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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41화 (41/1,000)
  • 41화 바실리스크(Basilisk) (2)

    콰쾅! 우르릉!

    바닥이 통째로 무너지고 있었다.

    지진이 몰아닥쳐 벽과 기둥들을 주저앉힌다.

    풍덩! 철퍼덕! 풍덩!

    붕괴물들은 녹색의 바다에 빠져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가라앉은 것인지 녹아내린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푸스스스스-

    녹색의 독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던전 내부의 모든 것들이 썩고 오염된다.

    바위의 소나기가 쏟아지는 가운데, 부패가 모든 것들을 삼켜 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거대한 혼돈의 중심부에서,

    [크-오오오오오!]

    던전의 왕 ‘바실리스크’가 입을 쩍 벌린 채 포효했다.

    <바실리스크> -등급: A+ / 특성: 맹독, 땅, 어둠, 지진, 패륜아, 폐소공포증, 혈족전생

    -서식지: 패륜아의 둥지 8층, 죽음길 나락 ‘생사경(生死境)’, 거인국

    -크기: 44m.

    -검은 용이 낳은 사생아. ‘모든 기어 다니는 것들의 왕’으로 통한다.

    용에 버금가는 덩치와 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날개가 없어 용이 되지 못했는데 그 때문에 언제나 속이 썩어 문드러져 있는 상태다.

    놈은 ‘맹독’ 특성을 가진 몬스터답게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입힌 적은 끝까지 추격해 따라간다.

    지독한 집념이 깃든 인공지능이다.

    하지만.

    “자, 얼른 올라갑시다.”

    나는 바실리스크의 추격에도 전혀 겁먹지 않고 있었다.

    저 놈은 던전 안에만 갇혀 있어야 하는 몬스터이기에 어차피 운신 폭이 제한적이다.

    패륜아의 둥지는 총 지하 8층으로 이루어져 있는 던전.

    1층까지 도망 다니다 보면 놈의 HP가 도트 데미지에 의해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3시간.

    얼추 그만큼만 버틸 수 있다면 내가 이긴다.

    바실리스크는 깎아 낸 단말마에 의해 데미지를 입었으니 지금 이 순간에도 분명 도트 데미지의 영향을 받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가즈아!”

    나는 온통 독 천지가 된 지하 7층을 탈출했다.

    지하 6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뛰어오르며, 드레이크가 물었다.

    “……한데 저 독 공격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있나?”

    나는 드레이크의 말에 구태여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조금 간당간당하기 때문이다.

    지하 1층의 출구로 도망치기 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2시간 반 정도. 조금 애매한 시간이긴 하다.

    그동안 바실리스크의 독에서 도망칠 수 있을까?

    드레이크는 아무래도 부정적인 쪽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하기야, 이 던전에서 수없이 죽는 동안 던전의 규모에 대해서 빠삭하게 익히게 됐을 터이니.

    하지만.

    ‘그래도 방법은 있지.’

    나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따라오면 알게 될 거야.”

    나는 드레이크에게 말했다. 그에겐 선택권이 있다. 나를 따라오거나, 아니면 던전 밖으로 탈출하거나.

    “……믿어 보지.”

    드레이크는 나를 따르는 쪽을 선택한 것 같았다. 모험가 특유의 끓는 피 때문일까?

    뭐 아무튼.

    우리는 던전의 지하 6층을 마구 내달렸다.

    [크-오오오오!]

    바실리스크는 입에서 독액을 내뿜으며 지하계단을 타올라왔다. 그리고 지하 6층의 문을 비집고 그 흉악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애꿎은 수난을 당한 것은 지하 6층에 있던 몬스터들이었다.

    ‘어둠비늘 박쥐’ ‘울트라 파이썬’ ‘동굴 게’ ‘칼날 도롱뇽’ 등등…….

    원래 지하 6층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던 몬스터들은 죄다 바실리스크의 독에 뒤덮였다.

    파사사삭-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어가는 몬스터들. 곳곳에 아이템 떨어지는 소리만 요란하다.

    “허어……저것들은 하나하나가 너무 강해서 나도 못 잡던 것들인데…….”

    드레이크는 자기가 피해서 내려갔던 수많은 몬스터들이 바실리스크 하나에게 몰살당하는 것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지하 6층의 생물들을 모조리 멸종시킨 것도 모자랐는지.

