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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38화 (38/1,000)
  • 38화 패륜아의 둥지 (3)

    ‘고르곤(Gorgon)’

    A등급 몬스터이자 종족값, 특성치가 골고루 분배되어 있는 밸런스형 보스.

    패륜아의 둥지 7층을 지키고 있는 최후의 수문장.

    어지간한 수준의 플레이어들은 이 몬스터의 눈조차 제대로 바라볼 수 없다.

    그리고.

    이에 맞서고 있는 플레이어는 ‘70억분의 1’ 드레이크 캣!

    한때 전 세계의 PK리그를 주름잡았던 사나이.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 있는 신비의 궁수다.

    현재 랭킹 최상위권의 고수들도 C+급 몬스터 한 마리를 혼자 겨우겨우 잡는 실정.

    그것도 공략이 꽤나 밝혀진 일부 몬스터에만 국한되어 있을 뿐, B급 이상의 몬스터를 솔로 레이드로 잡을 수 있는 랭커는 아직까지 전무하다.

    그런 상황에서.

    드레이크는 지금 A급 몬스터 중에서도 상당히 강한 축에 드는 고르곤을 상대로 솔로 레이드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C+급 몬스터보다 적어도 천 배 이상 강한 이 존재를!

    하지만.

    고르곤을 눈앞에 둔 드레이크는 전혀 겁먹거나 기죽은 기색이 없었다.

    “역시 돌진해 오는가.”

    드레이크는 재빨리 스텝을 밟아 뒤로 빠져나갔다.

    마치 노련한 투우사처럼, 그는 직선 코스로 돌진해 오는 고르곤의 뿔을 피해 옆으로 피했다.

    동시에. 그는 반쯤 무너져 내린 돌기둥을 밟고 위로 뛰어올랐다.

    타탁-

    그는 돌기둥 두 개를 연달아 디딘 뒤 허공으로 점프했고 그 자리에서 연거푸 화살 세 발을 쏘아 날렸다.

    특이하게도, 드레이크는 활을 쓰지 않았다.

    그는 한 손에 들 수 있는 가벼운 쇠뇌를 주로 이용했는데 한 번에 여러 개의 화살을 날려 보내는 듯싶었다.

    탁-

    바닥에 착지한 드레이크는 또다시 뒤로 빠졌다.

    콰쾅!

    고르곤이 돌기둥 몇 개를 부수며 달려든다.

    뿌욱-

    날카로운 뿔끝이 돌기둥 하나를 스치며 허리에 깊은 스크래치를 내 놓았다.

    “나쁘지 않군.”

    드레이크는 짧게 중얼거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일부러 고르곤의 공격이 돌기둥들을 빗겨 스치게끔 하고 있었다.

    그래야 매끄러운 돌기둥 표면에 발을 딛을 수 있는 홈이 패이기 때문이다.

    차라락-

    드레이크의 한손 쇠뇌가 또다시 화살을 장전한다.

    -<백안시(白眼視)> 한손무기 / B+

    한 손으로도 들 수 있을 만큼 조작이 쉽고 가벼운 쇠뇌이다. 조악한 설계 탓에 공격력은 떨어지지만 상대방의 방어구를 무시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공격력 +2,500

    -특성 ‘개무시’ 사용 가능 (특수)

    공격력은 B+등급 치고는 별로 높지 않다.

    하지만 드레이크는 고르곤을 상대하기에 있어 최적인 아이템으로 이 쇠뇌를 골랐다.

    그 이유는 바로 이 쇠뇌에 붙어있는 ‘개무시’ 특성 때문이었다. 바로 상대방의 방어력에 상관없이 고정 데미지를 입힐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그렇다.

    퍼퍼퍽-

    화살 몇 개가 날아 고르곤의 단단한 몸뚱이에 박혔다.

    [음머-]

    고르곤은 간지럽지도 않다는 듯 몸을 한번 푸르르 떨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HP는 차근차근, 천천히, 꾸준히 줄어들고 있었다.

    우르릉-

    고르곤이 또다시 돌진을 준비했다.

    콰콰콰쾅!

    놈은 눈앞에 뭐가 있든 가리지 않았다.

