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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45화 (45/1,000)

45화 척살령(擲殺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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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한 사막 B구역 (1)

이곳은 지금 사람들로 미어터지고 있었다.

핫 플레이스의 상징 노점상!

그들이 빼곡하게 모여 거대한 플리마켓 존을 형성한다.

원래는 사람이 전혀 없었던 구역이라서 그런가 이런 인파는 이례적이었다.

아마 이곳에 사람이 이렇게 모여드는 것은 이번에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바로 그때.

콰쾅!

갑자기 사막의 바닥이 밑으로 쑥 꺼지기 시작했다.

“어어어!?”

“뭐야!?”

노점상을 하던 이들이 크게 당황했다.

[갸-아아아아악!]

모래가 분수처럼 솟아오르며, 거대한 괴물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모래구덩이 개미악귀> -등급: C+ / 특성: 악귀, 벌레, 잠복, 와류

-서식지: 가혹한 사막 전역

-크기: 5m.

-열사의 사막 한복판에 서식하는 충왕종 몬스터.

사막을 걷는데 앞에 푹 꺼진 구덩이가 있다면 무조건 피해 가는 게 좋다.

C+급 몬스터가 나타났다! 놈은 개미귀신이 그대로 거대해진 것 같은 외형을 가진 필드보스.

[크-오오오!]

개미귀신은 수많은 먹잇감에 환호하며 모래 늪 중앙에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움직이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는 야욕!

하지만.

상대가 너무 많았다.

퍼퍼퍼퍼퍼펑!

온갖 마법과 화살들이 난무했다.

천 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저마다 공격을 날리자, 개미귀신은 눈 깜짝할 사이에 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이야……. 대단한 인파인데?”

그 광경을 보면서 감탄하는 여자가 하나 있었다.

현실의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몸매 피지컬을 가진 미녀.

바로 유다희였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며 인구수를 체크했다.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지금 이곳에 몰려 있었다.

전부 다 쟁쟁한 레벨을 가진 이들.

잡상인들까지 치면 더욱 더 많은 인파였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많이 모인 거지?”

유다희는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 갸웃했다.

물론 자기가 비밀 팬방에서 열혈팬 위주로 척살대를 모집하긴 했지만, 그 수는 기껏해야 100명 남짓이다.

‘장태익의 인천연합 길드까지 모으면 200이 될까 말까인데…….’

이것도 물론 엄청난 것이지만 지금 모여 있는 수천 인파에 비할 바는 아니다.

유다희와 유창이 고개를 갸웃하자, 옆에 있던 장태익이 말했다.

“중국 랭커들도 아마 상당수 왔을 거예요.”

“뭐? 중국? 왜?”

유다희가 묻자, 장태익이 설명했다.

“지금 중국 게이머들이 한국인이 잘 나가는 걸 마음에 안 들어 하는 모양이에요. ‘응씨’라는 중국 대부호가 개인적으로 거액의 현상금을 걸고 척살령을 내리기도 했다네요. 이들하고 제휴하면 일이 잘 풀릴 것 같아서 제가 정보를 풀어 끌어 모았어요.”

응씨배 PK 퀘스트.

어둠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다크 게이머들이 이 정도 액수의 현상금에 반응하지 않을 리가 없다.

돌아다니는 이들 가운데에는 프로로 뛰고 있는 이들 또한 종종 보인다.

전부 다 세계 급 랭킹을 보유한 자들이다.

결국 이곳의 세력 판도는 3파전이 된 것이다.

유다희가 이끄는 ‘YouDie’ 길드.

장태익이 이끄는 ‘인천연합’ 길드.

그리고 대부호 ‘응씨’의 현상금을 노리는 ‘현상금 사냥꾼들’

잡상인들이야 논외로 쳐도 상관없겠지만, 이들 역시도 경우에 따라서는 언제든 칼을 뽑을 수 있는 회색분자들이다.

엄밀히 따지면 4파전이랄까?

이 모든 이들이 ‘고인 물’ 하나를 잡기 위해 몰려들었다.

유다희는 생각보다 커진 판에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입꼬리는 자꾸 비죽 올라간다.

‘이제 100% 죽일 수 있다.’

그 밉살맞은 놈을 떠올리자 또 가슴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설욕해야지.

그때.

인파 저편에서 꽤나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야! 내가 잡은 거잖아! 내 놔!”

한 사내가 짜증스러운 말투로 소리치고 있었다.

방금 전에 출몰한 ‘모래구덩이 개미악귀’

이 거대한 충왕족 몬스터를 잡고 나온 아이템 때문에 분쟁이 일어나는 모양이다.

