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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35화 (35/1,000)

35화 잔액조회 (3)

나는 이사를 했다.

기존에 살던 보증금 60만원에 월세 20만원짜리 반지하.

햇빛은 전혀 들지 않고 늘 결로현상과 곰팡이, 바퀴벌레에 시달리던 곳.

그곳에서 나온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내가 지금 둘러보고 있는 곳은 강남역과 신분당선이 만나는 지점에 우뚝 서 있는 한 오피스텔의 14층.

40평이 넘는 면적에 남쪽 벽면이 아예 통유리라 채광도 잘 된다.

그 밑으로는 서울의 경치가 한눈에 쭉 들어오고 있었다.

블랙 & 화이트로 깔끔하게 처리된 내부 인테리어도 마음에 들었다.

심지어 내부에는 입주민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피트니스 클럽, 수영장, 셀러드 바도 존재했다.

“바로 계약할게요. 언제부터 입주 가능합니까?”

나는 옆에 선 공인중개사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그러자 아주머니의 놀란 듯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아, 정말 이렇게 바로요? 전세나 월세도 있는데…….”

“아뇨. 매매로요.”

내가 심플하게 말하자, 아주머니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아휴, 젊은 사장님이 시원시원하시네요~. 결정 잘 하신 거예요. 지금 여기가 딱 좋은 투자처이기도 하거든요. 앞으로 가격이 많이 뛸 겁니다, 분명. 8.2부동산 대책 여파로 아직까지는 초역세권 오피스텔 가치가 계속 상승 중이고요, 공실률도 다른 오피스텔들에 비해 두 배는 낮아요, 또 전매제한도 없다는 게 무척이나 메리트구요, 또 대출규제도 엄청 느슨한 편이고 청약통장 없이도…….”

부동산 아주머니는 수수료 굳히기에 들어가려는 듯 이곳 오피스텔의 장점을 계속해서 설명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2021년 지금의 장점일 뿐.

나는 부동산 아주머니의 말은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다 아는 것일 뿐만 아니라, 나는 그 뒤 15년 후의 미래까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부동산 같은 건 잘 모르지만, 잘 나가는 프로게이머들이 죄다 여기에 집을 사서 재테크를 했었지 아마?’

약 5년쯤 뒤, 이곳은 프로게이머들의 성지가 된다.

리그 경기로 유명세를 탄 프로게이머들이 가장 많이 몰려드는 곳이 바로 이곳.

그래서 부동산 같은 것에 무지한 나조차도 바로 이 오피스텔을 고를 수 있었던 것이다.

‘뭐, 듣자하니 나중에 신분당선이 연장되고 서초역, 강남역 인근이 추가 개발됐지 아마?’

이미 한계까지 이른 서울 강남의 개발이다.

여기서 뭘 더 개발하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 없지만……그래도 강남은 계속 개발된다.

뭐 더 할 게 없을 것 같은데도 계속, 계에~속.

“이래서 있는 놈들이 돈을 꾸준히 더 많이 벌어 가는구나.”

나는 14층 아래의 서울 경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기, 사장님. 그래서 입주날짜는 언제쯤?”

부동산 아주머니가 옆에서 물어왔다. 나는 달력을 한번 본 뒤 대답했다.

“음. 두 달에서 세 달 정도 뒤에요.”

“아 네네. 딱 좋네요. 집 주인 분도 그 정도를 원하세요. 집이 빨리 나가길 원하셔서 시세보다 조금 저렴하게 내놓으셨거든요. 아휴, 이 정도 가격에 이 정도 매물 없어요, 요즘~. 인테리어도 이거 이거, 싹 예쁘게 리모델링 하신 것 추가금도 하나 안 받으시고~ 호호호호.”

부동산 아주머니는 모든 것이 딱딱 맞아 떨어지는 상황에 희열마저 느끼시는 듯하다.

나는 그 옆에서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사실 입주는 지금 당장 시작해도 상관없다. 이 오피스텔을 살 수 있는 돈이야 이미 마련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현금 자산을 최대한 모아 두는 게 우선이지.’

6주 뒤에 열릴 합법 e스포츠 토토.

거기서 21배가 터지는 최고의 배당.

그 때를 노리려면 지금부터 현금 원기옥을 모아 둬야 한다.

“여기 4층에 헬스장 있는데 거기서 운동 하셔도 되고요, 수영장도 다 무료에요, 매일 아침 7시에는 1층에서 토스트랑 게란 프라이, 커피를 무료로 드리니 꼭 드셔보세요. 그게 꽤 맛있더라니깐?”

부동산 아주머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 7시면 한창 레이드 돌고 있을 시간이네, 나는 못 먹겠군.

내 표정을 읽은 부동산 아주머니는 재빨리 첨언을 했다.

“아, 아침에 못 드시는 분들을 위해서 저녁 7시쯤에서 마늘빵하고 베이컨을 주던데, 그거는 따로 신청을 하시면 될 거예요. 거의 무료나 다름없던데?”

부동산 아주머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 7시면 한창 레이드 돌고 있을 시간이네, 나는 못 먹겠군.

…….

뭐 아무튼.

집을 다 돌아보고 나가려는 길에, 부동산 아주머니는 곰살맞은 태도로 내 팔뚝을 톡톡 쳤다.

“아휴, 사장님은 이렇게 젊으신 분이 캡슐방도 하시고, 이렇게 비싼 오피스텔도 척척 사시고. 무슨 일 하시는 분이시길래 이렇게 능력이 좋으실까?”

“그냥 프리랜서죠 뭐.”

“아휴! 역시 능력 있는 사람은 프리랜서를 해야 해! 인물도 훤하고 키도 훤칠하시고~ 아주 내 딸들 소개해 주고 싶을 정도라니깐!”

