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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53화 (53/1,000)
  • 53화 E스포츠 불법토토 (1)

    어느 고등학교 급식실.

    몇몇 학생들이 구석진 자리에 우글우글 모여 핸드폰을 보고 있다.

    화면에서는 한 남자가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모자이크 된 얼굴.

    알몸.

    어깨에 두른 망토.

    빨간색 신발.

    어딜 봐도 변태 같은 모습이지만…….

    “와, 진짜 너무 멋있다.”

    학생들의 반응은 조금 이상하다.

    [자, 오늘은 맨손으로 C+급 몬스터를 참교육 시켜 보겠습니다. 무기 없이! 장비 없이! 오로지 맨손입니다.]

    BJ 고인물. 바로 그의 방송이었다.

    영상 속에서, BJ 고인물은 아무것도 입지 않고 아무것도 들지 않은 채 덜렁덜렁(?) 움직여 한 던전으로 향했다.

    초보자 존에 있는 유일한 고난이도 던전. 흔들귀의 미궁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카오니!

    C+급의 악귀타입 몬스터 중 강력한 특성치와 종족값을 가진 몬스터.

    한데 그런 몬스터를 맨손으로 잡아 보겠다고?

    “대박. 미친 거 아냐?”

    “근데 이 사람이라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한데?”

    “미친, 말이 되냐? 랭커들도 1:1로 겨우 겨우 잡는 몬스터인데?”

    아카오니는 이제 랭커들의 공식 전투력 측정기가 되었다.

    놈을 혼자 잡을 수 있으면 프로 게이머 급. 혼자 못 잡으면 아마추어 급. 뭐 이런 식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풀 컨디션에 모든 아이템을 완전 정비했을 때의 일이다.

    알몸에 맨주먹으로 아카오니를 잡는다?

    말도 안 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놀랍게도 BJ 고인물은 그 말도 안 되는 짓을 실제로 행한다.

    [즐겨찾기, 선호작, 같이 보는 중, 구독신청 꾹~ 잊지 마세요.]

    그는 여느 때와 같은 멘트를 날린 뒤 거침없이 던전 심층부로 다이빙했다.

    그리고.

    -띠링!

    <아카오니가 지진을 준비합니다!>

    귀에 요란한 적색 경보가 울려 퍼진다.

    하지만.

    [안 맞죠. 맞을 수가 없죠, 이런 건.]

    BJ 고인물은 얄밉게도 아카오니의 공격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 간다.

    그리고 꾸준히 맨주먹을 휘둘러 아카오니의 돌기둥 같은 발에 딜을 넣는다.

    팡! 팡! 팡!

    마치 체조를 하는 것 같은 움직임.

    그러나.

    콰쾅!

    온 세상을 부숴 버릴 듯한 아카오니의 공격은 당최 맞질 않는다. 단 한 대도!

    [자, 여기서는 한번 굴러 줍니다. 화염 피했고요. 엇차, 3.3.7.박자로 점프해 주면 지진도 피할 수 있습니다. 네? 뭐라구요? 슬라임 워커도 빼라구요? 아 시청자님들. 이거는 좀 봐 주셔야죠. 진짜 신발도 없이 맨몸 맨주먹으로 잡으려면 레벨 50은 찍고 와야 합니다.]

    BJ 고인물은 계속해서 아카오니를 투닥투닥 두들긴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했나?

    영상이 빨리감기되자, 이내 결과가 보인다.

    쿵-

    아카오니는 그 큰 몸을 던전 바닥에 내던진다.

    “대박. 진짜 미쳤다…….”

    “이걸 잡네.”

    학생들은 넋 나간 표정으로 아카오니의 시체를 바라본다.

    하지만.

    BJ 고인물은 너무나도 태연한 목소리로 방송을 마무리한다.

    [네. 지금까지 ‘애무로 보스잡기’ 편이었습니다.]

    [오늘은 초보자 구역의 3대 보스 중 하나인 아카오니를 살펴보는 시간이었구요.]

    [다음에는 젖거미, 긴칼비늘 킹코브라 리뷰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젖거미가 기대되네요. 감사합니다.]

    이윽고.

    추가 영상이 올라온다.

    [네, 아카오니를 잡으니 갑옷 하나가 떨어졌네요. 방어력이 꽤 쓸 만합니다. 이것은 바로 경매소에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얼마까지 올라가려나 궁금하네요.]

    댓글도 마구 달린다.

    -니가 좀 입어라;;;

    -팔지 마세요 니 아랫도리에 양보하세요~

    -고인물 횽, 언제까지 알몸으로 다닐거야;;; 저번에 음란방송으로 신고 먹었다며~

    -대박. 2백만원은 너끈히 받겠는데요? ㄷㄷㄷ

    .

    .

    댓글 반응을 본 학생들을 낄낄 웃었다.

    “야, 진짜 방송 갸꿀잼이다.”

    “웃다가 성머 찢어지는 각. 머유잼 방송 오지는 부분.”

