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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44화 (44/1,000)
  • 44화 척살령(擲殺令) (2)

    유튜뷰.

    전 세계 최대의 스트리밍 사이트. 하루에도 수천만 개의 동영상들이 업로드된다.

    -띠링!

    수억 개나 되는 영상들 사이로, 한 개의 동영상이 추가 업로드되었다.

    보통이라면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번 경우는 예외였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A+’등급 몬스터 ‘바실리스크 레이드’>>

    심플한 제목이다.

    하지만 제목 안에 담긴 의미는 결코 심플하지 않았다.

    청동 골렘(C+)- 이름 없는 여왕(B) - 우는 천사(B+) - 메두사(A) 로 이어지는 레이드 영상.

    그것들은 이미 어마어마한 조회수 뷰를 기록한 바 있다.

    그리고.

    일전의 그 세 동영상에 이은 4편째가 드디어 방금 업로드된 것이다!

    게임이 출시된 지 6개월 만에 A+급 몬스터가 잡혔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낚시로 치부하고 무시하는 것이 일반적이어야 하지만, 메두사 레이드라는 전적이 있으니 또 믿지 않을 수도 없다.

    수없이 많은 뎀 유저들이 홀릿 듯이 동영상을 클릭했다.

    모두 다 ‘BJ 고인물’의 말도 안 되는 플레이를 보고 싶어 한다. 어딘가 변태 같으면서도 멋있는, 절로 욕이 나오는 그 플레이를 말이다.

    이윽고.

    동영상 속에서 얼굴을 모자이크로 가린 한 남자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BJ고인물이다.

    [자, 오늘은 A+급 몬스터를 한번 잡아 볼 겁니다.]

    [네? 뭐라구요? 말도 안 된다구요? 절대 불가능하다구요?]

    [그런데 쨔-잔, ‘절대’ 라는 것은 없군요.]

    [왜냐면 저는 오늘 A+급 몬스터를 잡기로 결심했거든요.]

    [제가 잡는다면 잡는 겁니다. 안 되는 건 없어요. 그러니까 추천, 구독, 즐겨찾기, 선호작 꼭 좀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댓글들이 실시간으로 갱신되기 시작했다.

    -이 새끼 저번에 메두사 잡을 때도 얄밉게 재미없게 잡드만~~

    -좀 치열하게 치고받고 싸울 수는 없나요?

    -다른 BJ들 보면 막 피튀기게 싸우는데..이분은 맨날 도망만 다니고~~노잼

    -왜 맨날 빨개벗고 다녀요? 님은 다 나쁜데 그게 제일 나쁜듯

    -옷 좀 입어라~~ 변태 같애~~

    -메이웨더도 그렇고 얘도 그렇고...잘하는 건 인정하는데, 진짜 드럽게 재미없게 싸우네ㅋㅋㅋ

    -이 새끼 쳐맞는 거 보려고 영상 구독함ㅋㅋㅋㅋ나중에 레이드 실패 영상도 좀 올려봐라~~그게 더 꿀잼 사이다일 듯~~

    .

    .

    여론은 그닥 좋지 않다. 전부 다 스트리머의 얍삽한 전투 스타일을 비방하는 댓글 뿐.

    하지만.

    [오-오오오오오!]

    일단 바실리스크가 등장하는 순간, 여론은 모조리 뒤집혀 버렸다.

    -빨리 튀어!!! ㅌㅌㅌㅌㅌ!

    -으악! 또 온다! 독 브레스 온다!! 피해!!!

    -온다온다온다온다온다온다온다온다온다온다온다온다 튀어! 튀라고 빨리!

    -으아아! 못 보겠어! 맞을 것 같아! ㄷㄷㄷ

    -아까 재미없게 피하기만 한다고 욕해서 미안하다....저런 거랑 어떻게 싸워..ㅁㅊ

    .

    .

    그러나.

    BJ 고인물은 결고 기죽거나 후퇴하지 않는다.

