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척살령 (4)
드레이크와 유다희는 악수를 나눴다.
하지만.
암살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 것인지, 대가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진 게 없다.
‘무슨 생각이지?’
유다희는 눈을 가늘게 뜨고 드레이크를 쳐다보았다.
저 무표정한 얼굴에서는 아무것도 읽어 낼 수 없었다. 다만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이한 열기만을 느꼈을 뿐이다.
그것은 돈, 혹은 명예를 쫒는 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눈빛이었다.
유다희는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이 자는 자신과 같은 부류라는 것을.
게임에 미친 자.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인간.
유다희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 새끼’를 암살할 수 있다는 건가요? 실력은 되시고요?”
드레이크는 그저 피식 웃는다.
이내, 그는 등에서 쇠뇌 하나를 번개같이 빼들었다.
“헉!?”
당황한 유창이 막 방패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드레이크의 손이 적어도 3배는 더 빨랐다.
따땅!
눈 깜짝할 사이에, 화살 두 개가 날아 유창의 양쪽 귀에 걸린 귀걸이를 때렸다.
활과 화살을 꺼내 장전하고 겨누고 쏘고.
그 모든 것들이 유창이 막 방패를 가슴께까지 들기도 전에 벌어지고 끝난 일이었다.
오싹-
유다희와 유창은 등골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BJ 고인물’의 화려한 플레이를 봐 온지라, 그 이상 가는 숙련자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절대 무명랭커의 실력이 아니다.’
‘공식 세계랭킹에 등록된다면 어느 정도일까? 10위권 내?’
유다희와 유창은 새삼 개안을 한 느낌이다. 세상은 넓고 고인 물은 많구나 싶었다.
한편.
드레이크는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현재 그의 정확한 위치와 접속 시간을 안다.”
위치와 접속 시간을 알고 있는데다가, 궁수, 거기에 이 정도 빠르기라면 암살이 가능할 것도 같다.
유다희는 재차 따져 물었다.
“그것은 어떻게 알죠?”
“미행했지.”
“왜요?”
“‘응씨배’ PK 리그 소식은 나에게도 왔어.”
말이 PK지 사실 척살령, 현상금 다구리다.
드레이크는 메신저 창을 열어 자신에게 온 쪽지를 보여 주었다.
유다희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우리에게 바라는 건?”
“돈.”
드레이크의 말에 유다희는 눈살을 조금 찌푸렸다.
“현상금을 이중으로 받겠다는 건가요? 중국 측과 우리 측에서?”
“나는 사정이 있어 중국 쪽의 현상금을 받을 수 없다. 내 기여도 지분을 너희 길드에 양도할 테니 그만치의 돈을 송금해.”
유다희는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드레이크 정도 되는 실력자가 명목상이나마 YouDie길드와 한 편이 되는 그림이니 나쁠 게 전혀 없다.
애초에 중국 쪽의 현상금이 이쪽으로 대거 흘러든다면 홍보 효과도 클 테니까.
손해 볼 게 전혀 없는 제안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라면 어렵지 않지요.”
“단.”
하지만 드레이크는 유다희에게 좋은 말만 하지는 않았다.
그는 바로 말을 이었다.
“내 쪽에 얼마간의 현상금을 가불로 땡겨 줬으면 한다.”
“……가불? 얼마나요?”
“2억이면 돼.”
2억! 현실 돈으로 2천만 원이 넘는 액수다.
유다희는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저를 바보로 아시는 건지?”
“그럴 리가. 원한다면 공탁 형식으로 해도 좋다.”
제 3의 공간에 돈을 맡겨놓은 뒤, 조건이 달성되었을 때 돈이 인출되는 방식.
“…….”
유다희는 턱을 짚었다.
……정말로 드레이크가 ‘그 새끼’를 암살해 줄 수만 있다면 2천만 원이 뭐가 아쉽겠나?
원한도 갚고, 막대한 현상금도 챙기고.
아마 모르긴 몰라도 중국 거부 ‘응씨’가 내건 현상금은 이보다 훨씬 더 막대할 것이다.
만약 실패한다면 공탁에 건 돈은 고스란히 자기 계좌로 되돌아올 것이니 문제될 것은 전혀 없다.
