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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34화 (34/1,000)
  • 34화 잔액조회 (2)

    메두사 공략 영상의 조회수는 점점 치솟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댓글이 많아져 종국엔 감히 정주행을 할 엄두도 나지 않기 시작했다.

    저걸 다 읽어 보려면 아마 이틀 밤은 새야 할 것 같다.

    99%는 나의 신들린 플레이에 보내는 찬양. 나머지 1%는 조금 다른 종류의 댓글들이다. 어떤 댓글들이냐면…….

    “아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나는 서둘러 방송 플랫폼들에 연결된 계좌를 열어 보았다.

    음성 도네이션 / 영상 도네이션 / 해피콩 / 별조각 / 후원금 / 선물 골드…….

    여러 갈래로 구분된 플랫폼의 가상화폐들이 눈에 들어온다.

    일반적으로 플랫폼과 개인의 정산 비율은 수수료 떼고 7:3정도.

    하지만 그것은 독점일 때의 이야기다.

    비독점의 경우에는 6:4 정도. 거기에 원천징수 세금 또한 무시 못 할 정도로 크다.

    터무니없을 정도로 많은 돈을 수수료와 세금 등으로 뜯기게 되었지만, 그래도 남은 돈이 상당했다.

    약 4억 원 정도의 돈이 하루아침에 들어왔다. 대부분 해외, 특히 북미와 북유럽 쪽에서 들어온 후원금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우는 천사를 잡을 당시 생존했던 이들에게 삥(?) 뜯었던 금액 역시 그 중 일부였다.

    “흠, 이걸 어떻게 정산해야 하지?”

    나는 잠시 고민한 끝에 플랫픔으로 직접 문의하기로 했다.

    일단 에이프리카 TV.

    전화를 걸자 담당자가 시큰둥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네~ 에이프리카입니다.]

    나는 침착한 목소리로 용건을 밝혔다.

    “네. 에이프리카에서 활동하고 있는 BJ인데요. 정산 관련해서 문의드려요.”

    [……네에, 정산 문의 어떤 거요?]

    “입금 날짜랑 정산 방법이 궁금해서요.”

    그러자, 에이프리카 담당자는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네~ 사이트 우측 하단에 보시면 공지 나와 있거든요? 매달 말일에 나가고 주말일 경우 그 다음 주 월요일에 지급됩니다. 정산 방식은 저희가 나중에 직접 BJ님 계좌로 입금해 드리는 것이고요.]

    “제가 비율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얼마나 공제가 되나요?”

    [네에~ 후…그거야 BJ님이 독점이냐 비독점이냐에 따라 다른데……아, 잠깐만요. 제가 지금 좀 바빠서…나중에 살펴보고 따로 쪽지 통해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혹시 예명이 어떻게 되시는지?]

    어째 조금 귀찮은 눈치인데? 나는 그의 수고를 덜어 주기 위해 서둘러 말했다.

    “‘BJ고인물’입니다.”

    그러자.

    [네네~ BJ고인물 님이요. 네~ 제가 나중에 직원 통해서 쪽지 보내라고 지시…음? ……네? 누구요?]

    에이프리카 담당자는 말끝에 물음표를 띄웠다.

    [BJ고인물……? 혹시 2주 전부터 방송 시작하신……고인물 님 맞으신가요? 게임 장르 쪽에서?]

    “네, 맞는데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자.

    [자, 잠시만 기다리세…아니 기다려 주세요! BJ님!]

    전화기 너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약 3초 뒤, 그는 매우 가다듬어진 목소리로 다시 전화를 받았다.

    [네! 안녕하세요, BJ고인물 님! 저는 에이프리카 대응팀의 홍형근이라고 합니다!]

    홍형근. 그는 나를 향해 매우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휴, 방송 너무 잘 보고 있습니다. 저희 내부에서도 슈퍼루키가 나타났다고 아주 소문이 자자해요. 조회수 차트 올킬에, 후원금 신기록에, 아주 게임 장르에 전례가 없는 기록이 떴어요. 그것 때문에 꼭 한번 만나 뵙고 얘기 나눠 보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통화하게 되어 정말 너무 무진장 영광입니다.]

    이제 꼴랑 영상 두어 개, 그것도 녹화, 심지어 비독점으로 올린 나에게 너무 과도한 친절인데?

    물론.

    이 세상에 과도하게 쓰레기 짓 하는 놈은 많아도 과도하게 친절한 놈은 없다.

    나는 수화기 너머에 있는 홍형근의 속셈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나를 살살 구슬려서 독점 BJ, 거기에 파트너쉽 BJ인지 뭔지까지 시킬 심산이겠지 뭐.’

    우선 후원금 정산 비율을 올려주니 광고비를 따로 챙겨 주니 하면서 달콤한 말로 나를 구슬릴 것이다.

    그 말은 곧 내 최종 수입을 절반 이하로 쫙- 쥐어짜고 그 가운데서 발생한 달달한 즙을 다 빨아 처먹겠다는 의도다.

    그 대가로 홍형근, 그는 짭짤한 성과급을 받을 것이고.