    [아, 독액 대포가 오겠네요. 저건 피해야죠!]

    [앗, 이번에는 독안개입니다!]

    [독액 대포를 쓸 때랑 모션은 똑같은데 독안개 쪽이 조금 더 움직임이 부드러워요. 잘 구분하셔야 합니다.]

    [포효 소리가 3옥타프 솔 인 것을 보니까……또 독액 대포가 오겠네요! 아항! 역시나!]

    [앗! 방금 보셨죠? 바실리스크의 목젖이 좌우로 떨렸습니다! 이건 독안개입니다! 튀어야지! 으랏챠! 네 세이프.]

    [방금 소리 들으셨어요? 다들 들으셨죠? 바닥에 발 끌리는 소리가 두 번 연달아 났습니다! 2초 뒤 돌진해 올 것 같습니…]

    [어이쿠! 양반은 못 되네요. 가볍게 바닥을 두 번 굴러 피해 줍니다. 뾰족한 돌 파편 주의하세요.]

    [아, 슬슬 비늘들이 폭발할 것 같네요. 비늘들이 전부 45도 각도로 위쪽으로 튀기 때문에 누워만 있으면 됩니다. 졸린데 한 숨 누워서 자겠습니다. 쿨쿨스~]

    [자, 기술이 끝났네요! 이게 끝나면 바실리스크는 스턴에 꽤 오래 걸려 있습니다. 이때 원투! 딜 넣어 주고 빠집니다.]

    [시간은 넉넉하게 있으니 맘 편하게 딜 넣어 주시면 됩니다. 한 0.8초? 딜 넣고 회피한 다음에 튈 시간 충분하쥬?]

    .

    .

    나의 대사가 길게 울려 퍼질수록.

    [그-워어어어억!]

    바실리스크의 분노는 더욱 더 거세어만 진다.

    댓글 여론은 그 몇 초 사이에 완전히 뒤바뀌었다.

    -와 진짜 잘 피한다...

    -돌아버렸네ㅋㅋㅋ포효 소리 옥타브로 기술 구분??? 가능한 부분?? 절대음감이냐 ㅁㅊ

    -저는 아무리 반복해서 봐도 잘 모르겠어요ㅠㅠㅠ대체 어떻게 아시는건지...

    -구라 아니고... 저분 이거 첫 레이드시라는데...나중에 데스 수, 포기 수 0인거 보시면 알 수 있음...

    -바실리스크 진짜 대박이다...엄청 커....겁나 무서울 듯...

    -고인물님 사랑해요!! 근데 어떻게 잡으실건지...!! 도망만 다니시는 거 같아서 ㅠㅠ

    .

    .

    이윽고.

    던전의 지하 1층에 도착한 직후.

    BJ 고인물이 막 뒤돌아서 바실리스크와의 최후의 결판을 내려는 순간.

    핏-

    영상이 갑자기 종료되었다.

    -어?

    -뭐야???

    -왜 꺼짐????

    -아 뭐야!!!!중요한순간에!!!

    .

    .

    댓글들은 다급하게 분노를 쏟아낸다. 마치 전원이 바실리스크가 된 듯한 분노.

    그때.

    모두의 모니터에 메시지가 떴다.

    <2부는 팬 채널에서 유료로 공개됩니다.>

    그렇다. 유튜뷰에는 ‘유료 채널’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또 따로 있다.

    무료 채널에서 후원금을 일정 금액 이상 낸 이들에게만 공개하는 스페셜 채널이다. 유튜뷰 이용자라면 누구나 알고 인정하는 시스템.

    -이야...돈독 올랐네...

    -머리 잘 굴렸어...고인물 형...이러면 볼 수밖에 없잖아...

    -팬채널 가입 조건이 어케 되나요?

    -후원금 100원 이상만 내면 된다네요ㅋㅋㅋ비교적 양심적인듯

    -얼마든 상관없으니 제발 2부 좀 빨리 올려주세요ㅠㅠㅠ!!!!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shut up and take my money!!!