    붕괴물도, 조각상도, 돌기둥도. 놈의 뿔에 걸리면 뭐든지 파괴된다. 마치 파괴신이 돌격해 오는 듯한 위용!

    하지만.

    그 압도적인 광경을 눈앞에 두고도 드레이크는 여전히 침착했다.

    훌쩍-

    그는 또다시 돌기둥 허리에 패인 뿔 자국을 딛고 다른 돌기둥으로 이동했다.

    차라락-

    드레이크는 한쪽 손으로 쇠뇌를 장전하는 동시에 다른 쪽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가 빠르게 휘저었다.

    후두둑- 후두둑-

    주머니에서 무언가가 뿌려져 고르곤의 발밑에 깔렸다.

    그것은 성게나 밤송이처럼 생긴 작은 쇠붙이였다.

    -<지옥 마름쇠> 한손무기 / B+

    누군가의 발밑에 깔리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 악의로 똘똘 뭉쳐있는 이 가시에 찔린다면 누구든 앓아누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격력 +500

    -독 공격력 +500

    -특성 ‘개무시’ 사용 가능 (특수)

    드레이크의 주머니에서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는 마름쇠들.

    충전식이기 때문에 횟수에 걱정 없이 쓸 수 있다.

    푹- 푸욱-

    고르곤은 거침없이 그 쇠붙이들을 밟고 지나간다.

    그럴 때마다 ‘개무시’ 특성에 의해 방어력을 무시한 데미지가 꾸준히 가해지고 있었다.

    [음-머어어어!]

    고르곤은 계속해서 드레이크를 추격해 왔다.

    “……음?”

    드레이크는 한참 동안이나 뒤로 내뺐다.

    이내, 그는 코너로 몰려 던전의 한 귀퉁이에 갇히게 되었다.

    쒸익- 푸르륵-

    고르곤은 그제야 승기를 잡았다는 듯 드레이크를 몰아세웠다.

    놈의 인공지능은 결코 낮지 않다. 구석에 몰아넣은 적을 탈출하게 놔둘 리가 없었다.

    [무-우우우!]

    이내, 고르곤이 괴성을 내지르며 돌격해 온다.

    하지만.

    “…….”

    드레이크는 전혀 곤란한 기색이 없다.

    후두둑-

    그는 자기가 서 있는 코너에 마름쇠들을 잔뜩 깔아 놓았다.

    동시에, 드레이크는 인벤토리를 열어 무언가를 바닥에 잔뜩 뿌렸다.

    -<슬라임의 정수> D

    슬라임의 살점 1천 개를 모아 끓인 뒤 핵심 물질만 걸러낸 것이다.

    -<해골 달팽이의 젤> D

    해골 달팽이가 교미를 할 때 내뿜는 윤활유. 사랑이 담뿍 담겨 있기에 매우 미끌거리기 그지없다.

    어지간한 속박 정도는 무시하고 미끄러진다.

    슬라임과 해골 달팽이에게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

    D등급 잡템이지만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효과는 무궁무진하다.

    드레이크는 고르곤이 돌진해 오는 바로 앞에 그것들을 뿌려 놓았다.

    이윽고.

    찌이이이익-

    미친 듯이 달려오던 고르곤이 바닥에 뿌려진 액체를 밟고는 그대로 밀려온다.

    훌쩍-

    드레이크는 그제야 코너를 빠져나와 벽을 타고 탈출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고르곤은 그대로 텅 빈 코너에 들이박게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옆으로 도망치는 드레이크를 따라 진로를 변경했겠지만 바닥에 깔린 점액과 젤 때문에 턴에 실패한 것이다.

    푹- 푸푹- 푹-

    수많은 독 마름쇠들이 고르곤의 몸을 파고든다.

    [무-우우우!]

    고르곤은 격분한 상태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미 드레이크는 깔끔하게 코너를 탈출한 뒤다.

    또다시 같은 패턴의 레이드가 시작되었다.

    콰쾅!

    고르곤은 빠르게 돌진해 주변을 파괴하고 드레이크는 그것을 살살 피해 뒤로 움직이며 화살과 마름쇠 데미지를 먹인다.

    그러다가 코너에 몰릴 때는 바닥에 점액과 젤을 뿌려 탈출.

