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54화 (54/1,000)
  • 54화 E스포츠 불법토토 (2)

    토토 메이져 사이트 ‘토뎀 나이트’

    오늘 밤 토뎀 나이프에서 주최하는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통칭 ‘아챔’이 열린다.

    50명이 넘는 아시아 전역의 랭커, 프로게이머들이 진짜 신분을 숨긴 채 가명으로 참전했다.

    그리고.

    PK를 보러 오는 관람객.

    틈틈이 자기 잇속을 챙기는 잡상인.

    배팅으로 한 몫 잡아 보려는 도박꾼 등등.

    자그마치 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50명의 참가자들을 둘러싸고 장사진을 벌인다.

    명목은 사설 운영진에 의해 주최되는 거대한 아마추어 PK리그.

    이들을 단속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까진’ 없다.

    불법 토토리그로 흘러든 돈은 전부 게임머니, 가상화폐들이다.

    이것들은 게임 속 ‘공탁’ 시스템을 통해 은밀하게 오간다. 적발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회사의 협력을 구하는 것도 쓸모없는 일이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스스로 사고하는 인공지능에 운영되는 게임.

    GM본사에서도 게임의 내부 시스템을 자의적으로 컨트롤할 권한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부에서는 이것을 막을 수 없다면 차라리 합법화시켜 세금을 부과하는 쪽으로 정책을 우회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물론.

    아직까지 이 불법 사설 토토의 영역은 완전한 치외법권이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       *       *

    남대륙 ‘고기 삶는 밀림’

    빽빽한 나무들 사이에 숨겨진 큰 바위 위에서 오늘의 PK리그가 벌어졌다.

    얼굴을 가린 참가자들이 완전 무장을 한 채로 등장했다.

    경기장을 둥글게 에워싸는 플레이어들. 그들은 광기 어린 태도로 선수들을 응원한다.

    [오이오이! ‘PK죠’ 이겨야 해! 너한테 집문서 걸었다! 건방진 한국 놈들에게 지지 마!]

    [가라! ‘BJ시진핑크’! 대국의 무서움을 보여 줘!]

    자동 번역 시스템 때문에 의사소통에는 지장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양이나 어휘로 인해 관객들의 국적은 어림짐작 가능하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말의 대부분은 일본어와 중국어였다.

    한국인의 수는 극히 적다. 이유가 뭘까?

    한국 국내에서는 이런 종류의 E스포츠 도박을 엄격하게 단속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뭐 굳이 엄격하게 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E스포츠 쪽을 하도 엄격하고 깐깐하게 규제하다 보니 자동으로 도박까지 막아 버리게 된 케이스.

    그래서 이런 쪽의 불법 토토리그에서는 일본과 중국이 강세를 보인다. 애초에 한국 쪽은 참가자도, 도박꾼도 수가 많지 않았다.

    그런 상황 속에서.

    “…….”

    투신 마태강. 그는 입을 다물고 주변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오늘 이 불법 PK리그의 우승 상금을 챙기러 나왔다.

    1:1 PK라면 자신 있는 그이다.

    다른 랭커들과의 아이템 차이야 꽤 나겠지만, 어차피 이곳에서는 정체를 숨겨야 하는 만큼 본캐릭터의 장비를 그대로 쓰는 참가자는 많이 없다.

    대부분이 부캐. 그러니까 본캐와는 전혀 다른 장비와 전투 스타일로 경기에 임한다.

    투신 마태강은 인파이터 스타일에서 아웃복서 스타일로 바꿔 이곳에 나왔고 그 어느 쪽에도 자신이 있는 상태.

    ‘나는 이긴다.’

    그는 두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장비를 바꿔 어색한 움직임을 보이는 상위 랭커들 따위는 자신의 적수가 못 될 것이다.

    애초에 풀 컨디션으로 싸워도 자신 있는 마당에, 절대 질 리가 없다.

    관중석의 분위기는 점점 달아오른다.

    사회를 보게 된 사설사이트 운영자가 확성기를 잡았다.

    [네,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주신 신사 숙녀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지금까지 봤던 경기들 중 제일 역대급 규모네요.]

    그는 밀림의 나무들보다 많은 토토 이용자들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자! 그럼 거두절미하고 오늘의 리그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매치는 모두 아시다시피 랜덤입니다!]