    .

    .

    댓글로 아우성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띠링!

    이내 2부 동영상이 올라왔다.

    순간 댓글창은 잠시 정적에 잠긴다.

    모두들 정신없이 영상에 몰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내.

    [우르릉!]

    지진이 던전 바닥을 무너트리는 장면.

    바실리스크가 아래로 추락하는 장면.

    깊은 독의 바다로 가라앉는 장면들이 송출된다.

    마치 터미네이터 2를 떠올리게 하는 장엄한 엔딩. 시청자들은 경외어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고인물...너는 내가 인정한다... 이건 100원이 아니라 1000원, 아니 10000원 내고 봐야 한다....

    -가슴이,,,벅차올라요ㅎ,,,!!!,, 저도 레이드 뛰러가렵니다^^,, 요즘 이 방송 보는 낙에 살아요,,(꾸벅)

    -나는 아직 살육 벌 한 마리 잡기도 버거운데...이분은...혼자 바실리스크를 잡으시네...ㄷㄷ

    -알몸인 것은..변태라서 그런 게 아니라 갑옷 없이도 잡는다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셨군요...

    ⤷않이;; 그건 그냥 변태 맞는듯;;;

    -목소리 너무 좋아요 고인물님!! 얼굴 한번만 공개해주세요!!!사랑해요♥♥♥

    -프로게이머 구단들 뭐하냐? 이분 얼른 안 모셔가고!!!

    ⤷현직 구단주입니다. 저희도 미치도록 모셔가고 싶습니다. 연락 좀 받아주세요 고인물님..아니면 지인 분들 제보 좀 부탁드립니다...후사하겠습니다...제발...

    ⤷구단주 등판 실화???

    ⤷미쳤네ㅋㅋㅋㅋㅋㅋㅋ구단주도 나옴ㅋㅋㅋㅋ

    ⤷구단주 애타는 것 좀 보소ㅋㅋㅋㅁㅊㄷㅁㅊㅇ

    .

    .

    댓글 반응은 실로 폭발적이었다.

    조회수는 영상을 올린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아 수백만에 이르렀다.

    유료 영상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다.

    조회수 1을 100원으로만 잡아도 후원 수익이 수억, 하지만 100원 이상을 후원하는 이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대체 얼마가 들어갔을지 감도 안 잡힌다.

    처음에 영상을 1, 2부로 나눠 올리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던 이들도 전부 돌아섰다.

    이 정도면 돈 내고 볼 만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상을 못마땅해하는 이들 역시도 상당했다.

    대표적으로…….

    “재수 없는 새끼!”

    욕과 함께.

    철썩-

    모니터에 가래침이 탁 떨어졌다.

    눈 둘 곳이 없는 출중한 몸매, 미의 여신 같은 얼굴.

    하지만 짓고 있는 표정만은 악귀의 것과 같다.

    유다희.

    그녀는 지하 캡슐방 중앙에 선 채 씩씩거리고 있었다. BJ고인물의 채널을 죽을 듯 노려보면서.

    “꺄아아아악! 이 얄미운 새끼를 어떻게 죽이지 진짜!”

    팔딱팔딱 뛰는 유다희를 향해, 유창이 빽 소리쳤다.

    “아, 누나! 내 모니터에 침 뱉으면 어떻게 해!”

    그는 투덜투덜거리며 물티슈를 몇 장 뽑는다.

    “으, 담배 쩔어서 누런 거 봐.”

    “뭐얏!?”

    “치, 침 말고. 모니터 말야. 버려야겠네 이거.”

    유창은 유다희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조심조심 투덜거린다.

    한편.

    모니터 화면에 흘러내리는 불투명한 가래침 너머에서도, BJ 고인물은 여전히 화려하게 잘 나가고 있었다.

    유료 조회수는 계속 올라간다.

    24시간 만에 역대급 기록 세우겠다, 이거.

