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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48화 (48/1,000)
  • 48화 샌드웜 (2)

    <샌드웜> -등급: A+ / 특성: 벌레, 땅, 가뭄, 앙버팀, 착굴(鑿掘), 지진

    -서식지: 가혹한 사막 전 구역, 어비스 터미널 ‘칠흑 승강장’ A-51 구역

    -크기: 50m.

    -신화의 끝자락 말석에 표기되어 있는 이 거대한 괴물은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사막의 유목민들만큼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수백 마리의 낙타를 한꺼번에 집어삼키곤 했던 이 모래 속의 악몽을.

    거대한 입. 쭈글쭈글한 가죽. 부속지 하나 없는 통짜 몸뚱이.

    몸길이가 자그마치 50미터나 되는 이 거대한 환형동물은 땅속에서 빼낸 머리를 지면을 향해 늘어트리고 있었다.

    커다란 원형의 입 속에서는 칼날과도 같은 이빨들이 고속으로 회전하고 있다.

    바위나 모래 같은 것도 순식간에 갈아 으깨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물며 인간이야 뭐.

    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내 눈앞에 몰려든, 나를 죽이기 위한 거대 레이드를 향해 윙크를 날렸다.

    “선물이야. 잡아 봐.”

    샌드웜은 낙타에 환장하는 식성을 가졌다.

    자신의 세력권 안에서 나는 낙타의 피 냄새를 맡으면 분명히 나타난다.

    “olgoi holeuhoi!”

    몇몇 외국인들이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난다.

    난데없이 나타난 이 거대한 몬스터. 등장만으로 사막에 밤이 찾아올 정도로 크다.

    딱 봐도 사람이 잡으라고 만들어 놓은 몬스터가 아니다.

    누구도 이 거대한 몬스터를 향해 먼저 공격을 날리지 않았다.

    그저 멍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뿐.

    하지만.

    찹찹찹찹-

    낙타의 시체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난 샌드웜은 이대로 평화롭게 물러갈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갸-오오오오오!]

    놈은 낙타를 한 입에 집어삼킨 직후, 바로 고개를 틀어 주변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퍽-

    퍽- 퍽!

    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

    샌드웜이 가볍게 머리를 움직이는 것만으로 십 수 명이 으깨졌다.

    “으아아아아아아!?”

    유저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당연하게도, 샌드웜은 선공형 몬스터이다.

    애초에 눈에 띈 시점에서 죽어라 도망갔어도 시원치 않았을 판에 멍을 때리다니.

    “쏴, 쏴!”

    몇몇 공대장들이 포격 명령을 내렸다.

    콰콰콰쾅!

    수많은 마법들이 쏟아져 샌드웜을 지진다.

    하지만 샌드웜의 가죽은 너무나도 두꺼워 어지간한 마법 데미지는 그대로 씹어 버린다.

    후두둑- 후두둑-

    마법 포격은 오히려 샌드웜의 몸 표면에 흐르고 있는 점액만 사방팔방으로 흩뿌리게 만들었다. 그것은 모래나 암석을 물처럼 녹일 정도로 강한 산성 용액이다.

    가까이에 있던 근접 딜러들이 그 점액들을 맞고는 우르르 떼죽음당한다.

    “젠장! 이게 뭐하는 괴물이냐!?”

    유창은 이를 악물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던 거대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그것도 등급이 A+라니. 전무후무한 대괴수가 아닌가!

    [오-오오오오오!]

    샌드웜은 몸뚱이를 흔들며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놈이 한번 몸을 움직일 때마다 산성 용액들이 사방팔방으로 튀었고 지면 위에는 무시무시한 지진파가 몰아닥쳤다.

    콰콰쾅!

    땅에 발을 딛고 있던 탱커들이 우르르 나자빠졌다. 하나같이 발목이 부러지고 발바닥이 으깨진 상태.

    “흐헉!?”

    바닥에 등이나 배를 댄 탱커들은 기겁했다.

    지진 데미지는 이제 전신에 골고루 가해진다.

    파삭- 파삭- 파삭-

    등의 척추가 부러지거나 뱃속의 내장이 터져 죽는다.

    머리를 대고 있던 이들은 그대로 두개골이 깨져 즉사했다.

    몰살(沒殺).

    사막 전체가 벌건 피로 물든다. 마치 맵 자체가 모자이크되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그러나.

    유저들은 맥없이 당하지만은 않았다.

    “놈은 땅/벌레 타입입니다! 얼음 데미지가 네 배에요!”

    유다희의 통솔 아래 마법사들이 한데 뭉쳤다.

    그들은 거리를 넓게 벌리고는 빙계마법을 펼쳐 샌드웜을 냉동시키기 시작했다.

    열사의 사막인지라 별로 효율적인 공격은 아니었지만, 사막에서 살아가는 몬스터들에게는 제법 뼈아픈 노림수다.

    “샌드웜 떴다고 커뮤니티에 공지 올려!”