수없이 많은 공격이 쏟아진 와중에, 개미귀신을 잡는 데 가장 결정적인 기여를 한 존재에게 아이템이 우선 배분되었다.

…….

문제는 그 대상이 둘이라는 점이다.

지금 짜증을 내고 있는 이는 기여도 12%의 대주주 ‘기욤 패터슨’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명 프로게이머로 공식 랭킹은 9위, 서유럽 랭킹은 6위, 프랑스 랭킹은 2위이다.

그리고.

“…….”

그 짜증을 앞에 두고도 묵묵히 대꾸가 없는 사내.

검은 망토로 전신을 가리고 있는 남자.

번뜩-

그의 눈빛이 후드 밑으로 스산하게 빛난다.

투신(鬪神) 마태강!

공식 랭킹 30위, 아시아 랭킹 21위, 한국 랭킹 16위.

그 역시도 이곳에 있었다. ‘모래구덩이 개미악귀’에 대한 지분은 12%로 기욤과 동일했다.

보통 이렇게 기여도가 겹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가끔 드물게 이런 일도 일어나는 법.

“손 떼라. 잘리기 싫으면.”

기욤은 투신을 향해 으름장을 놓았다.

자신의 랭킹은 세계 9위, 상대방은 기껏해야 30위다. 게임이 될 리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잘라 봐.”

투신은 한 치도 밀려나지 않았다.

“허어?”

기욤은 눈을 가늘게 떴다.

말로 해서는 안 되겠다는 걸 깨닫자마자, 그는 허리춤의 롱소드를 뽑았다.

랭커들의 PK가 시작되었다.

“오오오! 대박! ‘진짜’들끼리 한판 붙는 거야?”

“가라! 죽여 버려!”

“비공식 랭킹전인가!?”

꽁으로 프로게이머들의 PK를 구경하게 된 구경꾼들이 다들 흥분했다.

스팍-

선공은 기욤이 빨랐다.

그는 귀신같은 솜씨로 칼을 놀려 투신과의 거리를 좁혔다.

‘과연 프랑스 랭킹 2위……빠르다!’

투신은 고개를 뒤로 젖혀 아슬아슬하게 공격궤도를 피해 냈다.

스팟!

뒤에 있던 커다란 암석이 대각선으로 잘려 미끄러진다.

그리고 그 뒤, 그 뒤에 있던 바위들 역시 연달아 잘려 나갔다. 아무래도 관통 특성이 있는 무기를 사용하는 듯싶었다.

“쥐어 패는 맛은 있겠군.”

투신은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마초적인 무투 스타일을 지향하는 그에게 근접전은 오히려 환영할 만한 일.

이내, 두 고수가 본격적으로 한 판 뜨려고 할 때.

“잠깐!”

둘을 가로막는 이가 있었다.

바로 유다희였다.

그녀는 매서운 표정으로 투신과 기욤을 번갈아 노려보았다.

“이곳에 모인 목적을 잊은 건 아니겠죠? 쓸데없이 힘 빼지들 말아요.”

그러자.

“…….”

“…….”

기욤도 투신도 모두 움찔한다.

그렇다.

이곳에 모인 것은 애초에 ‘그 새끼’ 하나를 잡기 위함이 아니던가.

고인 물.

혼자서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지나친 독주로 모든 것을 독식하려는 욕심쟁이.

그를 막기 위해 모인 ‘정의로운’ 사람들끼리 싸울 필요는 없는 것이다.

“흥! 맞는 말이야. 저런 잡템 때문에 이런 데서 HP 뺄 필요는 없지.”

기욤이 먼저 칼을 거뒀다.

그는 아이템을 쿨하게 포기하고는 자리를 비켰다.

어차피 요즘 C+등급의 아이템은 꽤 많이 풀린지라 그리 미친 듯이 비싸지도 않다.

그깟 직장인 월급 한 달 치 정도야 기욤에게 있어서는 그리 큰 떡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중국 거부 응씨가 내건 현상금에 비하면 C+급 아이템을 팔아서 생기는 돈 따위는 푼돈이나 마찬가지다.

PK 열기가 사그라들자.

“……흥.”

투신 역시도 자리를 떴다.

그 역시도 오늘 이곳에 온 목적이 뚜렷하다.

‘고인 물’

딱히 그를 죽이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렇게 많은 인파를 상대로 했을 때 그가 지을 표정이 궁금하긴 했다.

‘대체 어떻게 할 거냐.’

투신은 으슥한 곳에 주저앉아 혼자 생각했다.

과연 그가 다구리를 당해 죽을까?

그렇게 순순히 죽어 줄까?