    그런 식의 싸움이 벌써 6시간이나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푸르륵-

    고르곤은 이내 지친 기색을 보인다.

    아무리 천하무적의 A랭크 몬스터라지만, 방어력을 무시하는 ‘개무시’ 특성의 효과는 실로 독하고 질긴 것이었다.

    비록 약해빠진 화살과 마름쇠였지만 그것들이 주는 데미지는 고르곤의 단단하고 질긴 털가죽을 뚫고 속살까지 푹푹 박혀 들어왔던 것이다.

    꾸준히, 고스란히 말이다.

    콰쾅!

    고르곤이 이제 얼마 남지도 않은 돌기둥 하나를 파괴했을 때, 놈의 HP는 이제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자.

    번쩍-

    고르곤의 공격 패턴이 변했다.

    놈은 지금까지 무겁다는 듯 축 늘어트리고 있던 머리통을 꼿꼿하게 곧추세웠다.

    시뻘건 눈빛이 던전 전체를 이글거리며 비추고 있었다.

    ‘마나 번’

    눈이 마주친 이를 돌로 만들어버리는 실로 귀찮은 특성.

    “드디어 나왔군.”

    드레이크는 고르곤이 머리를 들자마자 시선을 피했다.

    마나 번 특성에 대한 것이라면 이미 지난 수십 번의 실패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까락-

    드레이크는 한 움큼 움켜쥐었던 마름쇠를 바닥에 마저 뿌렸다.

    이것이 마지막 마름쇠, 마을로 돌아가서 충전을 하기 전까지는 사용할 수 없다.

    딸깍-

    등에 맨 화살통들도 어느새 텅텅 비었다.

    인벤토리에 남은 화살도 전부 동나 버렸다.

    덜그럭-

    드레이크는 손을 움직였다. 그리고 허벅다리 안쪽에 가죽 끈으로 묶어 두었던 단검 하나를 빼들었다.

    최후의 승부수.

    -<약자의 칼날> 한손무기 / B+

    약한 자의 원한이 깃들어 빛나는 단검. 아이러니하게도, 그 원한은 항상 더 약한 자에게로만 향한다.

    -공격력 +800

    -특성 ‘약자멸시’ 사용 가능 (특수)

    ‘약자멸시(弱者蔑視)’ 특성.

    HP가 5% 이내인 상대방을 5% 확률로 단숨에 죽이는 특성이다.

    약해진 적을 즉사시키는 이 특성은 일반적으로 거의 쓰이지 않는 특성.

    왜냐하면 활용빈도가 극히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레이크는 이 아이템에 최후의 승부를 걸려 하고 있었다.

    쿠드드드득-

    고르곤은 사력을 다해 돌진해 왔다.

    드레이크는 단검을 투척하며 생각했다.

    ‘지금까지 했던 20번의 시도. 5%의 확률이라면 한 번쯤은 터져 줄 때도 되었다!’

    눈을 감기 전에 이미 고르곤의 위치는 이미 똑똑하게 봐 뒀다.

    놈의 속도, 돌진해 오는 궤도, 모두 지겹도록 상대해 봐서 안다.

    드레이크는 온 힘을 다해 단검을 던졌다.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이제 행운에 기대어 보는 수밖에!

    키리릭-

    투척된 단검은 빙글빙글 돌며 날아간다.

    정면에서 돌격해 오는 고르곤의 머리통 정중앙을 노리며!

    화살도, 마름쇠도 다 떨어졌다. HP도 바닥이다.

    이 즉사 특성이 터져 주지 않으면 이번 레이드도 실패.

    먼 길을 돌아가 훗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겠다.

    그리고 이내.

    빠-악!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단단한 쇠붙이가 단단한 두개골을 쪼개고 들어가 박히는 소리.

    그 통렬한 박살음(撲殺音)은 짧지만 강렬했다. 던전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퍼질 정도였다.

    그 순간.

    드레이크는 직감했다.

    ‘……들어갔다!’

    던지는 순간 손끝에 느낌이 있었다. 이건 분명 먹혔다! 제대로 들어갔다!

    “…….”

    드레이크는 살며시 눈을 떴다.

    그러자.