    “근데 왜 옷을 안 입는 거냐?”

    “원래 고인물들은 알몸으로 다님. 반박시 뉴들박.”

    고등학생들은 자기들끼리 낄낄 웃다가 이내 정기구독 버튼을 누른다.

    한 명은 후원금까지 보내기도 했다.

    그때.

    “야, 이놈들아! 언제까지 그딴 거 볼 거야!”

    급식실을 지나던 교사 하나가 학생들의 머리에 주먹을 쿵 떨어트린다.

    “아오, 아파요 쌤!”

    학생들이 눈을 흘기자, 교사는 혀를 끌끌 차며 학생들의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늬들 이거 볼라고 폰 안 냈지? 싹 걷어다가 아주 한 달 뒤에 줘?”

    “아 쌤. 이거 공기계예요.”

    “잔말 말고 이리 내놔.”

    교사는 혀를 차며 학생들의 핸드폰을 뺏는다.

    그러더니?

    “어? 너네도 이 방송 보냐?”

    그러자 학생들도 눈을 동그랗게 뜬다.

    “쌤도 이거 봐요?”

    “으음. 얼마 전에 아카오니 잡다가 레이드 전멸해서. 공부 삼아?”

    그러자.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 머쓱한 분위기가 감돈다.

    슥-

    교사는 빼앗은 폰을 학생들에게 돌려주었다.

    “자식들아, 적당히 봐. 대학 가야지~”

    “네, 겜덕 쌤.”

    “누가 겜덕이야, 콱 마. 요즘 이 게임 안하는 사람이 어딨다고…….”

    “쌤은 어떻게 입문하셨어요?”

    학생들이 묻자, 교사는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대답했다.

    “BJ 고인물이 얼마 전에 차 인증했잖냐. 그게 내 드림카였거든. 그거 보고 충격 받아서 나도 시작해 보자 했는데. 어휴 D등급 몬스터 하나 잡기도 어렵더라. 게임 난이도 왜 이렇게 극악이냐?”

    그러자 학생들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그러면 태강이 형한테 한번 부탁해 보세요!”

    교사는 고개를 갸웃한다.

    “태강? 그게 누구냐?”

    “저희 학교 3학년 선배인데, 프로게이머 시험 합격해서 지금 연습생 생활 중이래요. 1군이랬나? 2군이랬나?”

    “그런 애가 있어? 처음 듣는데.”

    교사는 금시초문이라는 듯 눈을 끔뻑거렸다.

    노래 잘 부르는 애, 춤 잘 추는 애, 축구 잘하는 애, 그림 잘 그리는 애, 게임 잘하는 애, 글 잘 쓰는 애.

    이런 학생들은 기억하지도, 알지도 못한다.

    공부 잘하는 애 말고는 딱히 이름을 기억하는 애가 없다.

    “나중에 한번 물어나 봐야겠다.”

    교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잔반 상태를 감시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       *       *

    마태강은 학교 내에서 그리 존재감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

    게임 내에서는 ‘투신’이라는 별명으로 서서히 이름을 알리고 있었지만…….

    현실의 교사들은 그를 그저 ‘예체능’ ‘반 평균 깎아먹는 놈’ ‘문제아’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하기야, 복싱 특기생이었다가 운동을 그만둔 뒤로 가끔 폭력 사건을 일으키는 일로만 교무실에 불려갔으니 그럴 만도 하다.

    “…….”

    마태강은 오늘도 책상에 앉아 창밖의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야간자율학습은 전부 참여해라. 우리 반 참여율이 제일 낮아, 이것들아!”

    담임은 교탁을 출석부로 팡팡 치며 버럭 소리쳤다.

    “…….”

    마태강은 야간자율학습을 빠지기 위해서 손을 들까 했지만 이내 관두었다.

    <야간자율학습 불참자 명단>

    ‘김영준 – 수학 심야 과외’

    ‘박수한 – 음대 입시 준비’

    ‘송승우 – 미대 입시 준비’

    ‘신세현 – 학원 보충학습’

    ‘황정현 – 보습학원 보강’

    .

    .

    이런 마당에…….

    ‘마태강 – 던전 보스 레이드’

    이런 사유를 적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만약 그랬다간 안 그래도 미운털 박힌 마당에 더욱 더 난리가 나겠지.

    하지만 학교에 투자하는 시간이 아까운 것은 사실이다.

    학교만 아니었어도 그는 진즉에 국내 랭킹 5위권 안으로 진입했을 테니까.

    한국 랭킹은 아직 일본이나 중국 대만에 비해 많이 낮은 상태였다.

    한국이 E스포츠 강국이었던 것은 이제 옛말, 다른 나라들은 청소년들이 E스포츠에 두각을 보이면 일반적인 예체능과 똑같이 밀어 주고 끌어 주었지만…….

    ‘어딜 청소년이 맨날 게임만 하려고!’

    ‘게임을 하면 폭력성이 늘어난다!’