    쾅! 쾅! 쾅!

    바실리스크는 근육과 용비늘로 덮인 주먹을 마구 휘둘러 주변에 있는 지형지물들까지 죄다 때려 부수고 있었다.

    우르릉… 우지지직!

    놈이 한번 날뛸 때마다 기둥과 바닥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존재 자체가 자연재해나 다름없다.

    과연 ‘지진’ 특성을 가진 대형 몬스터다운 위용이었다.

    꿀렁- 꿀렁- 꿀렁-

    바실리스크의 목젖이 상하로 크게 요동쳤다.

    놈이 또다시 원거리 독액 분사를 시도한다.

    푸확!

    쏟아지는 녹색의 독액 대포!

    철푸덕!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요르문간드를 이용해 독 파도를 막았다.

    “너 의외로 쓸모가 많구나?”

    [푸스스스…….]

    내가 머리를 쓰다듬자 요르문간드는 몸을 비틀며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이내.

    [크-워어어어어!]

    바실리스크가 또다시 포효한다.

    이런! 이번에는 독안개다!

    독액 대포와 달리, 가습기처럼 뿜어져 나오는 독안개는 요르문간드로도 막을 수가 없다. 이것은 그냥 빨리 달려서 위층으로 피해 버리는 것이 상책!

    호다닥-

    나는 잽싸게 지하계단을 타올라 지하 5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봐.”

    그런 내 뒤에서, 드레이크가 의아한 어조로 물었다.

    “너는 독액 대포와 독안개가 닥쳐올 줄 어떻게 미리 아는 건가?”

    “그야 소리랑 자세로 아는 거지, 뭐.”

    “소리? 자세? 내가 듣기에는 두 공격패턴 다 똑같은데?”

    드레이크의 말에, 나는 검지를 좌우로 까닥거려 주었다.

    “독액 대포는 350프레임이고 독안개는 370프레임이야. 발사 전 모션만 똑같고 프레임이 20이나 차이 나잖아.”

    “……?”

    “또……. 독액 대포의 포효 소리는 3옥타브 솔, 독안개의 포효 소리는 3옥타브 시.”

    “……??”

    “그리고 개인적인 팁을 주자면……. 독액 대포를 쏠 때에는 목젖이 상하로만 움직이는데 독안개를 뿜을 때에는 목젖이 미약하게 좌우로도 떨리지. 이건 보면 바로 보여.”

    “……???”

    드레이크는 입을 딱 벌린 채 나를 바라본다.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나 싶은 표정.

    한편 나는 나대로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다.

    ‘왜 이걸 이해 못하지? 이해를 못하겠네.’

    그렇게 주고받는 사이, 나와 드레이크는 어느새 지하 5층도 돌파했다.

    콰쾅- 우르르릉-

    독 때문에 약해진 바닥이 또다시 일부 무너진다. 바실리스크는 여전히 엄청난 집념으로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가-아아아아악!]

    바실리스크가 또다시 입을 벌리고 무언가를 하려 한다. 그것은 독액 분사도, 독안개 배출도 아니었다.

    “오? 돌진기가 온다!”

    나는 놈의 모션만 보고도 어떤 공격이 올지 전부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콰콰콰콰쾅!

    바실리스크는 일순간 엄청난 속도로 돌격해 와 정면에 있는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

    하지만 이 경우 놈은 직선 궤도로밖에는 움직이지 못하기에 미리 옆으로 슬쩍 피해 있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아무런 데미지도 입지 않았다는 말씀!

    그러나.

    바실리스크가 엄청난 속도로 거리를 좁혀 오는 바람에 우리는 벌써 지하 3층에 이르러 있었다.

    힐끔.

    바실리스크를 슬쩍 돌아보자, 놈의 HP는 여전히 건재하다.

    -바실리스크

    HP: 7,800,175/9,750,220

    얼추 80%에 해당하는 HP가 남았다. 도망갈 수 있는 공간이 절반도 안 남았는데 이 정도라니.

    “어, 어떻게 할 건가 어진? 이대로라면…….”

    드레이크가 다급하게 물어 왔다. 내가 어떻게 놈의 HP를 20%나 깎아 냈는지는 묻지도 않는다. 그만큼 상황은 다급했던 것이다.