    “길드원들 싹 끌어 모아! A+급 몬스터 등장이다!”

    곳곳에서 공대장들이 바삐 움직인다.

    몰살당한 유저 수만큼, 새로운 유저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BJ 고인물을 척살하는 것에는 시큰둥하던 사람들이 A+급 필드보스가 나타났다는 말에는 열광했다.

    공개 레이드!

    인해전술을 쓰는 뉴비들과 만렙 보스몹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콰콰콰쾅!

    샌드웜이 더욱 더 날뛰기 시작했다.

    놈은 몸을 흔들어 지진을 일으키는 것과 동시에 머리통을 채찍처럼 휘둘러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파괴한다.

    하지만 플레이어 측의 공격이 더욱 거셌다.

    초반에 딜을 넣던 이들이 모두 죽어 나가면 또다시 새로운 이들이 다가와 딜을 넣는다.

    레이드 도중 죽으면 기여도는 살아남은 이들에게 골고루 배분되어 양도된다.

    하지만 딜을 넣던 이들이 모두 죽어 버리니 그 누구도 기여도를 꾸준히 쌓지 못했다.

    그저 죽고 또 죽어 가며, 모든 공적이 초기화되는 와중에도 꿋꿋하게 딜을 박아 넣어야 하는 것.

    한데?

    그것이 꽤나 성과가 있었나 보다.

    [오-오오오오오!]

    샌드웜이 약해졌다!

    HP가 일정 수치 이하까지 내려가자, 놈은 공격보다는 방어에 열중하는 모양새다.

    바위를 녹여 몸에 발라 방어력을 증가시키거나 잠시 동안이나마 모래 밑으로 숨는 등, HP를 절약하기 위한 방어 패턴이 점점 잦아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며, 유다희가 벅찬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조금만 더 하면 된다! 모두들 힘내요! 잡아 버립시다!”

    난데없이 눈앞에 나타난 거대 몬스터 샌드웜.

    수백 명이 함께 달려들 수 있는 규모의 필드보스 사냥은 처음이다.

    바로 그때.

    퍼억-

    옆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응!?”

    유다희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함께 샌드웜을 잡던 인천연합 길드의 마스터 장태익이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그의 이마에는 화살 한 대가 박혀 있다.

    “이런! 드레이크!?”

    유다희는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보이는 버려진 사원. 그 기둥 위에 선 드레이크가 이쪽을 향해 활을 겨누고 있는 것이 보인다.

    유다희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저런 바보 자식! 누가 지금 타이밍에 암살을 하랬나……!’

    ‘그 새끼’를 암살하지 못한 것이야 그렇다고 쳐도, 지금 이 순간에 장태익을 죽이면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

    샌드웜 레이드는 지금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이다. 그런데 아직 쓸모가 있는 인력들을 벌써 암살하다니!

    ‘암살을 해도 일이 다 끝나면 해야지 지금 하면…….’

    유다희가 속으로 불평을 하고 있을 때.

    퍼억-

    또다시 들려오는 둔탁한 소리.

    “……어?”

    유다희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고개를 돌리자, 이번에는 자기 옆에 있던 사내가 바닥에 쓰러져 있다.

    남동생 유창, 그의 머리통에도 화살이 박혀 있었다!

    헤드 샷.

    데미지가 두 배는 더 들어가는 궁수의 필살기. 유창의 방어력도 드레이크의 혼신의 힘을 다한 일격에는 소용이 없었던 모양이다.

    “……한 패였구나!?”

    유다희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놈은 애초부터 척살대를 도울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콰콰쾅!

    샌드웜이 만들어 내고 있는 모래 파도 건너편에서 찡긋 윙크를 날리고 있는 얼굴이 보인다.

    …….

    바로 나다.

    *       *       *

    “공탁금 살살 녹는다.”

    나는 장태익, 유창 등 수많은 랭커들에게 걸려 있던 공탁금이 드레이크의 계좌로 들어온 것을 확인했다.

    그 액수가 무려 6억 골드에 이른다!

    현실의 돈으로 6천만 원이 넘는 액수, 그것을 현상금으로만 벌어들인 것이다. 드레이크에게 일부를 떼 준다고 해도 큰돈이 남는다.

    내가 싱글벙글 웃고 있을 동안.

    “으으으으! 너 이 새끼!”

    저 멀리 모래폭풍 너머에서 유다희가 빽 소리치는 것이 들려온다.

    하지만.

    그녀의 독기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파삭-

    곧바로 날아온 드레이크의 화살이 그녀의 머리를 날려 버렸기 때문이다.

    알고도 못 막는 드레이크의 화살이다.

    유다희가 죽고 그녀의 목에 걸린 공탁금이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한 뒤, 나는 만족한 표정으로 후퇴했다.

    콰쾅! 콰콰쾅!

    계속해서 땅이 뒤집힌다.

    하지만 샌드웜이 만들어 내는 지진이야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일이다.

    -<생 슬라임 즙 100% 워커> 갑옷 / C

    슬라임을 그대로 가져다 신은 듯한 착용감.

