    그리고.

    토토리그가 합법화되는 순간, 그동안 음지에서 떠돌던 검은 돈들은 모두 흔적도 없이 증발한다.

    묻지마 현금.

    출저도 행방도 알 수 없는 그 수많은 검은 돈들.

    과거에는 그것들이 다 어디 갔을까 먼발치에서 궁금해하기만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어차피 눈먼 돈들인데. 내가 다 털어먹고 튀어야겠다.’

    세금도 없고 금융감독, 세무조사를 당할 걱정도 없다.

    말 그대로 검은 돈, 눈먼 돈.

    거의 대부분이 일본, 대만, 중국에서 흘러온 돈.

    ……이건 규제 시행 전까지 먼저 먹는 놈이 임자다.

    “가즈아!”

    나는 대회 참가신청을 한 뒤 배팅석으로 이동해 앉았다.

    그리고 PK리그에 참가한 이들의 면면을 자세히 흩어보기 시작했다.

    “음…아는 얼굴이 없네?”

    사람들은 전부 마스크를 쓰고 본캐의 장비가 아닌 다른 장비를 갖추고 나왔다.

    때문에 15년 뒤, 모든 랭커들과 프로게이머들의 신상을 알고 있는 나도 도무지 정체를 종잡을 수가 없었다.

    “……신중해야지.”

    나는 몇몇 심증이 있는 이들의 경기에도 돈을 걸지 않았다.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마라.

    타짜들의 세계에서 이 말은 곧 법이다.

    내가 그렇게 경기를 관망하고 있을 때.

    “……!”

    내 시선을 끄는 참가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경기장 위. 검은 후드에 하얀 마스크를 쓴 모습.

    하지만 나는 알 수 있다.

    체형, 보폭, 그리고 부캐릭터를 코스튬하는 취향.

    “뭐야? 투신이잖아?”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투신 마태강이 불법 토토 PK리그에 참가했다고?

    ‘원래 과거에서도 이랬던가?’

    이 부분은 나도 몰랐던 사실이다.

    사실 투신 마태강은 엄청난 인기를 구사하는 프로게이머였지만, 그의 집안 내력이나 사생활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집안 사정이 어떤지, 아마추어 때의 주머니 사정이 어땠는지는 광팬이었던 나도 아는 게 거의 없다.

    이윽고.

    투신과 그 상대가 경기장 위로 올라왔다.

    상대방은 일본의 한 랭커. 요즘 꽤나 잘 나가는 존재인가 보다.

    하지만.

    ‘PK죠? 그게 누구야?’

    내 기억 속에서는 희미한 얼굴이다.

    실력자라면 내가 기억을 하지 못할 리 없다.

    아마 나중에 잘 안 풀려서 게임을 접게 되는 게 아닐는지?

    “흠, 투신의 실력이라면 어지간해선 이기겠네.”

    나는 투신에게 가진 돈의 일부를 베팅했다.

    우선은 가볍게 1억 골드.

    현실 돈으로 따지면 약 1천만 원 남짓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쾅!

    투신은 호쾌하게 승리를 가져간다.

    “헉!?”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경기를 보다가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1억 골드가 8억 골드로 변했다.

    1천만 원이 8천만 원으로.

    무려 8배나 폭등한 것이다.

    “투신 코인…떡상…….”

    나는 혀를 내둘렀다. 이래서 다들 토토, 토토 하는구나.

    양측 상대의 전력을 빠삭하게 알고 있다는 것, 승패를 거의 확실하게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무기였던 것이다.

    내가 체감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엄청난!

    이후로도, 나는 계속해서 경기의 승패를 맞혀 나갔다.

    대충 보면 견적이 나온다. 저 선수의 기량은 어느 정도인지, 승패가 어찌 흘러갈지.

    9번 걸어서 7번 땄다.

    현실 돈 1천만 원으로 시작한 것이 어느덧 거의 3억에 육박하고 있었다.

    30배가 넘는 이득.

    그 와중에.

    투신이 본선에 진출했다.

    ‘가자 투신코인! 떡상 가즈아!’

    나는 투신의 넓은 등을 보며 두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한데?

    그 상대로 나온 쪽이 뭔가 심상치 않다.

    ‘어? 저거 서초패왕 아냐?’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나중에 중국 랭킹 3위권 내에서 꾸준하게 자리를 지키게 될 랭커이자 프로게이머.

    “어쩐지. 데뷔 초 소문이 좀 구리더라니. 불법 토토 리그에 손대고 있다는 게 사실이었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법 토토리그에서 활약했다는 추문은 10년이 넘도록 서초패왕을 괴롭히게 된다.

    본인은 다 부인했지만, 애초에 저 체격에 저런 컨트롤을 보이는 중국 랭커는 서초패왕뿐이니.

    “…….”

    나는 냉정하게 승패를 따져 보았다.

    투신과 서초패왕. 누가 이길까?

    “으음……. 투신이 부동의 아시아 넘버완인 것은 맞지만…이 시기쯤에는 오히려 서초패왕이…….”

