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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47화 (47/1,000)
  • 47화 샌드웜 (1)

    이윽고.

    시간이 되었다.

    금요일 오후 2시 5분 전.

    엄청난 수의 인파가 가혹한 사막 B구역 (1)에 모여들었다.

    포위섬멸진!

    BJ 고인물이 접속할 예정인 포인트를 둥글게 감싸고 있는 랭커들.

    맨 처음으로 둘러싼 이들은 바로 마법사들이었다.

    전격, 화염, 맹독, 나무, 냉동, 강철, 바위 등등……. 수없이 많은 속성의 마법사들이 줄줄이 늘어섰다.

    그 뒤에 엇박으로 포진되어 있는 것은 탱커 라인. 그들은 마법 포격이 끝나는 즉시 돌격해서 혹시나 살아 있을지 모르는 BJ 고인물을 척살한다.

    “궁수는 안 받나요?”

    “네, 궁수는 좀. 죄송해요.”

    곳곳에서 궁수 유저들이 어깨를 늘어트리고 돌아가고 있었다.

    마법에 비해 원거리 화력이 약하고 근접 딜러에 비해 딜량도 밀리는데다가 연사 속도도 다른 클래스보다 훨씬 느리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현재 궁수 클래스를 가지면 어느 파티에도 끼기 힘들었다.

    마법 혹은 근접 딜러만이 귀족 대접을 받는 시대.

    한편.

    “들어오기만 해라. 바로 통구이를 만든 다음에 꼬치처럼 꿰어 주마.”

    유다희는 입맛을 다시며 포위섬멸진 중앙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는 마법사가 아니지만 오늘만은 친히 거금을 들여 마법 스크롤 몇 개를 샀다.

    어떻게든 한 방을 먹여 주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칼로 쑤시기도 전에 마법에 죽어 버리면 억울하잖아?’

    유다희는 고소를 머금은 채 눈을 부릅떴다.

    저 멀리, 둥근 포위진의 중앙.

    이제 곧 저 자리에 BJ 고인물이 젠 될 것이다.

    그러면 온갖 마법을 퍼부어준 뒤 창병, 검병들이 돌진해 벌집을 만들어 주면 되는 것.

    ‘그동안의 원수를 이제야 갚는구나!’

    돈을 삥뜯긴 것도 모자라 목숨까지 삥뜯긴 게 벌써 몇 번이냐?

    오늘이야말로 복수의 날이다. 그간 분노로 설쳤던 밥과 잠까지 모조리 보상받을 것이다.

    유다희가 시계 초침을 보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있는 사이.

    어느덧 오후 1시 59분이 되었다.

    BJ 고인물은 방송 시간을 엄격하게 준수하는 편이니 아마 정각에 딱 맞춰 접속할 가능성이 컸다.

    쿠르륵- 쩌저저적- 우지지직- 츠츠츠츠-

    곳곳에서 마법을 캐스팅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모두의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섰다.

    도화선에 불이 붙었다.

    그것은 천천히, 확실히 타들어 가고 있다.

    수백 명의 사람이 몰려들어 있음에도 숨 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폭풍 전의 고요, 폭발 전의 침묵.

    거대한 화력이 터지기 일보직전, 일촉즉발의 상황.

    이윽고.

    카운트가 들어간다.

    5.

    4.

    3.

    2.

    모두의 신경이 한 데 몰린다.

    준비하고 있는 마법을 언제 쏘느냐! 그것 역시도 딜의 기여도 %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카운트도 어느새 2까지 왔다.

    1에 쏠 것이냐, 0에 쏠 것이냐.

    보고 나서 쏘면 늦는다. 그랬다간 남들의 마법이 더 먼저 맞을 것이다.

    카운트가 1이 되는 순간.

    유다희는 스크롤을 찢었다.

    뿌직-

    두꺼운 가죽이 찢어지며, 거대한 번개 폭풍이 벼락처럼 날아간다.

    유다희가 마법을 쏘자, 다른 이들도 화들짝 놀라 허겁지겁 마법을 던진다.

    그러나, 유다희만큼 마법을 빨리 쓴 이는 없었다.

    ‘제발! 빨리 들어와라!’

    마법이 날아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유다희는 속으로 천 번은 더 빌었다.

    동생인 유창이 뒤에서 한 템포 늦게 마법 스크롤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이왕이면 그녀는 자기가 첫 타를 먹이길 원했다.

    그리고.

