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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51화 (51/1,000)
  • 51화 커서 뭐 될래? (2)

    검은 세단은 도로 위를 배처럼 달린다.

    물 흐르듯 매끄러운 주행. 울퉁불퉁한 길을 달려도 내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끼익-

    잠시 후.

    세단이 멈춘 곳은 강남구 청담동의 커다란 건물 앞.

    차에서 내리자 고층건물의 1, 2, 3층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매장이 보인다.

    나를 이곳으로 안내한 딜러 두 명이 착실하게 안내를 시작했다.

    “전에 예약 주셨던 대로 바로 모시겠습니다.”

    나는 딜러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뜬금없이 무슨 차를 보러 왔냐고?

    예전에 한번 오피스텔과 캡슐방 부지를 알아보러 다니다가 길바닥에서 수 시간을 허비한 뒤부터, 나는 차를 사기로 결심했었다.

    ‘뭐, 마침 지나가다가 눈에 띄기도 했고.’

    왜 지나가다가 가판대에 물건이 걸려 있으면 괜히 하나 사고 싶어지잖아? 내게 있어서 포르쉐도 그런 느낌이다.

    또한.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통해 그 사람의 수준을 판단하는 게 일반적이다.

    아무리 내가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사람들의 생각에 부합하지 않으면 의심받는다.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 수 있는 액세서리는 꼭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은 몰라도, 앞으로 몇 개월만 지나도 프로게이머나 개인 방송인 생활을 하려면 적당한 사치는 필수가 될 것이다.

    공인, 혹은 유명인.

    그들은 ‘보여지는’ 부분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저 사람은 뭔데 저렇게 대단한 차를 타고 다녀?’

    ‘저 시장이 어떻기에 이렇게 돈을 많이 버나?’

    ‘나도 한번 확 뛰어들어 봐?’

    ‘뭐 하는 사람인지 방송이나 한번 볼까?’

    타인의 시선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영향력을 가졌다는 뜻이다.

    나의 화려한 생활을 본다면, 대중들은 ‘나’라는 사람 개인에게도 호기심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면 방송을 보든 내 신상을 캐든 어떻게든 접근하겠지.

    이는 곧 트래픽을 증가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나의 후원수익, 광고수익, 출연료 등등…통칭 ‘몸값’이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또한, 나를 보고 이 시장에 흥미를 가지게 된 이들이 속속 후발주자로서 참가하게 된다면 전체적인 시장의 파이가 커지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결국 어느 정도의 사치는 나를 위해서도, 공익을 위해서도 좋다는 것이다.

    뭐, 이것은 전부 15년 뒤의 세상에서 남들의 인터뷰를 보고 배운 것이지만 말이다.

    내가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앞서 걷던 딜러는 쉬지 않고 멘트를 쳤다.

    “이 모델은 어떠신가요? 최신형 포르쉐 GEAR3 세단인데 풀타임 4륜구동 방식을 채택하고 있어서 4,000cc급에서는 독보적인 주행성능을 보여 준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보시다시피 가격도 2억 7천만 원 선이라 합리적이라 볼 수 있고요.”

    “스포츠 레이싱 DNA를 직접 체감하고 싶으시다면 베스트셀러인 999도 추천드릴 만합니다. 마력이 500씩이나 되어서 스포츠가가 아니라 슈퍼카라는 말도 나오는데요. 가격은 굉장히 착한 친구입니다. 약 2억 선이죠.”

    “미드엔진 스포츠카을 찾으신다면 여기 덱스터와 카이약도 있습니다. 둘 다 1억 원 선입니다.”

    딜러의 앞에 늘어진 것은 반짝반짝 빛나는 자동차들.

    하나같이 신차들이라 그런가 예쁘게 잘 빠졌다. 국산차를 봤을 때와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원하시면 지금 바로 시승해 보실 수도 있으니까 언제든지 바로 말씀해 주세요. 보시는 동안 차라도 한 잔 더 가져다 드릴까요?”

    딜러들은 모두 친절했다.

    나는 원두커피를 한 잔 마시며 천천히 차들을 돌아보았다.

    그때.

    “……!”

    내 발을 확 붙잡는 차가 하나 있다.

    시커먼 바디에 붉은 내장을 지닌 스포츠카.

    먹이를 노리며 잠복해 있는 악어를 보는 듯한 자세, 묵직한 흑색 광택.

    <포르쉐 크로커다일>

    내가 이 차 앞에서 발을 멈추자, 딜러는 약간 움찔한다.

    “아 네. 이 차는 ‘진짜’죠. 역대 포르쉐의 걸작 3선 중 하나입니다. 6,000cc에 600마력이 나오는 괴물이죠. 한국에도 몇 대 풀리지 않았습니다만…….”

    딜러는 자부심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내가 이 차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이유는 단순히 이 슈퍼카의 제원 때문이 아니다.

    아니, 제원이라면 나도 누구보다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V12 엔진형식에 자연흡기형, 연비는 S/T 21.5 ℓ/100km. 풀타임 4륜구동, 변속기는 자동 6단…….

    내가 이 차를 어떻게 알고 있냐고?

    그것은…전생에 이 차가 내 애마였기 때문이다!

    ‘물론 콜떼기로 밖에는 못 타 봤지만…….’

    콜택시를 타고 다니면 모양이 안 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값비싼 차를 1회용으로 빌려 잠깐잠깐씩 타고 다닌다.

    당시 나는 강남권 안에서 돌아다닐 때 잠깐 타는 데 만 원, 서울 내를 돌아다니며 탈 때는 10만 원 정도를 내고 탔었다.