    방어 효과는 그다지 없다.

    신으면 기분은 좋을지도?

    -방어력 +5

    -이동 속도 +10

    -독 속성 공력력 +5

    -특성 ‘말랑촉촉한 피부’ 사용 가능 (특수)

    예전에 아카오니를 잡을 때 썼던 슬라임 워커. 이것을 신고 샌드웜이 만들어 내는 지진 타이밍에 맞춰 엇박자로 폴짝폴짝 뛰면 데미지를 최소화하며 피할 수 있다.

    ‘샌드웜의 지진은 광역기이지만, 의외로 그 범위가 넓지 않다는 말씀.’

    나는 샌드웜을 등진 채 놈의 11시 방향으로 튀었다.

    말 그대로, 샌드웜의 지진 범위는 부채꼴이다. 중심각이 350도에 가까운 부채꼴.

    하지만 분명 10도 정도의 틈은 생긴다.

    그것은 샌드웜의 머리 방향에 의해서 정해지는데 지금 같은 경우는 바로 11시 방향.

    이 구역만큼은 데미지가 상당히 적다.

    중심각 10도가 차지하는 면적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커진다. 나는 샌드웜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생각했다.

    ‘어디 보자, 깎단의 도트 데미지는 먹여 놨고, 맹독 데미지도 제대로 잘 들어가는 것 같네.’

    나는 혼란의 틈을 타 샌드웜에게 깎단을 한번 먹인 적이 있다.

    그리고 낙타에게 내 피를 발라 샌드웜을 중독시키도 했다.

    바실리스크를 잡고 얻은 패시브 특전 덕분에 나의 피는 지독한 극독 그 자체.

    맹독에 중독된 낙타를 먹은 샌드웜 역시 상태이상 ‘맹독’에 걸린 것은 물론이다.

    깎단의 도트 데미지와 바실리스크의 맹독 데미지는 샌드웜을 천천히 말려 죽일 것이다.

    원래라면 샌드웜은 자기에게 상태이상을 건 나를 죽이러 미친 듯이 쫓아왔겠지만…….

    콰콰쾅!

    지금 수없이 몰려드는 뉴비들 때문에 그럴 정신은 없어 보인다.

    놈은 뉴비들의 인해전술에 완벽하게 붙잡혔다.

    …….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쿵-

    샌드웜의 거대한 몸은 사막의 모래 위로 쓰러졌다.

    A+ 몬스터가 사망했다.

    몰려들던 유저들은 열광했다.

    “우리가 해냈어!”

    그들은 샌드웜의 시체를 둘러싼 채 뜨겁게 환호했다.

    이윽고.

    A+급 아이템이 드랍 되었다는 표시가 떴다.

    아이템의 존재를 알리는 환한 빛기둥이 샌드웜의 시체 한가운데서 뿜어져 나온 것이다.

    “오오오! 플레이어 측의 승리다!”

    “으왓!? 아이템이다!”

    “저건 우리가 해낸 결과야!”

    “공평하게 배분합시다!”

    수많은 유저들이 샌드웜의 시체를 둘러싸며 외쳤다.

    자기들끼리 뭔가 질서를 세워 공적을 나눌 셈인가 보다.

    하지만.

    그들 중 샌드웜 레이드에 정식으로 기여한 이는 하나도 없었다.

    열심히 딜을 넣던 이들은 모두 사망했기에 딱히 기여도를 주장할 만한 사람은 없다.

    그들은 애초에 샌드웜이 무엇 때문에 사망한 것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저 먼저 때린 사람들의 희생 탓으로만 알고 있을 뿐.

    “자자, 모두 질서를 지킵시다! 한데 모여서 공적을 나누고 비교해 봐요!”

    혼란한 와중에 질서가 생겨난다.

    사람들은 샌드웜의 시체 앞에 옹기종기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치 자기가 샌드웜을 거의 다 잡은 것 마냥, 역전의 용사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모두들 한껏 들뜬 얼굴로 외쳤다.

    “제깟 게 A+급이면 다야? 기껏해야 몬스터지!”

    “플레이어 측의 승리다!”

    “여러분 우리가 해냈습니다!”

    하지만.

    쿵-

    갑자기 몰아닥친 거대한 지진.

    “으앗!?”

    샌드웜의 시체 앞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뒤로 나자빠진다.

    몇몇은 샌드웜이 되살아났나 싶어서 기절초풍했다.

    하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플레이어가 이긴 게 아냐.”

    샌드웜의 시체 위에서 모습을 드러낸 존재.

    “내가 이긴 거지.”

    그래, 이번에도 나다.

    나는 빙긋 웃으며 주변에 있는 YouDie 길드, 인천연합 길드, 현상금 사냥꾼, 새로 몰려든 뉴비들 등 수백여 명을 향해 한쪽 손을 들어 보였다.

    샌드웜이 죽으며 떨어트린 A+급 아이템.

    그것이 내 손아귀 속에서 환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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