    ‘게임은 그저 취미삼아만 해라. 학생은 공부를 해야지.’

    한국만은 얄짤 없었다.

    어김없이 12시면 게임 접속이 강제 종료되는 청소년들.

    그나마 캡슐에는 아직 이런 셧다운이 없었지만 모든 PC게임들은 똑같았다.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을 빼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캡슐방에 출입하는 것 또한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한국이 E스포츠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정치인들은 한국이 E스포츠 시장에서 점점 밀려나는 것이 얼마나 큰 손실이냐며 떠들어댄다.

    수많은 상인들이 게임 용품이 팔리질 않는다며 울상 짓는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세상이었다.

    대체 부동의 1위였던 한국이 왜 자꾸만 밀려나는지, 이 황금 같은 시장에서 왜 자꾸만 도태되는지.

    모두가 다 아는데 정작 그들만 모른다.

    E스포츠 시장이라는 거대한 밥그릇을 스스로 차 버린 것도 모자라 자라나는 수많은 이들의 밥그릇까지 깨 버려 놓고는 말이다.

    ‘쨀까?’

    마태강은 한숨을 쉬고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오늘도 야자를 도망갔다간 진짜 엉덩이가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맞을 것 같다.

    엉덩이가 너무 부으면 캡슐에 눕기 불편하니 할 수 없는 일.

    하지만.

    그렇다고 마태강이 공부를 하는 건 아니었다.

    “어이, 마태강이~”

    교실 뒷자리에 앉아 있자니, 몇몇 껄렁한 것들이 말을 걸어온다.

    일진놀이에 심취한 전형적인 타입의 아이들이다.

    “……뭐냐?”

    마태강이 귀찮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자, 다가온 녀석들은 움찔한다.

    “아, 아니. 저번에 말했던 거. 다 구했나 해서.”

    개중 한명이 애써 태연한 척 말을 꺼내자.

    “…….”

    마태강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냥꾼의 아대(C+)’랑 ‘용기의 갑옷(C+)’ 말하는 거라면 이미 구해 놨다.”

    “오오! 진짜냐!? 고마워! 여윽시 우리……!”

    “고마울 것 있나. 돈이나 제대로 준비해 놔.”

    “…….”

    마태강은 일진놀이를 하는 것들에게 싸늘하게 선을 그었다.

    이내. 마태강은 책상 위의 가방을 집어 들고 교실을 홱 나섰다.

    “…….”

    일진들은 자기들의 앞을 스쳐 지나가는 마태강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학기 초에 기선을 제압해 보겠다고 시비를 털다가 몇 대 쥐어 터진 적이 있기 때문이다.

    “…후.”

    거리를 걸으며, 마태강은 한숨을 쉬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

    일단 학교로는 돌아갈 수 없다. 야간자율학습에서 무단 탈주했으니 야구배트로 엉덩이를 맞을 게 분명하다.

    ‘프로게이머 숙소로 갈까?’

    그것도 싫다.

    가 봤자 능력도 없는 선배들이 실력 좋은 후배 기 잡는답시고 온갖 잡일을 다 떠맡길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럼 집에 가야 하나?

    …….

    그것도 싫다.

    여동생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있고 부모님은 치료비를 벌기 위해 밤낮없이 일만 하고 있다.

    춥고 어두운 집에 가 봐야 아무도 없는 것이다.

    “나도 돈 벌고 싶은데.”

    마태강은 답답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다못해 개인방송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놈의 독점, 규제가 뭔지, 프로게이머가 된 이들은 구단 측에서 영리활동을 최대한 억제시키고 있었다.

    뭐 규제를 풀어 준다, 풀어 준다 하는데 대체 언제 풀어 주겠다는 건지 확답도 없다. 그냥 무작정 기다리라는 태도.

    빨리 데뷔전을 치르고 대회에 참가하고 싶지만, 그마저도 선배들의 텃세와 학교의 방해 때문에 어려운 점이 많았다.

    아직 데뷔전도 치르지 못한 1군 신입인지라 광고나 스폰 등이 따로 붙을 리도 없다.

    그러니 별 수 없는 일이다.

    틈틈이 게임을 해서 아이템을 구해 경매장에 파는 수밖에.

    그것 말고는 딱히 돈을 벌 방법이 없는 것이다.

    바로 그때.

    펄럭-

    전봇대에 붙어 있는 광고지 하나가 마태강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스팟-

    마태강은 보지도 않은 채 주먹을 뻗어 전단지를 잡아챘다.

    얼마 전에 붙은 듯 빳빳한 새 전단지.

    시커먼 바탕에는 빨간 글씨, 화려한 폰트로 무언가가 너저분하게 적혀 있다.

    한눈에 보기에도 불법적인 광고다.

    하지만.

    “…….”

    평소였다면 내팽개쳤을 그 전단지를, 마태강은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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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꾸깃-

    마태강의 손에 들린 전단지가 손아귀 속으로 빨려들 듯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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