    참고로 유다희 역시도 100원을 내고 2부 영상을 시청했다.

    돈을 내고 싶지 않았지만 궁금해서 미쳐버릴 것 같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영상을 다 본 뒤, 그제야 깊은 빡침이 몰려온다.

    “이 새끼……우리 팔아서 메두사 잡아놓고……이제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잖아! 으아아아! 이 X새끼! 컨트롤을 왜 이렇게 잘 하는 거야! 어떻게 이게 가능해!”

    우는 천사에게 죽은 것도 억울하고 그 전에 1억 골드의 공탁금을 삥 뜯긴 것도 억울하다.

    거기에 바실리스크 레이드까지 성공시키다니!

    분노와 질투로 인해 뇌와 안구가 죄다 타 버릴 지경이었다.

    그때.

    “저, 누님. 진정하시죠.”

    옆에서 쭈뼛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홱-

    유다희는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키가 멀대 같이 큰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이제 고등학생이나 되었을까? 아직 앳된 기운이 남아 있는 친구다.

    장태익.

    고인 물 사총사 중 대장 격인 녀석이다.

    “이럴 게 아니라. 저 자식에게 복수할 방법을 찾아 보자구요.”

    장태익은 말했다.

    오늘 고인 물 사총사의 대장 장태익과 유다희, 유창 남매가 만난 이유는 간단했다.

    유다희는 얼마 전부터 BJ활동을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열혈팬들을 모아 길드를 꾸린 바 있었다.

    이른바 ‘YouDie’ 길드.

    또한, 장태익 역시 게임을 접어 버린 친구들의 원한을 갚기 위해 꽤나 오래 전부터 길드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다.

    바로 ‘인천연합’이라는 청소년 길드였다.

    장태익은 말했다.

    “누나네 길드원들 다 모으면 150명쯤 되죠? 저희도 그쯤 돼요.”

    “……그래서. 도합 300명으로 저 고인물 자식을 치자 이거지?”

    “네. 제가 다른 순위권 랭커들에게도 메시지 돌려 놨어요. 고인물 위치 보면 제보 좀 해 달라고.”

    “걔네가 네 말을 왜 들어?”

    “현상금 걸어 놨거든요. 돈이 짱이죠.”

    “……돈은 있고?”

    “네, 갹출해서 길드 창고에 모아뒀는데……. 누나네 길드에서도 좀 도와주셔야 할 것 같아요.”

    장태익의 말에 유다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BJ 고인물.

    놈을 PK로 죽이는 영상을 찍어 올린다면 그 후원 수익은 상당할 것이다. 현상금으로 나갈 액수와는 비교가 안 되겠지.

    뭐 현실적으로 따지면 돈이 문제가 아니긴 하다.

    분노!

    놈을 죽여야 이 분노가 조금이라도 가라앉을 것 같았다.

    바로 그때.

    -띠링!

    장태익의 핸드폰이 울렸다.

    “……!”

    장태익은 핸드폰을 보자마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고인물 그 자식 위치 떴어요, 누나!”

    “뭣!? 어디래!?”

    유다희와 유창이 묻자, 장태익은 다급하게 대답했다.

    “가혹한 사막이래요! 요즘 거기에서 사냥하나 봐요! 스크린샷도 첨부되어 있으니 확실해요!”

    장태익의 말에.

    뿌득-

    유다희는 이를 갈았다.

    가혹한 사막이라면 ‘이름 없는 여왕’을 잡으러 갔던 곳이다.

    놈을 처음 만났던 곳 ‘잊혀진 고대문명의 유적’

    유다희의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 되기 시작했다.

    그때 그 곳, 그 사람, 그 맛…

    패배의 맛! 죽음의 맛! 굴욕의 맛!

    냉정했던 머리가 다시 뜨겁게 끓어오른다.

    “……반드시 죽여 버리겠어.”

    분노로 인해 부들부들 떠는 유다희.

    그런 그녀를 유창과 장태익이 두려운 표정으로 힐끔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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