    하늘이 유다희의 간절한 마음에 감복했던 것일까!

    부웅-

    유다희의 마법이 터진 직후, 모두가 목표로 하던 좌표에 환한 빛기둥이 일렁였다.

    BJ 고인물. 통칭 ‘그 새끼’가 접속한 것이다!

    ‘됐다!’

    유다희는 쾌재를 불렀다.

    제일 위력이 큰 4서클의 마법 ‘체인 라이트닝’을 가장 먼저 사용했다.

    이게 정통으로 들어간다면 제아무리 ‘그 새끼’라고 해도 즉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맞추면 대박, 못 맞추면 쪽박의 기로.

    유다희의 승부수가 제대로 먹혀 들어갔다!

    “죽어라아아아아아-!”

    유다희는 온 우주의 기운을 담아 간절하게 소리쳤다. 제발 이 한 방으로 100% 죽어 줬으면!

    이윽고.

    콰쾅!

    유다희의 마법이 BJ 고인물이 접속하는 좌표에 정확히 떨어져 내렸다.

    그 뒤를 이어.

    콰콰콰콰콰쾅!

    수백 수천 개의 마법들이 뒤이어 우르르 떨어져 내렸다.

    상대가 누구든 간에 뼛조각 하나 건지지 못할 정도의 충격이었다.

    휘이이잉-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포위섬멸진의 2진에 선 탱커들은 마법 세례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돌격하지 않고 있었다.

    애초에 ‘그 새끼’가 저 자리에 정확히 로그인하는 것을 봤고 거기에 떨어지는 마법 폭격의 위력을 봤기 때문이다.

    “에이, 저기서 어떻게 살아남아.”

    “마법사들 좋은 일만 시켜 줬네.”

    “그래도 나중에 우리 몫 나눠 받을 수 있겠지?”

    그들은 이미 레이드가 끝나기라도 한 듯 저희들끼리 시시덕거린다.

    …….

    하지만.

    오직 한 사람.

    유다희만은 느끼고 있었다.

    ‘……찝찝한데?’

    어쩐지 뭔가 기분이 상쾌하지가 못하다.

    분명 놈을 박살내 버렸는데 왜일까?

    “누나? 왜 그래?”

    유창이 뒤에서 물어왔지만 유다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원래 복수라는 게 이런 건가?’

    허망하다.

    그토록 기대하던 것이 이뤄지는 순간, 인간은 오히려 상실감을 느낀다던가?

    꿈에서도 잊어 본 적 없던 그 얄미운 얼굴. 그것이 이렇게 쉽게 사라지다니.

    ‘난 뭘 기대했던 걸까?’

    유다희는 옆에서 희희낙락하고 있는 다른 랭커들을 돌아보며 이질감을 느꼈다.

    어쩐지 그들이 몹시도 한심하고 역겹게 느껴졌던 것이다.

    유창은 그런 누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

    그토록 ‘그 새끼’ ‘그 새끼’하면서 이를 갈 때는 언제고, 지금은 왜 저렇게 우수에 찬 눈빛을 한단 말인가? 마치 짝사랑이라도 떠나보낸 사춘기 여고생마냥.

    ‘하긴, 누나가 이렇게 오랫동안 한 사람을 입에 담은 건 처음이었지.’

    비록 절반이 욕이긴 했지만, 뭐든 빨리 쉽게 질리곤 했던 누나가 무언가에 이토록 끈질기게 집착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유창은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BJ 고인물. 어쩌면 그는 누나의 삶의 원동력이었을지도.

    …….

    하지만.

    바로 그때.

    “어!?”

    낄낄거리고 있던 몇몇 랭커들이 갑자기 기함을 토해 냈다.

    휘오오오-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모래먼지가 어느 정도 걷혔을 무렵.

    전혀 뜻밖의 것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똥?”

    유다희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사막에 푹 파인 구덩이 한복판에는 거대한 똥이 놓여 있었다.

    크고 시커먼, 마치 칠흑처럼 검은 똥덩어리.

    이내.

    스르륵-

    그것은 단단하게 뭉친 몸을 풀어낸다.

    [푸스스스…….]

    칠흑의 뱀 요르문간드!

    그것이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       *       *

    “이야, 환영인사 한번 격한데?”

    나는 빙긋 웃으며 요르문간드의 목을 쓰다듬었다.

    마법 저항 100%인 요르문간드는 물리방어력이 형편없는 것만 빼면 정말 좋은 마법 방패이다.