복수 + 현상금 + 홍보 효과 + 안전거래= ?
머릿속에서 빠른 계산을 끝마친 유다희, 그녀는 이내 아까와 같은 매혹적인 미소를 되찾았다.
“공탁 계좌라면 좋아요.”
“알았다.”
유다희는 이런 쪽에서는 시원시원한 여자였다.
그녀는 바로 계좌를 열어 드레이크의 계좌에 연동했고 곧바로 2억 골드를 공탁금으로 걸었다.
-공탁금: 200,000,000 G
-공탁 조건: ‘그 새끼’ 살해 0/1
여기서 ‘그 새끼’란 BJ 고인물을 뜻한다.
그의 계정은 찾을 길이 없었지만 유튜뷰 채널에 접속하니 특정 계정을 점찍을 수는 있었다.
유튜뷰는 타인의 명의로 채널을 만들 수 없으니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좋아요. 드레이크 씨가 암살을 제대로 완료해 주기만 하면, 자동으로 돈은 그쪽 계좌에 들어가게 돼요.”
“알고 있다.”
“…그런데. 노파심에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정말 2억 골드면 되는 거죠? 추가금을 요구한다거나…….”
“그럼 안 주면 될 게 아니냐? 어차피 공탁에 걸린 액수 이상은 뺏어 갈 길도 없다.”
“……뭐, 그건 그렇지만요.”
거래는 끝났다. 암살이 완료된다면 그 누구보다 공정한 손길에 의해, 의뢰금은 자동 배분될 것이다.
유다희가 용건을 마치고 막 자리를 뜨려는 찰나.
“잠깐만.”
드레이크가 유다희와 유창을 다시 한 번 불러 세웠다.
그는 이내 진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희들. 혹시 그 놈 하나만 암살하고 끝낼 생각은 아니겠지?”
그 말에 유다희의 표정이 굳었다.
인천연합 길드의 장태익이나 중국 측에서 넘어온 랭커들.
그들은 지금이야 동맹 관계라지만 척살 이후에는 바로 거추장스러운 경쟁자로 돌변할 것이 분명하다.
사실 그녀는 PK가 끝나고 나면 거기에 가담한 다른 랭커들을 모조리 죽일 생각이었다.
판이 이렇게 커지는 바람에 계획을 조금 조정해야겠지만, 그래도 현상금을 누군가와 나눠먹을 생각은 없었다.
무소속 현상금 사냥꾼들이 너무 많아져서 드러내 놓고 움직이기 껄끄럽던 마당에, 드레이크가 솔깃한 제안을 해 왔다.
“몇몇 굵직한 녀석들도 의뢰를 맡기는 게 어때? 그것들은 특별히 더 싸게 처리해 주지.”
“……얼마나요?”
“두당 5천만이면 어떻겠나? 물론 공탁으로.”
드레이크의 말에 유다희는 눈을 번쩍 빛냈다.
어쩌면 이참에 라이벌들을 대거 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 *
사람 하나 없는 사원.
사막 위에 덩그러니 방치된, 버려진 조형물이다.
하지만 오늘은 사람이 하나 있다. 상당히 드문 일이다.
드레이크. 그가 지금 이 버려진 사원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가고 있었다.
<암살 명부>
-공탁금: 200,000,000 G
-공탁 조건: ‘그 새끼’ 살해 0/1
-공탁자: 32
-공탁금: 50,000,000 G
-공탁 조건: 인천연합 길드장 ‘장태익’ 살해 0/1
-공탁금: 50,000,000 G
-공탁 조건: YouDie 길드장 ‘유다희’ 살해 0/1
-공탁금: 50,000,000 G
-공탁 조건: YouDie 부길드장 ‘유창’ 살해 0/1
.
.
그는 자신에게 걸린 공탁금 계좌를 열어 보았다.
암살 명부에는 의뢰를 맡긴 이들의 이름까지 모조리 올라가 있었다.
의뢰를 맡겼던 유다희와 유창, 장태익, 그리고 수많은 현상금 사냥꾼들의 이름이 모조리 암살 대상으로 기입되어 있다.
어찌된 영문일까?
타탁-
그는 날랜 걸음으로 도약해 사원의 기둥을 타올랐다.
