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40화 (40/1,000)
  • 40화 바실리스크(Basilisk) (1)

    -띠링!

    <히든 던전 ‘패륜아의 둥지 8층’에 입장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진(眞) 보스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메두사의 ‘아들’

    무너지는 바닥 밑으로 녹색의 독액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콰쾅! 쿠르르르륵!

    검은 균열의 틈마다 지독한 독 파도가 밀물처럼 차오른다.

    녹빛의 포말 아래에서.

    내가 지금껏 벼르고 있던 최후의 몬스터가 그 거대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바실리스크> -등급: A+ / 특성: 맹독, 땅, 어둠, 지진, 패륜아, 폐소공포증, 혈족전생

    -서식지: 패륜아의 둥지 8층, 죽음길 나락 ‘생사경(生死境)’, 거인국

    -크기: 44m.

    -검은 용이 낳은 사생아. ‘모든 기어 다니는 것들의 왕’으로 통한다.

    용에 버금가는 덩치와 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날개가 없어 용이 되지 못했는데 그 때문에 언제나 속이 썩어 문드러져 있는 상태다.

    거대한 몬스터가 지하를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공룡의 머리.

    칼처럼 솟구친 비늘과 매끈하고 긴 몸은 영락없는 뱀의 그것이다.

    눈에는 흰자가 없이 검은자위만 가득했고 눈두덩에는 연신 검붉은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시커먼 상반신에는 굵은 팔 두 개가 달려 있었지만 다리는 없다.

    꼬리로 바로 이어지는 하반신은 너무나도 크고 길어 아직도 독액에 잠긴 지하층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그-오오오오오오!]

    놈은 온 던전을 무너트릴 듯 포효했다.

    피어가 한번 터질 때마다 놈의 목구멍 속에서 녹색 독액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압도적인 위용에 몸을 떨었다.

    ‘바실리스크(Basilisk)’

    이 얼마나 카리스마 넘치는 몬스터란 말인가!

    바실리스크는 용에 버금가는 덩치와 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용이 되지 못한 비운의 몬스터이다.

    조금 더 자세한 설정을 떠올리자면…….

    <용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엄청난 분노와 열등감 탓에, 바실리스크는 용 군단을 배반하고 악마 군단의 휘하로 들어간다.>

    <7대 악마 중 ‘분노’의 관장자 사탄은 그를 부관으로 삼아 용 군단을 침공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용 군단은 이에 발 빠르게 대응했다.>

    <검은 용은 자신의 아들인 바실리스크가 반란을 일으키기 직전 지하 감옥에 가뒀고, 그의 생모이자 자신의 정부인 메두사를 상아석에 영원토록 봉인해 버렸다.>

    <현재 악마 군 측은 중급악마 ‘하우레스’를 보내 바실리스크의 탈옥을 꾀하고 있는 중이다>

    .

    .

    ……뭐 이런 내용들.

    하지만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

    [SKIP]! [SKIP]!

    나는 듣지 않아도 되는 설정들을 전부 꺼 버렸다.

    침착한 태도로 주변을 둘러보자, 현재 상황이 전부 눈에 들어온다.

    바실리스크는 점점 이쪽으로 기어 올라오고 있다. 바닥은 놈이 뿜어내고 있는 독 때문에 거의 다 녹아 버렸다.

    푸시식-

    녹색 독액에 닿은 돌기둥은 이내 금방 흐물흐물 무너져 내린다. 독액 바다의 수위가 이걸로 조금 더 높아졌다.

    “오오! 이런 히든 보스가 있을 줄이야!”

    드레이크는 흥분한 기색으로 쇠뇌를 들었다.

    며칠 동안 먹지도, 자지도 못한 것에 대한 피로는 순식간에 싹 가신 듯한 모양새.

    퍼퍼퍽!

    화살 몇 대가 날아 바실리스크의 몸에 닿았다.

    ‘관통’ 특성으로 인해 방어력을 무시한 데미지가 가해진다.

    바로 그때.

    퍼퍼퍽!