    이동 후 대기료에 다시 출발할 때 내는 돈까지 합치면 하루 모는 데 십 수 만 원씩은 꼭꼭 썼던 것 같다.

    “그게 다 여캠BJ 하던 유다희한테 잘 보이려고 했던 거였지….”

    나는 유다희의 얼굴을 떠올리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우와 오빠 이런 차 타고 다녀!? 뭐 하는 사람이야!’

    그녀 입에서 이런 소리 한번 듣기 위해서 부린 허세.

    그때 이동하면서 썼던 돈만 모아도 작은 원룸 하나는 샀겠다.

    뭐, 그 당시만 해도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게임 BJ들이 이런 생활을 했었다.

    각자 나름의 사연들이 있었겠지만, 위에 내가 말했던 이유가 대부분이었다.

    “이번에는 절대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나는 속으로 다짐 또 다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딜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걸로 할게요.”

    예전의 나와도 각별한 인연이 있었던 차. 또 한 번 이렇게 인연을 시작하게 되었다.

    전에는 콜떼기였다면, 이제는 진짜 나의 소유로써.

    비단 이 작은 ‘차’ 뿐만 아니라 명예, 그리고 인간 관계까지.

    이제는 진짜 나로서 살아갈 것이다. 제대로 된 인생을!

    *       *       *

    “……네, 고객님. 신분증 확인 마쳤습니다. 그 외에 다른 서류 같은 것들은 다 저한테 맡기시면 됩니다. 이제 편안하게 차량 인수만 기다려 주시면 될 것 같네요. 대신 차량 등록하실 때 준조세 성격의 공채 매입비용이랑 등록세 납부를 해야 하니까 주의해 주시고요, 납부 기한이나 기타 이것저것 관련해서 모르시는 것 있으시면 언제든 전화 주셔서…….”

    계약 이후로는 일사천리다.

    5억 원 가까이 하는 슈퍼카를 사는 것이니만큼, 지진한 서류처리는 모두 사측에서 처리해 준다. 신용도, 일처리도 확실했다.

    모든 서류 작업을 끝내자,

    “그럼 결제는 어떤 방식으로 하실 건가요?”

    딜러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36개월 무이자요.”

    이쯤에서 간지나게 일시불로 긁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곧 리그도 있는데 현금은 모아 둬야지.’

    토토가 합법화 되는 그날까지, 나는 최대한 현금 비축량을 쌓아 둘 생각이다.

    지금까지 아이템과 게임머니를 팔아서 번 돈과 방송 수익, 그리고 광고료를 모두 합치면 약 4억 남짓.

    본격적으로 돈을 벌기도 전인데 벌써 이만큼의 금액이 생겨 버렸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마음먹고 돈을 벌어 보려 하는데, 과연 어디까지 벌 수 있을까?

    내가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그럼 인수하시고 싶은 날짜와 시간, 장소를 적어 주시면 됩니다!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소요되니까 그 이후에 날짜로 적어 주세요.”

    딜러가 최종 서류를 내밀었다.

    내가 막 배송지에 인수 날짜와 장소를 적으려 하는 순간.

    지이이잉-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큰아버지]

    반갑지 않은 이름이 떠 있다.

    “뭐야?”

    나는 미간을 찡그린 채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이놈아,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아?]

    큰아버지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작은 소리로 대답하자, 큰아버지는 또다시 마이 페이스로 말을 이어 나갔다.

    [내일 모레 할아버지 제사 있는 거 알지? 전역했으면 빠딱빠딱 내려와서 일손도 좀 돕고 그래라! 안 그래도 바쁜 네 형들이 일 다 해야겠냐!?]

    “아 네, 큰아버지. 저도 지금 좀 바빠서…….”

    [뭐? 바빠? 네 형들이야 의대, 법대 다니니까 바쁘다고 해도! 너는 허구한 날 집에서 게임만 하는 놈이 뭐가 바빠!? 서울에서 밥만 축내지 말고 당장 내려와!]

    전화는 바로 끊어졌다.

    밥을 축내긴.

    누가 보면 쌀이라도 한 포대 사 준 줄 알겠네.

    나는 핸드폰을 내려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큰아버지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나를 언제든 자기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물건 취급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내가 알기로 저런 태도는 앞으로 15년간 바뀌지 않는다.

    부모님의 얼마 되지 않는 유산을 죄다 가져가 놓고 나를 바로 군대에 보내 버렸지.

    그랬으면서 지금까지 나를 키워 준 것 마냥 매번 생색을 내는데…….

    ‘앞으로 15년간 큰아버지 덕 볼 일은 조금도 없지’

    미래를 살다 온 입장으로서 명확하게 말할 수 있다. 매번 명절마다 핀잔과 비웃음만 당했지 무엇 하나 은혜를 입은 게 없다.

    ‘나중에 부모님 유산을 돌려 달라고 했다가 뺨이나 얻어맞지 않으면 다행이지.’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는데, 돈보다는 흐린 것 같다.

    어찌 보면 내가 나중에 현실을 도피한 채 엇나가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것도 결국 친척들이니까.

    남 탓하는 것은 싫지만, 이번 생에서는 미리미리 경계해 둬야겠다.

    “슬슬 정리해야겠군.”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렸다.

    그리고 방금 받은 자동차 인수 서류에 주소를 쓰기 시작했다.

    “차는 이쪽으로 보내 주시면 될 것 같아요.”

    내가 사는 반지하 원룸.

    혹은 앞으로 살게 될 서울의 고급 오피스텔.

    둘 다 아니었다.

    [충청남도 부여군 옥산남로 641-61]

    바로 큰아버지의 집 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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