    만약 내가 21살의 사회 초년생이었다면 이런 극진한 대우와 겉보기에 화려한 이런저런 타이틀, 조건에 홀라당 넘어갔을 공산이 크지만…….

    ‘지금은 택도 없지.’

    현재의 나는 산전수전 다 겪은 35살 겜창 폐인 히키 몰락 인생을 겪어 낸 몸이 아니던가.

    플랫폼, 아니 비단 이들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존재들은 다 똑같다.

    승자에게는 뜨거운 사랑과 관심을 주지만 패자에게는 지독스럽게도 차갑고 쓰라린 멸시와 무관심을 보낸다.

    내가 전생에 인연이 좀 있었던 에이프리카 역시 마찬가지였다.

    [혹시 시간 언제 괜찮으신가요? 저희 에이프리카는 청담동에 위치해 있는데 한번 놀러 오시지 않으시겠어요? 아니면 제가 가도 좋고요. 지역만 말씀해 주시면 어디든지 달려가겠습니다! 제가 진짜 BJ고인물님 팬이라서 그래요!]

    팬은 개뿔.

    순수한 팬심을 가장하고 있지만 사실 성과급에 눈이 먼 사냥개.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는 족속들.

    나는 이래서 기본적으로 플랫폼, 프로게이머 구단, 방송 매니지먼트 종자들은 믿지 않는다.

    이번 생에서는 더욱 더 철저하게 불신해 줄 것이다.

    “정산 및 유통과정에서 생기는 안내사항들만 메일로 보내 주세요. 아, 정산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셔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앗! 네 당연하죠! 세상에 정산금 문제로 장난치는 플랫폼이 있을까요? 아무런 염려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음에 언제 시간 괜찮으시면 꼭 좀…….]

    나는 그냥 전화를 끊어 버렸다.

    정산금 문제로 속 썩이다가 방송계 떠나는 BJ, 스트리머들 많이 봤다.

    비독점 계약을 고수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한 플랫폼에 독점, 전속으로 묶여 있는데 이곳에서 돈이 안 나와 버리면 정말 곤란해질 테니까.

    이들과는 친밀해질 이유도 필요도 없다.

    그저 비즈니스적으로만 교류하면 그뿐. 필요하면 이용하고 필요 없으면 내치면 되는 것이다.

    “……흐음.”

    나는 전화를 끊고 다시 내 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읽어 보았다.

    아까 99%의 댓글이 나를 찬양하는 내용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나머지 1%는 거의 대부분 계약 관련 문의들이다.

    <ㅇㅇ플랫폼에서 귀하를 파트너 스트리머로 모시고…….>

    <안녕하세요 ㅍㅍTV입니다. 고인물님의 방송 언제나 잘 보고…….>

    <ㅂㅂ캐스트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귀하께 전속 BJ…….>

    .

    .

    나는 콧방귀를 뀌며 모든 메일들을 씹어 버렸다.

    고독한 늑대. 결코 무리를 만들지 않는.

    신비주의, 쿨, 시크, 차가운 도시남자. 그것이 나의 콘셉트다.

    “하지만 내 광고주에게는 따듯하겠지.”

    그와는 별개로, 나는 광고 의뢰를 해 오는 이들의 메일에는 매우 친절하고 살갑게 답장했다.

    <안녕하세요. ‘어진 이 엔터테인먼트’ 기획실장 임우람입니다. 걸그룹 ‘니아(NIAR)’ 앨범 홍보 관련해서 문의드립니다. 중간 소배너라도 배정해 주시면 정말 감사드리겠…….>

    <ㅅㅂ보일러에서 대배너 광고 문의 드립니다>

    <ㅂㅅ인테리어에서 벽지/몰딩/샷시 텍스트 광고 의뢰…….>

    <ㅈㄲ웹툰에서 하단 소배너 관련해서 문의…….>

    .

    .

    조물주님보다 위대하신 광고주님들의 요청이 쇄도하고 있었다. 나는 기쁨의 비명을 한번 꺅- 하고 질러 준 뒤 모든 메일들에 일일이 수작업으로 따듯한 메시지 답장을 보내기 시작했다.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내 채널에 들어올 광고들 몇 개를 취향에 맞게 이것저것 선별하고 있을 때.

    간간히 보이는 몇 종류의 메일이 또다시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이번 역시 귀하의 플레이를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그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실로 감동적인 레이드였습니다! 이에 다시 한 번 간곡하게 메시지 드립니다. 저희 프로게이머 팀 ‘국K-1’은 명실공이 국내 최고의 팀으로…(중략)…가입하지 않으셔도 괜찮으니 한번 만나 뵙고 식사를 대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면…….>

    이와 비슷한 메일의 수가 32개 정도. 우리나라에 벌써 ‘뎀’ 프로팀이 이렇게 많아졌나?

    하나같이 입단을 간곡하게 청하고 있다. 연봉 역시 상당한 거액이다.

    개중에는 원한다면 개인방송 금지 조항을 풀어 주겠다고 하는 곳도 있었다.

    하기야 당연한 것이다.

    프로게이머로 버는 연봉보다 개인방송으로 버는 수익이 월등히 많은 것이 현실이니까.