    투신의 광팬이기는 하지만, 토토는 조금 다른 문제이다.

    “좋아.”

    나는 서초패왕 쪽에 걸기로 했다.

    전에도 말했듯, 투신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천재.

    아직은 미묘하게나마 서초패왕의 기량이 우위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례적으로, 서초패왕에게 30억 골드를 모두 걸었다.

    …….

    한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서초패왕이 방심을 한 것이다.

    엄청난 속도로 거리를 좁힌 투신은 대뜸 서초패왕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뻑-

    건들거리는 태도로 서 있던 서초패왕은 투신의 주먹을 전혀 피하지 못했다.

    [억!?]

    서초패왕의 입에서 억 소리가 나오는 순간.

    “억!?”

    서초패왕에게 30억 골드를 베팅한 내 입에서도 억 소리가 나온다.

    ‘야, 이 미친놈아! 거기서 왜 방심을 해!’

    나는 펄펄 뛰며 서초패왕을 욕하기 시작했다.

    “아, 뭐야! 고인물 저거 별 거 없네!”

    내가 빽 소리치자.

    [……!]

    다시 한번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투신이 결정적인 끝내기 타이밍에서 악수를 둔 것이다.

    배를 때리면 끝나는 상황에서 굳이 무리해 가며 턱을 노렸다.

    그리고 실패했다.

    “……뭐지?”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다 이긴 승부에서 왜 저런 오판을 한 것일까?

    뭐, 투신이 실수를 한 덕분에 내 돈 30억 골드는 무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서초패왕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제대로 반격에 나섰다.

    콰콰쾅!

    천지가 뒤집어지는 듯한 파괴력.

    서초패왕은 산도 무너트릴 듯한 물리 공격력으로 투신을 압박한다.

    접근전에서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은 상대, 투신은 피하기에만 급급했다.

    나는 서초패왕이 휘두르는 참마도를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B급 아이템인가.’

    내가 아는 아이템이다. 어떤 수치의 공격력을 가졌는지, 어떤 특성이 붙어 있는지 정확히 기억한다.

    ‘저 템트리를 상대로는…접근전 밖에 답이 없지.’

    나는 생각했다.

    상대방은 접근전에서 무적인 듯 보이지만, 사실 의외로 접근전에 굉장히 취약하다.

    그것은 겉보기에는 알 수 없지만, 막상 거리를 좁혀 맞붙어 보면 알게 된다.

    ‘말렸군.’

    나는 계속해서 거리를 벌리려 하는 투신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이 시기의 투신은 아직 애송이이다. 상대방의 아이템 특성만 알았어도 지지 않았을 게임이지만……토토리그에 만약은 없다.

    ‘뭐, 경험이 차차 해결해 주겠지.’

    투신과 서초패왕. 나는 둘이 다시 붙는다면 투신이 100% 압승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첫 판.

    이번만큼은 투신이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결국.

    투신은 지고 말았다.

    “휴, 아찔했네.”

    나는 30억 골드를 지킬 수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두 배로 불리기까지 했다.

    “토토도 꽤 할 만한데?”

    물론 미래를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내가 계좌 속의 숫자들을 확인하고 있을 때.

    -띠링!

    나의 대전 상대가 잡혔다.

    공교롭게도.

    ‘서초패왕?’

    1차를 아슬아슬하게, 2차를 뽑기 운으로 통과하고 나니 다음 상대가 바로 서초패왕이다.

    ‘잘됐네. 이번 기회에 시험해 볼 것도 있고.’

    불법 리그에 참가한 김에 전혀 새로운 타입의 도전을 한번 해 볼 생각이었다.

    부캐릭터.

    게임 좀 하는 게이머들이라면 한 번쯤 시도해 보는 것.

    본캐릭터로 할 수 없는 다양한 기행(?)을 벌일 수 있어서 좋다.

    ‘부캐릭터 생성 뭐 별 것 있나? 아이템 테크트리만 싹 바꾸면 되지.’

    마침 상대가 서초패왕이라 딱 좋다. 상성이 괜찮기 때문이다.

    유쾌한 기분으로 경기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

    “……?”

    저 멀찍이 떨어진 곳에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마태강. 본선 1차에서 떨어진 그가 낙심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보였다.

    “…….”

    어쩐지, 나는 조금 미안함을 느꼈다.

    아까 서초패왕에게 돈을 건 것도 그렇고, 내가 고인물 별 거 없다고 뭐라뭐라 소리쳤을 때 그가 움찔한 것도 괜히 내 잘못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짐작컨대, 그는 뭔가 돈이 급해 보이기도 한다.

    “…….”

    이런저런 복잡한 마음에, 나는 투신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짚었다.

    “……?”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렇겠지. 장비를 완전히 바꿨으니까.

    “다음 배팅 나한테 전부 걸어.”

    내가 입을 열자, 이내 그는 내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퉁방울처럼 커진 두 눈.

    나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한마디 더 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서초패왕을 어떻게 발라 버리는지도 잘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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