    드레이크는 자신의 HP가 확 깎이는 것을 느꼈다.

    “……? 뭐지?”

    분명 아무런 공격도 당하지 않았는데 순식간에 HP가 줄었다.

    의아해하는 드레이크에게, 나는 간략하게 설명했다.

    “저놈의 특성 때문이다. 함부로 공격했다간 역으로 당할 거야.”

    바실리스크의 특성 ‘패륜아(悖倫兒)’

    아주 성가시고 골치 아픈 특성이다.

    그것은 바실리스크의 슬픈 과거사를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힘든 특성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입은 데미지의 최대 99%를 반사한다!’

    예전에 잠깐 썼었던 ‘하극상’ 특성의 상위호환이라고 보면 되겠다.

    바실리스크는 자신이 입은 데미지의 90~99%를 상대방에게 반사하는 패시브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놈의 방어력이 워낙에 대단한지라 데미지 자체가 얼마 안 박히긴 하지만, 그래도 가한 데미지의 90% 이상이 되돌아온다는 것은 딜러들에게 있어서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 특성 하나 때문에 한 방 러쉬를 이용한 한타 레이드는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떼거지로 우르르 몰려가 다구리를 놓는 것도 불가능했다.

    고수의 데미지가 반사되기라도 한다면 하수들은 우르르 몰살당할 테니까.

    드레이크는 침중한 표정으로 바실리스크를 올려다보았다.

    “저 자식, 방어력도 엄청나 보이는 놈이 반사 데미지까지 입히는 건가……사기잖아!”

    그렇다.

    설정 상, 바실리스크의 비늘은 용비늘이다.

    S급 몬스터인 드래곤의 비늘이 놈의 전신을 촘촘하게 뒤덮고 있는 것이다.

    비행 특성을 갖추지 못한 채 좁은 지하 던전 깊숙이 갇혀 있다는 것 때문에 A+급 판정을 받긴 했지만, 놈의 종족값은 거의 S급에 필적한다.

    만약 놈이 드넓은 광야에 풀려나와 있는 상태였다면 능히 S급 판정을 받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무적의 방어력, 반사 데미지. 거기에 치명적인 독까지.

    이것이 뭐 하나 빠지지 않는 A+급 완전체 몬스터의 위용인 것이다. 사기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오-오오오오!]

    바실리스크가 상반신을 7층으로 끌어올렸다.

    무너진 바닥을 통해 8층을 슬쩍 내려다보니, 아래는 이미 녹색의 독으로 꽉 차있었다.

    놈의 날카로운 이빨 사이에서 흘러내린 진득한 녹색 액체가 어느덧 7층의 바닥에도 가득 고였다.

    푸쉬이이이익-

    이제 지하 7층의 바닥 전체가 흐물거리기 시작한다.

    아마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무너져 지하 8층의 독 바다로 빠져 버리겠지.

    [크-워어어어어억!!]

    계속해서, 고막을 뚫어 버릴 듯한 포효가 토해진다.

    녹색의 역겨운 액체, 고체들이 바실리스크의 입속에서 퍽퍽 튀어나왔다.

    썩은 피, 내장, 뼛조각 등등... 그것들은 닿는 모든 것들을 오염시킨다.

    속상하고 또 속상한 마음에 정말로 속이 상해 버린 것일까? 참 거지같은 설정이다.

    썩은 피와 내장이 흩뿌려지는 카니발.

    이 부패와 오염이 가득한 공간은 온전히 놈의 손아귀에 지배당하게 되었다.

    콰쾅!

    독 때문에 약해진 바닥이 또다시 우르르 붕괴되었다.

    이제 7층의 바닥은 거의 절반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풍덩! 풍덩! 풍덩!

    붕괴물들은 저 아래 독액의 바다 속으로 깊이 가라앉는다.

    “어, 어쩔 생각으로 이런 놈을 깨워 버린 거냐?”

    드레이크는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짧게 대답했다.

    “어쩔 생각이냐니? 당연히 잡을 생각이지.”

    “……뭐?”

