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커서 뭐 될래? (1)
-<단조(鍛造) 건틀릿> 양손무기 / C+
한계까지 달궈져 시뻘겋게 보이는 강철 건틀릿. 어지간한 방어구는 그냥 뚫어버린다.
착용자에게는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한다.
-공격력 +350
-화염 공격력 +100
-특성 ‘관통’ 사용 가능 (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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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틀릿은 무투가에게 있어서 보물이나 다름없는 초반 아이템이다.
350이라는 준수한 깡공격력이 일단 눈에 들어온다.
C+등급 양손무기의 평균 공격력이 200임을 감안하면 대단히 높은 수치다.
거기에 화염 데미지가 100 추가된다.
화염 데미지는 어지간한 상대에게는 모두 통하는 것이니 토탈 공격력은 약 450정도.
거기에 ‘관통’ 특성이 붙어 있으니 금상첨화다.
상대방의 방어구를 무시하고 때려 박는 통렬한 일격기!
두 주먹만으로 모든 것을 박살내는 상남자 스타일!
그것이 모든 무투가의 로망이 아니던가?
물론 기운을 모으려면 시간이 꽤 걸리고, 강력한 기술을 쓸수록 내구도가 급격히 닳는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그래도 한순간에 폭발적인 화력을 내기에는 이만 한 아이템이 또 없다.
그러니까 상대에게 딱 달라붙어 야차처럼 싸우는 투신(鬪神) 마태강에게는 아주 어울리는 무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준수한 무기 스텟이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퍼퍼퍼펑!
나는 눈앞에서 터져나가는 투신의 육체를 보며 피식 웃었다.
반사 데미지.
내가 입은 갑옷 ‘패륜아의 심장’은 입은 데미지의 90~99%를 반사한다.
투신은 나보다 레벨이 낮으니 90%의 반사 데미지가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데미지를 반사한 것과 내가 데미지를 먹은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나의 방어력은 기껏해야 500 남짓.
투신이 혼신의 힘을 다해 꽂아 넣은 공격이 먹히지 않았을 리가 없다.
하지만 내가 꼴랑 370밖에 되지 않는 최대 HP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샌드웜의 망토 덕분이지.’
나는 목과 어깨에 두른 모래색 망토를 흘끗 내려다보았다.
-<샌드웜의 가죽> 망토 / A+
샌드웜은 충왕족(蟲王族) 몬스터 중 가장 크고 강하며 또한 고고한 존재이다.
여지껏 수많은 세력들이 이 거대한 존재를 붙잡아 전술적으로 이용하려 하였으나 단 한 번도 성공한 사례가 없다.
-방어력 +500
-특성 ‘흙장난’ 사용 가능 (특수)
-특성 ‘앙버팀’ 사용 가능 (특수)
샌드웜이 죽으며 떨군 아이템.
한 눈에 보기에도 이것이 샌드웜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망토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이 망토의 설명에는 망토의 효능에 대한 내용이 없다.
그저 샌드웜이 얼마나 굴복시키기 어려운 존재인가에 대한 설명만이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뭐 이렇게 설명이 불친절하냐며 투덜거렸겠지만.
‘……나는 아니지.’
이 망토의 성능은 이미 알고 있다.
그렇기에 샌드웜의 질기고 강인한 성정이 곧 이 망토의 설정이 된다는 것 역시도 안다.
‘흠, 방어력이 500이라…….’
샌드웜의 가죽 망토가 가진 방어력은 역시나 보잘것없다.
다만 특수 옵션이 두 개! 모두 특성이 붙었다.
하나는 ‘흙장난’이란 특성이다.
이는 ‘땅’에 발을 딛고 있을 때 내 몸이 자연적으로 주변 환경과 비슷해지는 패시브.
선공형 몬스터에게 발견당할 확률이 50% 낮아지며 이는 플레이어들에게도 꽤나 잘 통한다.
하지만.
이 망토의 진가는 바로 두 번째 특성에 있다.
‘앙버팀’ 특성.
이는 망토 착용자가 최대 HP 상태일 경우, 최대 HP를 넘어서는 수치의 데미지를 입었을 때 HP를 1 남긴 상태로 한번 버티게 해 주는 패시브 특성이다.
