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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42화 (42/1,000)
  • 42화 바실리스크(Basilisk) (3)

    <아오오니(靑鬼)> -등급: C+ / 특성: 거인. 악귀, 지진, 융합

    -서식지: 패륜아의 둥지, 썩고 불타는 땅

    -크기: 12m.

    -7대 악마 중 하나인 벨페골의 부하. 지상을 침공하라는 명을 받아 지옥에서 올라왔지만 머리가 나빠 여지껏 미궁에 갇혀있다. 오래도록 주인의 명령을 수행하지 못했지만 괜찮다. 그에게 지령을 내렸던 벨페골도 꽤나 나태한 편이었기에 그의 존재를 잊어버린 지 오래니까.

    푸른 피부, 외눈, 날카로운 이빨.

    동체급 내에서는 당해 낼 적수가 없는 강력한 악귀, 거인 타입 몬스터 아오오니(靑鬼).

    [오-니이익!]

    이 거대한 몬스터는 리젠 되자마자 두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포효했다.

    악귀와 거인 특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대형 몬스터답게, 놈의 근력은 C+급 몬스터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엄청나다.

    거기에 둔한 지능이라는 설정은 놈의 공격 패턴을 매우 단순하게 만든다.

    ‘일정 영역 안에 들어온 적은 공격한다.’

    단순히 이것만이 아오오니의 룰이었다.

    때문에, 놈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적에게 가차 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

    그것이 설령 자기보다 만 배 이상 강한 몬스터인 바실리스크라 할지라도!

    콰쾅!

    아오오니가 온 힘을 다해 바실리스크의 머리통을 움켜잡자.

    콰-긱!

    미친 듯이 돌진하던 바실리스크의 움직임에 제동이 걸렸다.

    분명 틀림없이, 아오오니는 바실리스크를 무력화시키고 있었다.

    ……그것도 무려 3초 동안이나!

    [그르륵…….]

    바실리스크는 짜증스럽다는 듯, 검은자위밖에 없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윽고.

    콱-

    바실리스크는 두 팔을 뻗어 눈앞에 있는 파란 악귀를 꽉 끌어 안었다.

    뿌지지지직-

    칼날 같은 비늘이 아오오니의 몸에 쑤셔 박혔다.

    푸시시시식-

    끔찍할 정도로 강한 맹독성 위액이 아오오니의 머리부터 녹인다.

    [오-니이이이익!]

    아오오니는 눈 깜짝할 사이에 끔살당했다.

    쿵-

    머리를 잡고 있던 푸른 손에 힘이 풀리자, 바실리스크는 몸을 크게 흔들어 아오오니의 시체를 털어 냈다.

    그리고는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나를 향해 돌격해 오기 시작했다.

    “좋았어. 5초나 벌었군.”

    나는 뒤에서 들려오는 아오오니의 비명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5초면 엄청난 시간이다.

    바실리스크의 HP를 0.05%, 무려 487,511이나 깎아놓을 수 있는 시간이니까!

    그러니 아오오니는 충분히 자기 역할 이상의 성과를 거둬 준 셈이다.

    “…….”

    나는 위풍당당한 체격의 푸른 악귀를 향해 잠시 묵념을 해 보였다.

    이윽고.

    나와 드레이크는 지하 2층을 돌파해 1층까지 올라왔다.

    조금만 더 가면 던전을 나갈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바실리스크는 한동안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놈이 본격적으로 플레이어들에게 공개되는 것이 첫 번째 대격변 때니까……. 앞으로 5년쯤 뒤려나?

    ‘그걸 기다릴 수는 없지.’

    나는 입술을 깨물고 달렸다.

    남은 거리를 주파하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승부를 내야 한다.

    [그르르르…….]

    뒤에 우뚝 선 바실리스크의 HP는 이제 약 50% 남짓. 정신없이 도망쳐 오는 동안 꽤 많이 닳아 있었다.

    그와 동시에.

    타탁!

    나는 지하 1층에 도착했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다. 이제는 선택을 해야 할 순간이었다.

    1. 등 뒤에 있는 문으로 도망쳐 나가 목숨을 부지할 것인가.

    2. 아니면 여기서 죽을 것인가.

    답은 뻔해 보인다.

    드레이크는 다급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바실리스크는 아직 건재하다, 어진. 분하지만 여기까지인 게 아닌가 싶은데…….”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러나.

    나는 보통이 아니란 말이다!

    “무슨 소리. 이제부터 시작이지.”

    지겹게 질질 끌었는데 여기서 포기하면 되겠나?

    그러면 나중에 내 바실리스크 사냥 영상을 봐 준 독자들에게 무수한 인신공격성 욕이나 들어먹을 것이다. 질질 끌더니 고작 이거냐고.

    나는 오히려 지금에 와서야 본격적인 레이드를 준비하고 있었다.

    좋아. 모든 것이 계산대로다.

    잇츠 쇼 타임!

    나는 HP가 약 절반가량 남은 바실리스크를 상대로 눈을 빛냈다.

    동시에.

    인벤토리에서 새로운 아이템이 꺼내져 나왔다.

    -<카이도우(外道)의 발가죽> 신발 / B+ / (융합)

    강한 악귀의 발 가죽을 그대로 벗겨 만든 신발.

    이것을 신은 자는 귀신의 힘을 빌릴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공격력 +500

    -이동 속도 +50% (특수)

    -특성 ‘지진’ 사용 가능 (특수)

    아카오니의 발가죽이 아오오니의 발가죽과 융합하여 만들어진 아이템!

    공격력이 대폭 강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진 특성까지 여전히 사용 가능하다.