그러자.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모스크의 지붕 위.
검은 망토를 펄럭이고 있는 남자 하나가 드레이크를 향해 손을 들어 보인다.
…….
바로 나다.
“공탁은 잘 받아 왔어?”
내가 묻자, 드레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양 길드 모두 서로를 죽이고 싶어 하더군. 서로가 서로에게 공탁금을 걸었어. 네 척살령이 끝나기만 하면 바로 적으로 돌변할 것 같다.”
“그야 그렇겠지. 그런 것들이니까.”
나는 유다희의 얼굴을 떠올리며 픽 웃었다.
뒤통수의 뒤통수. 참 변하지도 않는다 싶다.
“내가 내일 2시에 여기 나타난다는 정보도 제대로 흘렸지?”
“그렇다. 의외로 잘 믿더군.”
“그야 너는 무리를 만드는 성격이 아니니까. 거짓말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겠지.”
그것도 모자라, 나는 내 개인방송 채널에 내일의 일정을 적어두기까지 했었다. 내일 2시쯤 잊혀진 유적지를 다시 한 번 공략해 보겠다고.
그것이 드레이크의 신뢰도를 더욱 두텁게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나는 지도를 살피며 말했다.
“내일 내가 3개 세력을 상대로 싸우는 동안, 너는 암살 대상들 정리하면서 공탁금 챙겨.”
그렇다. 드레이크를 보낸 목적은 바로 수금을 위해서이다.
내 목에 걸린 현상금이야 당연히 포기하는 것.
‘내가 나를 죽이고 현상금을 탈 수는 없잖아.’
대신.
나는 나를 잡겠다고 몰려온 놈들을 깡그리 죽이고 그놈들끼리 서로의 목에 걸어 뒀던 현상금을 몽땅 챙길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일부러 공탁이라는 제도를 이용했다.
‘이거 꽤나 쏠쏠하게 들어오겠는데?’
당장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아주 기대가 되는군.
하지만.
히죽거리고 있는 나와 달리, 드레이크는 불안한 안색이다.
“이봐. 일단 시키는 대로 하기는 했는데, 대체 무슨 생각이야?”
“……? 뭐가?”
“지금 몰려온 이들만 수백이 넘어. 내일이면 더욱 불어날 거야.”
“응, 아마 그렇겠지.”
“하나하나가 고수들이다. 그들이 너 하나를 잡겠다고 몰려들었어. 더불어 ‘응씨’라는 의문의 거부가 그 열기를 더욱 부채질…….”
그 순간.
나는 스크린을 열어 화면 하나를 띄웠다.
그것은 커뮤니티 사진. 내가 올린 글들이 쭉 나열되어 있었다.
물론 가명으로.
<응씨: ‘그 새끼’를 잡아 대국(大國)의 위대함을 알릴 용사들을 모집합니다.>
<공탁금: 10,000,000,000 G>
<공탁 조건: ‘그 새끼’ 살해 0/1>
의문의 중국 거부 응씨.
네, 그게 바로 접니다.
“성은 ‘응’이요, 이름은 ‘안줘’라. 응 안줘~”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현상금 사냥꾼들에게 돈을 줄 생각이 없다. 죽지 않을 것이니 공탁금을 빼앗길 염려도 없지.
‘여차하면 확 자살해 버리지, 뭐.’
그러면 나를 죽인 현상금은 나에게 떨어질 게 아닌가.
사망 패널티야 그까짓 거 뭐 별 것 아니다. 요 며칠간 제대로 잠도 못 잤는데 한잠 푹 자고 나면 접속불가 시간도 다 지나 있을 것이고.
“…네가 응씨였냐?”
드레이크는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내, 손으로 미간을 짚은 드레이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 여차하면 현상금으로 내건 돈은 자살로 회수할 수 있다고 쳐도. 저 몰려든 사람들은 어쩔 거냐? 아니, 애초에 왜 불러 모은 거야?”
드레이크는 마치 일곱 살 소년처럼 모든 것을 궁금해 했다.
나는 그의 질문들에 구태여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엄지손가락을 튕겨 그에게 500골드짜리 동전을 하나 건네주었을 뿐이다.
“가서 낙타나 한 마리 사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