즉 내 HP가 370/370일 경우에 한해, 그 어떠한 무시무시한 공격을 맞는다 해도 나는 HP가 1/370인 상태로 생존하게 되는 것이다.
그 어떤 공격을 받아도 HP 1인 상태로 살아남는다.
그 어떠한 공격이라도!
만약 지구를 멸망시킬 정도의 파괴력을 가진 운석이 떨어진다 해도, 나는 일단 한 방은 버틸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투신의 한방기를 맞고도 버티고 서 있는 이유이다.
거기에 바실리스크의 갑옷이 입은 데미지를 반사했으니, 투신은 자기의 한방기에 걸려 그대로 즉사해 버린 것이다.
꿀꺽-
나는 재빨리 포션을 꺼내 HP를 채웠다. 고작 370밖에 되지 않은 HP라서 포션 몇 모금으로도 금세 꽉 찼다.
그런 나를 보며.
“…말도…안……돼….”
투신은 더듬 더듬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이미 만신창이로 찢겨진 몸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저 바닥에 누워 모래를 붉게 물들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
이내.
투신은 눈을 감았다.
‘격차를 줄이려고 왔는데……격차가 더 벌어져 벌었군. 고인 물…당신은 대체…….’
하지만.
어째서인가 마음은 시원하다.
고인 물, 저 인간에게 죽는 건 기분 나쁘지만……. 저치가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죽었다면 더 기분 나쁠 뻔했다.
‘그래, 내가 잡지 못할 거라면…차라리…….’
투신이 속으로 생각했다.
-띠링!
이내, 로그아웃을 알리는 메시지가 떴다.
“…….”
나는 그 광경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실리스크의 갑옷과 샌드웜의 망토.
3신기 중 벌써 두 개나 얻어 버렸다.
그 결과, 투신을 아주 손쉽게 죽이지 않았는가?
이 두 개의 아이템만 있어도 1:1에서는 거의 무적이나 다름없다.
잡 공격을 슬슬 피하다가 한방기가 오면 그냥 맞아 버리면 그만이다.
탱그랑-
나는 빈 포션병을 버리며 생각했다.
‘3신기를 모두 모으면 이렇게 포션을 들고 다닐 필요도 없겠지.’
현재 메타의 유일한 약점.
그것은 HP가 1 남았을 때, 우르르 몰려든 곁가지 잡것들에게 기습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지금이야 포션도 넉넉하게 준비해 뒀고 뒤에 드레이크도 버티고 서 있으니 상관없다만, 앞으로 수많은 난전(亂戰)을 겪게 될 텐데 이 정도 대비로는 곤란하지.
펄쩍-
나는 샌드웜의 시체를 방벽삼아 등졌다.
그리고 저 뒤에서 아우성치는 수많은 인파를 뒤로 하고 재빨리 발걸음을 옮겼다.
“앗, 같이 가자!”
드레이크가 그런 내 뒤를 후다닥 따라붙었다.
그러자.
“자, 잡아!”
“우리가 잡은 샌드웜이야!”
“저 알몸 변태 자식이 내 공로를 가로챘어!”
“두 눈 뜨고 아이템을 뺏길 순 없지!”
겁먹고 주춤거리던 플레이어들이 그제야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다.
죽은 샌드웜도 무서워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했던 주제에 지금에 와서야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이들이 참 많다.
그러나.
“오잉?”
샌드웜의 시체를 기어 올라온 이들은 일제히 눈을 크게 떠야만 했다.
“아니……. 그새 어디 갔지?”
그들의 눈에는 광활한 사막만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와 드레이크는 간 곳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바보들.”
나는 드레이크와 함께 샌드웜의 망토를 덮어쓴 채 사막 위를 천천히 기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망토에 붙어있는 ‘흙장난’ 특성.
이는 선공형 몬스터에게 발각당할 확률을 50% 낮춰 준다.
그렇다면 플레이어들에게도 효과가 있느냐?
물론이다.
이 망토의 위장색은 주변의 색과 거의 동일하게 시시각각 변한다. 마치 갑오징어나 문어처럼, 어떤 패턴이든 그대로 복사해 낸다.
클로킹(clocking).
뭐 움직이는 것이 아예 티가 안 나는 것은 아니다. 거의 안 날 뿐.