    ‘지진(地震)’

    악귀 타입 몬스터들이 쓰는 기술 중 가장 파괴적인 광역기!

    나는 카이도우의 발가죽을 신은 상태로 온 힘을 다해 지하 1층의 바닥을 굴렀다.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인 힘이 발바닥에 응집된다.

    그리고 그것은 고스란히 지면으로 전해졌다.

    꿀렁-

    내가 밟은 땅이 마치 해수면처럼 출렁이는가 싶더니,

    콰-쾅!

    이내 묵직한 진동파가 지면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우르르르릉-

    던전 바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물론, 카이도우의 발가죽으로 만들어 낸 지진 때문은 아니었다.

    아무리 카이도우가 강력하다고 해도 내가 그 지진 능력을 완벽하게 베껴 쓸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애초에 카이도우에게 그럴 정도의 힘이 있는지도 의문이고 말이지.’

    지금 던전의 바닥이 무너지는 것은 바로 바실리스크 때문이었다.

    놈이 그동안 날뛴 것에 대한 지진 데미지는 고스란히 맵 전체에 축적되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녹이고 부식시키는 독액 때문에 던전의 지형 전체도 많이 약해져 있었다.

    내가 일으킨 지진은 그저 트리거에 불과했던 것이다.

    [오-오오오오?]

    바실리스크는 발버둥 쳐 보았지만 무너지는 지면에는 어쩔 수가 없다.

    날개가 있었다면야 상관  없었겠지만, 애초에 놈은 날개가 없어 용이 되지 못한 존재가 아닌가?

    콰-콰콰콰쾅!

    이내. 지하 1층의 바닥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카-아아아악!]

    바실리스크는 괴성을 지르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패륜아의 둥지는 기본적으로 깊은 던전이다. 층간의 거리가 먼 만큼, 자연스럽게 각 층의 높이는 상당할 수밖에 없다.

    콰-쾅!

    놈은 지하 2층의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이 과정에서 상당량의 HP가 증발했다.

    빠직- 빠지직-

    바실리스크가 데미지를 입자, 놈의 비늘이 가진 ‘패륜아’ 특성이 발현되었다.

    검은 비늘은 자신이 입은 충격을 사방팔방으로 반사해 뿌렸다.

    쾅! 콰콰쾅! 우지지지직!

    벼락처럼 줄기줄기 뿜어지는 반사 데미지 때문에 주변 지형이 또 한 번 초토화되었다.

    [오-오오오!]

    바실리스크는 두 팔을 휘적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니, 세우려 했다.

    바실리스크가 몸을 격렬하게 버둥거리자.

    우지-끈!

    결국 또다시 바닥이 무너졌고 놈은 지하 3층으로 패대기쳐졌다. 이번에도 HP가 뭉텅이로 빠져 나갔다.

    바실리스크가 지금껏 던전을 기어 올라오며 부린 난동, 뿌린 독액 때문에 지면은 많이 약해져 있는 상태였다.

    그 와중에 거구의 덩치가 위에서부터 떨어졌으니 그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리라.

    심지어 거기에 반사 데미지까지도 기승을 부리니 바닥이 버틸 수 있을 리가 만무한 것이다.

    쿠르릉!

    아니나 다를까, 지하 3층의 바닥 역시도 무너지고 말았다.

    콰-쾅!

    바실리스크는 또다시 지하 4층으로 굴러 떨어졌다. 또다시, HP가 뭉텅이로 빠져 나간다.

    그것이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쾅! 콰쾅! 우르릉!

    결국, 바실리스크는 약해진 4층, 5층, 6층, 7층의 바닥들을 모두 부수고 던전 최하층인 지하 8층까지 굴러 떨어졌다.

    그리고.

    그곳에는 자기 자신이 만들어 놓은 맹독의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풍-덩!

    결국 바실리스크는 자기가 원래 갇혀 있던 곳에 빠지게끔 되었다.

    [크-아아아아악!]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포효 소리.

    하지만 놈이 내가 있는 지하 1층까지 다시 올라오는 것에는 꽤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아마 그 사이에 깎단의 도트 데미지가 놈을 처리하겠지.

    “후우…….”

    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쿵- 쿵- 쿵- 쿵-

    아래에서 미약한 진동이 계속해서 울려 퍼진다. 바실리스크가 다시 독의 바다를 헤엄쳐 나와 벽을 기어오르는 모양.

    놈이 도로 기어 올라와 나를 죽이는 것이 빠를까?

    아니면 깎단의 %데미지가 놈의 숨통을 끊어 놓는 것이 빠를까?

    나는 최대한 놈의 기어오름을 막고자 움직였다.

    쾅! 콰쾅!

    발을 굴러 바닥을 무너트린다.

    우수수수-

    거대한 바위, 돌기둥의 파편, 조각상들이 무너져 밑으로 떨어졌다. 이렇게 주는 낙석 데미지도 무시 못하지.

    “야! 너도 도와!”

    나는 옆에 있는 요르문간드에게도 소리쳤다.

    [푸스스!]

    그러자 녀석은 거대한 덩치를 움직여 바위나 조각상 등을 아래로 집어던졌다. 이거 은근히 쓸모가 많은 녀석인데?

    수많은 낙석들이 저 까마득한 독액의 바다로 떨어져 내린다.

    이제는 정말 시간 싸움이었다.

    “……저기. 나는 뭘 하면 좋겠나?”

    옆에 있던 드레이크가 물어왔다.

    …….

    하지만 이 시점에서 딱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지진이라도 일으킬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그에겐 불가능한 일이니까.

    나는 그를 흘끗 쳐다본 뒤에 말했다.

    “팝콘이나 먹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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