딸들?

내가 약간의 관심을 보이자, 부동산 아주머니는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사진을 보여 주려는 듯 갤러리 폴더를 뒤지기 시작했다.

“내 딸들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다들 예쁘고 착해. 공부도 잘해서 다들 명문대 나와서 지금은 시험 준비하는데……요것들이 요즘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가상현실 게임인지 뭔지에 빠져 가지고는….”

나는 물끄러미 부동산 아주머니를 바라보았다.

아주머니는 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미인이시다.

키도 크시고 건강미가 넘치시는 걸 보면 딸들도 아마 예쁘겠지.

‘근데 게임을 한다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인가 설마?’

애인과 같은 게임을 하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이 또 있을까?

약간 호기심이 동하려는 순간.

“자, 세 쌍둥이라 외모는 다 똑같은데, 성격은 다들 달라요.”

부동산 아주머니가 내게 핸드폰을 내민다.

순간.

나는 미증유의 불길함을 느꼈다.

“아, 안 볼래요.”

나는 손바닥을 뻗어 부동산 아주머니의 핸드폰을 차단했다.

“에? 왜요?”

부동산 아주머니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뭐라고 해야 할까? 세쌍둥이라는 말을 들으니 왠지 오싹 소름이 돋아서라고?

“음……. 제가 남자를 좋아해서요.”

나는 일단 되는 대로 주워섬겼다.

“아, 남자…남자 좋아하시는구나. 나돈데…….”

부동산 아주머니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오피스텔을 나와 길거리로 나섰다.

이제는 꽤 멀리 떨어져 있는 나의 캡슐방으로 갈 예정이다.

아직 캡슐은 한 대도 들여놓지 않아 텅 빈 지하 층. 하지만 나는 그 어둠에 잠겨 있을 때면 괜시리 편안해지는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며 명상에 잠기는 시간. 때문에 나는 종종 아무것도 없는 빈 캡슐방을 돌아보곤 한다.

앞으로 채워 나갈 빈 공간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택시!”

나는 캡슐방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끼익-

차가 서자, 나는 바로 뒷좌석을 열었다.

“한선동이요.”

그러자, 택시기사는 표정을 찌푸렸다.

“그거 저기 앞에 고가만 넘으면 되는데? 그냥 걸어가시지?”

“……?”

내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으아! 급해요 급해!”

뒤에 있던 여자 하나가 내가 열어 놓은 뒷좌석 문으로 쏙 들어간다.

“고래동이요!”

여자가 말한 목적지는 내가 말한 곳보다 서너 배는 먼 곳.

부웅-

그러자, 택시기사는 그대로 차를 몰아 출발해 버렸다.

“허…….”

나는 황당한 마음에 입을 벌렸다.

한참을 기다려 또다시 택시를 잡자,

“죄송한데. 핸들이 고장 나서 직진밖에 안 돼요. 한선동은 힘들겠는데…….”

“아, 이거는 장거리라서.”

택시는 저마다의 핑계로 나를 피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 와중에도 잘만 태우면서.

‘이거 거리가 애매하니 택시도 안 태워 주네.’

나는 벌써 길바닥에 선 채 35분 이상을 낭비했다.

결국 내가 택한 것은 버스였다.

15분 이상을 기다리자, 정류장으로 버스가 왔다.

“기사님, 이거 한선동 방향 맞죠?”

혹시나 싶어 탈 때 묻자,

“아뇨. 그거 반대쪽.”

기사님은 길 건너편에 있는 정류장을 가리키고는 문을 닫아 버렸다.

나는 또다시 먼 곳에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 맞은편 정류장으로 가야 했다.

또 10분 이상을 기다리자, 마침내 버스가 온다.

하지만 버스 안에는 사람들이 순대 속 당면처럼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구겨 타면 얼추 탈 수 있을 것도 같았지만…….

툭-

맨 앞에 서 있던 내 어깨를 치고 우르르 버스로 몰려가는 패거리가 있었다.

아직 어린 학생들로 보이는 이들이 대놓고 내 앞을 새치기해 만원 버스에 올라탄다.

욕이 나오려고 했지만 꾹 참았다. 나는 불의를 보면 잘 참는 성격이니까.

…….

한데?

어째 저 새치기범들 좀 낯익다?

“아오, 접속불가 패널티 진짜 빡치네.”

“그 고인물 XX 진짜 잡히기만 해라 아주.”

“그러지 말고 이참에 아예 길드 움직여서 조지는 게 어떠냐?”

“그래. 그놈은 아예 길드 차원에서 척살령 내려야 해!”

네 명의 새치기범.

놈들은 일전에 나에게 이용당해 죽었던 고인물 사총사였다!

‘이런.’

나는 잽싸게 뒤돌아서 버스에서 멀어졌다. 하필 이런 우연이 벌어지다니.

뭐 아무튼.

고인물 사총사를 실은 버스는 출발해 버렸다.

나는 도합 1시간 이상을 길바닥에서 보냈는데 아직도 제자리다.

이 시간이면 이미 볼 일 다 보고 집에 도착해서 레이드를 돌고 있어야 하는데.

“미치겠네, 정말.”

나는 부글부글 끓는 짜증을 어찌 하지도 못하고 버스 정류장에 섰다.

택시는 승차거부, 버스는 이 시간대에 항상 만원.

지하철은 또 너무 멀다.

바로 그때.

“……!”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건너편 고층빌딩의 1층, 쇼윈도 안으로 차들이 쭉 진열되어 있는 매장.

크지도 작지도 않은 간판 위에 우아한 글씨체로 적힌 글씨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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