    바실리스크의 공격도 너끈하게 막아 냈던 이 녀석이 저런 뉴비들에게 데미지를 입을 리가 없다.

    “만약 궁수가 있었다면 큰일 났겠지만…….”

    요르문간드는 물리방어력이 약한 근접전투형 몬스터이기에 궁수에게 정말 취약하다.

    하지만 요즘은 궁수가 별로 좋은 취급을 받지 못하니 아마 파티에 합류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있어도 정말 소수거나.

    그 외에도, 포위섬멸진에 대한 드레이크의 정보는 정확했다.

    나는 처음에 쏟아지는 마법 포격을 막기 위해 접속과 동시에 바로 요르문간드를 소환했던 것이다.

    한편.

    내가 0의 데미지를 입은 상태로 요르문간드의 똬리에서 나오자.

    포위섬멸진의 탱커, 근접딜러들은 오히려 신이 났다.

    “근접딜러 가즈아!”

    “버틸 탱(撑)! 귀족 탱커 모셔요~”

    그들은 내 몸에 칼침 한 번이라도 쑤셔 박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당연한 일이다. 중국 거부 ‘응씨’가 내건 현상금을 %단위로라도 쪼개 받기 위해서는 기여도가 필요하니까.

    마치 패왕(覇王) 항우의 몸을 5조각으로 찢어 현상금을 타간 이들처럼, 그들은 내 몸을 수천, 수만 조각으로 찢어가서라도 현상금을 타 갈 기세다.

    하지만.

    정작 내 몸에 현상금을 건 ‘응씨’는 나다.

    “응, 안 줘~”

    어떤 미친놈이 자기에게 현상금을 걸고 죽여 달라고 할까? 여차하면 자살하는 한이 있더라도 현상금을 내줄 수는 없지.

    애초에 현상금이라는 미끼로 저 녀석들을 모은 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이다.

    “바로 지금을 위해서지!”

    나는 요르문간드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쉬익!]

    녀석은 내 마음을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꼬리에 돌돌 말아 감춰두었던 것을 내 앞으로 턱 가져다 놓았다.

    사막마을 케투스에서 500골드를 주고 사온 낙타였다.

    폭-

    나는 깎단을 들어 낙타의 목을 베었다.

    그러자.

    낙타의 목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뜨거운 모래를 축축하게 적신다.

    “……?”

    “뭐야 저 자식?”

    “뜬금없이 웬 낙타?”

    최선두에서 달려오던 이들이 고개를 갸웃한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딴 게 뭐 대수랴?

    눈앞에 일확천금이 있다.

    한 칼이라도 먹일 수 있으면 엄청난 돈이 들어올 것이다.

    “가즈아!”

    돈에 눈이 먼 이들이 아귀처럼 달려든다.

    그 수가 기백에 이르렀다.

    …….

    하지만.

    쿠드드드드-

    나보다도 먼저 그들의 욕망에 반응한 존재가 있었다.

    콰쾅! 콰콰쾅!

    저 멀리서 모래가 요란하게 튀어 오른다.

    거대한 암석과 모래언덕이 연달아 풀썩풀썩 무너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땅봉우리가 위로 툭툭 불거져 나오며 맹렬한 속도로 이쪽을 향해 다가온다!

    지하종(地下種).

    가혹한 사막에 살며 오로지 낙타의 피에만 반응하는 생물.

    나는 고개를 들어 피식 웃었다.

    “물었다.”

    그와 동시에.

    후욱-

    밤이 되었다.

    마치 누군가 생일케이크 위의 촛불을 불어 버린 것처럼.

    태양이 꺼진 것이다.

    “……뭐야?”

    “어? 방금 전까지 낮이었는데?”

    모든 이들이 달려들다 말고 몸을 멈칫했다.

    급작스럽게 사라져 버린 태양.

    하지만.

    시야의 귀퉁이로 보이는 저 먼 곳은 여전히 밝다.

    밤이 된 것은 바로 이곳, 오직 척살대가 모여 있는 부분뿐이었다.

    그리고 이내.

    사람들은 깨달았다.

    밤이 된 것이 아니었다.

    땅속에서 튀어나온 ‘어떤 거대한 것’이 태양을 완전히 가려 버린 것이다!

    이윽고.

    수많은 사람들을 향해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운 것이 온 세상천지를 뒤집어 놓을 듯 포효하기 시작했다.

    [오-오오오오오오!]

    사막의 최강종(最强種).

    샌드웜의 등장이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