    쿵-

    이마빡에 단검이 박힌 채로 쓰러지는 고르곤이 보였다.

    “됐다!”

    드레이크는 환호성을 질렀다.

    이 형편없는 공격력을 가진 단검이 해냈다!

    드디어 5%의 확률이 빛을 발한 것이다!

    그동안 스무 번이 넘는 시도 동안 한 번도 터지지 않았던 특성이다. 그것이 이제야 터져 주었다!

    드레이크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달려가 고르곤의 시체 앞에 섰다.

    …….

    가까이서 본 고르곤은 정말로 거대했다. 이렇게 보니 정말로 감회가 새롭다.

    하긴.

    6시간, 아니 그 전에 시도한 레이드 시간까지 따지자면 거의 120시간 이상을 쏟아 부은 몬스터다.

    감회가 새롭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겠지.

    “……정말 대단한 몬스터였다.”

    드레이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르곤의 몸을 한번 툭 쳤다.

    이제 끝났다.

    일주일간 거의 먹지도 자지도 않은 채 매달려 왔던 레이드.

    마치 노인과 바다에 등장하는 샌디에고 노인처럼, 그리고 청새치처럼.

    드레이크와 고르곤은 멋진 승부를 펼쳤다.

    그리고. 이제는 그 성과가 배분될 차례였다.

    뒤적-

    드레이크는 손을 뻗어 고르곤의 시체를 뒤졌다. 아이템을 수거하기 위해서였다.

    …….

    그러나.

    고르곤은 아직도 승부 결과를 납득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꿈틀!

    지친 기색으로 시체를 뒤지던 드레이크의 몸이 순간 움찔했다.

    [캬아악!]

    고르곤의 시체 말미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온 것이다.

    꼬리!

    그렇다.

    고르곤의 꼬리가 갑자기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고르곤의 ‘꼬리’> -등급: B / 특성: 독

    -서식지: 패륜아의 둥지

    -크기: 80cm.

    -‘머리’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것을 평생에 걸쳐 후회하며 살아온 존재.

    이제 그를 막아서는 방해꾼은 없다.

    놈은 마치 머리와 몸통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생물임을 주장이라도 하는 듯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쩌억-

    놈은 뱀과 같은 주둥이를 크게 벌리더니 이내 목구멍 속에서 시커먼 독안개를 뿜어냈다.

    치명적인 맹독 마법!

    그것이 빈사상태의 드레이크를 향해 끼얹어지고 있었다.

    ‘빌어먹을!’

    드레이크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죽어도 여기서 죽다니!

    천려일실(千慮一失)이라 했던가?

    모든 것을 완벽히 처리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행운도 터졌다.

    하지만.

    말미에 저지른 한 조각의 방심은 이 모든 것을 수포로 되돌려 놓았다.

    죽는다.

    처음부터 모조리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아니, 사망 패널티 때문에 처음보다 훨씬 뒤에서.

    드레이크는 캄캄해지는 시야를 앞두고 체념한 듯 고개를 떨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지금 아주 작은 충격에도 사망할 만큼 약해져 있으니까.

    …….

    한데?

    “……?”

    드레이크는 고개를 갸웃해야 했다.

    전신에 끼얹어졌어야 할 맹독 마법이 아직 도달하지 않은 것이다.

    벌써 자신의 몸을 흠뻑 적시고도 모자라 뼈까지 부식시켜 버렸어야 마땅할 시간일진데?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든 드레이크, 이내 그의 시야에 무언가 시커먼 것이 들어왔다.

    “……!”

    좌절로 인해 시야가 캄캄해진 것이 아니었다.

    무언가 검고 거대한 것이 드레이크의 시야를 완전히 가로막고 있었다.

    <요르문간드> -등급: B / 특성: 백전노장, 독 면역, 마법면역

    -서식지: 은밀한 꼭두각시 회동, 거인국, 똬리를 튼 사념

    -크기: 15m.

    -신화의 말석을 차지하고 있는 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촘촘히 덮인 비늘은 모든 독, 마법 데미지에 면역을 가진다.

    어디서 튀어나온 것일까?

    칠흑의 뱀 한 마리가 드레이크의 앞을 가로막은 채 고르곤의 꼬리와 대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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