메두사 레이드 당시 그가 보여 준 플레이를 생각한다면 도무지 그렇게 허무하게 당할 것 같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곳에 모인 천여 명의 플레이어를 상대로 그 하나가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고인물이 이길, 아니 살아남을 확률은 한없이 0%에 가깝다.

투신은 그가 죽길 바라면서도 죽지 않길 바라는, 그렇게 복잡 미묘한 감정으로 지금 이곳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       *       *

한편.

투신과 기욤의 PK를 막은 유다희는 그 이후로도 이곳저곳을 바쁘게 돌아다녀야 했다.

난다긴다하는 고수들이 한곳에 모이니 반드시 분란이 일어난다.

호승심에 못이긴 이들이 벌써 곳곳에서 PK를 벌이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분탕질이 너무 커질 것 같았다.

언제 이곳에 모인 ‘하나의 목적’이 흐트러질지 모르는 것이다.

‘잡상인은 인정해도 PK범은 인정 못하지!’

때문에 유다희는 부지런히 모여든 이들의 PK를 말리고 세력을 하나로 규합하고 있었다.

그녀의 선동질과 정치질은 가히 천재적인 것.

심지어 남자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청순한 얼굴, 그와는 완전 딴판인 반전 몸매는 뭇 남성들을 순식간에 구워삶기에 충분했다.

이 와중에 ‘YouDie’길드의 가입 인원수가 10% 정도 상승하는 것은 자못 당연한 일이다.

“여러분! 그 넘치는 혈기를 PK에 쓰시지 말고 척살에 써 주세요!”

유다희의 말을 들은 PK 플레이어들은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현상금, 미녀의 애원. 실력 좀 있는 랭커들을 움직이기에는 충분한 일이다.

이윽고.

3파로 나뉘었던 세력은 꽤나 진정되기 시작했다.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 이 세력을 지배한다.

‘고인 물’ 죽이기!

다들 칼을 갈며 ‘그 새끼’가 등장할 타이밍만 노리고 있는 것이다.

그 광경을 보며, 유다희는 피식 웃었다.

그녀는 뒤에 서 있는 남동생 유창에게 은밀히 지시했다.

“너는 ‘그 새끼’가 죽는 즉시 열혈 애들 몇 모아서 다른 길드 수장들이랑 몇몇 요주의 랭커들 뒤통수 쳐.”

유다희는 다분히 전략적이었다.

고인 물 사냥에 성공하는 즉시 현상금을 받아갈, 혹은 그것을 커리어로 삼아 더욱 더 성장할 랭커들을 미리 사전에 제거할 계획이다.

원수도 갚고, 돈도 안 주고, 남들 뒤처질 때 자기는 빠르게 앞서나가려는 전략.

거기에 중국 부호 ‘응씨’가 내건 현상금까지 먹는다면 이 얼마나 개이득인 장사인가!

유다희와 유창이 모두의 뒤통수를 칠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

“이봐.”

그런 그들을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

유다희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곳에는 검은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있는 사내 하나가 보인다.

등에 쇠뇌를 매달고 있는 것이 아무래도 궁수 클래스인 것 같았다.

“아!”

유다희는 그의 정체를 한 번에 알아보았다.

‘그 새끼’의 위치를 스크린샷으로 찍어 제보해 줬던 이.

바로 ‘드레이크 캣’이다.

공식 랭킹에 등록되어 있지 않아 순위를 알 수 없지만 언더에서는 이미 꽤나 유명한 사내.

무엇보다.

무리나 파트너를 만들지 않고 혼자 다닌다는 점에서 꽤나 신뢰가 간다.

어느 집단의 이해관계에도 얽혀 있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제보 감사했어요. 덕분에 놈의 소재지를 알 수 있어서 척살이 쉽겠네요. 길드장으로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유다희가 가식적인 미소와 함께 고개를 숙이자, 드레이크 캣은 손사래를 쳤다.

이내, 그는 자기가 유다희, 유창 남매를 찾아온 용건을 밝혔다.

“나는 그와 잠시 파티를 함께했지. 그래서 그의 정확한 위치와 접속 시간을 안다.”

그러자 유다희의 눈썹 한쪽이 꿈틀했다.

그녀는 눈치가 빠르다.

“무슨 용건이신지 알아듣겠네요.”

유다희는 눈을 게츰스레 뜨고 드레이크를 바라보았다.

끈적하고 농밀한 꿀처럼, 그녀의 시선은 드레이크의 전신을 타고 흘러내린다.

암살(暗殺).

반간(反間).

어느 쪽이든 이쪽으로서는 손해 볼 것 없는 전략.

이내, 유다희와 드레이크의 눈빛이 서로 끈적하게 뒤엉킨다.

턱!

두 남녀의 손이 굳게 마주 잡혔다.

딜(Deal) 완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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