    [카오-오오오오!]

    돌진을 멈춘 바실리스크가 또다시 포효한다.

    놈의 전신에 있는 검은 비늘이 장검의 날처럼 곤두서기 시작했다.

    퍼퍼퍼펑!

    비늘들이 터져 나와 소나기처럼 쇄도한다.

    콰콰콰쾅!

    쏘아져 오는 비늘에 맞은 돌기둥 여섯 개가 그대로 관통당해 무너져 내렸다.

    벽이고 천장이고 죄다 박살이 났다.

    온 던전이 걸레짝이 되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기술. 물리 공격력만으로 따지면 S급 몬스터의 필살기에 버금갈 정도다.

    하지만 나는 바닥에 벌렁 드러누운 상태에서 바실리스크의 비늘을 모조리 피해 냈다.

    “‘비늘 수류탄’ 기술은 오히려 피하기 쉽지. 비늘들이 전부 45도 각도로 위쪽으로 튀기 때문에 누워만 있으면 돼.”

    나는 말을 마친 뒤 바로 일어났다.

    그리고 비늘을 날려 보내느라 우뚝 멈춘 바실리스크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이 기술은 반동기(反動技)라서 자기 자신에게도 데미지를 먹인다는 것이지.”

    말 그대로다.

    비늘을 날려 보낸 바실리스크는 자기 자신도 입은 충격 때문에 잠시 몸을 고정한 채 움직임이 없다.

    “지금이 딜 찬스야!”

    곳곳에 비늘들이 빠져 있는 덕분에 그곳을 잘 노린다면 패륜아 특성도 발동되지 않는다.

    나는 멈춰 있는 바실리스크의 몸에 깎단을 쑤셔 박았다.

    퍼퍽!

    요란한 소리와 함께, 딜이 들어간다.

    [오-오오오오!]

    바실리스크는 고통에 겨워 몸부림쳤다.

    “조, 좋아! 그럼 나도!”

    드레이크는 잽싸게 쇠뇌를 들었다. 아니, 들려 했다.

    하지만 그가 막 화살 하나를 들어 쇠뇌에 장전하는 순간.

    [가오오오오오!]

    바실리스크가 다시 몸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콰콰콰쾅!

    또다시 지진이 몰아쳐 바닥을 죄다 깨트려 놓았다.

    “으아악! 뭐야!? 놈이 바로 다시 움직이는데!?”

    드레이크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해 주었다.

    “놈이 스턴에 걸려 있는 시간은 넉넉했는데? 한 대도 못 때렸어?”

    “……넉넉했다고? 바로 움직인 것 같았는데?”

    “무슨 소리야. 한 0.8초는 멈춰 있었구만.”

    내 대답을 들은 드레이크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0.8초면 딜을 두 번은 더 넣을 수 있는 시간 아닌가?

    왜 이걸 이해를 못해 주지?

    한편.

    우리는 어느새 지하 3층을 지나가고 있었다. 바실리스크는 어느새 우리의 바로 뒤까지 쫓아왔다!

    드레이크가 기겁을 하며 외친다.

    “이러다 잡히겠다!”

    “으음. 기다려 봐.”

    나는 앞으로 달리면서도 주위를 스캔했다.

    ‘어디였더라? 이쯤이었던 것 같았는데.’

    이윽고, 내 눈에서 이채가 반짝였다. 찾았다!

    ‘3초 정도는 벌 수 있겠군.’

    이윽고, 나는 정면에서 약간 우측에 있는 돌기둥 두 개의 사이로 빠져나갔다. 생존구에서 약간 우회하는 길이었지만 굳이 그쪽으로.

    “……왜 굳이 이쪽으로?”

    드레이크 역시 영문도 모르고 나를 따라온다.

    먼 길로 돌아간 덕분에 바실리스크와 우리의 거리는 조금 더 좁혀졌다.

    [그-아아앗!]

    바실리스크가 포효를 내지르며 우리에게 닿을 듯, 손을 뻗어올 때!

    지이잉-

    갑자기 허공에 마법진 하나가 생겨났다.

    그리고.

    쿵-

    마법진 너머에서 거구의 몬스터 하나가 리젠 되어 떨어져 내렸다.

    푸른 피부, 외눈, 날카로운 이빨.

    바로 아오오니였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