    이윽고, 가면을 쓴 여자 플레이어들이 입장한다.

    아름다운 외모의 동양인 여성들.

    그녀들은 커다란 풍선 안에 들어 있는 공을 마구 섞였다. 공들에는 이름과 숫자가 적혀 있다.

    다르르륵-

    이윽고.

    공 두 개가 풍선 밖으로 굴러 떨어졌다.

    사회자는 공에 적혀 있는 숫자와 이름을 우렁차게 외쳤다.

    [네! 첫 번째 대진 순서입니다!]

    그는 공을 비추는 카메라 화면을 확대했다.

    그러자 허공에 커다란 홀로그램이 뜨며, 공 표면에 적힌 숫자가 모두의 눈앞에 나타난다.

    9번. ‘마티오스’

    VS

    48번. ‘PK죠’

    예선 대진표.

    두 플레이어의 닉네임이 적힌 공 중 하나는 버려지게 되고 다른 하나는 본선용 투명 풍선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꾸욱-

    투신은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마티오스’ 그것이 그의 불법리그 참가용 가명이다.

    한편.

    [우오오오오 PK죠!!! 힘내줘라!]

    [PK죠! PK죠! PK죠! PK죠!]

    관중들은 ‘PK죠’의 이름을 부르며 뜨겁게 환호한다.

    PK죠. 그는 이 불법 리그에서는 몇 번인가 우승을 거둔 적도 있는 유명한 랭커였다. 국적은 일본이다.

    스릉-

    칼이 집에서 뽑혀 나오는 소리.

    긴 장발의 사무라이 하나가 경기장 위로 올라온다.

    어깨와 하반신을 가리고 있는 거대한 장갑. 하지만 상의는 얇은 천조각만 걸친 상태다.

    손에는 가늘고 긴 일본도를 들고 있었다.

    그는 얼굴도 닉네임도 가리지 않은 채 경기장 위로 바로 올라왔다.

    “상대는 누구냐?”

    PK죠는 오만한 표정으로 경기장을 쭉 둘러보았다.

    이내.

    턱-

    투신 마태강이 경기장의 돌바닥 위로 올라왔다.

    “…….”

    “…….”

    두 유저의 기싸움이 시작되었다.

    동시에 도박꾼들의 기싸움 역시도.

    차르르륵-

    배당판이 돌아간다.

    PK죠는 아시아 랭킹 8위. 일본 랭킹 2위의 초고수이다. 프로게이머가 아닌지라 신분도 당당하게 까고 나왔다.

    반면 ‘마티오스’는 이제 막 리그에 참가한 신인. 전적도 신분도 알려진 것이 전혀 없다.

    8:1

    배당이 정해졌다.

    PK죠에게 건 사람이 8명이라면 마티오스에게 건 이는 1명.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배당이다.

    만약 마태강이 마티오스라는 이름이 아니라 투신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다고 해도 결과는 비슷했을지 모른다.

    [아까 저 녀석 말하는 것 들어보니까 억양이 한국인 같던데?]

    [한국은 무조건 걸러. 일본을 이길 리가 없잖아?]

    [셧다운제 때문에 PK도중에 튕기는 게 아닌가 몰라wwwwww]

    픽스터들은 한국에 픽을 주지 않는다.

    그 신중한 양방배팅러, 무잡이들 조차도 투신에게는 배팅을 하지 않았다.

    일부, 아주 기계적으로 양방배팅을 하는 몇몇만이 PK죠에게 9 마티오스에게 1 형식으로 돈을 걸었을 뿐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투신 마태강이 앞으로 한 발을 내딛었다.

    “……!”

    PK죠가 미처 칼을 다 뽑기도 전이었다.

    쾅-

    투신의 주먹이 PK죠의 안면 정중앙에 때려 박혔다.

    우직-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며, PK죠는 뒤로 비틀비틀 물러났다.

    코뼈가 완전히 주저앉았다.

    “……이, 이런 빌어먹을 춍이?”

    PK죠가 황당한 표정으로 얼굴을 가린 손을 치우자,

    우직!

    날아든 것은 투신의 무릎이었다.

    “이 자식!”