    그 차이는 앞으로도 점점 더 벌어질 것이다.

    “슬슬 몸값도 많이 뛴 것 같은데. 한번 정식으로 해 볼까?”

    잘하면 현역으로 뛰는 동시에 코치로도 활동 가능할 것 같다.

    그렇게 될 경우 현역 선수로 뛰는 팀과 코치로 있는 팀을 달리 할 용의도 있다.

    물론 계약서에 여러 특약 사항을 기재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나는 내게 입단 제의를 해 온 프로게이머 구단들을 쭉 둘러보기 시작했다.

    어지간한 메이저급 구단에서는 모두 연락이 왔다.

    내 메일함에 보이지 않는 곳은 너무 작아서 나를 영입할 깜냥이 안 되기에 연락을 못 한 것이리라.

    나는 엔트리를 만들어 몇 개 유망한 구단을 추려 냈다.

    물론 현재의 평판이나 위세만 보고 골라낸 것은 아니다.

    차후 15년 뒤의 미래까지 그 영향력을 유지, 성장시킬 수 있느냐의 여부도 놓고 골랐다.

    수많은 게임이 쇠락하고 다시 떠오르고를 반복하는 세월.

    명멸(明滅)을 반복하던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프로 리그는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많은 팀이 생겨나고 또 사라졌다.

    절대로 그 기세가 죽지 않을 것 같던 초대형 강팀이 어이없는 이유로 사라지는가 하면 절대로 빛 볼 일 없을 것 같던 작은 팀이 메이저급으로 단숨에 치고 올라오는 경우도 있었다.

    “흐음. 어디를 고른담.”

    나는 제시받은 연봉과 팀 내 복지, 그리고 15년 뒤의 위상을 비교해 가며 한참을 고심했다.

    이거 하루 이틀 고민해서는 될 게 아니다.

    바로 그때.

    인터넷 기사들을 뒤지던 내 눈에 문득 흥미로운 팝업창이 들어왔다.

    <♠♠마감임박!♠♠ 역대 급 ♣매칭♣!>

    <¥$단폴♠♤다폴♣♧보너스♥♡배당◐◑역배◆◇무잡이¥$드루와~드루와~>

    <일주일간 보지 않기 [X]>

    이것은 프로게이머 입단 문제와는 별로 상관이 없지만, 충분히 내 관심을 삼천포로 빠지게 할 만큼 매력적인 것이었다.

    “토토라…….”

    참 사람들 돈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맡는다.

    게임 출시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불법 사설 토토가 활개를 치고 있다.

    뭐, 원래 스포츠 토토는 합법이었다.

    먼 옛날, 체육진흥투표권은 고정환급률 방식과 고정배당률 방식으로 토토와 프로토를 나누었다.

    이 중에서 토토는 경기의 승패를 맞춘 배팅자에게 배당금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승/무/패를 맞히는 ‘승부식 게임’

    득점/실점을 맞히는 ‘점수식 게임’

    이를 혼합한 ‘혼합식 게임’

    우승자/순위/득점선수 등을 맞히는 ‘특별식 게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뎀 토토는 승부식 게임이었다.

    그 중에서도 제일 화려한 종목은 바로 PK!

    레이드 시간을 놓고 겨루거나 게임 내 각종 미니게임에서 경주를 하는 일도 많았지만, 사실 대부분의 프로리그 경기의 테마는 프로게이머와 프로게이머 간의 PK로 이루어진다.

    프로리그의 99.9%는 PK가 그 콘텐츠였다.

    “그런데, 아직은 합법이 아닐 텐데?”

    내 기억으로 뎀 토토가 합법이 되는 것은 2020년 중순.

    앞으로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엄연히 불법 사설 도박 사이트 광고인 셈이다.

    “좋네. 나중에 한번 해 봐야지. 나쁘지 않겠어.”

    ……아, 물론 불법을 저지르겠다는 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내 전생의 기억에 의하면, 가장 큰 불법 사설 토토 사이트를 정부가 단속한 뒤 그 프로그램을 압수 운영하여 정식으로 오픈하는 것이 앞으로 2주일 쯤 뒤이다.

    그러니까 2주 뒤면 합법화 된다는 소리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시작된 정식 E스포츠 토토에서 첫 번째로 거액의 배당금이 쏠리는 곳을 미리 알고 있었다.

    역배.

    무려 21배가 터지는 전설의 판.

    6주 뒤에 벌어지는, 한국 랭킹 2위와 노랭크 신인 프로게이머 ‘투신’ 마태강의 매치다.

    참고로 지금의 마태강은 아직 ‘투신’이라는 별명도 없는 상태다.

    그에 반해 상대는 명실공이 대한민국의 대표 PK 플레이어.

    누가 봐도 결과는 뻔한 승부였다. 괜히 21배짜리 역배가 터지는 게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반전(反轉)의 연속인 법.

    나는 프로게이머 입단 고민을 아주 잠시 밀어 놓기로 했다.

    달력을 쳐다보며 설레는 것은 꽤 오랜만인 것 같았다.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기다려지는데?”

    그때까지 현금이나 많이 쌓아 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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