    드레이크는 내 말을 듣고는 황당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잡는다고? 뭣을? 눈앞의 이 거대 괴물을?

    그는 내 말을 이해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그때.

    [그워어어억!]

    바실리스크가 내 쪽을 향해 입을 쩍 벌리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이빨들이 즐비한 입 속으로 검은 목구멍이 보인다.

    그 너머에서 무언가가 꿀렁 꿀렁 올라오고 있는 것도.

    “브레스가 온다!”

    나는 드레이크에게 경고했다.

    동시에.

    푸확!

    바실리스크의 입속에서 거대한 독액 분수가 분출되었다.

    온통 썩어 문드러진 혈액과 내장들이 거센 숨결에 섞여 던전 전체로 흩뿌려졌다.

    코를 넘어 뇌까지 썩어드는 것 같은 악취, 지독한 독성.

    던전 전체에 부패의 기운이 꽉 차 넘실거렸다.

    하지만.

    나는 조금의 독 데미지도 입지 않았다.

    [크륵?]

    바실리스크가 의외라는 듯 시커먼 눈을 부릅떴다.

    [푸스스스스…….]

    요르문간드!

    독과 마법을 100% 방어해 내는 이 뱀이 내 앞을 지켜 주고 있었던 것이다!

    바실리스크의 맹독조차도 무시하는 요르문간드의 독 저항력은 그야말로 대단한 것이었다.

    어쩌면 메두사가 소환한 녀석이라 그런가 메두사의 자식인 바실리스크의 독에 내성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이다!”

    나는 요르문간드의 등 뒤에서 잽싸게 치고 나갔다.

    독 브레스를 끼얹고 나서 약 2초간, 바실리스크는 스턴 상태에 걸린다.

    상한 속을 죄다 게워 냈기 때문이리라.

    따악!

    나는 깎단을 들어 바실리스크의 몸통을 한번 쑤셨다.

    그러자.

    퍼펑!

    바실리스크에게 약간의 데미지가 들어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반사 데미지가 벼락처럼 튕겨나와 나를 노린다.

    퍼퍽!

    깍단의 반사 데미지를 대신 맞은 존재는 바로 요르문간드였다.

    [쉬이잇!]

    독, 마법 방어력이 엄청난 대신 물리 방어력이 형편없는 이 뱀은 반사 데미지를 맞자마자 바로 HP가 확 깎였다.

    “미안해. 신세를 졌네.”

    나는 그런 요르문간드의 목을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꿀렁- 꿀렁- 꿀렁-

    바실리스크의 숨결이 닿은 모든 것들은 전부 다 녹아내리고 있었다.

    지하 8층의 독 바다는 이미 지하 7층의 절반 이상을 잠식했다. 이대로 두면 더 높게 차오를 것 같았다.

    온 세상 천지가 녹색의 바다! 보이는 것은 온통 맹독뿐이다!

    “이제 여기를 떠야겠다.”

    바실리스크에게 조금의 데미지라도 입혔으니 됐다. 지금부터는 깎단의 도트 데미지를 믿는 수밖에!

    나는 잽싸게 몸을 움직여 요르문간드의 목 위에 올라탔다. 드레이크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출렁- 출렁-

    요르문간드는 나와 드레이크를 목 위에 태운 채 녹색의 늪을 헤엄쳐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오오옥!]

    그 뒤를 바실리스크가 바로 쫓아온다. 하지만 이동속도가 느려서인지, 놈은 좀처럼 우리를 잡지 못했다.

    “결국 여기까지로군. 아쉽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도망이 최선의 선택이다. 다음에는 조금 더 준비를 잘 해서 오는 게…….”

    드레이크가 뒤에서 아쉽다는 듯 중얼거린다.

    하지만.

    나는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 눈썹을 까닥 움직였다.

    “말했잖아. 잡고 갈 거라니까?”

    “……?”

    드레이크가 고개를 갸웃함과 동시에.

    내 말을 뒷받침해 주는 알림음이 귓가에 떠올랐다.

    -띠링!

    <아이템 융합이 완료 되었습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