물론 나 정도 되는 고인물이 뚫어져라 보면 간파할 수도 있지만, 이제 기껏해야 6개월 짬밥인 뉴비들에게는 절대 무리지.
‘아, 그건 그렇고 알몸이라 그런가 모래에 배 엄청 쓸리네.’
나는 망토를 뒤집어쓴 채로 슬슬 기며 드레이크에게 말했다.
“다음에 접속할 때는 하루 뒤야.”
“그러면 내일은 안 들어올 건가?”
“집안 사정이 있어서.”
“알았다. 그럼 나도 그동안 아이템을 처분한 돈과 공탁금 문제를 좀 처리해야겠군.”
나와 드레이크는 그대로 사막을 기어 안전한 곳까지 이동한 뒤에야 로그아웃을 했다.
먼 거리를 기어가는 동안.
“…….”
“…….”
우리는 서로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남자 둘이서 한 이불(?)을 덮고 뜨거운 모래 위를 슬슬 기어가는 건 어째 좀 분위기가 그렇잖아.
* * *
푸슉-
캡슐 문이 열리며,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이곳은 여전히 쿱쿱한 반지하 원룸.
아직 이사를 하지 못했기에 나의 거취는 여전히 이곳을 베이스로 하고 있다.
나는 어두컴컴한 반지하 원룸을 쭉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이제 안녕이라고 생각하니 나름 서운하네.”
결로현상 때문에 하얀 물방울이 맺혀있는 유리창.
감옥처럼 철창이 내리그어진 방범창.
날벌레들이 수북하게 죽어 있는 전등.
군데군데 벗겨진 장판.
부엌 창가, 기름때 낀 환풍구.
벽과 벽 사이에 피어나 있는 귀여운 버섯나라 친구들.
“이젠 너희들도 안녕이구나.”
나는 눈물을 글썽이며 이 모든 것들을 둘러보았다.
솔직히.
돈이 없을 땐 그냥 칵 불을 싸질러 버리고 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만…지금은 감회가 조금 새롭다.
“자,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지.”
나는 캡슐에서 완전히 몸을 빼냈다.
그리고 있는 옷 중에서 그나마 제일 깔끔한 것을 차려 입었다.
신발까지 신고 막 현관을 나서려는 순간.
지이이잉-
주머니 속 핸드폰이 울린다.
[안녕하세요. 이어진 사장님. 점심은 드셨나요? 혹시 지금 통화 괜찮으십니까?]
전화기 너머에서 굵직한 중년 사내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현관문을 나서 지하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전깃줄 빨랫줄이 어지럽게 늘어진 골목으로 나오며 말했다.
“네네. 오늘 방문하기로 했었죠?”
[예, 오늘이네요. 제가 너무 일찍 전화 드린 게 아닌가 합니다.]
“아녜요. 안 그래도 지금 출발하려고 하고 있었어요. 버스 타면 금방입니다.”
[앗, 사장님 자차로 방문하시는 것 아니셨나요? 그러면 택시 타실 것 없이 저희가 금방 모시러 가겠습니다.]
“네? 굳이 그럴 것 없는데. 택시로도 기본요금 거리고.”
[아뇨, 아뇨, 아뇨. 어휴! 우리 사장님을 어떻게 택시 타고 오시게 합니까, 불안하게. 사고라도 나면 귀한 몸 어쩌시려고, 저희가 총알처럼 모시러 가겠습니다! 랜드마크 하나만 불러 주십쇼!]
랜드마크라?
“즉석도살 형근이네 삼겹살?”
내가 그나마 이 골목에서 가장 큰 고깃집 상호를 말하자.
[어디? 어디라고요? 네네, 지금 바로 검색해 볼게요! 아 네, 떴습니다!]
조수석에 탄 이가 포탈에 상호명을 열심히 검색한 뒤 네비게이션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약 3분이나 지났을까?
끼이익-
내 앞에 검은색 고급 세단이 정차했다.
“어진 사장님?”
선글라스를 낀 중년 사내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반긴다.
“타시죠. 바로 모시겠습니다.”
그는 매우 간절한 태도로 나를 맞이했다. 마치 그동안 오랫동안 나를 기다려왔다는 것처럼.
이윽고.
나는 검은 세단 뒤에 여유롭게 타 골목을 빠져나갔다.
이 좁고 우중충한 골목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