    PK죠는 그제야 칼을 완전히 빼 들었다.

    너무 서두르느라 칼집을 회수하지도 못했다.

    그냥 패대기치듯이 날려 버린 칼집.

    PK죠는 그 상태로 칼을 휘두르며 거리를 벌리려 했지만, 투신은 절대로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붕-

    칼이 지나가고 난 뒤 빈 공간. 그 옆구리를 향해 투신은 묵직한 주먹을 꽂아 넣었다.

    -<단조(鍛造) 건틀릿> 양손무기 / C+

    한계까지 달궈져 시뻘겋게 보이는 강철 건틀릿. 어지간한 방어구는 그냥 뚫어 버린다. 착용자에게는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한다.

    -공격력 +350

    -화염 공격력 +100

    -특성 ‘관통’ 사용 가능(특수)

    뜨거운 화염 데미지가 PK죠의 장갑을 뚫고 박혀 옆구리까지 꿰뚫어버렸다.

    HP칸이 부서질 듯 요동친다. 순식간에 빨간 선까지 내려가는 HP 바!

    “커헉!?”

    PK죠의 두 눈이 크게 벌어졌다.

    감각 공유를 극한까지 해 놨기에,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실로 생생하다.

    “끝.”

    투신은 승부를 길게 끌지 않았다.

    묵직한 보디 블로우에 연이은 왼손 어퍼컷!

    그 한 방에 PK죠의 접속은 끊겨버렸다.

    상대방을 그 자리에서 바로 K.O 로그아웃 시켜 버리는 투신의 위엄에.

    [우-와아아아아!]

    관중들이 미친 듯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환호하는 이들은 순수하게 경기를 보러온 소수 뿐. 대부분의 도박꾼들의 표정은 어둡다.

    [빌어먹을 춍이 이기다니…….]

    [말도 안 돼! 누구 저 마티오스라는 놈한테 건 놈 있어?]

    ]나 양쪽에 조금씩 걸었는데……PK죠에게 건 대부분의 돈을 손해 보는 바람에 이득 본 게 딱히 없네.]

    PK죠는 무려 저번 PK리그의 우승자다. 그런 존재를 순식간에 치워 버리는 마티오스의 능력에 모두가 주목했다.

    [대체 어디 랭커야? 한국 1위야?]

    [저 정도 컨트롤이면 충분히 그럴 것 같은데?]

    [지금 한국 랭킹 상위권 프로게이머들 중에 저렇게 싸우는 녀석이 있어? 내가 알기로는 한 명도 없는데?]

    [한국은 협회들이랑 구단들의 파벌 문제가 심각하니까 저런 인재가 묻혀 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지.]

    [에이, 애초에 한국이 아닐 수도 있지. 거기는 셧다운제니 뭐니 서브컬쳐에 규제 엄청 심하잖아? 말하는 억양만 한국식일지도.]

    수많은 의견들이 분분한 가운데.

    마티오스, 아니 승자의 이름이 적힌 9번 공은 본선 리그용 풍선 안으로 들어간다.

    PK죠, 아니 패자의 이름이 적힌 48번 공은 그대로 버려졌다.

    불법 토토만큼 이 세상을 잘 반영하고 있는 시스템도 없다.

    이기면 축하받고 돈을 벌고.

    지면 무시당하고 돈을 못 번다.

    요즘 세상에선 당연한 일이다.

    .

    .

    .

    “후…….”

    첫 대전을 여유롭게 승리로 장식한 마태강. 그는 본선 대기자 열에 서서 다음 대전 순서를 기다렸다.

    50명의 참가자 중 25명이 살아남는다.

    그 중 12명이 걸러지고 그 다음에는 또 7명이 남는다.

    상금을 탈 수 있는 이들은 총 3명.

    그러니까 뽑기 운을 제외하면, 앞으로 네 번을 더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윽고.

    예선에서 살아남은 25명의 생존자가 또다시 대전 추첨을 시작했다.

    이윽고.

    마태강의 다음 상대가 정해졌다.

    번호와 닉네임이 적힌 공 두 개가 풍선 밖으로 떨어지는 순간.

    “……!”

    마태강은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9번. ‘마티오스’

    VS

    21번. ‘고인 물’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